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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줍기

책소개

저자 소개

저자 : D.A.F. 사드
(Donatien Alphonse Francois de Sade, 1740~1814)
‘사디즘’이라는 용어가 비롯된 작가로 유명한 사드는 프로방스의 영향력 있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삼촌인 에브뢰유 사드 신부에게서 초기 교육을 받은 후 파리의 루이 르 그랑 중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했으며, 국왕친위대에서 장교로 복무하며 7년전쟁에 참전했다. 군생활을 그만둔 1763년 신흥 부르주아 집안의 딸과 결혼했으나, 같은해 젊은 창녀에게 성적 학대를 한 사건으로 뱅센느 감옥에 구금되었으며, 이후 가학적이고 난잡한 성생활로 거듭 체포되어 1814년 샤랑통 정신병원에서 사망할 때까지 무려 26년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사랑의 범죄』는 1800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공식 발표한 소설 작품으로,『소돔 120일』을 비롯하여 그가 익명으로 발표한 작품들과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당대의 평자와 독자들로부터 ‘악덕과 파렴치의 최고봉’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자신의 문학세계를 범죄로 규정당해야 했던 사드는 20세기 들어 기욤 아폴리네르 등의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 외설적이고 도착적인 작가에서 욕망의 해방자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대표작으로 『쥐스틴 또는 미덕의 불행』 『알린과 발쿠르』 『규방 철학』 등이 있다.
역자 : 오영주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7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마담 보바리―현대문학의 전범(典範)』과 『프랑스, 하나 그리고 여럿』(공저)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와 덕성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12월 04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39쪽 | 647g | 152*217*30mm
ISBN13
9788970635194

책 속으로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레랭스 부인의 죽음은 베르캥 부인의 죽음처럼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뼈저리게 후회해야 할 여인의 입에서는 어떤 회한의 말도 나오지 않은 반면 뉘우치고 한탄할 만한 어떤 일도 하지 않았던 부인은 회한을 남기셨습니다. 이러한 대조에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마음가짐이 조금 해이해진 저는 자문해보았습니다. 왜 임종의 순간에, 방탕한 자는 평온함을 누리는 것 같은데 현명한 자는 그러지 못한가?

--- p.177

“뭐라고? 정말 자네 딸을 사랑한단 말인가?”
“그렇다네. 구약성서의 롯처럼 말이지. 피그말리온의 광기가 이젠 놀랍지 않네……. 세상은 그러한 약점들로 가득 차 있질 않나? 세상에 인류를 번식시키려면 그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그때는 악이 아니었던 것이, 이제 와서 악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단지 내가 낳았다는 잘못 때문에 한 귀여운 여자에게 마음이 동해서는 안 된단 말인가?
우리 같은 영혼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바보들에게나 이 우스꽝스러운 재갈을 넘겨주세. 미의 제국과 사랑의 신성한 권리는 인간의 하찮은 규범 따윈 염두에 두지 않아. 한낮의 태양빛이 밤 동안 지구를 덮고 있던 안개를 말끔히 걷어내듯이, 미와 사랑이 지평선 위에 떠오를 때 규범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지. 언제나 행복을 가로막는 이 지긋지긋한 편견들을 짓밟아버리세.

--- pp.235~236

내가 감옥에 갇혔더라도 사람들은 나를 악당으로 간주했을 것이오. 그렇다면 쇠사슬에 묶인 채 악당이라는 의심을 받는 것보다, 인간의 모든 권리를 누리면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실제로 악당이 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소? 아무리 순결한 인간일지라도 지위를 박탈당하면 범죄자가 된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소. 어떠한 상황을 선택하든 치욕만이 기다릴 뿐이라고 할 때, 쇠고랑을 차느니 범죄를 택한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소.

--- pp.87~88

줄거리

-『팍스랑주, 혹은 야망이 낳은 과오』
팍스랑주 부부는 아메리카에서 온 부유한 신사 프랑로에게 자신의 딸을 결혼시키려 마음먹는다. 팍스랑주 양 또한 자신의 연인 고에의 진실한 사랑보다는 프랑로의 사치와 화려함에 마음이 끌린다. 그러나 엄청난 지참금을 들여 결혼한 그녀가 이른 곳은 아메리카가 아니라 비바레의 깊은 산 속이고, 프랑로는 부유한 신사가 아니라 도적 떼의 우두머리임이 밝혀진다. 팍스랑주 양은 절망과 후회 속에서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포로들의 처형을 지시하는 등 약탈을 떠난 남편의 대리인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는데……

