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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1부 화북의 웅혼한 역사 01 태항산│붉은 절벽에 새겨진 인간의 시간 _이민숙 02 태산│오르고 또 올라 _김구용 03 항산│중원 수호의 방패이거나 진입의 장벽이거나 _이윤희 04 면산│전설과 신앙, 삶을 품다 _장미경 05 숭산│지독한 정성의 산 _고진아 06 화산│끊어진 길 너머, 초월로 향하다 _이연희 제2부 장강 유역의 풍경과 예술 07 황산│그림 속 풍경, 풍경 속 그림 _박남용 08 여산│그 얼굴은 여전히 낯설다 _김의정 09 무당산│신비롭다, 애절하다 _김명신 10 회계산│오래된 물길 위에 겹쳐진 기억들 _이현서 제3부 서부의 신비한 세계 11 곤륜산│꿈꾸지만 소유할 수 없는 유토피아 _송정화 12 아미산│높이 오를수록 낮아지는 마음 _정민경 13 옥룡설산│만년설로 빚은 은백색의 용 _김태연 제4부 남부의 정취와 삶 14 무이산│차향 그윽한 무릉도원 _송진영 15 형산│인간의 욕망이 신을 부른다 _최수경 16 정강산│혁명의 요람 _송가배 17 아리산│빨간 기차를 타고 하얀 바다로 _이주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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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량촌을 뒤로하고 서북쪽으로 향하면 우리의 역사와 떼어놓을 수 없는 곳이 나온다. 태항산에는 조선의용군의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다. 그중 산서성 좌권현(左權縣) 상무촌(上武村)은 화북으로 북상한 조선의용군이 처음 머물렀던 곳이다. 당시 이곳에는 연안에 본부를 둔 중국공산당 산하 팔로군이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조국의 독립을 갈망한 조선의용군은 팔로군과 협력하기로 하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또한 그곳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마전진(麻田鎭)은 걸어서 왕래할 수 있는 거리라, 당시 의용군은 이 일대 전체를 하나의 활동 기지로 사용했다. 다시 청장하(清漳河)를 따라 남서쪽으로 향하면 운두저촌(雲頭底村)이 나온다. 이곳에는 지금도 ‘강제병 끌려나온 동포들 팔로군이 있는 끋마당 조선의용군이 있으니 총을 하랄노 향하여 쏘시요!’라는 한글 표어가 남아 있다. 이는 전투 중 동포를 향한 사격을 피하고, 기회를 봐서 조선의용군으로 투항하라는 절박한 호소다.
---「01 태항산│붉은 절벽에 새겨진 인간의 시간」중에서 산이 아름답다고만 해서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삶과 연결될 때 비로소 산은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면산은 바로 그런 ‘산’이며, 면산을 이야기할 때 진상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산은 실제로 ‘넘고 지나며’ 삶을 이어간 산이었다. 상인들에게 산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었다. 험한 지형과 변화무쌍한 날씨, 길 위의 위험을 견뎌야 하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진상들은 면산을 지날 때 산신에게 제를 올리고, 절과 도관에 들러 시주하며 무사한 여정과 순조로운 거래를 빌었다. 이는 단순한 미신이라기보다 불안과 위험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구하려는 현실적인 태도에 가까웠다. 면산은 그들에게 자연 장벽이면서도 마음을 기대는 산이었다. 장사를 위해 지나야 하는 험준한 산이자 무사함을 빌어야 하는 산이었던 것이다. ---「04 면산│전설과 신앙, 삶을 품다」중에서에서 산과 바다 등 자연을 그리고자 한 사람들은 어떻게 자연을 감상하며 그 정수를 느꼈을까. 자연의 정수를 느낀다는 것은 아마도 그 실체를 사실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자연에 기탁하여 보고 듣고 느끼며 상상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황산을 오르면서도 저마다 산을 바라보는 방법이 서로 다르지 않았을까. 거대하고 장엄한 산의 모습을 한 폭의 작은 그림으로 압축하여 그리고자 한다면 더욱 그러하지 않았을까.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본 것을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동양의 산수화는 사실이 3할이라면 상상이 7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07 황산│그림 속 풍경, 풍경 속 그림」중에서 곤륜산은 언제 어떻게 역사 속의 산으로 등장하게 되었을까? 그 전환을 보여주는 것이 「죽서기년(竹書紀年)」과 「목천자전(穆天子傳)」에 전하는 주목왕(周穆王)의 이야기다. 이 전승에 따르면 주목왕은 서쪽으로 원정을 떠나 곤륜으로 향하고, 마침내 그곳에서 서왕모를 만난다. 왕의 여정을 따라 곤륜산은 신화 속 산이면서, 동시에 실제로 ‘가본 산’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곤륜산 신화가 ‘역사 서사’를 통해 현실 속 이야기로 들어오면서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곤륜은 제국의 상상력과도 연결된다. 