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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시대 정신을 일깨운 파격적 기행문학
박지원
돋을새김 200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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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책소개

목차

압록강을 건너서(도강록渡江錄)
― 구요동기舊遼東記
― 관제묘기關帝廟記
― 요동 백탑기遼東白塔記
― 광우사기廣祐寺記

성경잡지盛京雜識
― 속재필담粟齋筆談
― 상루필담商樓筆談
― 성경 가람기盛京伽藍記
― 산천기략山川記略

일신수필馹迅隨筆
― 북진묘기北鎭廟記
― 차제車制
― 희대戱臺
― 시사市肆
― 점사店舍
― 교량橋梁
― 강녀묘기姜女廟記
― 장대기將臺記
― 산해관기山海關記

관내정사關內程史
― 이제묘기夷齊廟記
― 호질虎叱

막북행정록莫北行程錄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
부록

저자 소개1

朴趾源, 호 : 연암

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다. 18세였던 1754년(영조 30),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계층의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란 이름으로 묶었다. 1771년경 마침내 과거를 그만 보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은거하며 벗 홍대용洪大容 및 문하생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과 교유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롭게 창조하자’는 말로 집약되는 자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참신한 소품小品
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다. 18세였던 1754년(영조 30),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계층의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란 이름으로 묶었다. 1771년경 마침내 과거를 그만 보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은거하며 벗 홍대용洪大容 및 문하생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과 교유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롭게 창조하자’는 말로 집약되는 자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참신한 소품小品 산문들을 많이 지었다.

1780년(정조 4) 삼종형三從兄 박명원朴明源이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을 축하하는 특별 사행使行의 정사正使로 임명되자, 연암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서 연행燕行을 다녀왔다. 이 결과 지어진 것이 『열하일기』이고, 이는 완성된 전권이 나오기 전부터 열띤 반응을 받았다. 50이 된 1786년, 연암은 음직蔭職으로 선공감 감역繕工監 監役으로 관직을 맡게 되고 그 후 경상도 안의 현감安義縣監, 의금부 도사, 의릉 영懿陵令 등을 거쳐, 1797년부터 1800년까지 충청도 면천沔川(지금의 충남 당진)의 군수 등으로 재직하며 농업 장려를 위해 널리 농서를 구한다는 윤음綸音(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진상했다.

1800년 음력 8월 연암은 강원도 양양 부사襄陽府使로 승진했으나, 궁속宮屬과 결탁하여 양양 신흥사神興寺 승려들이 전횡하던 일로 상관인 관찰사觀察使와 의견이 맞지 않아 1801년 늙고 병듦을 핑계 대고 사직했다. 1805년(순조 5) 음력 10월 29일, 69세의 나이로 연암은 서울 북촌 재동齋洞(지금의 가회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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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자 : 김문수
소설가. 전 한양여자대학교 문창과 교수. 현대문학상(1975),한국일보문학상(1979),한국문학작가상(1986), 조연현문학상(1988), 동인문학상(1989), 오영수문학상(1997),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99) 등을 수상했다.〈증묘〉, 〈서러운 꽃〉, 〈어둠 저쪽의 빛〉, 〈그 세월의 뒤〉, 〈가출〉, 〈가지 않은 길〉, 〈만취당기〉 등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집과 산문집, 장편동화집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3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478g | 148*210*30mm
ISBN13
9788961670104

책 속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가난한 집이라도 글 읽기를 좋아해 겨울철이면 숱한 사람들이 코끝에다 고드름을 달고 지낼 지경이니, 이곳의 좋은 점들을 배워 가 삼동에 그 고생들을 덜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곳 온돌은 우리나라만 못한 것 같군요.”
“아닐세. 우리나라 온돌에는 흠이 여섯 가지나 있는데도 아무도 그걸 말하는 사람이 없네. 내 얘기할 테니 조용히 들어보게나.
진흙을 이겨서 귀돌을 쌓고 그 위에다 돌을 얹어 구들을 만드는데 그 돌의 크기와 두꺼움이 고르지 못하니까 조약돌로 네 귀퉁이를 괴어 절름발이를 고치려 했으나 돌이 타고 흙이 마르면 괴인 것이 허물어지는 게 첫째 흠이지. 그리고 돌이 울룩불룩해 움푹한 데는 흙으로 메워 편평하게 하므로 불을 때도 고르게 데워지지 않는 게 둘째 흠이야. 또 불고래가 높아 불길이 서로 마주 어울리지 못하게 되는 게 셋째 흠, 벽이 성기고 얇아 곧잘 틈이 생겨남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오고 불이 내쳐서 연기가 방 안에 가득 차게 되니 그게 넷째 흠이네. 다섯째 흠은 불목이 목구멍처럼 되어 있질 않아 불길이 안으로 빨려 들지 않고 땔나무 끝에서만 남실거림이요, 여섯째는 방을 말리는데 적어도 백 단은 되는 땔나무가 필요하고 뿐만 아니라 열흘 안으로 입주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야.
지금이라도 자네와 내가 벽돌 수십 개만 깔아 놓는다면 우리가 웃으며 얘기하는 동안에 몇 칸의 온돌이 이루어져 그 위에 편히 누워 잘 수가 있다네. 내 말이 어떤가?” ---‘압록강을 건너서’ 중에서

