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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개념/죽음에 이르는 병/유혹자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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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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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불안의 개념

머리말 - 15
서론 - 17

제1장 원죄의 전제로서의, 또 원죄를 그 기원으로 소급해 설명하는 것으로서의 불안 - 33
1. 원죄 개념에 대한 역사적 시사점 33
2. 최초의 죄 개념 37
3. 순진무구함의 개념 43
4. 타락의 개념 47
5. 불안의 개념 50
6. 원죄의 전제로서의, 또 원죄를 그 기원으로 소급해 설명하는 것으로서의 불안 55

제2장 원죄 그 이전을 설명하는 것으로서의 불안 62
1. 객관적 불안 66
2. 주관적 불안 70

제3장 죄의식이 없는 죄의 결과로서의 불안 92
1. 무정신의 불안 104
2. 변증법적으로 운명으로 규정되어 있는 불안 108
3. 변증법적으로 가책으로서 규정된 불안 114

제4장 죄의 불안, 또는 개별자와 관련된 죄의 결과로서의 불안 123
1. 악에 대한 불안 125
2. 선에 대한 불안(악마적인 것) 130

제5장 신앙을 통한 구원으로서의 불안 167

죽음에 이르는 병

글을 쓰면서 181
서론 184

제1편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절망을 말한다 187
제1장 절망이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187
제2장 이 병(절망)의 보편성 197
제3장 이 병(절망)의 여러 형태 205

제2편 절망은 죄다 264
제1장 절망은 죄다 264
제2장 죄의 계속 298

유혹자의 일기

유혹자의 일기 339
4월 4일·351/4월 5일·355/4월 7일·358/4월 9일·362/4월 11일·363/4월 14일·364/4월 20일·365/4월 21일·365/5월 5일·366/5월 6일·368/5월 12일·369/5월 15일·370/5월 16일·375/5월 19일·376/5월 20일·378/5월 21일·379/5월 22일·379/5월 23일·379/5월 27일·380/5월 30일·382/6월 2일·384/6월 3일·386/6월 5일·389/6월 7일·390/7월 3일·406/7월 23일·415/7월 31일·419/8월 2일·420/8월 3일·422/9월 16일·496/9월 24일·503/9월 25일·504

키르케고르 생애 사상 저작

키르케고르의 생애 509
저술 활동과 그 배경 517
키르케고르와 카를 마르크스 521
신 앞에서의 싸움 525
현대와 키르케고르 529

연보 533

저자 소개 2

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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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en Aabye Kierkegaard

