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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l Gai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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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내게는 직장과 약혼녀, 집, 그리고 정상적인 생활이 있었다. 사실 나는 어느 누구 못지않게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길가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 어떤 아가씨를 발견했다. 그 순간 나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려고 작정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약혼녀도 집도, 그리고 직장도 없이 하루살이처럼 런던 거리의 수십 미터 아래에서 헤매고 있다. 런던의 이 지하세계에는 수백 명이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수천 명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본래 이곳에서 살던 사람이거나 지상에 살다가 틈으로 떨어진 사람들이다. 나는 지금 도어라는 아가씨와 그녀의 경호원, 그리고 그녀가 데리고 다니는 지독한 정신병자와 함께 땅속을 돌아다니고 있다.
우리는 어젯밤 작은 터널 속에서 잠을 잤다. 도어 아가씨는 그곳이 한때 섭정시대의 하수도였다고 한다. 내가 잠에 곯아떨어졌을 때 경호원은 깨어 있었고 사람들이 나를 깨웠을 때도 경호원은 여전히 눈을 뜨고 있었다. 그녀는 잠을 조금도 자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아침식사로 과일 케이크를 조금 먹었다. 후작은 지금 호주머니에 과일 케이크를 한 덩어리 넣고 다닌다. 그런 짓을 할 사람이 그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자는 동안 신발은 거의 다 말랐다. 집에 가고 싶다. --- pp.200-201 “다리 위에 밤이 내리면 무섭죠.” “그래요?” “낮이 끝나고 나면 점점 다가오죠.” 아나세시아는 리처드의 손을 더듬어 찾았다. 리처드는 그녀의 자그마한 손을 꼭 쥐어주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그의 손을 꼭 쥐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밤의 다리에 발을 들여놓았다. 리처드는 어둠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둠은 단순히 빛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어떤 것이었다. 그는 어둠이 자신의 피부를 건드리면서 탐색을 하고, 움직이며 그의 몸을 검사하는 것을 느꼈다. 어둠은 그의 정신 속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그것은 또 그의 폐 속과 눈 뒤, 그리고 입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그들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뭐죠?”아나세시아가 우는 소리를 하며 말했다. 리처드의 손 안에서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쉿! 주의를 끌면 안 돼요.”가죽옷을 입은 여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죠?”리처드가 속삭였다. “어둠이 깨어나고 있어요.”가죽옷을 입은 여자가 아주 낮은 소리로 말했다. “밤이 깨어나고 있다고요. 안전과 따스함을 위해 서로 몸을 껴안고 있던 동굴 시대 이후로 해가 지면 나타나는 모든 악몽이 깨어나고 있어요. 이제 어둠을 두려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리처드는 무언가가 자신의 얼굴로 기어오르려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가 보거나 느끼는 것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이제 밤은 완전해졌다. 환각상태가 시작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 pp.152-154 “달콤하고 신선한 꿈입니다. 일등급 악몽입니다. 없는 게 없습니다. 달콤한 악몽은 여기에서 사십시오.” “무기요! 자신을 무장하십시오! 지하 저장실과 동굴, 그리고 터널을 지키세요. 동굴이나 터널을 부수고 싶습니까? 저희는 모든 무기를 갖추고 있습니다. 자, 이리로 오세요. 이쪽으로......” “쓰레기 있어요!”악취가 나는 진열대를 지나가는데 뚱뚱하고 나이 많은 여자가 그렇게 외쳐댔다. “쓰레기!”그녀는 계속해서 소리쳤다. “더러운 쓰레기와 폐물! 썩은 고기! 파편! 자, 와서 가져가세요! 모두가 부서지고 엉망이 된 것들입니다. 똥과 내장, 그리고 쓸모없는 똥 더미가 있어요. 보시면 만족하실 거예요.” 리처드는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상점 안의 수많은 방을 둘러보았다. 그는 야시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천 명? 이천 명? 아니면 오천 명? 어떤 남자가 양초를 잡고 있는 어린애의 절단된 손을 불쑥 내밀며 주절거렸다. “영광의 손입니다. 나무가 울창한 언덕을 지나 베드퍼드셔까지 데려다 줍니다. 고장 없이 작동합니다.” --- pp.164-1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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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증권회사에 다니는 3년차 직장인, 리처드 메이휴. 마음씨 착하고 꾸밈없는 성격인 그에게는 얼굴은 예쁘지만 욕심 많고 까다로운 성격의 약혼녀가 있다. 어느 날, 약혼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가던 리처드는 우연히 길가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아가씨를 발견하고 그녀를 성심껏 도와준다.
