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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름 2
제국과 고무공 누가 죽어 가고 있는가? 함께 역사를 만들며 작품 해설 |
Richard E. Kim,金恩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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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여러 가지 이름이 적혀 있는 종이쪽을 한 번 거들떠보고는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린다.
"아무거면 어때, 아무거나 좋다 하시오." 그러나 조선인 형사는 그 말을 통역하지 않고, 이름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어 보이며 말한다. "이게 어떻겠소. 노인?" "상관 없다니까. 어차피 그 이름으로 날 불러 줄 사람은 없을 테니. 내 이름을 부를 사람이 누가 있겠소." "그럼 이걸 노인의 창씨명으로 등록합니다." 그러면서 조선인 형사는 노인의 '창씨명' ㅡ 일본 이름을 순사한테 불러 준다. "됐어." 순사는 그 이름을 장부에 적는다. " 가족들 이름은?" 경부가 일본 경찰관 하나를 앞세우고 방에 들어선다 나도 그를 안다. 경찰 서장이다. --- p.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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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의 눈을 통해 민족의 수난과 아픔을 생생하게 그린 세계적인 명성의 우리 작가 김은국의『잃어버린 이름』
"순교자"로 널리 알려진 재미 작가 김은국(Richard E. Kim)의 『잃어버린 이름』(상ㆍ하)은 도서출판 다림이 펴내고 있는, 새롭게 만나는 우리 명착 '한빛문고' 시리즈의 제 13, 14권째 책이다. 이 작품은 앞서 같은 시리즈로 출판된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와 마찬가지로 외국에서 먼저 출판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우리 작가의 작품이다.
1970년 "Lost Names"란 제목으로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었던『잃어버린 이름』은 일제시대 중ㆍ후반(1932~1945)을 배경으로, 한 소년의 눈을 통해 민족의 수난과 아픔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쓰여진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작품은 일제 시대를 묘사한 가장 뛰어난 문학 작품의 하나로 평가해도 손색이 없다. 특히 이 작품은 겉으로 보이는 역사적 사실보다, 그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의 절망과 갈등과 고뇌에 주목한다. 이름을 잃고 조상의 무덤 앞에서 오열하던 수많은 조선인들, 그들은 비록 역사와 민족 앞에 죄인이었으나, 더불어 그 어둠의 시대에서 '살아남은' 역사의 주인공들이었다. 작가의 이 작품의 원제 "Lost Names"가 "빼앗긴 이름"이 아니라『잃어버린 이름』으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말한바 있다. 이는 빼앗긴 자에 대한 심판에 앞서, 잃어버린 자의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빼앗은' 자도 죄인이지만, '잃어버린' 자 또한 죄인이라는 일종의 원죄 의식이 깔려 있다. 그리고 빼앗긴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이라는 뼈아픈 자성을 통해 우리는 암울한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항일 저항운동 정신을 기리는 3ㆍ1절에 맞춰, 어린 독자들을 위해 이 작품을 출간하는 것은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대의 현장으로 이들을 데리고 가, 이 시대를 감동적으로 살아냈던 인물들의 삶을 통해 살아 있는 역사의 교훈을 전해주고자 함이다. 해방 후 반세기가 흘러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월드컵을 개최하기에 이른 지금, 양국의 어두운 과거를 다루고 있는『잃어버린 이름』을 다시 펴내는 것은 언뜻 시대적 흐름에 반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민족주의와 반일감정에 기대어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자고 쓰여진 것이 아니며, 대립과 반목보다는 오히려 참된 공존의 길을 생각해보게 해 주는 의미 깊은 작품이 될 것이다. 반성할 줄 아는 민족만이 스스로의 힘으로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분명 역사는 반성을 통해 진보하며, 이는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의 몫이다. 『잃어버린 이름』의 마지막 부분으로 "저희 세대에게 용서를 구하실 건 없다"고 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너희 세대가 부끄러운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을 의지와 힘을 가져 주기"를 갈망하노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소년은 다음과 같이 확신한다. "아버지 세대와는 달라서 우린 훨씬 강하고 자신만만한 세대가 될 거예요. 저희 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갖지 못했던 해방과 자유를 갖고 출발하니까요. 그게 상당한 차이를 내고 말 거예요." 이런 확신은 역사와 인간에 보내는 작가 자신의 강한 신뢰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해방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의 역사는 앞으로 나아갔는가? 일본은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과거를 반성한 적이 있던가? 늘 일본의 반성만 촉구하는 우리 자신은(여전히 상존하는 친일파 문제를 비롯하여)스스로의 부끄러운 과거를 언제 제대로 반성하고 넘어갔던가? 소설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일본에 기생하여 살아온 조선인 담임 선생이 자신에 대한 후회와 부끄러움으로 흘린 눈물에 대해 그게 바로 '작은 시작'이라고 말하였다. 조선인 교사의 자책과 반성이 작은 시작을 낳았다면, 지금 과연 우리는 그 시작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이것은 곧 웅리가 진정 과거의 굴레러부터 벗어난 것인가에 대한 자문이기도 한다. 또한 이런 질문들은 이 작품을 읽을 어린 독자들이 앞선 세대에게 진지하게 묻게 될 것들일지 모른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단지 과거만이 아니라 과거의 연장선인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데에 이 작품『잃어버린 이름』을 읽는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