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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새날들의 시작 검은 보랏빛 바다의 중심 아버지 세기말 정체성 블랙홀 여름의 끝 소유와 유랑으로부터의 자유 반역 빈 중심 해설 작가의 말 |
朴範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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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모든 삶을 바쳐 소유한 전부를 버리고 나서, 멀고 먼 유랑 끝에서 비로소 얻었다고 믿었던 자유, 아니 믿고 싶었던 그 자유의 중심이 텅 비어 있는 걸 나는 너무도 또렷이 본 것이었다. 그곳은 그저 어둡고 차가운, 동시에 깊고 부드러운, 꺼진 자궁 같은, 침묵의 집이었을 뿐이었다. 돌아보면 내 명치에 걸려 있는 낚싯바늘의 정체를 전혀 예감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 순간 너무나 또렷하게,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전신이 와르르르 떨리는 것조차 제어할 수가 없었다. 지구의 중심에 도달했으나, 텅 비어 있어, 이미 중심이 아닌 것을 확연히 알아차린 기분이었다.
자유의 중심만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유랑의 중심도 비어 있었다. 나는 허깨비를 쫓아 파 멸을 마다하지 않고 허위허위, 예까지 달려온 셈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을 터였 다. 나는 발작적으로 달려가 팽개쳐진 그녀의 시집을 발로 꽉 밟았다. 그녀에 대한 놀랍고도 잔인한 적개심이 나를 사로잡았다. --- p.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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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하는 존재들에 바치는 ‘시간의 주름’에 관한 기록.
장편소설『주름』은 어느 일상적인 50대 중반 남자의 파멸과 생성에 관한 기록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한 남자와 여자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어느 날 문득, 시인이자 화가인 천예린을 사랑하게 된 주조회사 자금담당 이사인 김진영은 그녀를 보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고 만다. 그가 사랑한 천예린은 그보다 연상일 뿐 아니라 매혹적이면서도 사악한 팜므파탈적인 오십대 중반의 여인이었다. 김진영은 “잔인하고 황홀한 탄생의 시작”이라 표현할 만큼 천예린에게 깊이 빠져들고 만다. 그는 천예린을 만나고부터 “지금까지의 삶은 헛것이었다.” 며 자신의 삶에 대해 “황홀한 반란”을 꿈꾸기도 하고 동시에 삶의 정체성을 깨닫기도 한다. 그러고부터 얼마 후 김진영은 사회적 기득권은 물론 가족마저 팽개치고 회사의 자금을 횡령해 자신을 떠난 천예린을 쫓아 떠난다. 김진영은 천예린의 발자취를 추적하며 아프리카 대륙을 거쳐 스코틀랜드를 지나 시베리아 바이칼에 이른다. 어렵사리 도착한 시베리아의 바이칼에서 김진영은 “내 생의 마지막에 찾아와서 뒷덜미를 사정없이 후려친 여인, 그녀와의 광포한 사랑에 나는 매일 죽었고 매일 다시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더 다가 갈수도, 붙잡을 수 없는 기이하면서도 ‘광란’같은 사랑을 나눈다. 그런 그들에게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소설『주름』은 사실, 두 50대 남녀의 별로 아름답지 않은 사랑이야기다. 한 남자의 눈물겨운 순애보도 아니며, 광란적인 사랑의 기록도 아니다. 박범신은 “이 소설은 사랑이야기보다 근본적으로 실존의 문제를 다룬 겁니다. 죽음과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상반된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 영혼과 시간에 매달린 가파른 실존을 그린 거지요.” 또는 “나는 시간의 주름살이 우리의 실존을 어떻게 감금해 가는지 진술했고, 그것에 속절없이 훼손당하면서도 결코 무릎 꿇지 않고 끝까지 반역하다 처형된 한 존재의 역동적인 내면풍경을 가차 없이 기록했다”라며 이 소설을 정의하고 있다. 일탈과 절망의 기록인 아닌, 단순한 사랑의 열망과 냉혹한 죽음의 비정함이 아닌, 사랑과 죽음, 그 두 가지를 극한으로 몰아붙여 인간의 실존적 물음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소설. 즉, ‘삶은 과연 무엇인가’ 혹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되묻는 소설. 이런 면면이 박범신 장편소설『주름』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동시에 박범신의『주름』이 독자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하고도 명징한 ‘화두’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