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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시선

책소개

목차

自序

제1부
순이언니
나팔꽃 봉오리
어둔 밤, 베란다에서
전쟁과 평화
은행잎 하나
아득한 봄날
항동 순두부집
작은 사랑노래
잡담
21세기와 평화
겨운 목숨
하강下降
닭 모가지의 행방
만석부두
천수관음千手觀音
지하도 입구

제2부
귀환歸還
새우튀김을 먹는 저녁
파산시대
밑 빠진 독과 화수분
대형 할인매장에서
청맹과니
닥트공 최씨
즐거운 날들
복개천 사거리
건설 현장에서 오래된 해골 더미가 발굴되던 날
은밀한 내통
삽의 전쟁
돌담에 매달린 꽃
평화
벼꽃
아빠, 제발 잡히지 마

제3부
고비사막에서
세이한 고비
끊어진 현絃

사막의 길
두 주검
최병은 씨 댁 옆집
둥지는 새들이나 트는 것이다
21세기 토끼
지렁이의 길
청보리밭과 대숲
신창세기
황금시대
시인똥 종이
풍기반란
배다리의 밤

제4부
첫눈 오시던 날
노래
죄의 무게
향기
눈은 왜 소리 없이 누워 있는가
유성流星
천변 풍경
비 오는 날
비 내리는 날, 창가에서
환한 골목
눈썹달
모과 한 알
가을 깊은 저녁
상록수
깊고 아득한
푸른 정거장에서 놀다

해설 소걸음으로 가는 인간의 길 | 문동만

저자 소개 1

1997년 『내일을 여는 작가』에 시 추천을 받아 등단. 시집 『등 뒤의 시간』, 『귀를 접다』, 청소년시집 『우리들의 고민상담소』를 비롯해 『청소년을 위한 시 쓰기 공부』, 『진달래꽃에 갇힌 김소월 구하기』와 『국어사전에서 캐낸 술 이야기』, 『맹랑한 국어사전 탐방기』, 『문학 시간에 영화 보기1.2』, 『문학과 영화로 만나는 아프가니스탄』, 『시를 즐기는 법』 등 여러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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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1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82g | 124*208*20mm
ISBN13
9788990492692

책 속으로

끊어진 현絃

남고비 모래언덕 앞에서
낙타와 마두금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다

새끼를 낳은 낙타는
출산의 고통을 가져다 준 제 새끼가 미워
젖도 안 먹이고 발로 차버린다는데

그러다 마두금 소리 바람결에 실려 오면
굵은 눈물 뚝뚝 흘리며
비로소 제 새끼를 찾아 젖을 물린다는데

남고비 모래언덕 앞에서
스르륵 스르륵
모래 흘러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끊어진 마두금 줄 같은 내 시를 생각한다.

--- p.71


푸른 정거장에서 놀다

푸른 정거장에서 어슬렁거리는
소 한 마리
굴레와 고삐를 벗어버리고
등에 태우고 갈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자신을 찾아 나선 그이가
어느 정거장쯤 오고 있는지
먼 지평선을 바라보는 동안
오래된 세월처럼
침 한 줄기
입가에 길게 늘어져 있고

우우우 함성으로 뭉쳐진 무리에 이어
삼보일배, 오체투지의 행렬까지
크고 선한 눈망울에 비친
그 모든 풍경을 새김질하며
소는 지금
자신이 놀고 있는 푸른 정거장을
무장 넓혀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밤하늘에 푸른 별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발목마다 푸른 안개를 감고
새벽까지 찬 이슬 맞을 준비를 하는
소의 나라, 푸른 정거장은
우리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슬픔이 없는 나라로 가는 통로인지도 모른다.

