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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오는 눈 天眞 창문 해는 짧다 眞如 비 연꽃 옆에 한 송이 꽃 새떼 부질없는 시 日月 꽃 피기 전에 벽도 없고 문도 없다 밝은 거울 이른 봄날 봄눈 해는 뜨고 달은 진다 저녁 밖에서 찾지 말라 그대로 두어라 봄이 가네 2. 뗏목의 추위 거울 말의 사랑 잠자리 한 마리 물고기 주둥이 이슬 사자 새끼 술집 흐린 하늘 풀 한 포기 무심한 창문 풀잎 끝에 이슬 비둘기 한 마리 시 밤이슬 마음 저 바람 때문에 문을 열고 나가지만 꿈같은 소리 다시 왕십리 간판만 눈부신 거리여 밤비 허송세월 봄 사랑 3. 언어 2 사물의 편에서 한때 나 없이 쓰기 떠돌이 언어여 시 유희 언어 놀이 언어 1 생각 하나에 대한 애정 바락은 날 서초동에 머물며 시 언어 서방 시는 나쁜 장르이다 시 인생 오늘 부는 바람 나도 긴 의자에 누워 |
李昇薰, 아호 : 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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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한 마리 경포 바다가 그대로
잠자리 한 마리요 가을 짧은 해입니 다 난 언제나 반쯤 가다 돌아옵니다 잠자리는 그대로 하늘에 떠 있고 내 가 너를 따라간 건 너를 잡으러 간 게 아니야 나를 잡으러 간 거야 그 러나 경포 바다 어디에도 너는 없고 아마 내가 잠시 꿈을 꾼 모양입니다 ---p.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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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와 인생의 본질에 대한 명상
나는 거울 당신도 거울 저 산도 거울입
니다 거울 사막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 고 거울이 생각합니다 거울이 나입니다 오늘도 선풍기 하나 틀어 놓고 거울 속에 서 거울이 나라는 거울에 대해 논문을 쓰지만 이 놈의 더위 이놈의 더위 거울인 걸 모르고 미욱한 나는 아직도 거울 속에서 나를 찾아 헤매고 담배를 피우고 차를 마시고 문득 이 차 한 잔이 거 울입니다 모두가 거울입니다 그러므로 거울 생각도 버리고 거울을 보면서 거 울에 머물지 마시오 거울은 세계입니다 저 거울이 나요 이 시는 거울이 쓰는 시 입니다 『인생』에는 사각의 틀 모양을 한 시들이 여러 편 있다. 마치 사진이나 그림이 정해진 크기의 액자나 종이 안에서 표현되듯, 언어를 사각의 틀 속에 가두어둔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모든 문학의 언어는 사각의 종이 안에 표현되지만, 다른 어떤 표현보다 자유롭다. 시의 언어는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훈 시인은 시를 다시 사각의 틀 속에 집어넣는 실험을 하고 있다. <거울이 나>이고 <거울이 세상>이고 이 시도 <거울이 쓰는 시>라는 말은, 나도 세상도 시도 본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허상이라는 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허상이며, 시인이 그토록 찾던 <나>라는 존재도 허상이다 - 이것이 이승훈 시인이 자아 탐구를 주제로 한 40년 가까운 세월의 시작 생활 끝에 마주하게 된 깨달음이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의 한계를 인정하자마자, 오히려 시인은 언ㄴ어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사각의 틀에 갇혀서도 시의 언어는 자유롭듯, 거울에 갇힌 존재 역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 허망한 깨달음으로부터 시 쓰기 혹은 인생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고 사물과 나, 시어와 시의 조화로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아무 것도 없으므로 모두가 있>(「사자 새끼」)게 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승훈 시인의 이러한 시적 실험은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정도를 넘어선다. 그의 시 쓰기는 자신을 드러내는 또 다른 언어 운용 방법이며, 시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윤여탁)이 된다. 무엇보다 『인생』은 제목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 시인의 인생에 대한 쓸쓸한 반추가 여러 곳에 스며 있다. <언제나 날씨는 춥고/따뜻하고 다시 춥고/인생에선 이런 게 중요하다/인생엔 아무 뜻도 없으므로>(「인생」), <……그동안 내가 부른 노래/는 모래 그리고 나도 모래야 그러나 당신은/모래에 물을 주지>(「허송세월」) 등 어느 순간 세어버린 흰 머리에 놀라며 헛되이 보낸 세월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허송세월>을 했다고 시인은 한탄하지만, 『인생』은 오랜 세월 시를 가지고 구도한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존재와 삶 그리고 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묻어난다. <잠자리 한 마리>, <풀 한 포기>, <비둘기 한 마리>도 사물과 인간사에 대한 성찰의 열린 매개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