주목왕의 서역 원정은 정치의 언어이며, 서왕모는 신화의 언어이다. 곤륜산은 그 두 언어가 만나는 장소이다. 그래서 곤륜산은 단순히 신화적 상징에 머물지 않고, 권력과 세계관이 교차하는 무대가 된다. 신화와 역사가 공존한다는 것은 서로 뒤섞여 흐려진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며 더욱 강한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역사는 신화를 통해 빛나고, 신화는 역사를 통해 더욱 그럴듯해진다. 곤륜산은 그 과정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소다. ---「11 곤륜산│꿈꾸지만 소유할 수 없는 유토피아」중에서 오늘날 대홍포차는 무이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암차로, 우롱차의 한 종류이다. 중국차 대부분이 생산지의 이름을 따르는 것과 달리 대홍포차에는 무척 감동적인 유래가 전해진다. 명나라 때 과거를 보러 가다가 쓰러진 선비에게 무이산의 스님이 사찰에서 내려오는 비방으로 만든 차를 달여주었다. 차를 마시고 기력을 회복한 선비는 과거에 급제했고, 고마운 마음에 무이산으로 돌아와 차나무에 홍포를 입혀주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이 선비가 과거에 급제한 뒤 아직 궁궐에 머물고 있을 때, 황후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아무리 치료해도 낫지 않았다. 이에 선비는 황후의 병세가 과거 자신의 병세와 유사한 것을 알고 무이산의 스님에게 받은 차를 바쳤고, 황후가 이를 마시고 낫자 황제는 감사의 뜻으로 차나무에 홍포를 하사했다고 한다. 그 뒤 이 차나무에서 생산된 차는 고급 차의 대명사가 되었고, 그 나무는 대홍포모수(大紅袍母樹)로 지정되어 지금까지도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14 무이산│차향 그윽한 무릉도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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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른 사람들, 저마다 다른 꿈을 꾸다
산은 어떻게 권력과 신앙의 무대가 되었을까? 중국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산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한 다섯 산이 있다. 동쪽의 태산, 서쪽의 화산, 남쪽의 형산, 북쪽의 항산, 중앙의 숭산을 일컫는 오악(五嶽)이다. 오악은 단순히 높고 아름다운 산 다섯 곳을 골라놓은 것이 아니다. 동서남북과 중앙에 각각 산을 대응시켜 천하의 질서를 나타낸 것이다. 우리에게 태산은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양사언의 시조로 익숙한 산이다. 그러나 중국의 황제들에게 이 산은 경치를 즐기는 여행지가 아니었다. 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자신의 통치가 하늘의 뜻을 받았음을 드러내는 정치 행위였다. 특히 동악 태산은 역대 황제들이 권위를 과시한 상징적인 무대였다. 진시황이 올랐고 한 무제가 여러 차례 찾았으며 당 현종 역시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왕조가 바뀐 뒤에도 태산의 상징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태산에는 권력자들의 욕망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공자가 태산 기슭을 지나다가 한 여인의 사연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호랑이에게 시아버지와 남편, 아들까지 잃은 여인에게 공자가 왜 그곳을 떠나지 않느냐고 묻자, 여인은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공자는 탄식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다(苛政猛於虎也).” 우리에게도 ‘가정맹어호’라는 고사성어로 익숙한 이야기다. 황제가 하늘을 향해 권위를 과시하던 산 아래에서 평범한 백성은 좋은 정치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었던 셈이다. 중악 숭산에서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 무측천을 만난다. 1982년 봄, 숭산 자락에서 한 농부가 우연히 발견한 얇은 황금빛 금속판은 1,000년 넘게 땅속에 묻혀 있던 무측천의 금간(金簡)이었다. 천하의 중심을 상징하는 숭산은 무측천에게 자신의 권력을 하늘과 연결하는 특별한 장소였다. 그러나 같은 산자락에서 숭양서원의 학자들은 학문에 매진했고, 무술영화로도 친숙한 소림사의 수행자들은 몸과 마음을 단련했다. 오늘날에는 무술학교 아이들의 기합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대도 목적도 다르지만 자신의 길을 향한 지독한 정성만큼은 닮아 있다. 서악 화산에는 신화와 전설이 살아 숨 쉰다. 서봉에는 도끼로 내려친 듯 두 동강이 난 부벽석(斧壁石)이 있다. 