쇠렌 키르케고르는 1813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부유한 가정의 아버지 미카엘 페더르센 키르케고르와 어머니 아네 쇠렌다테르 룬 키르케고르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엄격한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부친으로부터 철학적 상상의 즐거움을 배우며 동부 시민 학교에 다녔다. 키르케고르는 그곳에서 라틴어와 역사에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그 후 성장하여 1830년 아버지 미카엘과 형 페테르의 권유에 따라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고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신학부에 들어간다.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키르케고르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기독교는 광기’라고 말하고 기독교와 멀어진다. 그러다
쇠렌 키르케고르는 1813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부유한 가정의 아버지 미카엘 페더르센 키르케고르와 어머니 아네 쇠렌다테르 룬 키르케고르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엄격한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부친으로부터 철학적 상상의 즐거움을 배우며 동부 시민 학교에 다녔다. 키르케고르는 그곳에서 라틴어와 역사에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그 후 성장하여 1830년 아버지 미카엘과 형 페테르의 권유에 따라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고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신학부에 들어간다.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키르케고르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기독교는 광기’라고 말하고 기독교와 멀어진다. 그러다 대학 생활 도중 그의 관심은 신학에서 문학으로, 문학에서 다시 철학으로 옮겨갔다. 그는 지적 생활을 동경해 문학 · 음악 · 오페라 등을 가까이하고 산책을 즐기며 사상을 키웠다. 27세 되던 1840년 코펜하겐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레기네 올센을 만나 청혼한다. 다음 해 1841년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결혼에 환멸을 느끼고 이유를 밝히지 않고 일방적으로 레기네에게 했던 청혼을 파기한다. 그 후로 키르케고르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녀와의 결별 이후 키르케고르는 여러 가명을 사용해 『이것이냐 저것이냐』 『공포와 전율』 『불안의 개념』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거의 모든 작품을 가명(假名)으로 발표하고 발표한 작품이 자기가 원저자라고 밝혀진 후에도 계속 가명을 사용했다. 그가 모든 작품에 ‘단독자(單獨者)’를 이상적 인간형으로 삼는다. 그는 객관적인 진리 따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자기’라는 개체로서의 작은 인간, 둘도 없는 오직 하나의 인간, 이것이 그에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라는 단독자의 가장 절실한 혼(魂)의 문제를 파헤치고 기독교인들의 허위와 죄악을 비판하고 기독교의 정화를 위해 힘썼다. 그러다 가명으로 책을 출판했던 것이 탄로나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사람들에게 큰 비난을 받는다. 그 후 자신이 가명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던 이유를 신문에 기고하고 덴마크 기독교 사회를 비난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저작 활동을 하고 평생 직업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1855년 10월 2일 42세 때 거리에서 쓰러져 프레데릭 병원에 입원하고 11월 11일 생을 마감했다.

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의 다른 상품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고 독일 뮌헨 및 마인츠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였다. 1973년 마인츠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 한국외국어 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사회의 윤리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1985년부터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공연윤리위원회 등이 윤리 위원을 맡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근인애와 원인애』, 『콩 심어야 콩 나지』, 『현대 사회와 철학』, 『철학』 등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는 『가톨릭 사상사』, 『토마스 아퀴나스』, 『악이란 무엇인가』, 『자연의 역사』, 『철학입문』, 『20세기 철학』, 『서머힐』, 『서양철학사』 상, 하, 『철학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고 독일 뮌헨 및 마인츠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였다. 1973년 마인츠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 한국외국어 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사회의 윤리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1985년부터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공연윤리위원회 등이 윤리 위원을 맡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근인애와 원인애』, 『콩 심어야 콩 나지』, 『현대 사회와 철학』, 『철학』 등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는 『가톨릭 사상사』, 『토마스 아퀴나스』, 『악이란 무엇인가』, 『자연의 역사』, 『철학입문』, 『20세기 철학』, 『서머힐』, 『서양철학사』 상, 하, 『철학의 흐름과 문제들』, 『국가』 등이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9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546쪽 | 153*224*35mm
ISBN13
9788949714394

책 속으로

순진무구함은 무지이다. 순진무구함에서 인간은 정신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자연적 조건과의 직접적인 통일 안에서 영적으로 규정된다. 인간에게 있는 정신은 꿈을 꾸고 있다. 이 견해는 성서의 견해(선악과를 먹으면 너희는 죽을 것이다, 라는 성서의 말)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으로, 성서는 순진무구한 상태의 인간에게는 선악을 구별할 만한 지식이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가톨릭이 지니고 있는 공덕에 대한 모든 공상을 물리치게 한다. 이런 상태에는 평화와 안식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거기에는 다른 어떤 것이 있다. 다른 것이 있다 해서 불화나 다툼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거기에는 다툼의 씨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무(無)이다. 그런데 무는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일까? 무는 불안을 낳는다. 순진무구가 동시에 불안이라는 것, 이것이 순진무구함이 갖는 심오한 비밀이다.

