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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몰려왔다
김해공항에 내려 담배 두 대를 피웠다 마리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태양이 도시를 짓누르고 있었다 개미 같은 빗물이 창문에 붙어 꿈틀거렸다 늦게까지 잠을 잤다 새벽에 집을 나서는 사람들은 대개 비정하거나 비장한 뭔가를 품기 마련이다 베란다에 발을 올려놓고 담배를 피우다가 다리에 힘을 주면 아파트가 기울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먹을 건 있소? 마리가 부엌에서 정어리 조림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차를 타고 마포대교를 건너 올림픽대로를 달렸다 스쿠터가 달려왔다 부식 가게 여자가 달려오고 있었다 공터의 어둠을 이끌고 그가 왔다 이제 어떻게 하지? 마리가 신부 곁에 누웠다 하수도 공사장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해설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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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의 마음을 돌려놓으라는 말에 맥이 풀렸다. 마리의 마음은 귀신도 알지 못했다. 포클레인으로 파고 또 파도 마리의 마음은 오리무중이었다. 뒤죽박죽인 마리의 마음을 무슨 수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것을 나이 탓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신부도 나도 잘 아는 것. 그것은 사랑이었다. “우리는 왜 사랑을 배우지 못했지?”라고 묻던 신부의 말처럼 정말이지 사랑이라는 것, 남들이 다 아는 상식조차 나는 알지 못했다. 도대체 사랑은 무엇일까. 괜한 엄살이 아니었다. 속된 말로 386이라는 세대. 이 나이에 미혼인 남자. 한 번 정도 데모를 하다가 구치소에도 가보고, 심각하게 군대를 갈 것인지 안 갈 것인지, 안 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을 해본 세대. 군대를 안 가기 위해 입영 열차를 타고 가다가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렸거나 같은 학번의 누군가가 기차에서 뛰어내렸다는 소문을 들었던 세대. 백골단이 백주대낮에 쇠파이프로 학생들을 쳐 죽이던 세대. 자신의 사상적 가치관에 의해 세상을 살아가다가 그것이 현실에서 무참히 짓밟혀본 세대. 사상 때문에 사귀던 여자를 스스로 포기하는 법을 터득해봤다면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노동인지 잘 알 것이다. 사랑은 힘든 것이고, 사랑을 할 바에야 아예 무관심하거나 포기하는 편이 나았다. 이 모든 것을 얄궂은 핑계라고 해도 나이 서른여덟이면 육체에 비해 변해버린 사랑을 뒤쫓아 가는 건 쉽지 않았다.
--- p.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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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꽤 오랫동안 소설을 썼고, 꽤 오랫동안 놀았다. 놀아도 개운치 않는 그 뭔가 때문에 다시 모니터를 빤히 들여다봐야했고,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을 한 2년 가까이 해보기도 했다. 밥을 먹어도, 일을 해도, 게임을 해도 나는 소설이라는 동굴에 갇혀 있었다. 내가 붙잡고 있는 소설, 이 생소한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쓴 소설을 고양이 똥처럼 파묻기에 급급한데. 여차저차해서 긴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소설 하나를 내놓았다. 이 소설에는 나름 번듯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정밀한 자본제를 살아가는 군상들이다. 옆집 아저씨도 아니고, 내가 아는 그 누구도 아니며, 인근 성당에 그 누구도 아니다. 단지 공허한 일상이 만들어 낸 한 인물이며, 배터리를 갈지 않아도 쉼 없이 움직이는 이 사회 그 누구다. 회복 불능의 존재들이 의심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두 팔과 두 다리를 움직이는 사회. 욕망하는 것들의 끝없는 생산력에 이 소설은 찬사를 보내면서 끝을 낸다. 의도된 것은 아닌데 다소 지루한 감이 있다. 또 정치한 풍경에 책을 쉽게 덮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행간에 나름의 노력이 묻어 있으니 살펴주시기 바란다. 책을 내는데 고생 많은 랜덤하우스 식구들과 하리, 아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안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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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통해 바라본 문명의 불안한 징후