-『플로르빌과 쿠르발, 혹은 운명론』
홀아비나 다름 없는 쉰다섯의 쿠르발은 재혼을 생각하던 중 프로르빌이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소개받는다. 플로르빌의 매력적인 용모와 온화하고 정숙한 성품에 첫눈에 반한 쿠르발은 서둘러 결혼을 종용하는데, 플로르빌은 한사코 청혼을 거절하며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그녀는 후견인 생프라 부인이 죽자 생프라 씨의 여동생인 베르캥 부인 댁에 보내진다. 미덕이 조화를 이루던 생프라 씨 댁과는 달리, 베르캥 부인 댁은 향락과 방종이 둘러싸고 있었다. 플로르빌은 그곳에서 결혼도 하기 전에 센느발이라는 남자의 아이를 낳게 되고, 자신을 흠모하던 생앙주라는 남자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또한 우연히 한 여인의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그녀가 사형에 처해지는 데 유일한 증인으로 서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사연을 듣고 난 후에도 쿠르발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결혼식을 치른 어느 날, 소식이 끊긴 지 오래던 쿠르발의 아들이 찾아온다. 그런데 그 아들이란 자의 정체는……

-『외제니 드 프랑발, 비극적 이야기』
매력적인 용모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성적으로 방탕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는 프랑발은 자신의 딸 외제니에게 어렸을 때부터 색다른 교육을 시킨다. 종교의 기본 원리를 가르치는 대신, 지성을 넓히고 육체를 자유롭게 하고 도덕과 철학에 대한 프랑발 자신의 원칙만을 교육한 것이다. 사회적 규범을 무시하게끔 외제니의 정신을 단련시킨 프랑발은 외제니를 자신의 애인이 되도록 만든다. 이를 알아차린 프랑발의 부인과 장모 파르네유 부인은 클레르빌 신부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프랑발은 친구 발몽을 동원해 더욱 교묘하게 일을 꾸밀 뿐이다…….

관련 자료

◆ 사드의 문학론을 밝힌 서문 「소설에 대한 생각」

『사랑의 범죄』에는 사드 자신의 문학론을 피력한 「소설에 대한 생각」이 서문으로 실려 있다. 소설(romane)의 기원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서문은 직설적이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소설이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 밝히고 있어, 사드의 문학론의 단초를 얻을 수 있다. 사드는 소설은 ‘사실임직함’(vraisemblable)을 잃어서는 안 되며,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 보고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그려내야 한다고 말한다. ‘소설이 요구하는 지식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지식’이며, 소설이란 ‘마음의 모든 주름을 비추어 보여주는 충실한 거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억지로 미덕을 이끌어내거나 도덕으로 어색하게 치장해서는 안 되며, ‘자연의 화가인 소설가’는 ‘가면을 벗은 순간의 인간을 포착’할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사드는 자신이 전작(前作) 『알린과 발쿠르』에서 죄악을 과도하게 끔찍한 모습으로 그렸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악덕의 인물들을 미화하는 자들보다 자신이 훨씬 도덕적이라고 변호한다. ‘죄악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최대한 끔찍한 인물로 만들어, 사람들이 벌거벗은 범죄를 보기를, 그래서 그것을 두려워하고 증오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드는 뒤이은 소설 작품들에서 인간의 내면에 싹틀 수 있는 욕망을 파헤침으로써 서문에서 주장한 소설론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정작 마음은 도덕과 멀리 떨어져 있기 일쑤지만 도덕으로 겉치레하기를 좋아하는 그들은 끊임없이 묻는다. ‘소설이 어디에 소용됩니까?’ 소설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위선적이고 타락한 자들이여, 당신들만이 이런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한다. 소설은 당신들을 그리는 데, 붓이 가져올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벗어나길 원하는 거만한 인간들인 당신들을 그리는 데 쓰인다. 소설의 붓은 인간을 내면에서 파악하기 때문에 가면을 벗은 순간의 인간을 포착한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유용성이다.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차가운 검열관들이여, 당신들은 ‘왜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지?’라고 묻는 앉은뱅이들을 닮았다. -34~35쪽

출판사 리뷰

◆ 고전주의 미학의 장막 뒤에 불온의 상상력을 감춘 ‘사드 문학의 또 다른 세계’