수치 속에 불안이 정립되어 있듯이, 불안은 또 모든 에로스적인 사랑의 향락 속에도 존재한다. 그러한 향락이 죄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단연코 그런 일은 없다. 목사가 한 쌍의 부부를 열 번 축복해 봐도 불안의 존재는 여전하다. 에로스적인 사랑이 되도록 아름답고 순수하게, 그리고 도덕적으로 표현된다 하더라도, 또한 그 환희와 정욕에 대한 반성으로 어지럽혀지는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불안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불안은 훼방꾼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계기적 요소로서 동거하고 있는 것이다.

미신은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 것과 같고, 불신은 자기 자신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과 같다. 서로의 내용은 자기반성이다. 미신의 안일과 겁, 소심함은 미신 속에 머무르는 편이 그것을 버리기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불신앙의 고집과 교만, 거만함은 불신앙 속에 머무르는 편이 그것을 버리는 것보다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기반성의 가장 세련된 형식이란, 언제나 자기 딴에는 우쭐해서 그 상태 속에 들어앉아 있으면서도, 거기서 빠져나가려고, 자기 스스로에게 흥미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 「불안의 개념」 중에서

절망은 정신병, 자기 자신에게 있는 병으로서, 거기에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절망해서 자신이 자신의 소유자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즉 본질과는 거리가 먼 절망). 절망해서 자기 자신이고자 바라지 않는 경우. 절망해서 자기 자신이고자 바라는 경우. 인간은 정신이다. 그러나 정신이란 무엇인가? 정신이란 자기이다. 그러나 자기란 무엇인가? 자기란 자기 자신과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이다. 또는 그런 관계에서의 그 관계가 또 그 자신과 관계한다는 것을 말한다. 자기란 관계 그 자체가 아니고, 관계가 그 자신과 관계‘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유한성과 무한성의 종합이요, 순간과 영원의 종합이요, 자유와 필연의 종합이다. 종합이라는 것은 둘 사이의 관계를 뜻한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인간은 아직 자기가 아니다.

그리스도교적인 의미에서의 죽음은 그 자체가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세속적이고 육체적인 그 어떤 병도 죽음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확실히 병의 마무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 끝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결말이 죽음이고, 죽음이 결말인 것과 같은 경우의 병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병이야말로 바로 절망이다.

의사가 보기에는 완전히 건강한 인간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진실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도 절망하지 않는 사람이란, 다시 말해 마음 깊은 곳에 동요라든지 압력, 부조화, 불안 따위가 없는 사람이란 한 사람도 없다고 분명히 말할 것이다. 그것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것에 불안을 느끼는 것, 모든 인간이 감히 알고자 하지도 않는 어떤 것에 불안을 느끼는 것이며, 인간 세상의 어떤 가능성에 불안을 느끼거나 자기 자신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것 등이다.

죄란 ‘신 앞에서 또는 신의 관념을 갖고서 절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아니기를 바라든 자기 자신이기를 바라든 그것은 죄이다.’ 그러므로 죄란 지나치게 심한 나약함, 또는 지나치게 심한 반항이다. 다시 말해 죄는 절망의 강한 정도를 나타낸다.
--- 「죽음에 이르는 병」 중에서

‘나의’라는 이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나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에 속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그것에 속하고 있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내 모든 존재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나의 신’이라는 말도 나에게 속하는 신이 아니고, 내가 그 신에 속한다는 뜻이듯이 말입니다. 나의 조국, 나의 고향, 나의 직업, 나의 동경, 나의 희망이라고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불멸이라는 것이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당신의 것이라는 이 사상은 지금까지의 자연의 규칙을 한순간에 깨뜨려 버리게 될 것입니다.

불안이야말로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매혹한다. 사랑의 배후에는 깊은 불안이 넘실대는 밤이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밤으로부터 사랑의 꽃이 피어난다. 이를테면 수련은 물 위에 편히 기대어 꽃을 띄우고 있지만, 떨어진다고 생각만 해도 섬뜩한 깊은 어둠 속에 그 뿌리를 뻗고 있다.