--- p.116

출판사 리뷰

1997년 『내일을 여는 작가』에 시 추천을 받았으며 전교조 해직교사였던 박일환의 두 번째 시집 『끊어진 현』이 출간되었다. 시집에는 온통 세상의 모든 목숨붙이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하다. 재개발 지구의 버려진 복숭아나무, 해고된 공장노동자, 닥트공 최씨, 엄마 따라 방글라데시로 쫓겨난 모루, 개코막걸리집의 사람들이 그가 시적 대상으로 삼은 것들이다. 시인의 타자에 대한 관심은 그저 연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현실에 대한 예리한 칼날로 작용한다. 모순과 절망의 현실은 이들 삶의 모습 속에 온전히 재현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번뜩이는 칼날은 시적 대상에게 들이대는 도구가 아니라 그 이면의 현실에게 들이대는 메스와 같다. 그러므로 그의 칼은 생명을 살리는 부드러운 칼날을 지녔다.

거시와 미시가 삼투압 하는 현실
『끊어진 현』을 관통하는 주된 얼개는 시인의 발길을 따라 시인의 눈에 포착된 풍경들이다. 거시와 미시가 삼투압 하는 현실이며, 삶을 통해 우려진 ‘앙금’이다. 삶에 내몰려 강퍅하고 빈궁하게 살지언정, 가장 비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계급의 위신을 지켜내는 사람들, 그들의 지근거리에 그가 있다. 이들에 대한 지극한 연민의 힘을 시인은 고집스럽게도 믿으려 한다. 하지만 이들의 미담 혹은 미시적 이야기들은, 불행스럽게도 구조적 모순의 결과이다.

-구로동에서 파견직 공장노동자로 일하다 얼마 전 일방적으로 해고되었다. 해고 사유는 잡담이었다.

담배를 찾아 물고 베란다로 나가 창밖을 보는데, 깜깜한 밤하늘에 아무 것도 없다 별들과 잡담이라도 나누었으면 싶은데, 그랬으면 좋겠는데, 내 마음을 먹어 삼킨 밤하늘은 그냥 깜깜 절벽이다
-「잡담」 부분

잡담을 했다고 문자 해고를 당하고 1000일을 훌쩍 넘겨 싸우는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의 저항 앞에서 시인의 가슴도 깜깜 절벽이다. 타자의 고통이 나에게로 옮겨 나를 먹어 삼켜버리는 것, 이를 연민이라 해도 좋고 연대감이라 해도 좋으리라. 서정시가 오롯이 풍경과 내면의 발성 그 자체의 묘사에 머무르지 않고 어떤 사회성과 은밀히 내통할 때 시가 가진 근원적 매력을 보여주게 된다. 시인의 목소리는 때론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때론 격앙된 어조로 변음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21세기교회보다도 높고 높아서
21세기와 평화를 한꺼번에 굽어보곤 했던 게 아닌가
굽어보기만 하다 잠들곤 했던 게 아닌가
흉몽도 없이, 편안하고 달콤하게
-「21세기와 평화」 부분

시인은 또, 자신이 사는 아파트 아래의 ‘21세기 교회’와 ‘평화교회’를 가지고 ‘21세기’와 ‘평화’에 대해 말한다. 쾌속으로 달리는 21세기는 평화라는 염원을 떼어놓고 가기 일쑤다. 기실 일상을 살면서 많은 이들이 현실의 관조자가 되거나, 평온한 일상에서 불행한 현실을 상기하지 않는다. 불행하고 아픈 현실은 오래 생각하지 않을 것, 그나마 부여되는 자디잔 일상의 즐거움을 행복이라고 여길 것. 세상이 개별의 구성원들에게 주입하는 메시지다. 그러나 시인은 무감각한 현실의 뱃가죽을 갈라 복수가 찬 현실을 토해놓는다. 무심히 흘러가는 불어터진 밥풀떼기와 같은 삶을 경계해 본다.

삶은 불행과 행복의 이중창

피곤한 몸을 씻고, 재잘대는 아이들을 재우고
모처럼 아내와 달콤한 사랑도 나누었다

-그이들, 함께 포개져 누워 외롭진 않았을까?