“참으로 좋은 울음터로군. 한번 울만 해.”
“이토록 천지간에 드넓은 시야를 얻게 되었는데 울고 싶다니 거 뭔 말씀이오?”
“천고의 영웅이 잘 울었고 미인도 눈물이 많다 하오. 하지만 그들은 소리 없이 몇 줄기 눈물을 흘렸소.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서 마치 쇠와 돌에서 나오는 듯한 울음은 듣지 못했소. 사람은 다만 희(喜)·노(怒)·애(哀)·락(樂)·애(愛)·오(惡)·욕(欲) 칠정(七情) 중에서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고 있지 칠정 모두가 울 수 있는 것임을 모르는 모양이오. 기쁨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즐거움과 사랑이 사무쳐도 울게 되오. 또 욕심이 사무쳐도 울게 되오. 불평과 억울함을 풀어버리는 데는 소리보다 더 빠른 게 없소.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 우레와도 같은 것이외다. 지극한 정이 우러나오는 곳에는, 이것이 저절로 이치에 맞는 것이거늘 울음이 웃음과 무엇이 다르겠소. 인생의 감정은 오히려 이런 극치를 겪지 못하고 교묘하게 칠정을 늘어놓고 슬픔에다 울음을 배치했으니 그 때문에 상사(喪事)를 당했을 때 억지로 ‘애고’ ‘어이’ 하고 부르짖는 것이오. 참된 칠정에서 우러나온 지극하고도 참된 소리란 참아 눌러서 저 천지 사이에 서리고 엉기어 감히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저 한나라 선진 문학자 가생(賈生:賈誼)은 일찍이 그 울음터를 얻지 못하고 참다 못해 갑자기 선실(宣室: 한나라 궁궐의 정실)을 향해 한마디 길게 울부짖었으니 이 어찌 듣는 이들이 놀라고 해괴하게 여기지 않을 수가 있었겠소.”---‘압록강을 건너서’ 중에서

나는 문득 어제 일이 생각나서 ‘전당포에서 기상새설(欺霜賽雪) 넉자를 썼을 때 주인이 왜 좋아하지 않았는지 오늘 알아봐야겠군’ 하고 주인에게 말했다.
“주인댁에선 점포 문 머리에 붙일 만한 액자가 어떻겠습니까?”
“그거야말로 더없이 좋겠습니다.”
내가 곧바로 ‘欺霜賽雪’ 넉 자를 써놓자 여럿이 서로 쳐다보는 품이 어제 전당포에서처럼 수상쩍다. 나는 속으로 이상하다 생각하고 물었다.
“이건 이곳과 아무런 상관없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곽씨가 덧붙였다.
“제 집에선 오직 부인네들 수식(장식)을 매매하지 국숫집은 아니올시다.”
나는 그제서야 부끄러웠다. 내 잘못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 넉 자는 심지가 밝고 깨끗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가루가 서릿발처럼 가늘고 눈보다 흰, 그것으로 만든 국수를 자랑하는 뜻이다. ---‘상루필담’ 중에서

중국에서는 매년 화창한 봄날 풀이 돋을 때 수놈 목에 방울을 달아 내놓아 흘레를 붙이면 수놈의 임자는 그 대가로 닷돈씩 받는다. 그리하여 말이나 노새가 준수한 수놈을 낳으면 또다시 닷돈을 받게 된다. 낳은 새끼가 신통치 못하거나 털빛이 좋지 못하고 길들이기도 어려울 때는 그 아비되는 말은 반드시 거세하여 나쁜 종자를 끊어버리는 동시에 종자를 부쩍 크게 하고 길들이기 쉽게 만든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목장을 감독하는 관리들이 이런 생각을 못하고 덮어놓고 토산 말로만 종자를 받기 때문에 낳으면 낳을수록 종자는 자꾸만 작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놈들은 똥통이나 나뭇짐에도 견디지 못할 만큼 열등한 것이다. 그런 말이 어찌 군사에 이바지할 수 있겠는가. 결국은 좋은 종자를 못 받은 때문이다.

