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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맺은 인연
병 위문 규상이 집 세 동무 운동화 때문에 화해 새 동무 규상이의 소원 친절한 영길 아버지 규상이의 소원대로 작품 해설 : 소년들의 우정으로 가꿔 가는 바람직한 마음의 꽃밭 |
廉尙燮, 횡보橫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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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집이 이 근처냐? 어디 가 보자꾸나.”
“응, 저 산 너머야. 너희 같은 사람은 올 데 아냐.” 이 이야기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늦여름. 서울의 어느 채석장에서 시작됩니다. 한쪽에서는 엄마와 아들이 돌을 깨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모여 축구공을 뻥뻥 차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만! 아이들이 갖고 놀던 축구공이 돌을 깨던 남자아이의 머리에 부딪쳤습니다. 공을 맞은 ‘완식’이는 한동안 기절해 있다가 엄마 품에서 눈을 뜹니다. 그런 자신을 보는 또 하나의 시선. 바로 또래 소년인 ‘규상’이었습니다. 친구 ‘영길’이와 ‘봉수’와 함께 축구를 하던 규상이는, 영길이가 찬 공에 완식이가 맞자 걱정이 되어 뛰어온 것이지요. 규상이는, 가난하지만 당당한 완식이의 성품에 반해 완식이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완식이는 부잣집 아들로 보이는 규상이가 탐탁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규상이는 완식이 마음의 벽을 어떻게 허물 수 있을까요? 아픔을 겪은 민족에게 보내는 따뜻한 당부 완식이와 친해지고 싶은 규상이, 하지만 살아온 배경이 너무 다른 규상이를 경계하는 완식이. 염상섭 선생님은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데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나 혼자만 배불리 지내고자 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어려운 환경에서 지내는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지요. 만주에 살던 완식이 가족은 해방을 맞아 귀국하지만 제대로 된 집과 세간을 갖출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굴을 파 만든 집에서도 가족들은 화목했고, 완식이는 배움의 열망을 꽃피웠지요. 규상이와 친구들은 완식이와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완식이가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돕기도 하고, 같은 반 동무가 굶주리지 않도록 고사리 같은 손으로 쌀을 모으기도 합니다. 해방이 됐어도 일제가 남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 당시 많은 국민들에게 규상이와 완식이의 이야기는 잔잔한 위로이기도 한 셈이지요. 염상섭 선생님의 깊은 뜻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세상의 그늘을 밝고 따뜻하게 하려는 마음이 늘어날수록 오늘날의 많은 ‘완식이’들과 ‘규상이’들이 서로를 보듬어 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반세기 동안 잠들어 있던 이야기, ‘현재’와 호흡하다 이 작품은 1950년 1월부터 연재되다가 6ㆍ25전쟁으로 연재가 중단된 이후 1952년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2015년에 발견되기 전까지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알 수 없었지요. 반세기 넘게 잠들어 있던 이 작품은 한빛문고로 다시 출간되며 우리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옷을 입었습니다. 먼저 우리 아이들이 생소하게 느낄 법한 말들은 각주로 풀어 주었습니다. 독자들은 당시 익숙하게 쓰이던 순우리말의 느낌을 적확하고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은은한 그림으로 고전과 현대 작품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하는 유기훈 화백의 그림도 미학을 더합니다. 원화가 스캔ㆍ인쇄되는 과정에서 채색의 미세한 결이 훼손되지 않도록 섬세한 노력을 기울였고, 또 인쇄 현장을 직접 찾아 결과물의 완성도를 높였지요. 염상섭 선생님 작품을 심층적으로 연구한 정호웅(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문학평론가의 해설글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반세기와는 확연히 달라진 시대 속에서 『채석장의 소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염상섭은 치욕과 고난의 식민지 역사를 마감하고 새로운 출발의 자리에 선 한국인들,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마음이 어떤 것들인가를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중략) 이처럼 아름다운 마음들이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바람직한 마음들이다. 그런 마음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니 『채석장의 소년』을 낡은 옛날 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채석장의 소년』은 세월이 흘러도 언제나 새로운 소설이다. _해설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