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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Andreas Helmuth 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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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곰돌이 인형 워셔블은 이제는 성장한 주인 아이가 찾지 않자 소파 한쪽 구석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워셔블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왜 사냐며 한껏 비꼬고는 사라진다. 그래서 워셔블은 자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찾고 싶어 길을 떠난다. 꿀벌, 코끼리, 원숭이 등 여러 동물들에게 사는 이유를 묻지만 그들이 사는 이유는 워셔블이 원하는 답과는 거리가 멀고, 워셔블은 점점 깊은 상심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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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워셔블이야. 난 내가 이 세상에 왜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
곰돌이 워셔블은 묻는다. “넌 네가 왜 사는지 알고 있니?” 이런 질문은 아이들에게는 쓸모없다고 혹은 아직은 너무 이르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이 이미 어렸을 때 생(生)과 죽음, 자신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표한다. 세상 모든 게 새로울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명만큼 신비롭고 궁금한 게 또 있을까? 또한 태어나자마자 가족 안에서 쉽게 자신의 위치와 책무가 확고해졌던 대가족 시대에 비하여 더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위치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이는 학업에 매진한다고 하여 성적에 비례해 채워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도 하다. 공부만으로 채울 수 없는 것이 또 하나있다. 꼭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이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사유하지 않고는 답을 내놓을 수 없는 질문들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생각하는 힘’이다. 한때 반짝이다 사라지는 듯했던 논술 열풍은, 특정 시험에 대한 열기는 사그러들었을지언정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교육 전체에 스며들어 가고 있다. 모든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생각하고 궁리하는 힘’인 사고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미하엘 엔데의 철학동화 그림책 『곰돌이 워셔블의 여행』이 최근 교과서에 수록된 것도 이 맥락과 멀지 않다. 『곰돌이 워셔블의 여행』의 워셔블이 여러 동물들과 차례로 마주치며 그들이 사는 이유에 귀 기울이는 모습은 마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여러 행성들을 여행하는 어린 왕자를 떠올리게 한다. 생텍쥐페리가 각 행성에 사는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현실 세계 어른들의 행태를 꼬집었듯이 『곰돌이 워셔블의 여행』 속 동물들도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며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이에 대해 어린이 독자들은 친구나 부모님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곰돌이 워셔블의 여행』을 비판적인 우화(寓話)라고만 보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결국 자신이 사는 이유를 찾는 워셔블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존재까지도 ‘긍정’받았다고 느낀다. 그리고 독자들은 결말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다시금 깨닫게 된다. 어떤 단체나 그룹에 속하지 않더라고, 겉모습이 아름답지 않아도, 심지어 언제나 열심히 일할 능력이 없고 점점 더 뛰어나게 발전하지 못하더라고, 살아갈 이유가 존재함을 말이다. 결국 이 그림책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듯 보이는 질문에 대해 결코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은, 굳이 대단히 논리적이지 않아도 설명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진리로 답한다.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 알아 달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