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개정판 서문
서문 및 감사의 말(1959년판) 감사의 말(1982년판) 머리말 제1부 더블린 제1장 조이스 이전의 가계 제2장 1882~1894 제3장 1894~1898 제4장 1898~1900 제5장 1900~1902 제6장 1902 ...178 제7장 1902~1903 제8장 1903~1904 제9장 1904 제2부 폴라, 로마, 트리에스테 제10장 1904~1905 제11장 1905 ...355 제12장 1905~1906 제13장 1906~1907 제14장 <사자들>의 배경 제15장 1907~1909 제16장 1909 제17장 상상력의 성장 제18장 1909~1911 제19장 1912 제20장 1913~1914 제21장 <율리시즈>의 배경 제22장 1914~1915 주 찾아보기 |
|
■ 전기 문학의 새로운 척도, 리처드 엘먼의 『제임스 조이스』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앤터니 버제스Anthony Burgess는 리처드 엘먼의 『제임스 조이스 언어의 연금술사』에 대해"이 세기의 가장 위대한 전기 문학"이라고 평했다. 이러한 평가는 이 책 속에 엘먼만이 지닌 아일랜드 문학에 대한 깊은 조예와 학문적인 기반, 그리고 철저하도록 정직한 자료 조사, 인물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주목할 만한 비평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엘먼은 아일랜드 문학 연구로 명성을 쌓은 문학 비평가이자 탁월한 전기 작가이다. 그의 전기 작품들은 독자들을 곧잘 작가의 삶과 문학적 고뇌, 그리고 작품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데, 이는 아일랜드 문학과 작가들에 대한 괄목할 만한 연구에서 비롯한다. 그는 제임스 조이스 이외에도 오스카 와일드, 예이츠 등의 아일랜드 작가들에 대한 전기를 몇 편 남겼다. 이 가운데 오스카 와일드의 전기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엘먼의 『제임스 조이스』를 읽지 않고서는 조이스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조이스에 대한 엘먼만의 독특한 비평과 엄밀한 전기적 기술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은 조이스에 관련된 방대한 자료는 물론 발표되지 않은 편지나 증언 녹취, 이에 대한 빈틈없는 조사, 주변 인물들과의 세심한 인터뷰 등 전기 작품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고증에서부터 작가에 대한 수준 있는 비평적 해석까지 제공한다. ■ 왜 제임스 조이스를 읽는가 흔히 제임스 조이스는 20세기의 거장이라 불린다. 아마 이 평가에 대해 불만스러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이스의 작품을 읽었을까? 분명 많은 이들의 서가에는 『율리시스』가 번듯이 서가에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대한 분량이나 조이스의 독특한 문체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지 않는다. 조이스를 읽기 위해 관련 안내서를 읽는다는 것, 그것도 작품보다 더 방대한 분량의 주석이 담긴 책을 읽는다는 것도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왜 제임스 조이스를 읽어야 하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조이스를 읽는다는 것은 생에 단 한 번밖에 느낄 수 없는 놀랄 만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조이스에 대해 막연하고 애매한 작가, 보통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조이스의 작품에는 수많은 생존 인물들에 대한 삶이 기록되어 있다. 조이스만큼 수많은 속인들의 삶을 작품에 구현한 작가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록된 삶을 단순히 서사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서간체, 독백체, 다채로운 언어 등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통해 가능한 한 사고의 영역을 풍부하게 만들고자 했다. 만일 조이스의 글쓰기가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단지 우리가 논리적인 형태의 문법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문법을 버리고 단지 행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조이스만의 언어에 주목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조이스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불운한 천재 솔직히 조이스는 위대한 작가라 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존경과 위엄을 갖추지는 못했다. 평생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벌렸고, 십여 차례가 넘는 안과 수술을 받아야 함에도 술을 끊기는커녕, 종종 술에 취해 거리에서 거미춤을 추곤 했다. 돈에 대한 무관심, 술에 대한 지나친 관심, 위엄이나 기품이란 찾아볼 수 없는 행동으로 그는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를 샀다. 심지어 저널리스트들은 상상의 날개를 펼쳐, 그가 매일 센 강에서 수영하고, 거울에 둘러싸인 채 집필하고, 잠을 잘 때는 검은 장갑을 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듯 조이스만큼 천재로 인정받으면서도, 그렇게 많은 불만과 비난을 불러일으킨 작가도 흔치 않다. 그는 동포인 아일랜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외설적이고 거의 미친 작가였다. 『율리시스』의 판금을 가장 마지막에 푼 것도 이 민족이었다. 그런가 하면 영국 사람들에게 그는 괴짜이자'아일랜드적인'외부의 작가였다. 가장 호의적으로 그를 받아들였던 미국 사람들에게 그는 대단히 실험적인 작가였지만 너무나 냉정한 사람이기도 했다. 한편 조이스는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살았지만, 프랑스인들에게 문인이라고 불리기에는 세련된 합리주의가 결여되어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그를 따라다녔기에 위대한 작가로서의 조이스의 지위는 늘 위협받았었다. 그는 분명히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작가들보다 훨씬 더 많은 공격을 받았다. 세상은 그를 처음에는 악동으로, 마지막에는 괴짜 노인으로 바라보았다. ■ 제임스 조이스다운 위대함 리처드 엘먼은 조이스를 위대하다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조이스는 자신이 그려낸 주인공들처럼 고결함을 통해 점차 자신의 불명예를 극복했으며,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 거쳐왔던 방랑과 빚에 찌든 인생을,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면서 점차 극복해나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는 위대함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것은 광채를 발하는 위대함이 아니라, 때때로 언어나 행동의 표면에 도달하는 잠복해 있는 것의 위대함이다. 낭비벽과 음주벽 등의 약점 때문에 가려졌지만, 우리는 그의 인생에서도 위대함을 감지할 수 있다. 편협하고 유별나며 무책임하고,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포용하고 무정하고 당당한 것, 이것이 바로 조이스다운 위대함이다. 언어와 소설 형식의 혁신적인 실험자로서, 또한 유럽 문화의 총체적인 체현자로서의 조이스를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더욱이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전통이 다른 한국의 독자가, 서구라는 이질적인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작가를 대할 때면 당연히 문화적 혼란과 언어적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따라서 조이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평적 연구서나 주해, 번역 등을 읽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리처드 엘먼의 『제임스 조이스 언어의 연금술사』는 이런 점에서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조이스의 인생, 즉 그의 저작, 그 저작에 대한 해석, 사랑과 욕망에 대한 경험들, 가정적인 문제, 정치적 견해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가장 위대한 작가들에게서 발견되는 어떤 지속적인 힘을 보여준다. 저자 리처드 엘먼은 평소 자신의 인생을 정사(精査)했던 조이스의'철저하게 솔직하기'라는 규범에 따라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책은 조이스의 인생 전체에 걸친 방대한 자료와 주제를 망라하고, 그의 삶을 가탁 없이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가히 조이스 전기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조이스의 책을 책장에 꽂아두고 펴지 못하거나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던 독자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