그런데 바로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부상을 입은 아가씨는 몇 시간 뒤 어디론가 사라지고, 다음날 아침 그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져버린 것이다. 현금카드는 더 이상 작동되지 않고 어떤 택시도 그의 앞에 멈추지 않는다. 가까운 친구와 약혼녀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세 들어 살고 있는 아파트조차 그가 보는 앞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넘어가버린다. 부상당한 아가씨를 돕는 동안 런던의 지하세계에 숨어있던 마술과 위험에 노출되어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집과 직장과 약혼녀를 모두 잃고 한순간 지상의 틈으로 굴러떨어진 그는 꿈에도 존재하리라 생각지 못한 런던의 지하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지하터널, 숨겨진 통로, 막다른 골목……. 그곳엔 괴수와 수도사, 살인자와 천사가 공존하고 있다.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리처드는 자신이 목숨을 구한‘도어’라는 아가씨와 그 일행의 위험천만한 모험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 기이한 안내자 ‘카라바스 후작’과 함께 도어의 가족을 살해하고 지하세계의 안정을 위협하는 사악한 세력을 찾아나선 일행은, 여행 도중 무자비한 암살자들,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시련, 신비한 미로, 신화적인 괴물과 맞닥뜨리게 된다. 시간과 장소가 지상세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게 반응하는 이상한 공간을 헤매는 리처드에게 한 가지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점점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지상세계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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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리처드 - 런던의 증권회사에서 일하는 마음씨 착한 청년. 어느 날 저녁, 약혼녀의 만류를 뿌리치고 부상을 입은 도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돌본 다음날 런던의 지상세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지하세계 사람이 된다. 도어 - 런던 지하에 사는 귀족 집안 출신의 아가씨. 이름이 상징하듯‘문’을 포함한 잠겨있는 사물은 무엇이든 열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카라바스 후작 - 사기꾼 같지만 도어와 그녀의 가족에겐 의리있는 친구. 자신의 이름을 《장화 신은 고양이》라는 작품에서 따왔다. 고양이처럼 영리하고 교활하며 위기 탈출 능력이 뛰어나다. 크루프와 밴더마 - 전문 암살자 커플. 엉뚱하고 재미있는 구석도 있지만 소름끼치고 잔인한 인물들. 누군가로부터 암살요청을 받으면 사람들을 살해하고 거기서 쾌감을 얻는다. 영리하고 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크루프는 도자기를 즐겨 먹으며, 직설적이고 무뚝뚝한 밴더마는 쥐나 비둘기를 보이는 대로 잡아먹는다. 올드베일리 - 후작의 오랜 친구로 지붕에서 비둘기를 키우며 새의 깃털로 만든 옷을 입고 있다. 오랫동안 후작에게 신세를 진 탓에 후작을 위해 자신의 생명 일부를 간직해야 한다. 헌터 - 런던 지하세계의 전사. 그녀의 간절한 소망은 런던의 거대한 괴수를 사냥하는 것이다. 괴수는 그녀의 꿈과 리처드의 악몽에 자주 등장하는 신화적 동물이다. 이슬링턴 천사 - 런던 지하의 하수도에 살고 있는 실제 천사. 그 외 지하세계의 기타 주민들로, 쥐나라 말을 하는 부족, 벨벳 부족, 검은 예복은 입은 수도사들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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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닐 게이먼이 들려주는 도시판타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판타지 분야에서 이미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닐 게이먼이 《스타더스트》에 이어 또 한권의 판타지 《네버웨어》로 국내 독자들을 만난다. 강한 흡인력과 최면술처럼 사람을 몽롱하게 하는 힘이 느껴지는 소설 《네버웨어》는 20세기말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순간 지상의 틈으로 굴러떨어진 청년의 런던 지하세계 탐험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영국 BBC 방송에서 방영되었던 6부작 TV 판타지 시리즈를 책으로 펴낸 것으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로커스》등 여러 베스트셀러 선정기관의 목록에 올랐다. 한순간 지상의 틈으로 굴러떨어진 젊은 직장인 리처드의 런던 지하세계 탐험 닐 게이먼은 괴수와 수도사, 살인자와 천사가 함께 살아가는 땅속 세계로 독자들을 끌어들여 독자들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신비한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한다. 런던의 지하세계에는 지상의 틈바구니로 굴러떨어진 사람들이, 역시 수천 년 동안 지상의 틈으로 굴러떨어진 골목, 도로, 하수도처럼 오래 전에 잊혀진 옛 런던의 흔적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시간과 장소는 지상세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게 반응한다. 재미있는 점은, 런던 지하에는 지상의 지명들이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런던의 실제 지하철역명인 얼스코트(Earl’s Court, 백작의 궁정이라는 뜻)역에는 백작이, 블랙프라이어스(Blackfriars, 검은 옷을 입는 도미니크회 수도사라는 뜻)역에는 검은 옷을 입은 수도사가, 엔젤(Angel)역에는 이슬링턴(실제 엔젤역 부근의 지명)이라는 천사가 살고 있다.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쓰인 ‘도어’‘올드베일리’‘카라바스’‘헌터’에도 모두 각각의 능력이나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달콤한 악몽 같은, 어른들을 위한 고딕환상동화 《네버웨어》는 대단한 독창력과 신선한 위트를 가지고 동화에 접근한, 어른들을 위한 고딕환상동화다. 지하의 횃불과 런던의 지붕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들은 마치 전래동화 속 주인공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사악하고 소름끼치며 잔인한 인물로 모습이 변한 듯하다. 전통적인 동화는 대개 주문을 외고, 공주를 구해내며, 어른이 되어 잠에서 깨어나는 이야기들이지만, 이 소설은 일과 의무, 그리고 지루한 일상이라는 어른들의 세계를 뒤로 하고 다시금 어린이가 되어가는 이야기다. 혹은 다 큰 어른의 성장소설이다. 주인공 리처드는 지하세계에서 여러 차례 목숨을 건 자신과의 싸움을 견뎌내는 동안 마음씨 착하지만 연약한 성격의 사람에서 점차 강인한 사람으로 변화되어간다. 소년 같던 모습에서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던 사람에서 다른 사람에게 신뢰감을 주는 사람으로 달라져 간다. 작가의 의도대로 런던의 노숙자들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풍자소설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논리와 이성을 거부하고, 문학적 역사적 암시들로 가득한 판타지 《네버웨어》는 우리에게 일종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든다. 우리는 악몽 속에서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우리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또 사람들이 왜 우리를 뒤쫓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악몽은 흥미롭고 즐겁다. 독자는 저도 모르게 리처드를 따라 논리와 이성을 거부하는 현실로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 문학적, 역사적 암시들로 가득하고 스릴이 넘치며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판타지 소설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