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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기억으로서의 '87년 6월'
2장 87년 6월과 2008년 6월 2장 87년 6월전야 - 그들의 기억 속의 87년 4장 87년 6월 취재 일지 - 6월 항쟁에 대한 이야기들 5장 잊어서는 안 될 6월 항쟁 내부 -명동 성당 농성과 그 후 6장 87년 6월 항쟁과 2009년 6월 글을 맺으며 - 역사, 상상력 그리고 실험적 글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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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사건, 87년 6월 항쟁
한국 사회와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되는 개념들을 뽑아 그 의미와 역사, 실천적 함의를 해설하는 ‘비타 악티바Vita Activa|개념사’ 시리즈의 열세 번째 권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의 도약을 이룬 중요한 사건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적 개념이 된 ‘87년 6월 항쟁’을 다룬 책이다. 1987년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6월 항쟁은 시민이 주체가 되어 군부 독재를 무너뜨리고 대통령 직선제라는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냄으로써 민주화의 진전을 이룬 우리 역사의 결정적인 국면이다. 당시 6월 한 달 동안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는 물론 읍ㆍ면 단위까지 호헌 철폐와 직선제 쟁취를 외치는 시위의 물결이 거대한 파도처럼 일어났으며, 곧이어 7~9월에는 전국에서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 6월의 민주화 열기를 확산시켰다. 그 이후 진행된 우리 사회의 변화를 ‘87년 체제’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87년 6월 항쟁은 한국 사회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분기점이다. 정치적으로는 형식적 차원의 민주화가 진전되었고, 제도와 법 차원에서 개헌을 거쳐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었다. 사회적으로도 1987년 이후 한국 사회는 노동조합과 자발적인 결사 등이 활성화된 계급 사회로 진전하게 되며, 문화적 측면에서 지배 이념과 문화에 대응하는 민족?민중 문화가 개화하기 시작한 시점 역시 87년 이후이다. 이 책은 (구체제와의 타협 및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이처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시기이자 사건인 87년 6월 항쟁을 ‘기억’과 ‘이야기’라는 방법론을 통해 새롭게 탐색한다. 저자는 그동안 6월 항쟁을 규정해온 ‘직선제, 민주화, 항쟁, 열사’ 등의 거대한 담론들에 주목하기보다 그 시기를 직접 살아낸 (그러나 사료에는 기록되지 않은) 당사자들이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6월 항쟁을 되살려내고 있다. 즉 87년을 각기 다른 위치에서 경험한 가상의 인물들(대학생 출신 노동자, 대학생, 부산에서 시위에 참여한 배달 노동자, 기자)을 등장시켜, 그들이 1인칭 화자로서 토로하는 이야기를 통해 87년의 기억을 재구성한다. 이러한 ‘기억의 재구성’과 ‘이야기체 서술’은 그동안 공식 사료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았던 생생한 역사의 흔적을 복원하며 당시 사건들의 역동적 의미를 드러내준다. 더불어 2008년의 촛불 집회와 2009년의 추모 정국 등 현재 시점에서 87년 6월의 의미를 탐색하며, ‘두 개의 시민’으로 나뉘어 분열했던 87년 6월에 존재하는 균열과 모순의 지점을 추적하고 있다. 2.‘기억’과 ‘이야기’로 87년 6월 항쟁을 재구성하다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87년 6월은 죽음, 열사, 항쟁, 승리의 기억 같은 통일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87년 6월에 대해 모두가 처음부터 통일된 기억을 간직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통일된 의미로 재현되어 같은 기억이 형성된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래서 저자는 87년 6월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에 주목해, 역사 담론 속에 소실된 87년 6월의 다양한 의미를 탐색한다. 그에 따르면, 87년 6월 항쟁과 그에 대한 기억의 전모를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서울과 부산의 6월이 다르고, 광주와 대구 그리고 또 다른 공간의 6월은 저마다 다른 빛깔이기 때문이다. 