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장편소설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극찬한 『환상의 빛』의 작가, 미야모토 테루의 장편소설. 사랑의 환상이 걷히기도 전에 이혼한 두 남녀가 10년 만에 만나 비로소 서로를 알아가는 이야기.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달뜬 연애편지보다 차분해서 서글프고 애달프다.
2016.01.12.
소설/시 PD
|
Teru Miyamoto,みやもと てる,宮本 輝
미야모토 테루의 다른 상품
송태욱의 다른 상품
|
지켜보는 이의 마음을 고양시키는 진솔하고 아름다운 대화
도서1팀 김성광(comma99@yes24.com)
2016.09.07.
미야모토 테루의 『금수』는 10년 전 이혼을 한 남녀가 주고받는 편지 형식의 소설이다. 갈라선 지 10년이면 그저 덮어두고 싶을 법도 한데, 우연히 마주친 어느 날 이후 두 사람은 여러 차례 긴 편지를 주고 받는다. 이혼도, 이혼 후 10년이라는 세월도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아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거리를 둔 채 읽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아 좋다, 하고 말을 내뱉게 되었다. 아 하는 순간에는 숨을 조금 들이 마시고, 좋다 하는 순간에는 조금씩 길게 내쉬게 되는 그런 아 좋다 였다. 내 안의 내가 이 대화의 무언가에 감응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두 사람의 대화에는 깍듯함과 정중함이 깊이 배어있다. 머리매무새와 옷고름을 반듯하게 매만진 두 사람이, 조심히 무릎 꿇고 손을 가지런히 한 채 앉아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때 대체 왜 그랬는지, 왜 우리는 이혼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후 각자는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억센 감정이 섞여들 수 밖에 없을 대화를 나누면서도 감정은 10년의 시간만큼 적당히 뒤로 물러앉아 있다. 원인과 책임에 대한 공방 보다는 그 이후 서로가 겪었을 힘겨움에 예를 갖춰 공감하고 그간의 삶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이들의 대화는, 지켜보는 이의 마음을 아련하게 고양시킨다. 감정의 과잉없이, 섣부른 판결없이, (편지이다 보니) 말허리를 자르는 일 없이 상대가 충분히 얘기하도록 허락하는 대화가 너무도 아름답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대화에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경로에 대한 답답함과 아쉬움이 깊게 배어있다. 서로 헤어지게 된 데는 두 사람의 책임이 있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은 서로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헤어지고 ‘싶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헤어지게 된 것은 몇 가지 원인으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다. 헤어진 이후 각자의 삶이 겪는 불운들은 더욱 더 명료한 설명을 허락치 않는다. 그래서 두 사람은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되물으며 살아왔다. ‘업보’라거나 ‘나와 만나는 사람은 불행해진다’ 같은 자의적인 법칙을 세워놓고 자신의 인생을 설명하려는 시도도 해보지만, 인생이란 ‘불가사의한 법칙과 구조를 숨기고 있는 우주에 놓여있는 것’ 이라는 생각 외엔 적절한 설명이 불가능해 보인다. 불가해한 인생에 대한 속 깊은 대화. 두 사람의 대화가, 가늠하기 쉽지 않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내 마음을 깊게 건드리는 부분에 대해 비로소 짐작해 본다. 겉으로 어떤 표정을 지으며 살든 대개 인생에 대한 나름의 두려움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두려움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을 적당히 무마해 버리는 우리들. 그러다 정말 가끔, 속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놓을 기회를 우연히 누리게 되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따뜻한 충만함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감동이다. 마음 속 두려움이 단 1그램도 줄어들지 않더라도, 그런 대화를 속 깊게 나누는 것만으로 우리는 겉 표정이 아닌 속 표정으로 웃게 된다. 바로 그 웃음이, 이 소설을 읽고 내가 길게 내뱉은 아 좋다 와 같은 것이 아닐까. 이 소설의 주인공과 우리의 인생이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막막한 인생에 대한 속 깊은 교감의 순간은, 그저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우리의 마음까지 아련하고 애틋하게 고양시킨다. |
