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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아동문학가 고정욱 선생님이 다시 쓴 우리 고전
고정욱김만중 원저
알라딘북스 200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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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우리고전

책소개

목차

머리말
1. 행복한 혼인
2. 첩이 집안에 들어오다
3. 원한을 품다
4. 쫓겨나는 사정옥
5. 계교
6. 험난한 여행길
7. 묘혜 대사의 도움
8. 유연수에게 닥친 액운
9. 사필귀정으로 되다

저자 소개 2

어린이 청소년 도서 부문의 최강 필자. 장애를 지닌 채 수십 년을 살아오며 긍정 마인드와 자기 계발을 삶의 실천으로 견뎌 온 작가다. 35년 이상 현업에서 꾸준히 활동해 온 장수 작가이며, 강연과 집필로 독자를 가장 많이 만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소개된다.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소아마비로 인해 중증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각종 사회활동으로 장애인이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고, 장애인을 소재로 한 동화를 많이 발표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어린이 청소년 도서 부문의 최강 필자. 장애를 지닌 채 수십 년을 살아오며 긍정 마인드와 자기 계발을 삶의 실천으로 견뎌 온 작가다. 35년 이상 현업에서 꾸준히 활동해 온 장수 작가이며, 강연과 집필로 독자를 가장 많이 만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소개된다.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소아마비로 인해 중증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각종 사회활동으로 장애인이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고, 장애인을 소재로 한 동화를 많이 발표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까칠한 재석이 시리즈』, 『주석으로 쉽게 읽는 고정욱 삼국지』 등이 대표작이다. 『가방 들어 주는 아이』와 『목 짧은 기린 지피』 등은 교과서에 실렸다. 지금까지 총 360여 권의 저서를 발간했다. 리더십과 자기 계발에도 관심이 많아 교육 현장에서 독자를 꾸준히 만나고 있으며, 어린이 청소년 문학 분야의 뛰어난 작품 활동과 기여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아동 청소년 문학계의 노벨상 격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ALMA) 2025년도 후보로 선정되었다. 지금도 매일 아침 9시면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전업 작가의 삶을 이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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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김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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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萬重

김만중은 조선후기 『사씨남정기』, 『구운몽』 등을 저술한 문신이자 소설가이다. 1637년(인조 15)에 태어나 1692년(숙종 18)에 사망했다. 부친이 1637년 정축호란 때 순절한 후 어머니 윤씨의 특별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과거급제 후 대제학까지 지냈으며 서인 계열에 속했다. 숙종 대의 환국정치 속에서 유배와 관계 복귀를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주희의 논리를 비판하고 불교용어를 사용하는 등 진보적인 사상을 지녔고, 국문가사 예찬론을 펼치는 등 국문 시가와 소설에 대한 식견도 높았다. 국문소설을 다수 창작했고, 363편에 달하는 시를 남겼다. 김만중의 사상과 문학
김만중은 조선후기 『사씨남정기』, 『구운몽』 등을 저술한 문신이자 소설가이다. 1637년(인조 15)에 태어나 1692년(숙종 18)에 사망했다. 부친이 1637년 정축호란 때 순절한 후 어머니 윤씨의 특별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과거급제 후 대제학까지 지냈으며 서인 계열에 속했다. 숙종 대의 환국정치 속에서 유배와 관계 복귀를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주희의 논리를 비판하고 불교용어를 사용하는 등 진보적인 사상을 지녔고, 국문가사 예찬론을 펼치는 등 국문 시가와 소설에 대한 식견도 높았다. 국문소설을 다수 창작했고, 363편에 달하는 시를 남겼다.