또 학생들에게 6월이 거리 투쟁이었다면, 인천의 노동자들에게는 실제 전투를 방불케 한 한밤의 전투로 남아 있을 수 있으며, 부산의 배달 노동자에게는 1979년 부마항쟁의 부활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이 책은 87년 6월 전야에 대한 기억을 학출 노동자, 대학생 그리고 기층 대중이라는 세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재현한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80년대와 87년 6월을 경험한 세 사람의 기억을 통해 서로 다른 87년 6월의 퍼즐을 맞추어나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왜 노동자 운동은 87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지, 1986년 말까지만 해도 급격하게 위축되었던 학생 운동이 87년 6월에 중심 세력으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인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격렬한 가두시위가 벌어진 부산의 경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가 당사자들의 언어로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전국에서 뜨겁게 타올랐던 87년 6월의 실제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한 기자의 ‘취재 일기’라는 형식을 빌려 재구성하고 있다. 저자는 당시 사회 전체를 격동시켰던 사건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객관적 관점을 유지하려는 기자를 가상하고, 그라면 87년을 어떻게 기록했을지 상상하면서, 한편으로는 기존 1차 자료와 연표, 사건에 대한 해석 등을 참고해 일지를 재구성했다. 이 취재 일지를 통해 연표에서 ?건별로 분산되어 있는 87년의 기록들이 일관된 연관성 속에서 한 개인의 기록으로 남겨지게 된다. 이야기와 서사 그리고 역사적 실마리 사이를 이어주는 역사가의 상상력을 동원해 총체적으로 6월 항쟁을 구현하고 있는 이 책의 시도를 통해 87년 6월 항쟁의 다채로운 사실과 역동적 의미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3.‘두 개의 시민’, 87년 6월의 균열 서로 다른 위치에 있던 네 인물의 기억이 보여준 87년 6월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 책은 87년 6월 안에 존재했던 ‘서로 다른 시민’의 모습에 주목해 이 질문에 다가간다. 즉 87년 민주화 과정에서 시민이라고 통칭되던 통합된 주체가 실제 역사 속에서 어떻게 균열되었으며, 그 균열이 이후 민주화의 역진(逆進)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이러한 탐색은 흔히 ‘시민 혁명’, ‘전민 항쟁’ 등으로 불려온 87년에 대한 기존 인식이 얼마나 허약한 것이고 87년의 ‘시민 혁명’ 혹은 ‘시민 주체’를 중심으로 80년대 역사를 구성하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 일인지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87년 민주화 과정의 주체는 한편으로는 학생, 교회 단체, 재야 그리고 넥타이 부대라고 불린 중산층이었고, 다른 한편에는 1960년대 이후 시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기본 권리조차 박탈당했던 민중 그리고 노동자 계급이 존재했다. 저자는 87년 6월 당시 이들이 ‘하나의’ 시민으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6월 29일에 6월 항쟁은 일단락되었으나, 이후 일어난 노동자 대투쟁과 대선 투쟁은 6월의 연장선에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항쟁의 지도부 역할을 했던 국민운동본부와 재야의 대응은 부재하다시피 했으며, 대중의 선택을 투표함으로 국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국본과 운동 지도부가 6월을 통해 대중이 스스로 만들어간 정치적 공간을 닫아버렸다고 지적한다. 6?29 선언 후 노동자들의 밑으로부터의 투쟁이 파업, 농성, 가두 투쟁 양상으로 폭발했으나, 국본 등은 이 사안들에 적극 개입하기보다 보수 야당과 재야 등 자유주의 세력에게 맡겨버렸다. 또한 국본과 재야는 직선제라는 제도 정치 정상화라는 틀에 갇혀 다른 가능성들을 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기에 국본으로서는 투쟁을 노동권, 민중 생존권 등으로 폭넓게 확장시킬 계기가 존재했으며, 맹아 단계에서 형성되고 있던 계급 운동의 요구와 의제를 공론화해 제도화할 가능성도 있었고, 직선제라는 선거 형태에 국한된 개헌이 아니라 더 넓은 개헌이 가능했다. 그러나 국본과 재야는 직선제와 민주 정부, 그리고 어느 야당 후보를 지지할 것인가의 문제로 선택의 폭을 제한했다. 대안 이데올로기를 만들 가능성을 봉쇄한 채, 자유주의에 포위된 실천을 반복했던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87년 6월 항쟁 내부에 존재했던 균열의 결과이자 이후 민중 운동이 반복해 겪게 되는 ‘비극의 시초’라고 말한다. 4. 2009년 민주주의 담론의 한계 2009년 한국 사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이라는 충격적 사건과 이전 정권에 비해 강력해진 공권력의 시민?사회운동 탄압 등에 직면해 독재 대 민주 및 민주주의 담론이 재등장한 상황이다. 87년 6월에 존재했던 균열을 통해 그 한계를 드러낸 저자는 이른바 추모 정국이 형성한 독재-민주의 대립 구도 역시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며, 그것이 87년 6월 수준의 민주주의 담론으로 회귀할 가능성을 경계한다. 독재를 언급하는 순간 그 대안은 민주주의가 되고, 대안 담론 수준에서 민주주의는 정상적인 정당 정치, 소통의 원활 등으로 협소화됨으로써 사회 운동의 대안을 스스로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국가 기구의 작동이 87년 6월과 역사적 맥락이 다르다는 인식과 닿아 있다. 즉 자본의 사회적 지배력이 급격히 확장된 상황에서 공권력 동원은 단순히 국가의 시민 사회 탄압이 아니라, 체제 재생산을 위해 자본이 공권력 사용을 추동하고 용인하는 것이며, 신자유주의 아래서 국가는 ‘자본의 국가’임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민주주의와 독재, 전민 항쟁이라는 말의 반복은 결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