|
[환상의 빛]을 모티브 삼은
본격 서간문학 책 제목 금수(錦繡)는 다의적이다. 수를 놓은 직물이나 아름다운 시문을 뜻하기도 하고 단풍이나 꽃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소설 속 남녀는 단풍 절정기인 늦가을, 우연히 다시 만난다. 이혼한 지 10년 만이다.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사이다. 미련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이후 두 사람은 14통의 편지를 주고받는다. 이혼하게 된 결정적인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이혼 이후 어떻게 살아왔는 지 등에 대해 얘기하면서 서로를 더 깊이 알게 된다. 결국 금수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가 짜여 완성된 사랑의 모습일 수도 있고, 10년 전 20대였던 두 사람이 서른 후반을 지나 중년으로 접어들듯이 변해 가는 인생과 성숙해 가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이혼 후 10년 만에 만난 두 남녀가 주고받은 편지 가쓰누마 아키는 재혼했고 선천성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어머니로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오의 달리아 화원에서 돗코누마로 오르는 케이블카 안에서 우연히 전 남편 아리마를 만난다. 아키는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10년 전에 그들이 이혼한 것은 클럽의 호스티스 세오 유카코가 교토의 한 여관에서 아리마와 동반자살을 시도한 사건 때문이었다. 유카코는 옆에서 자고 있던 아리마의 목을 찌른 후 자신의 목을 찔러 죽었으나 아리마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평온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믿고 있던 아키는 남편의 불륜과 동반자살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명을 요구하지도 못한다. [환상의 빛]에서 유미코가 자살한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듯이 말이다. 사건은 안개에 싸인 채로 남고, 아키는 아버지의 뜻과 세상의 기대대로 아리마와 이혼한다. 그런데 10년이 지나 우연히 아리마를 다시 만난 것이다. 이후 아키는 아리마에게 편지를 쓰고, 두 사람 사이에 편지가 오간다. 그 편지들이 고스란히 이 작품 《금수》다. 아키가 10년간 마음속에서 남편 아리마를 지울 수 없었던 것은 그를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키는 아리마를 못 잊는 것이 아니라 잊을 수 없었고, 10년 만에 우연히 재회한 그와 편지를 주고받음으로써 그를 잊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 편지들을 통해 아키는 아리마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 간다. 세오 유카코는 중학교 때 아리마가 좋아했던 같은 반 친구였고, 교토에서 다시 만난 그녀가 아리마를 사랑해 동반자살을 기도했던 것이다. 현재 아리마는 레이코라는 여성과 같이 살면서 힘겹게 새로운 사업을 하고 있다. 깊어질수록 꺼져 가는, 사랑이라는 이율배반 문학박사이기도 한 역자 송태욱은 《금수》를 “아키가 아리마의 공백을 채워 나가는 과정이자 사랑을 추억의 자리로 돌리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사랑이라는) 환상을 잃어 가고 그 자리에 현실이 들어오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환상이다. 모르는 게 많아야 환상은 유지된다. 현실이 개입하면 환상은 힘을 잃 고 사랑은 희미해진다. 그러므로 서로 알아 가는 과정, 곧 사랑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사랑을 잃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랑하게 되면 그를 알고 싶어진다. 모르면 내 세계 안에 그를 규정할 수 없고, 규정할 수 없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알아 간다는 것은 내 세계 안에 그의 좌표를 그려 넣는 일이다. 불안하지 않으려면 그를 내 세계 안의 어떤 좌표로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안심할 수 있으나 환상은 깨지고 사랑은 멀어진다. 즉, 알아 간다는 것은 그의 공백 부분을 채워 가는 과정인데, 다 채워지면 안정된 관계는 유지되지만 낭만적 사랑은 떠나가는 것이다. 