김만중의 사상과 문학은 이전의 여느 문인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말년에 불운한 유배생활로 일생을 끝마쳤다. 그러나 생애의 전반부와 중반부는 상당한 권력의 비호를 받을 수 있는 득의의 시절을 보낸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총명한 재능을 타고났으며 가학(家學)을 통해 상당한 경지의 학문적 성과도 성취하였다. 그가 종종 주희(朱熹)주2의 논리를 비판했다든지 불교적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했다든지 한 것은 위와 같은 배경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김만중 사상의 진보성은 그의 뛰어난 문학이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문학론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후대의 평가 속에서도, 그가 주장한 ‘국문가사예찬론’은 상당히 주목을 받는 논설이다. 그는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말을 통해 시문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한문을 ‘타국지언(他國之言)’으로 보고 있는 까닭에 정철(鄭澈)이 지은 「사미인곡」 등의 한글 가사를, 굴원(屈原)주3의 「이소(離騷)?주4에 견주었다. 이러한 발언은 그의 개명적(開明的) 의식의 소산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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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0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72g | 150*210*20mm
ISBN13
9788984017122

책 속으로

1. 행복한 혼인

명나라 세종 황제 시절의 일이다. 서울인 북경의 순천 지역에 유희라는 귀족이 살았다. 학식과 문장이 뛰어난 유희는 예부 상서 벼슬을 맡아 황제가 나라를 통치하는 데 온갖 열의와 정성을 다해 보필(輔弼: 윗사람의 일을 도움. 또는 그런 사람.)했다.
그러나 그런 유희에게도 경쟁자는 있었다. 태학사 엄숭이 바로 그였다.
“예부 상서의 그 말씀은 옳지가 않소이다. 외적이 쳐들어올 것을 대비해 항상 군량미는 비축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보시오, 태학사. 하신 말씀은 옳지만 지금 정세를 보십시오. 우리 명나라의 위세에 어디 위협을 주는 세력이 있습니까? 이럴 때는 세금을 적게 거둬 백성들이 잘살게 해야 합니다. 군량미는 정세를 봐 가면서 비축하는 것이 좋소이다.”
“어허, 한 치 앞의 일을 어찌 안단 말씀입니까? 옛날에 몽골의 오랑캐들이 원나라를 세울 때도 순식간에 몰려오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별로 저항도 못 하고 당했고요.”
이런 식으로 엄숭은 사사건건 유희의 이견에 쌍지팡이를 들고 나섰다. 그런 데다가 엄숭은 사람들을 잘 끌어 모아 조정에서 유희는 따돌림을 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도저히 이런 분위기에서는 황제께 충성을 다할 수가 없구나.”
유희는 이제 나이도 있고 해서 벼슬을 관두기로 결심했다. 며칠간을 방에 틀어박혀 황제에게 벼슬을 내놓겠다는 상소(上疏: 임금에게 글을 올리던 일. 또는 그 글.)를 준비했다.

소신은 그 동안 황제 폐하의 은총을 입어 부족한 능력이나마 열심히 보필했사옵니다.
이제 병이 깊어 더 이상 곁에서 작은 힘이나마 거드는 것이 불가능해진바 고향으로 돌아갈까 하오니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부 상서 유희 올림

황제는 그 상소를 보고 주위의 신하들에게 물었다.
“예부 상서 유희가 이렇게 병이 나서 벼슬을 관둔다 하니 어쩌면 좋겠나?”
그러자 늘어서 있던 신하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한 마디씩 했다.
“건강이 안 좋으면 만사가 귀찮은 법입니다. 윤허(允許: 임금이 신하의 청을 허락함.)하옵소서.”
“이제 예부 상서는 고향으로 돌아갈 나이가 되었사옵니다.”
그들은 모두 엄숭이 시키는 대로 떠드는 것이었지만 황제는 이를 알지 못했다.
“예부 상서 유희가 원하는 대로 해 주어라.”
그러면서 황제는 특별히 태자소사라는 직함을 내려 주었다. 그것은 명예만 있는 직함이지만 권세를 계속 누릴 수 있는 벼슬이었다.
그 뒤로 유희는 비록 조정의 일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 명성만은 온 나라에 진동했다.
집으로 돌아온 유희는 모처럼 부인 최씨와 화목하게 지내며 인생을 즐겼다.
“오라버니, 벼슬에서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가 돌아왔다고 하자 가장 먼저 우애가 지극한 누이가 찾아와 인사를 올렸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지만 두씨 가문에 시집을 갔다가 남편을 여읜 뒤 홀로 수절[守節: 절의(節義)를 지킴. 정절을 지킴.]하고 있어 늘 안쓰러웠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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