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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제1장 전기 제2장 집들 제3장 부성 제4장 모성 제5장 유년기 제6장 동기간 제7장 청춘기 제8장 학대 제9장 첫사랑 제10장 광기 제2부 제11장 변화 제12장 토비 제13장 실험 제14장 밀통 제15장 블룸즈버리 제16장 파괴분자들 제17장 레너드 제18장 결혼 제19장 전쟁 제20장 출판사 제21장 삶을 보기 제22장 캐서린 제23장 독서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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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서평 위원 정은숙
올 여름은 유난히 덥고 습기까지 높아서 견디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렇다고 누구나 마음먹은 대로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더위이기도 하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이 도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좁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마치 우리가 거대한 인간동물원(데즈먼드 모리스의 견해!)에 갇혀 있는 것처럼도 생각된다.
그러나 이 답답함을 깨뜨리며 다가온 출판 대작들이 큰 위로가 된다. 책 속에 펼쳐지는 신천지는 물리적으로 우리를 억압하지 않는다. 한 권의 어떤 책은 현실의 우울한 기상도를 성큼 물러가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또 그 책으로의 여행에는 준비물도 별반 필요치 않다. 한 권의 책과 시간, 그것이 준비물의 전부다. 또 그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는 현실의 여행이 그러하듯이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효과까지가 동일하다. 구체적으로 최근에 나온 대작 출판물을 들자면 먼저 <앙티오이디푸스>의 속편인 쥘르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 공저의 <천 개의 고원>과 책세상 출판사에서 '위대한 작가들' 시리즈의 한 권으로 나온 <버지니아 울프>가 있다. 특히 '위대한 작가들' 시리즈는 그간 초기의 릴케, 토마스 만, 횔덜린 등에서부터 최근의 카뮈, 도스토예프스키, 말로 등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엄밀한 기준으로 위대한 작가의 삶과 문학을 충실하게 그려낸 전기들을 내놓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 작가를 내 자신이 무척 좋아하는 작가라는 의미에서 상하권 거의 1500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이 결코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좁은 의미의 페미니즘 작가라는 식으로 폄하되어 작가적 위상이 이급 작가로 규정되어온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문학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그 묵직한 중량감이 신뢰감으로 다가온다. 이 책의 저자 허마이오니 리는 버지니아 울프 연구의 전문가라고 한다. 역자 장명희 교수 역시 버지니아 울프 전공자로 이 사실만으로도 그간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먼저 박희진 교수의 <버지니아 울프 연구>(1994, 솔출판사)가 떠오른다.) 개략적인 소개에 머물던 버지니아 울프 문학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깊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버지니아 울프는 먼저 <등대로>, <댈러웨이 부인>, <올란도>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런 비교적 잘 알려진 소설들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시도했으며 실로 방대한 저술들을 남겨 놓았다. 이 전기의 저자는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징하게 쓰고 있다. "그녀(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20세기의 인식은, 실험소설 몇 편과 단편, 약간의 에세이와 '작가'의 일기를 쓴 연약한 여류작가에서 가장 전문적이요, 완벽주의적이며, 열성적이고, 용감하고, 언어에 몸 바친 작가 중 하나로 바뀌게 되었다." 