나는 일찍이 있었던 것을 보는 게 아니고, 미래에 오려고 하는 것을 보고 있다. 모든 게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내가 나 자신의 신화인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미래와 몰래 만나는 것을 서두르는 것 자체가 바로 신화가 아니겠는가? 내가 누구인가는 상관없다. 모든 유한한 것, 시간과 관련된 것은 잊어버리고, 다만 영원한 것만이 뒤에 남는다. 사랑의 힘이, 사랑의 동경이, 사랑의 위대한 축복이 남는다.

--- 「유혹자의 일기」 중에서

출판사 리뷰

소름끼치는 불안의 개념

키르케고르는 오늘날 모두가 체험하고 있는 소름끼치는 자기소외의 과정을 『불안의 개념』에서는 ‘불안’으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는 ‘절망’으로 깊숙이 분석의 칼날을 들이 댔다. 『불안의 개념』은 불안이라는 현상에 대해 사상 초유의 깊은 분석을 가한 천재적인 작품이다. 원죄의 문제에 있어 불안이 그 전제인 동시에 결과라고 보고, 불안에서 원죄를 설명하며, 불안과 여러 형태의 치밀하고도 경탄할 만한 서술, 그리고 심층심리의 분석을 전개시키고 있다. 『불안의 개념』은 키르케고르 자신의 개인사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책에는 그의 심층적 정서가 형상화되어 있다. 그의 심층적 정서는 한마디로 말하면 무(無)에서 비롯되는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

『죽음에 이르는 병』은 키르케고르가 묘사하는 기독교도의 이상형으로부터 키르케고르 자신을 포함하는 현실의 기독교계를 비판하고, 절망이라는 병의 증상에 대한 모든 형태를 분석했으며, 그 진단을 제시하여 치유로의 길을 가르치고 있다. 절망에 대하여 이처럼 깊은 치료의 손길을 가한 작품은 없다. 현대 실존주의는 이 작품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절망’이라는 말은 여기서는 ‘인간의 자기가 신(神)을 떠나서, 신을 상실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이 인간의 자기소외상태를 철저히 규명하고, 현대인에게 두려움을 주는 병에 대하여 진단을 내리고 각성을 촉구하는 데 이 작품의 가장 큰 의의가 있다.

감성적 쾌락 유혹자의 일기

『유혹자의 일기』는 키르케고르의 기묘하면서도 은밀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혹자 요하네스는 스물일곱의 키르케고르, 열여섯 코델리아는 키르케고르의 평생 연인 레기네 올센으로 연결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오랜 열애 끝에 약혼하지만, 자신의 깊은 우수가 순탄한 결혼생활을 불가능하게 하리라는 불안에 사로잡힌 키르케고르는 결국 파혼을 선언한다. 이 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현실이자 삶의 비밀과 맞닥뜨리게 된다. 유혹자 요하네스는 윤리적인 삶에서 뒷걸음질 쳐 자신을 유연에 맡긴 채 오로지 감성적 쾌락만을 추구하며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자기와 싸워 자기를 극복하라!

키르케고르의 저서는 성실한 자기 고백이고, 계속되는 실존을 위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 기록이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그 인격과의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키르케고르는 천재적이기는 하지만 결코 성인도 군자도 아니었다. 오히려 보통 사람 이상으로 관능이나 애욕에 괴로워했던 남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죄의식도 깊었고 신앙에 대한 동경도 강했던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사람들이 맞닥뜨려야만 하는 선택 앞에 독자들을 서게 한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옳고 그름의 결단을 내리도록 하는데, 바로 이것이 저자의 의도이다. 말하자면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결정하게 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키르케고르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인생의 가능성을 독자 앞에 보여주는데, 그는 그것들을 저마다 미적(감성적)인 것, 윤리적인 것이라고 불렀다. 외로움 속에서 신앙을 지키며 자신과 싸워나간 키르케고르, 그는 각박한 사회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현대인의 앞길을 밝혀 주는 진정한 등대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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