이렇듯 안다는 것과 사랑은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낭만적 사랑이 떠나간 자리에는 편안함과 안정된 기억이 남는다. 이제 그 기억만으로 살아가야 한다. -[옮긴이 후기]에서 추억의 자리, 즉 모든 걸 제자리로 돌리려는 안간힘을 담은 편지들이어서 “달뜬 연애편지보다 차분해서 서글프고 애달프다”고 덧붙인다. “사랑을 얻기 위한 편지가 아니라 추억의 자리로 돌리기 위한 안간힘의 표현”이라 더 그렇다는 것이다. [환상의 빛]의 유미코가 놓지 못한 삶의 불가해 함 《금수》는 사랑에 관한 소설일 뿐만 아니라 삶의 불가해함을 깊이 들여다본 작품이기도 하다. 나이프로 자신의 목을 찔러 죽은 세오 유카코. 죽어 있는 자신을 바라보았으면서도 다시 살아 돌아온 아리마. 나이 들어 더 일에 집중하고 있는 쓸쓸한 아버지. 다른 여자가 있고 그 여자와의 사이에 세 살짜리 딸까지 둔 현재의 남편 가쓰누마 소이치로. 아리마가 숙소에서 고양이에게 잡아먹히는 쥐를 봤던 바로 그 시각에 근처 달리아 화원의 벤치에 앉아 무한한 별들을 바라보았던 아키 자신과 아들 기요타카. 아키는 묻는다. “우리의 생명이란 얼마나 불가사의한 법칙과 구조를 숨기고 있는 것일까요?” 물음은 계속 이어진다. 내 아이는 왜 그런 불행을 짊어지고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왜 그 할머니에게는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었는가, 왜 그 사람은 흑인으로 태어났는가, 왜 그 사람은 일본인으로 태어났는가, 왜 뱀에게는 손발이 없는가, 왜 까마귀는 까맣고 백조는 하얀가, 왜 어떤 사람은 건강하고 어떤 사람은 병에 시달리는가, 왜 어떤 사람은 아름답게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추하게 태어나는가……. 기요타카라는 인간을 낳은 어머니로서 저는 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불합리한 불공평이나 차별의 진정한 원인을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소용없는 일이겠지요. -193쪽에서 그리고 “유카코 씨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요? 왜 당신을 끌어들이려고 했을까요?”라며 유카코에 대한 물음도 놓지 못한다. [환상의 빛]에서 유미코가 7년 전 자살한 전 남편에게 “당신은 왜 그날 밤 치일 줄 뻔히 알면서 한신전차 철로 위를 터벅터벅 걸어갔을까요”라고 묻던 장면과 겹친다. 한편 아리마는 홍보지를 제작할 미용실을 찾아 나서면서 “미용실을 찾아서 걷는 이 행위가, 과장된 표현이지만 인생 그 자체 같다”고 털어놓는다. 네거리에 서서 자, 어디로 갈까, 하고 생각하여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점점 인적이 드물어지고 어쩐지 공장가를 헤매게 되어 미용실 같은 건 절대 있을 것 같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상당한 거리를 와 버렸기에 다시 돌아갈 수도 없어 공장이 길게 이어진 길을 바보처럼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가까스로 동네다운 곳에 이르렀을 때는 날이 저물고 게다가 그곳이 어디인지, 어떻게 돌아가야 좋을지 알 수 없어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충동에 시달립니다. 이렇게 녹초가 된 상태로 미용실 한 곳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귀가한 일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네거리에 와서 에잇, 이쪽이다, 하고 걷기 시작하면 곧바로 신흥 주택이 늘어선 곳이 나와 개점한 지 얼마 안 된 미용실을 발견하고 간단히 계약을 할 때도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갈까, 왼쪽으로 갈까, 꼭 인생이구나, 하며 묘하게 감탄하면서 저는 매일 계속해서 걸었습니다. -253쪽에서 아키와 아리마는 14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로 나아간다. 인생은 불가해 한 것이므로, 아리마의 말처럼 “매일 계속해서 걸어가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마 이 편지는 제가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되겠지요. 저는 이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 미용실 간판을 찾아 다음 목표 지역인 네야가와 시의 모든 길을 터벅터벅 계속 걸을 것입니다. -아리마의 마지막 편지, 262쪽에서 저는 이 우주에서, 불가사의한 법칙과 구조를 숨기고 있는 우주에서 당신과 레이코 씨가 앞으로도 쭉 행복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아키의 마지막 편지, 278쪽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