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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시선

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손님
지워진 산
목백일홍
슬픔
징검다리
개불알풀
신호
고공사다리를 볼 때마다

개가 슬퍼 보이다
작살나무의 보시
입동 무렵
모기에게 물리다
아름다운 폐인
사랑치과 위생사
장갑 한 짝

제2부
별에 쏘이다
한 사람을 위한 시
구월에
가을
상추를 솎다가
아내의 산
둥지
이슬
새와 우산
매화꽃 피니 알겠네
인연
잎새 하나
계란빵과 껍데기
산길에서
화두

제3부
선생 몇이서
겨우 핀 꽃
욱현이
냉이꽃
살벌한 아이
시나브로
나무들의 식사
돌의 얼굴
복도 저편
그녀
소실점
호박을 따다가
구월에서 시월로

눈병에 걸리니

제4부
뿌리까지 통째로
쫓기는 햇살이 더 눈부시다
일일주점
조계산 가는 길
호박
어떤 버릇
득음
당연한 일
벌레 잡는 일
가벼워지고 싶다
알약 하나가
배를 깎다가
첫눈
달리는 사람은 아름답다

해설 슬픔에게도 반짝임을 넣어주는 ‘별의 詩’ | 김준태

저자 소개

저자 : 안준철
1954년 전주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순천효산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세상 조촐한 것들이』 등과 교육산문집 『아들과 함께하는 인생』『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등을 펴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2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127쪽 | 172g | 125*208*20mm
ISBN13
9788990492777

책 속으로

인연

논에 물이라도 대러 가시는지
아침 마실 길이었는지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 한 분이
때마침 떠오르는 아침 해를 등지고
오솔길로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떠오르자마자 숲에 갇힌 해는
영어囹圄의 몸이 된 성자처럼
갇힌 자의 아름다움으로
가둘 수 없는 한 정신의 뜨거움으로
숲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자꾸만 고개를 돌린 것은
달걀노른자처럼 예쁘게 퍼진
숲에 갇힌 해 때문이었지만
할머니는 당신을 바라보는 줄 아셨던지
길 가다 말고
몇 번 제게 눈길을 옮기셨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날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하고
허공에서나 만나 얼크러졌을 눈빛들이
어디쯤 날아가 뿌리를 내린 것은 아닌지
저 길가에 핀 들꽃은 아닌지

--- p.54


산길에서

산길 내려오다 오줌이 마려워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면팔방 아무도, 아무도 없었다

숲 속으로 몇 발짝 걸어 들어가
시원스레 오줌발을 날리다가
아뿔싸,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꿩이었다
잠시 오줌발을 늦추고
고놈의 동태를 살피는데
이번에는 산죽과 눈이 마주쳤다

졸참나무 떡갈나무 서어나무
이런 이름표를 단 나무들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나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을까

--- p.59

출판사 리뷰

안준철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별에 쏘이다』가 출간됐다. 이 시집에는 제자들과 더불어서, 자연과 더불어서 살아온 시인의 가치관과 생활의 단편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얻은 감동과 ‘낮은’ 생명과의 공명에서 얻은 깨달음을 정제한 시들을 읽다 보면 시가 태어나는 자리가 일상의 낮은 곳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밤하늘의 별, 길가에 핀 꽃,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안준철의 시를 읽고 이학영 시인은 “사실 안준철 시인을 평생 가까이에서 바라보면서 나는 그의 삶이 곧 시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며 “이번 시집도 그런 일상의 아름다운 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삶이 곧 시이고 시가 곧 삶이 되는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자리를 이 시들을 통해 읽으며 나는 추운 계절을 따뜻하게 보내고 있다”고 고백한다.


눈이 맑은 ‘별의 시인’ 안준철

안준철의 시는 자연을 사랑하고 그와 연대하려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표제시인 「별에 쏘이다」라는 작품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맑고 순수한 존재와 만나 그 경이로움에 산통(産痛)을 느끼는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이 시에서 시인은 지리산 연하천에서 고개가 아프도록 별을 바라보다 “별에 쏘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마와 가슴에 박힌 별의 침에 아파하기보다는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지리산 연하천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어찌나 별이 곱고 좋던지
고개가 아플 정도로 별을 쳐다본 뒤로
일이 이렇게 되었노라고

얼음찜질 덕분인지
보기 흉하게 부어오른 눈두덩은
웬만큼 가라앉았다
이마와 가슴에 박힌 침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다시 태어나려는지
환하게 아프다
- 「별에 쏘이다」부분

어떤 모습으로 재탄생될지 알 수는 없지만 여전히 환하게 빛나기에 시인이 전해주는 별빛은 긍정적인 힘과 감동을 선사한다. 밤하늘의 별빛을 사랑할 줄 아는 안준철 시인을 두고 김준태 시인은 “눈이 참 맑아 보이는 그는 윤동주처럼 천성적으로 별을 사랑하는 시인입니다”라며 “안준철을 ‘별의 시인’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것도 큰 별이 아니라 아주 작은 별들을 노래하는, 하늘 멀리에서도 더욱더 간절하게 빛나고야 마는 별들을 노래하는 시인이라고 추켜세우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은 길가의 작은 풀꽃에도 그저 스쳐지나가는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시인은 꽃과 ‘눈’을 마주하며 다시금 가슴에 통증을 느낀다. 시인이 느끼는 통증은 다름 아닌 새로운 삶을 예비하는 고통이다.