사실 버지니아 울프는 동시대의 그녀와 교류한 작가들로 한정해서 보아도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 E.M 포스터 등과 차세대의 T.S 엘리엇 등과 비교할 때 이급의 작가로 규정되어 왔다. 그러나 이 책은 그녀가 이들 작가, 시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같은 반열로 격상시키고 있다. 책 표지에 실린 "나는 내일 죽더라도 글은 남는다"란 말의 울림이 글쓰기가 버지니아 울프에게 있어 신앙, 혹은 그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 책 <버지니아 울프>를 보면 그녀의 문학과 삶의 관계가 잘 드러난다. 그녀는 오늘날까지도 미결인 여러 화두를 붙잡고 가열차게 싸워온 선구적인 작가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를 위한 방법론으로 '전기'의 작성을 들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 전기를 쓴다는 것은 페미니즘에 관해 쓰는 것과 동일한 의미였다. 이 둘을 화학적으로 기묘하게 잘 결합한 예가 <올란도>다. <올란도>는 수백 년의 시차를 두고 성전환을 한 주인공이 등장하여 펼치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전기의 혁명은 곧 성의 혁명이요 문학의 혁명으로 된다. <올란도> 같은 울프의 소설들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관계로(이를 비출 수 있는 비평적 거울은 6,70년대 이후에 만들어졌다.) 그녀는 이급의 작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검열의 문제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이 검열을 의식하고 살았다. 여기서 검열이란 내적인 검열이었다. 그녀는 일기에서 "나는 검열에 대해 생각해 왔다. 가공의 인물이 어떻게 우리를 훈계하는지를 말이다." 그녀는 검열을 의식함으로써 진실한 글쓰기에 대해 숙고하였다. 버지니아 울프는 사적인 글쓰기가 어떻게 공적인 자리,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한 전범이다. 이 책을 통해 작가로서뿐만이 아니라 출판편집인으로서 또 한 사람의 아내로서의 버지니아 울프의 면모가 아주 새롭게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전기 문학의 가능성과 의미를 높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겠다. 나는 이 전기를 다 읽지 못했다. 서평자라면 마땅히 완독한 후에 글을 써야 하리라.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에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성급하게 꺼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럴 때 이 코너의 제목인 '전문가 서평'보다는 세부 제목인 '책으로 읽는 세상'이 얼마나 살뜰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세상이란 본디 얼룩이 지는 법이니까. 부디 용서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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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난 세월 광장 주변을 어떻게 걸어다녔던가를 생각했다. 그때 그녀는 처녀, 아니 거의 소녀였다. 그 소녀는 죽었다. 사라져버렸다. 잠들어 있는 거리는 일순간 무덤처럼 보였다. 비둘기들은 그녀의 과거를 애도하는 진혼곡을 나지막이 웅얼댔다. 그녀의 여러 자아들 중 하나를 위해서. 걷고, 고통받고, 그토록 열정적으로 사고했던 수백만 명 중의 한 명을 위해서. 이제 새로운 순간이 막 탄생하려 한다. 그 과거와 수백만의 삶과 수세대의 먼지로 만들어진.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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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에 인간의 '내면'을 기증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등대로』『댈러웨이 부인』 등 '의식의 흐름' 기법을 이용한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과, 『자기만의 방』『3기니』 등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독립과 자유를 표방한 페미니즘 계열의 선구적인 비평서로 주목받았던 작가다. 그러나 허마이오니 리는 그러한 단순한 독법으로 버지니아 울프를 해석하기를 꺼린다. 그녀는 버지니아 울프가 인간의 '내면'이라는 가장 매혹적이고 방대한 재료를 문학사에 기증했다고 말한다. 또한 여성과 남성을 아우르는 '자아'의 해방에 다가가고자 했다고 해석한다.