--- '태학유관록’ 중에서

출판사 리뷰

조선 실학자의 유쾌하고 대담한 18세기 중국 기행
연암 박지원의 대표작인 <열하일기>는 1780년 6월 24일부터 8월 20일까지 청나라 고종의 칠순연 축하사절단 일원으로 연경과 열하를 다녀온 기행문이다. 연경에 도착한 연암 일행은 황제가 더위를 피해 피서산장으로 떠난 것을 알게 되어 열하까지 가서 황제를 알현했다. 그리고 조선에 돌아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을 들여 정리한 것이 바로 <열하일기>이다. 조선 사신으로는 최초로 열하까지 간 연암은 청나라에서 겪은 일을 세세하게 기록하였으며, 18세기 청나라의 실생활, 과학, 예술, 정치, 철학, 경제, 지리, 풍속, 제도 등 당시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았다.
기행문이면서도 일기형식을 갖추었으며, 자신이 느낀 것을 솔직하게 담아내기 위해 속담, 민요, 소설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열하일기>는 문학작품인 동시에 ‘이용후생’을 추구한 연암의 실학 사상이 담겨 있는 철학서이자 실용서라 할 수 있다.

조선 최고의 화제작, <열하일기>
연암 박지원은 “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들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을 본받아야 한다”는 실학사상을 가진 학자였다. 따라서 백성들에게 필요하다면, 당시 조선 사대부들에게 오랑캐라 일컬어지던 청나라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북학사상을 주장하였다. 이런 연암의 사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 <열하일기>이다.
<열하일기>는 일상 생활에서 쓰는 용어나 세속적인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소설을 삽입하는 등 새로운 스타일로 조선 문단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대부들의 반응도 극단적이어서 한쪽에서는 열렬한 지지를 보낸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전통적인 기풍과 풍속을 해친다 하여 질책을 받았다. 세간에 연암의 문체를 따라 하는 풍조가 유행하자, 정조는 전통적인 격식에 따른 한문체를 쓰게 하는 문체반정을 시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열하일기>는 당시 베스트셀러라 할 만큼 엄청난 양이 필사되어 세간에서 읽혔다.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불러일으킨 솔직하고 자유로운 글쓰기
청나라의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연암은 그들의 발달된 기술과 문명에 놀란다. 매사에 이용후생을 추구했던 연암은 집을 지을 때 벽돌을 쌓는 법, 온돌을 놓는 법, 불이 났을 때 물을 끌어올리는 기계 등, 실생활에 필요한 부분을 세세하게 적어 조선에 전하고자 하였다.
연암은 여행 중 다양한 사건을 겪게 되는데, 자신의 실수담이나 부끄러운 면모를 전혀 숨기지 않는다. 음식점 부엌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고운 목소리에 담뱃불을 핑계로 얼굴을 보러 부엌에 갔는데 나이 든 얼굴을 보고 실망했던 것이나, 중국인들의 기세에 눌리지 않기 위해 큰 잔에 중국의 작은 술잔 여러 개를 부어 단숨에 들이키며 허세를 부렸던 속마음을 솔직하게 적기도 했다.
체면을 중시하고 위선으로 가득 찬 양반들을 풍자하기 위해, 호랑이의 입을 빌어 양반들을 비꼬고 질책하는 소설 <호질>을 삽압한 것도 당시에 볼 수 없었던 신선하고 독특한 방식이었다.

충실하게, 그리고 새롭고 알차게 태어난 <열하일기>
<열하일기>는 26권 10책의 방대한 분량이지만, 이 책은 조선을 떠나 연경, 열하를 다녀오는 여정을 따라 연암의 사상과 문학성 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을 골라 한권으로 엮었다. <열하일기>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연암만의 독특한 문체와 생생한 인물 묘사, 풍자 등을 최대한 살렸으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적으로 풀어 썼다. 또한 사절단의 이동경로를 그린 지도를 수록해 한양에서 열하까지의 기나긴 여행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부록으로는 연암의 일생과 사상, <열하일기> 출간 당시의 시대 배경이나, 정조가 문체반정을 시행할 정도로 엄청난 바람을 일으킨 획기적인 연암 문학의 문학적 의의 등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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