2002년 계간「실천문학」단편소설신인상, 2004년 경향신문신춘문예에 시로 데뷔한 이래 고도로 시적인 문체와 넓고 깊은 주제 의식, 치밀한 구성과 해박한 교양을 두루 갖춘 독특하고 개성적인 작품 활동을 해온 안성호의 첫 번째 장편소설『마리, 사육사 그리고 신부』가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출간되었다. 안성호의 첫 장편소설『마리, 사육사 그리고 신부』는 회복불능의 존재들의 위태로운 사랑을 통해 공허한 일상 밖으로의 탈주, 현대 문명의 묵시록적 주제를 선보인다. 회복불능 존재들의 위태로운 사랑 그리고 죽음 『마리, 사육사 그리고 신부』는 위태로운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어긋나 있는 둘의 만남. 30대 후반의 남자와 10대 후반 소녀 마리. 그 둘의 위험하고 불편한 사랑의 여정은 끝내 죽음과 맞닿아 있으며, 죽음은 현대 사회의 음울한 묵시록적 상징으로 소설화된다. “사랑이 뭐지? 사랑, 하면 떠오르는 생각 같은 게 있잖아.” 화장실 밖에서 마리가 대답했다. “호치키스 알 한 통이 몸에 박히는 거.” 열여덟 살밖에 안 되는 마리가 이런 대답을 할 때마다 닭살이 돋았다. “고통이라는 거지.” <......중략> “날 만나는 게 고통스럽니?” “호치키스 알 한 통으로는 안 될 고통을 주지. 그 고통이 점점 몸 안에 쌓이면서 호치키스 알들이 푸른 칼로 변해서 가슴에 딱 버텨서지.” -본문 중에서- 전임강사 경력이 있는 30대 후반의 남자와 10대 후반 소녀 마리의 사랑은 ‘원조교제’라는 말 따위는 일찌감치 위의 대화를 통해 벗어던진 채, 둘만의 위태로운 사랑으로 이어져 나간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평탄치 못하다. 질투와 시기, 혼란과 고통, 신구 세대관의 충돌은 미리 예견된 듯 불안하고 어둡기만 하다. 마리는 점점 팜므파탈적 모습으로 변해가며 그 둘의 곁을 맴돌던 신부의 욕망을 부추기고, 종교적 신념과 원초적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신부는 끝내 마리의 곁에서 죽음을 맞는다. 웃(386)세대의 ‘타락한 이성’은 신세대와 감각적으로 만날수록 더 타락하며, 신세대의 ‘감각의 육체’는 웃세대를 이해하려 하면 할수록 감각적으로 무너진다. 웃세대는 타락의 끝이 파국일 것을 알고, 신세대는 감각의 무너짐이 결국 죽음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상태라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둘은 서로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김정환<시인>- 그 둘의 만남은 어쩌면 ‘비극’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에서 그 둘은 비극을 비극으로 받아들이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현대라는 거대한 괴물 안에 숨어 지내는, 현대인의 다름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 둘의 사랑이 의미하는 괴팍하고 불안한 상태는, 현대사회의 불온한 문제의식을 여과 없이 우리들에게 전하고 있다. 무뎌진 감각, 정체된 이성 마리는 의외의 방식으로 죽음을 당하고, 남자는 의외의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마리는 마리가 원하는 대로 남자의 손에 의해 하수도 배수관에 버려지고, 다음날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다른 여자와 똑같은 방식으로 마리와 같은 방식의 사랑을 시작한다. 이는 소위 ‘현대’를 바라보는 안성호 시선인데, 욕망의 대상이 같아지는, 그래서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고, 희생이 이뤄지면 다시 안정적 사회로 복귀하는 현대사회의 이상 징후를 암묵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통해 우리는 짧게나마 소설을 통해 ‘현대’라는 문명 속 이상 징후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 터, 이 소설이 ‘현대’를 살면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알면서도 느끼지 못한 이상 징후를 깨닫게 되는 접점이 되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그런 면에서 무뎌진 감각과 정체된 이성을 깨우고 있는 안성호는 배터리를 갈지 않아도 쉼 없이 움직이는 사회에 급브레이크를 걸고, 때로는 한번쯤 뒤돌아보기를 예리하고 때론 능글맞게 소설을 빌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