같은 맥락에서 허마이오니 리는 버지니아 울프가 누구보다도 강한 에고이스트라고 말한다. 언젠가 단 한 번 만난 프로이트가 그녀에게 수선화를 선물한 일화를 언급하며 그가 아무런 이유 없이 준 것이 아님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그녀의 에고이즘이 '저주받을 만한 자기중심적인 자아'에서만 머물러 있지 않고 '영혼'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주시한다. 개인의 불명료한 부분인 영혼에 대한 관심, 또 그것을 소설로 형식화시키고자 애썼던 버지니아 울프의 작업은 그것 자체가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며 시대를 확장하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글쓰는 자아에게 있어서 '자신'은 자료이자 동시에 도구이다."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가 시도했던 '자아'를 들여다보고 그 흐름을 글로 옮기는 행위, 또 글쓰기를 통해 자아를 통제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자아를 완성하는 일이었다고 판단한다. 무수히 많은 파편들로 나누어져 있는 자아들. 그 '자아들'에 탐닉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글쓰기는 자연스레 존재들의 파편 같은 '순간'과 '장면'을 기록하고 있으나, 또한 그것의 화합을 시도하고 있다. 더불어 그것은 덧없는 '시간'과 '세월'에 대응하는 그녀만의 견고한 저력이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가 당시 몸담고 있던 사회에 대한 충실한 개략도이기도 하다. 그 중 1910년대부터 조명받기 시작한 블룸즈버리 그룹은 눈여겨볼 만하다. "어떤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 이제 어떤 종류의 삶과 결혼과 생각이 여자와 젊은이들에게 가능한가, 관습을 따르는 행동과 예술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출발한 이 그룹은, 1907~1930년 사이 런던 블룸즈버리 구에 있는 클라이브 벨 부부의 집 등에서 모임을 가졌다. 불가지론(不可知論)의 입장에서 미학적 철학적 문제들을 토론했으며, 실재론 철학자 G. E. 무어(G. E. Moore, 1873~1958)와 버트런드 러셀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별다른 회원 선출 방식은 없었으며, 성명서도 기명 동의도 없었다. 다만 재능 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소설가 E. M. 포스터, 전기작가 리튼 스트래치, 미술평론가 클라이브 벨, 화가 바넷사 벨과 덩컨 그랜트,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울프 부부 등이 구성원이었으며 경제학자 제럴드 쇼브, 버트런드 러셀, 올더스 헉슬리, T. S. 엘리엇, 캐서린 맨스필드도 이따금 이 그룹과 어울렸다. 성향이나 개성이 다른 이 많은 사람들이 한데 어울릴 수 있었던 데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친화력과 사교술이 한몫을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남편 레너드와 직접 운영한 호가스 출판사는 일부 구성원들의 작품을 출간하며 그룹의 중심 역할을 했다. 비록 그룹 구성원에 대한 정확한 명단은 없었지만 간행물, 예술작품, 전시회, 실내 장식, 출판사, 디자인 공동연구회 등 그룹의 산물은 뚜렷하게 존재했다. 한편 블룸즈버리 그룹은 게으르고 속물적이며 자축하는 금리생활자 계급으로 풍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페이비언(Fabian, 평화로운 수단을 통한 사회주의의 점진적 확산을 꾀했던 사회주의자), 동성애자들을 두루 포함하는 그룹의 개방성, 모든 종류의 거짓에 대해 대상을 가리지 않는 불손한 태도는 당대뿐만 아니라 이후 문화계 젊은 층들에게 영향력 있는 전범이 되었다고 허마이오니 리는 전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저작물 중에서『자기만의 방』(1929)은 출간 당시에도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고1960년대 말 이후로 왕성해진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허마이오니 리는『자기만의 방』이 내포하고 있는 전위성에 초점을 맞춘다. 『자기만의 방』은 그 어떤 제도에도 걸려들지 않는 여성 고유의 가치와 특성, 고도로 발달된 창의력 등 여성만의 자질들을 강조하며, 필연적으로 그것을 받아쓸 수 있는 새로운 언어와 형식과 세계를 요청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위성은『자기만의 방』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버지니아 울프는 모더니스트로 분류될 때이건 페미니스트로 분류될 때이건 늘 자신이 딛고 서 있는 기반을 뒤집는 전위적 사고를 통해 '자유', '해방'에 다가가고자 노력한 작가였음이 자명해진다. 따라서 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을 아우르는 그녀의 모든 시도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자유롭고 풍요로운 '내면'을 소설화한 것, 수차례 거듭된 정신질환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긴장을 놓지 않았던 버지니아 울프의 작가적 태도는 거듭 되새겨볼 만한 경이로운 '업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업적'을 그녀가 남긴 모든 것들을 통해 심사숙고하여 저술한 허마이오니 리의 이 책 또한 전기 문학의 기념비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