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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감염되었다
비행접시 부왕아이르부자르 벙어리 방울새의 죽음 내 사랑 카멜레온 시계 없는 방 사랑 권하는 사회 야식夜食 캔can 해설- 편집증과 분열증, 그리고 현실/ 이수형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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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병명과 증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으나 그 무엇도 확실치 않았다. 어쩌면 아직 검색하지 못한 병인 것도 같고 지금까지 검색한 모든 병에 걸린 것도 같았다. 무엇이든, 아주 심각한 병에 걸린 것만은 분명했다.
도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김은 자신에게 투시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몸속의 장기를, 단 몇 밀리에 지나지 않는 종양도 꿰뚫어볼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안전하겠는가. 병원에 가서 두려움에 떨며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병을 키우는 일도 없을 것이다. 김은 자신의 몸속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싶다는 욕망에 들끓어 오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 p.2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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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문학사상』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신예작가 노희준의 첫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노희준은 중편소설 「캔」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사회의 병리학적 현상에 대한 남다른 시선과 삶의 진정성을 포착해 내는 노련한 솜씨로 자신만의 소설세계를 구축해왔다.
노희준의 소설집 『너는 감염되었다』는 문명과 문화로 포장된 현실, 그 이면 속에 드러난 치명적이고 악몽 같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가 어느 날부터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삶 모두를 감염시킨다거나, 또한 확률로 점철되어지는 현실이 확률로 인해 결국 붕괴되어진다거나, 게임과 현실이 교묘하게 교차되어 마치 게임처럼 인간의 과거와 기억을 버튼 하나로 지워버린다든가 하는 상황들을 통해 우리는 노희준이 제시하는 현실과 대면하게 된다. 노희준의 소설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던 사건들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으로 탈바꿈된다. 거짓 현실과 실재하는 현실의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결국 어떤 기묘한 현상과 정체모를 바이러스가 현실의 ‘실재’가 되어버리는 독설적이고 아이러니한 세계를 작가는 신랄하게 파헤친다. 이 소설집은 표제작 「너는 감염되었다」를 비롯하여 총 아홉 편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너는 감염되었다」는 바이러스 감염으로부터 내부를 방어하려는 편집증적 두려움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A 반도체 회사의 방화벽 담당자인 김은, 어느 날 새로 산 노트북 화면에 'Warning : You're infected'란 메시지가 뜬다. 그는 그 메시지를 노트북이 신종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바이러스를 치료하기 위해 웹사이트를 뒤지다가 어느새 그 자신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간암으로 죽은 어머니를 연상한 김은 계속해서 자신의 병적 증후를 의심하게 되고 거듭 검색에 매달린다. 결국 스스로 에이즈라 단정 지은 김은 절망 속에 잠이 든다. 그는 자기 몸의 병을 두려워하여 몸속을 꿰뚫어볼 수 있는 초능력을 원한다. 다음날 아침, 김은 회사에 출근해 실제로 동료들의 몸을 투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갑작스레 에이즈 말기 증상을 보이며 쓰러지고 다른 동료들의 모니터에는 김의 모니터에 떴던 경고문이 뜨기 시작한다. 등단작 「캔」은 제목 그대로 속이 빈 깡통, 무엇이 담겨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 중요한 것은 새로운 껍데기”일 뿐이며, “손가락 두 개만 가지고도 간단히 구길 수 있을 정도로 얇” 은 깡통 같은 90년대 학번의 후일담<이수형, 문학평론가> 소설이다. 주인공 ‘나’는 어느 날부터 자신이 모아온 캔이 점점 없어지는 것을 느낀다. 범인을 잡으려고 카메라를 설치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카메라 화면에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여자 ‘인하’가 찍히게 된다. 그로인해 ‘나’는 90년대의 대학시절 만났던 ‘무호’를 떠올린다. 인하와 무호, 그 사이를 가로막으려하는 ‘나’의 삼각관계를 기본 틀로 과거의 기억은 되살아난다. 그러나 무호는 이미 교통사고로 죽었고, 그런 무호가 꿈속에 나타나 ‘나’의 기억을 삭제 한다. 그로인해 꿈에서 깬 ‘나’는 인하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고 그녀를 낯선 여자로 대한다. ‘나’는 게임 속의 현실과 실재의 현실을 분간하지 못한다.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나는 이제 우리들이 벌였던 게임에 캔.exe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러고나니 정말 우리는 「캔」이라는 시나리오 속에서, 인하가 만든 보로메우스의 매듭처럼, 벗어날 수 없는 궤도를 맴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고백하는 ‘나’는 현실과 게임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 「부왕아이르부자르」는 확률로 점철되어지는 현실이 확률로서 붕괴되어지는 상당히 기묘한 소설적 분위기를 발산하는 작품이다. 사랑에 빠질 확률, 한 번의 섹스로 에이즈에 감염될 확률, 경부고속도로 위에서 사고가 발생할 확률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은 쉴 새 없이 확률을 계산한다. ‘그 확률이 실재의 현실을 어떻게 가늠 지을 수 있단 말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철학적 물음이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다. ‘또 다른 나’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가벼운 관찰 망상을 다룬 「비행 접시」, ‘분리성 정체 장애’ 라는 병 때문에 여러 개의 인격이 통합되지 못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벙어리 방울새의 죽음」, 외부에 대한 끊임없는 모방에서 비롯한 텅 빈 ‘나’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내 사랑 카멜레온」등과 같은 작품들은 노희준의 소설세계를 다채롭게 하고 있다. 「너는 감염되었다」와 「부왕아이르부자르」, 「벙어리 방울새의 죽음」처럼 편집증이나 분열증의 실험적 모색을 가미한 작품과 「캔」과 「내 사랑 카멜레온」「비행 접시」 같은 현실에 대한 의미 있는 문제제기를 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노희준의 소설세계는 우리 현실 속에 묻혀 있는 어두운 속성들을 그만의 소설 속 세계로 재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