이 바위에는 산을 갈라 어머니를 구한 소년 침향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천계의 규율을 어긴 어머니 삼성모가 화산 아래에 갇히자 아들이 도끼로 산을 쪼개 구해냈다는 벽산구모(劈山救母) 설화다. 오늘날에도 관광객들은 부벽석 앞에서 모형 도끼를 들고 침향의 자세를 따라 한다. 북악 항산의 절벽에는 현공사가 매달려 있고, 남악 형산에서는 불교와 도교의 오랜 신앙이 만난다. 황제와 백성, 학자와 수행자, 신화 속 인물까지 저마다 다른 사연을 품은 오악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었다. 하늘과 인간, 권력과 신앙, 현실과 초월이 만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시가 되고 그림이 된 명산의 매력은 무엇일까? 신화와 예술, 학문이 어우러져 깊이를 더한 또 하나의 세계 산은 인간이 사는 평지보다 하늘에 가깝다. 높이 올라갈수록 일상의 세계에서는 멀어진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산 너머에 인간의 현실과는 다른 세계가 있다고 상상했다. 그 상상력의 중심에 곤륜산이 있다. 『산해경(山海經)』에는 곤륜에 서왕모가 산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우아하고 자애로운 여신과 달리 고대의 서왕모는 호랑이 이빨과 표범 꼬리를 지닌 야성적인 존재였다. 서쪽으로 원정을 떠난 주나라 목왕이 곤륜에서 서왕모를 만났다는 전설이 더해지면서 곤륜은 묘한 장소가 되었다. 그 산은 현실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도 정확한 위치를 찾아나서는 순간 신화 속으로 멀어져버린다. 사람들은 왜 현실 너머에 이런 산을 만들어냈을까?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늙음과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며 현실의 고통이 닿지 않는 세계.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런 장소를 꿈꾸었고, 그 꿈을 곤륜이라는 이름에 담았다. 곤륜산은 실제 산맥인 동시에 인간이 결코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유토피아였던 셈이다. 산에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 것은 신화만이 아니다. 문인과 화가들은 자신이 보고 느낀 산을 글과 그림으로 옮겼다. 황산의 기이한 봉우리와 소나무, 봉우리 사이를 채우는 운해는 오랫동안 문인과 화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명나라의 여행가 서하객은 황산의 절경을 높이 평가했다. 후대에는 이를 두고 ‘오악을 보고 돌아오면 다른 산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황산을 보고 돌아오면 오악마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졌다. 과거의 문인들이 붓을 들었다면 오늘의 여행객들은 스마트폰을 꺼낸다. 도구는 달라졌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어떻게든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산에서는 풍경이 문학을 만나 생각의 공간으로 바뀐다. 이백과 백거이, 소동파를 비롯한 수많은 문인이 여산을 노래했다. 특히 소동파가 남긴 ‘이 몸이 산중에 있기에 그 진면목을 알 수 없다’는 시구는 산을 바라보는 일을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문제로 확장한다. 너무 가까이 들어가 있으면 오히려 전체를 볼 수 없다는 역설이다. 오늘날 여산에는 관광버스와 케이블카가 오가지만, 산을 뒤덮는 운무는 여전히 옛 문인들이 바라보았던 풍경을 불러낸다. 무이산에 이르면 산은 학문의 공간이 되고, 이야기는 중국을 넘어 한반도까지 건너온다. 남송의 대학자 주희가 이곳에서 학문을 닦으면서 무이구곡은 단순한 명승지를 넘어 성리학적 이상과 학문적 삶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직접 무이산에 가보지 않고도 주희의 글과 그림을 통해 이 산을 사랑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송시열 같은 학자들은 자신이 머물던 산과 계곡에 무이산의 학문적 이상을 담아냈다. 곤륜산에 얽힌 신화부터 황산을 담은 그림, 여산을 노래한 시, 무이산에서 꽃피운 성리학에 이르기까지, 산을 둘러싼 인간의 생각과 문화는 시대와 국경을 넘어 확장되었다. 실제 산의 풍경에 신화와 시, 그림과 학문이 하나씩 포개지면서 산은 풍성한 문화적 의미를 얻게 되었다. 그 산에 이런 이야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 연구자의 시선과 여행자의 발걸음으로 새롭게 읽는 중국 명산 이 책의 저자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중국 문학과 문화, 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쳐왔다. 그래서 산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조금 다르다. 눈앞에 펼쳐진 절경을 감탄하며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산 이름 하나, 바위 하나, 오래된 사찰과 비석 하나에서도 이야기를 찾아낸다. 