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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실천적 지식인의 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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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남명집
본집(本集) 시 오언절구 육언절구 오언사운 칠언절구 칠언사운 고풍 부 명 서 기 발 묘지 소 논 잡저 보유 시 오언 철언 명 서 기 묘지 소 잡저 교감 남명집 일러두기 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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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경의) 사상을 기반으로 실천적 지식을 궁구하다
올해로 탄생 500주년을 맞이하는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72)은 퇴계 이황과 더불어 16세기 조선 성리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대학자이자, 실천적 학문사상을 기반으로 많은 후학을 양성한 교육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남명에 대한 그동안의 평가는 퇴계 이황에 비해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며, 이는 남명 스스로가 많은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과 정인홍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던 북인파가 인조반정 이후 정치적으로 몰락하여 학맥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선생이 남긴 저술은 크게 시문집과 <학기류편>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시문집은 남명이 직접 지은 시(詩)와 문(文)을 모아 편찬한 것이고, <학기유편>은 선생이 독서하는 과정에서 학문하는 데 절실한 문구를 뽑아 기록해둔 것을 문인 정인홍이 유별로 모아 편판한 일종의 독서기이다. 남명사상의 집약, <학기류편>과 <남명집> <학기류편>은 나명의 글이 아니기 때문에 후대에 크게 변질되지 않았지만, <남명집>은 그에 비해 후대로 내려올수록 심하게 변개되어 본래의 모습을 잃은 경우도 상당 부분 있다. 이처럼 <남명집>이 수차례에 걸쳐 그 본래의 모습을 잃게 된 이유는 대체로 역적으로 몰려 죽은 정인홍 관계 문자의 삭제와 정통 성리학에서 벗어난 내용이거나 선생의 학덕에 해가 될 만한 문자를 고치는 차원에서 그러했으리라 추정된다. 남명의 사상을 가장 쉽게 접해볼 수 잇는 것은 <학기류편>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학기류편>에는 학문하는 자세에 대한 방법과 그 실천적 방향 등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글들이 자신의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추구했던 학문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고, 아울러 그것을 통해 남명의 사상이 당시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즉 성리학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경서인 사서의 경우에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여러 사상이 파생될 수 있는데, 남명은 '아래로 인사를 먼저 배우고, 그 다음 천리에 통달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 자구 해석에 치중하거나 공리공론을 펴는 고답적 관념론을 배격하였다. 즉 격물궁리의 가치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의리의 강명에 두고 실천적 사상으로서의 학문의 중요성에 그 목적을 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