넌 왜 피었니?
그쪽은 왜 피었는데요?
한마디씩 주고받다 보니
기막힌 마음이 더했다

난 왜 피었을까
묻고 또 묻다가
쪼그린 자세를 풀고 일어설 때는
묵은 피가 도는지 가슴께가 아팠다

오랜만에
겨우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겨우 핀 꽃」부분

길가의 작은 꽃뿐 아니라 하나하나 자연의 생명들과 시선을 마주하고 이들과 수직이 아닌 수평의 관계를 만들어간다. 시인은 “졸참나무 떡갈나무 서어나무/ 이런 이름표를 단 나무들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나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을까”(「산길에서」) 라며 ‘사람’ 이외의 생명과 동등하게 ‘눈’을 맞추며 그 존재를 인식하고 자신의 세계에 받아들인다. 비록 그로 인해 가슴께 아프다 해도, 시인은 멈추지 않고 “사람이 벌보다 나은 게 뭐지?”(「살벌한 아이」)라고 자문하며 자연의 수많은 생명들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고 한다. 이러한 자연을 대하는 시인의 태도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만도 없고, 자기중심적인 ‘이기’도 없다. 이는 시인 스스로 자연의 한 부분임을 깨닫는 ‘성찰’의 과정이기도 하다.


따뜻한 일상을 선사하는 시인 안준철

안준철 시인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들과 어울리면서 빚어내는 이야기들을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키고 있다. 삶의 작은 면면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맑은 시선이 있기에 전할 수 있는 감동이다.
좋을 때도 궂을 때도 곁을 지켜온 아내의 코고는 소리에서 득음한 소리꾼을 떠올린다. 따야 할 때를 놓친 애호박도 아까워하지 않고, 오히려 때를 놓쳐 크게 자란 호박은 이웃집 밥상까지 오른다며 푸근한 마음을 갖는다. 무엇보다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즐거움을 나눔과 동시에 아픔도 슬픔도 일상으로 끌어안아 버리는 시인의 의연함이다.

슬픔이 다녀간 곳에는
빛에 스러져간 별자리처럼
맑고 투명한 얼룩이 남아 있다

오늘도 손님처럼 찾아온 슬픔을
아침이 올 때까지
잘 대접하여 보내주었다
- 「손님」부분

슬픔을 맞는 시인의 태도는 슬픔도 삶을 움직이는 일상의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기차에서 만난 한 모녀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을 두고 “내 안에 찾아온 슬픔이 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슬픔」)라고 고백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아픔을 잊는 사람이 될까 마음을 졸이며 “늘/ 행복이 수상쩍다”고 토로한다. 이러한 시인의 모습은 슬픔 속에서도 삶을 보다 긍정적이고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어쩌면 감추고 싶을지도 모를, 혹은 잊어버리고 싶을지도 모를 삶의 슬픔들을 ‘얼룩’으로 남기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인연의 힘에 대한 시인의 믿음에서 기인한다. 생에 단 한 번 찰나의 스침일망정, 생의 어딘가에는 모두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한 애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그날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하고/ 허공에서나 만나 얼크러졌을 눈빛들이/ 어디쯤 날아가 뿌리를 내린 것은 아닌지/ 저 길가에 핀 들꽃은 아닌지”(「인연」)라며 희망을 품는다.

추천평

시가 하늘 높은 곳에만 있는 것, 깊은 숲 속과 아름다운 사랑에만 있는 것쯤으로 알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기에 시는 고상하고 고답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쯤인 것으로 알았다. 그런 잔재가 남아서 나는 아직도 시를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런 내 잘못된 사고를 깨준 사람이 바로 안준철 시인이다.
사실 안준철 시인을 평생 가까이에서 바라보면서 나는 그의 삶이 곧 시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교육 현장에서 살아오면서 아이들 생일 때마다 그들의 삶을 소재로 한 시 한 편씩을 써서 쥐여준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바로 그런 고운 마음씨야말로 시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실제 그의 시는 그런 일상 속에서 나온 이야기와 느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잘 정제된 언어와 감정으로 승화시켜서 삶과 시가 하나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있다.
이번 시집도 그런 일상의 아름다운 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삶이 곧 시이고 시가 곧 삶이 되는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자리를 이 시들을 통해 읽으며 나는 추운 계절을 따뜻하게 보내고 있다.
이학영(시인)
벌이 아니라 ‘별에 쏘이는 남자’ 안준철. 그의 신작 시집에는 세상사 두두물물이 마치 처음처럼 실눈을 뜨고 있다. 개안開眼의 공간이자 명명命名의 시간이다. “이마와 가슴에 박힌 침은/ 아직, 오리무중”이라지만 실은 슬픔의 “맑고 투명한 얼룩”마저 “잘 대접”할 줄 아는 시인이다. 고공사다리의 밑바닥에서 “저 한 평의 평화”를 읽어내고, 뱃머리 폐타이어를 보며 덩달아 “아름다운 폐인이 되고 싶”을 만큼 넉넉하면서도 깊어졌다. 그리하여 “오래 묵은 호박일수록/ 그 맛이 더 멀리까지 간다”는 선언마저 예사롭지 않다.
이원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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