옛 문헌과 민간에 전해오는 신화와 전설을 살피며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믿음과 욕망을 읽어낸다. 그렇다고 책상 앞에서 옛 문헌만 들여다본 책은 아니다. 저자들의 현장 경험도 생생하게 녹아 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돌계단을 오르고, 사찰과 마을을 찾아가며, 오래된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오늘의 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불편함을 겪지만, 그런 경험마저 산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 그래서 이 책에는 연구자의 지식과 여행자의 체온이 함께 담겨 있다. 옛 기록과 오늘의 풍경을 나란히 놓고 산을 새롭게 읽어내는 것. 익숙한 명산에서도 미처 몰랐던 면모를 발견하고, 낯선 산에서도 친근한 이야기를 만나는 것. 이것이 이 책이 일반적인 명산 안내서나 여행기와 다른 지점이다. 그 산 너머에서는 오늘도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까? 격동의 역사에서 빨간 산악열차까지, 산이 품은 어제와 오늘 중국 명산을 따라가는 여정은 고대 황제와 신선, 시인들의 세계에서 멈추지 않는다. 시대가 달라지면 사람들은 같은 산에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20세기에는 정강산이 새로운 의미의 성산이 되었다. 1927년 국민당에 쫓기던 중국공산당은 이 산으로 들어가 혁명 근거지를 세웠고, 훗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으로 이어지는 힘을 키웠다. 오늘날 정강산이 ‘중국 혁명의 요람’이라 불리는 이유다. 고대의 황제가 하늘의 뜻을 확인하기 위해 산을 찾았다면 근대의 혁명가들은 자신들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산으로 들어갔다. 시대와 주인공은 달라졌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인간이 산을 특별한 공간으로 선택했다는 점은 흥미롭게 닮았다. 중국 명산에 새겨진 근현대의 역사는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태항산의 험준한 산골짜기에는 일제 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일투쟁을 벌인 조선의용군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중국의 산을 따라가다 보면 뜻밖에도 우리의 역사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타이완의 아리산에서는 인간과 산의 관계가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만난다. 울창한 숲의 거대한 나무들은 한때 인간에게 귀중한 자원이었다. 나무를 베어 산 아래로 운반하기 위해 철도가 놓였고, 철길이 산속 깊숙이 들어가면서 역과 마을이 생겨났다. 그러나 벌목의 시대가 저물면서 목재를 나르던 철도는 관광객을 태우는 산악철도로 변신했다. 숲 역시 베어내야 할 자원에서 지키고 찾아가야 할 자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역사 옆에는 여행자의 아주 사소하고 현실적인 기억도 놓인다. 처음 아리산을 찾은 저자는 기대와 달리 열악한 숙소와 버섯․죽순 위주의 음식에 고생하다 급기야 산 아래의 세븐일레븐과 맥도날드를 그리워한다. 이런 순간 덕분에 책 속의 산은 박제된 문화유산에서 빠져나온다. 그곳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먹고 자고 일하며, 관광객을 태운 산악열차가 숲속을 오간다. 이 책이 찾아가는 17개의 명산은 서로 생김새도 다르고 품고 있는 사연도 다르다. 하지만 그 산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은 높이도 절경도 아니다. 사람이다. 황제와 시인, 수행자와 학자, 혁명가와 평범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꿈과 소망을 품고 산을 찾았다. 산에 남겨진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오래된 이야기가 오늘의 삶과도 맞닿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명산 17곳을 소개하는 책이면서, 그보다 더 크게는 산이라는 가장 오래된 무대를 통해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는 인문교양서다. 꼭 산을 좋아하는 사람만 읽을 필요도 없다.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궁금한 사람, 신화와 무협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중국 여행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관심을 따라 이 산들에 들어갈 수 있다. 책장을 덮은 뒤 산을 바라보며 그 너머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진다면, 이 책이 안내하는 여행은 계속되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