그간 사드는 자신의 이름에서 그 어원이 비롯된 ‘사디즘’이란 용어 그대로, 도착적이고 잔인하며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불온함의 최대치에 가닿은 작가로서만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실제로 사드의 작품은 익명으로 발표된 음란하고 전복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들과 실명으로 발표하였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도 공식적인 문학의 범주에 드는 작품들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둘은 서로 상이한 글쓰기를 보여준다. 우리가 그동안 접해온 ‘신성한 후작’의 ‘어둠의 세계’를 거침없이 보여주는 작품들, 즉 『소돔, 120일』과 ‘쥐스틴 시리즈’(『쥐스틴 또는 미덕의 불행』, 『새 쥐스틴 또는 미덕의 불행과 그녀의 언니 쥘리에트 이야기』) 등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사랑의 범죄』는 이중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사드는 『사랑의 범죄』의 서문 「소설에 대한 생각」에서 자신이 ‘쥐스틴 시리즈’의 작가임을 고집스레 부인하고 있다. 또한 잔인함과 도착의 극치를 그려내는 데 주저함이 없는 불법적인 작품들과는 달리, 『사랑의 범죄』는 사드 특유의 잔혹함의 수위가 조심스럽게 조절되어 있다. 때문에 『사랑의 범죄』에서는 우리가 사드에게서 기대하는 외설적이고도 직설적인 용어라든지 잔혹한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며, 악덕이 죄값을 치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인간 사회의 도덕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광적인 욕구를 실현해내는 불법적인 작품에서와는 달리, 『사랑의 범죄』의 탕아들은 현실원칙에 부딪히고 마는 것이다. 「외제니 드 프랑발, 비극적 이야기」에서 프랑발과 그의 딸 외제니의 근친상간을 다룬 장면을 출판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사드 스스로 삭제한 것을 보면 사드가 출판을 위한 현실원칙 앞에서 얼마나 글쓰기를 조심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식 출판이라는 현실원칙으로 인해 준수할 수밖에 없었던 고전주의적 수사학이라는 장막 뒤에서 음란과 전복의 ‘검은 태양’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약탈과 살인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면서도 자신의 범죄를 끊임없이 변호하며 끝내 뉘우침 없이 죽음을 맞는 프랑로(「팍스랑주 혹은 야망이 낳은 과오」),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얽히고설킨 운명의 희쟁자가 된 플로르빌(「플로르빌과 쿠르발, 혹은 운명론」), 정절과 덕성을 비웃으면서 향락을 누리며 살다가 너무도 평온하게 죽음을 맞는 베르캥 부인(「플로르빌과 쿠르발, 혹은 운명론」), 도덕이란 상대적인 것이라고 믿으며 자신의 딸을 범하기 위해 교묘하게 범죄를 계획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프랑발(「외제니 드 프랑발, 비극적 이야기」) 등 『사랑의 범죄』의 탕아들은 사드의 불법적인 작품에 등장하는 탕아들의 계보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분명 『사랑의 범죄』는 ‘신성한 후작’의 세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예절과 교화라는 고전주의 미학의 장막 뒤에 후작이 버티고 서 있다. 노골적인 불빛을 은근한 조명으로 조절하고 불법적인 작품에서와 동일한 대상, 주제,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범죄』에 등장하는 악덕의 대변자들을 통해 열거되는 원리들을 사드의 지옥의 작품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자신의 원리나 신념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랑의 범죄』의 탕아들은 모든 것을 말하고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백과전서적 광기’를 접고, 고전적 수사학에 기대어 몇 마디 대화로 응축시켜 보여준다는 점이다. -작품해설 중에서

◆ 세계문학의 숨은 ‘이삭’을 소개하는 열림원 ‘이삭줍기 시리즈’ 20권 발간

한 알 한 알의 소중한 이삭을 줍는 마음으로 그동안 묻혀온 세계적인 걸작을 소개하는 열림원 ‘이삭줍기 시리즈’가 20권째 발간을 맞았다. 김석희(소설가, 번역가), 장경렬(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 허남진(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이 함께 기획하고 국내 최고 번역가들이 작업하고 있는 열림원의 ‘이삭줍기 시리즈’는 세계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면서도 국내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거나 소개되지 못한 수작들을 새롭게 조명하며, 숨어 있는 빼어난 고전들을 야심차게 소개해왔다. 2002년 봄 첫 출간 당시 매스컴과 독자들의 격려를 받으며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2003년)하기도 했다. 『사랑의 범죄』와 『모피를 입은 비너스』 출간으로 20권 발간에 이른 열림원 ‘이삭줍기 시리즈’는 “고정관념에 얽매이거나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풍성한 책의 잔칫상을 차리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으며 앞으로도 세계문학의 숨은 이삭과 함께 독자들을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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