(중략)

-그이들, 실은 우리 식구들 머리맡에 묻혀 있었건 건 아닐까?
-「건설 현장에서 오래된 해골 더미가 발굴되던 날」 부분

삶은 불행과 행복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일상이 주는 평온의 뒤안에는 길고 혹독한 비운의 시간도 있었다. 누구의 유골인지도 모르는 무덤이 발굴되고 그 위에 아파트가 들어선다. 어떤 죽음인지 알 길 없이 그 뼈 부스러기 위에 집이 지어진다. 시인의 상상력은 시간과 역사적 공간을 넘나들어 자신에게 부여된 안락을 의심한다. 이러한 묻고 자답하는 태도는 고전적이지만 박일환 시의 대부분을 관통하는 기법이자 정신이다.
또 시집의 표제작인 「끊어진 현絃」은 깊은 통찰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새끼를 낳은 낙타는
출산의 고통을 가져다 준 제 새끼가 미워
젖도 안 먹이고 발로 차버린다는데

그러다 마두금 소리 바람결에 실려 오면
굵은 눈물 뚝뚝 흘리며
비로소 제 새끼를 찾아 젖을 물린다는데
-「끊어진 현絃」 부분

이 시집의 절창으로 읽히는 이 시는 잠시간 이완된 긴장에서 새로운 긴장, 팽팽한 시를 탄생시켰다. 시인은 “한바탕 삽이 전쟁이 다가온다면/ 나는 정직한 삽의 편에 설 것이네”(「삽의 전쟁」)라며 음모적인 삽질이 자행되는 현실에서 자주 비분강개하기도 하다가, 사막의 바람소리만 있는 생경한 공간에서 다시 자신의 내면과 조우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현실이라는 자장 안에 놓여 있음을, 현의 떨늸 속에 놓여 있음을 상기해 보는 것이다. 건실한 노동행위인 ‘삽질’이 ‘헛짓거리’로 비유되는 현실에서, 시인은 정직한 삽을 옹호한다. 시인이 지키려는 ‘삽’ 은 노동과 생태를 함께 아우르려는, 창조하되 파괴하지 않고 일구는 논밭이며 혼자 먹지 않는 밥상에 다름 아니다.

박일환의 시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기호나 이미지가 아니라, 담백하게 때론 강직하게 드러내는 자신의 내면, 세계와의 불화, 간절한 소통에의 열망이다. 그리하여 약자와 여린 사물에 연민하며 연대하는 것,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묻는 반성과 저항의 기록이다. 또 이 시대에 시인과 같은 병을 앓는 모든 이들을 위로하며 정직한 세상을 위해 ‘삽질하는’ 온기 머금은 삽 한 자?이다.

추천평

사실 이 21세기 문명의 주인인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타자에 대한 가여워하는 마음일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가여워하며 살기에는 너무 바쁘고 복잡한 세상이라고 말한다. 내가 바로 가여운 놈인데 무엇을 가여워하느냐고 한다. 하지만 누구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타자를 가여워하는 마음이야말로 인간의 존재와 삶의 본질에 닿아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박일환의 이 시집에는 온통 자신의 눈에 들어온 모든 세상 것들에 대한 그 가여워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역전 쓰레기통에 짓이겨 놓은 담배꽁초나, 재개발 지구의 버려진 복숭아나무, 해고된 공장노동자, 닥트공 최씨, 엄마 따라 방글라데시로 쫓겨난 모루, 개코막걸리집의 사람들……. 그는 자신보다 이 가여운 것들을 우선하여 노래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시조차도 타자를 가여워하는 마음의 또 다른 변주로 들린다.
박두규(시인)
그의 시는 얕은 듯 깊고 낮은 듯 높다. 부드러운 듯 강직하고 어설픈 듯 찬찬하다. 그는 차분하게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는데, 그의 시안詩眼이 이르는 곳마다 문득 환해진다. 마치 어둔 곳을 질러가는 한 줄기 불빛 같다. 나는 그 불빛에서 현실 너머를 읽어내는 혜안을 본다.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예감하는 직관을 본다. 그 혜안과 직관으로 그는 세상을 따스하게 보듬는다. 고통과 절망조차 내치지 않고 끌어안아 다독거린다. 누구나 아프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아픔을 이처럼 다감하게 위무하기는 쉽지 않다. 작고 하찮은 것들에 스며 있는 거룩한 애정이 경이롭다.
정우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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