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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손 아침 쇠살 공구들 일상日常 설명하기 참 힘들다 목발 저녁 불빛 용접꽃 제철소에서 일할 때 저 하는 위에 눈물샘자리 쇠밥 철야 이총각뎐 2부 쪼그라앉은 사람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네 이발소에서 막차는 없다 마지막 술집 거꾸로 사는 집 화성사는 없다 홍제동 산1번지 생산자 깨끗한 풍경 순례기 바닷가 야유회 3부 꿀잠 마음의 창살 나는 지금도 그 뜰에 가고 싶다 가족사진 읍내 형수 길 외상일기 찍소리 오토인생 팡이제로 일 잡혀 돌아오는 맑은 날 정오 금은방 앞에서 4부 묵비권 늦봄과 초여름 사이 新, 석기시대 뒷빽 뻐드렁니 사랑이야기 나우정밀노조 해상총회 오거리 뼈해장국 그 색맹 잃어버린 안경 그 서투른 말들을 믿기로 했다 자유여! 라고 난 이제 부르지 않으리 너희들은 나를 폭격했다 왜? 5부 시詩 내가 새마을호를 타고 순천에서 서울까지 숨가쁘게 달리는 동안 하얀 비 모래톱 참꼬막 고래와 아빠 흙손 희망의 얼굴 강구항 내설악 눈잣나무 흐르는 것들은 말하지 않는다 나는 말과 함께 살지 않는다 발문 민중적 서사의 복원을 향해--김해자 |
宋竟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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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밥
흙먼지에 섞어 먹는 밥 싱거우면 녹가루에 비벼 먹고 석면가루도 흩뿌려 먹는 밥 체인블록으로 땡겨야 제 맛인 밥 찰진 맛 좋으면 오함마로 떡쳐 먹고 일 없으면 고층 빔 위에 혼자라도 서서 먹는 밥 시큼한 게 좋으면 오수관 때우며 먹고 새콤한 게 좋으면 가스관 때우며 먹고 연장이 모자라면 이빨로 물어뜯어서라도 먹어야하는 밥 무엇보다 나눠 먹는 밥 1톤짜리 앵글 져다 공평하게 나눠 먹고 크레인 포클레인 지게차 기사도 불러 함께 비지땀 흘리며 먹는 밥 석양에 노을이 질 때면 아내와 아이도 모두 사이좋게 앉아 먹는 그 쇠밥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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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은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십수 년 동안, 구로노동자문학회와 전국노동자문학연대와 함께 하며 노동운동가로, 그리고 문화활동가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첫 시집인 『꿀잠』에서 시인은 진정한 삶의 체험과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현란한 수식과 과장 없이 손에 만져질 듯한 질감으로 그려내고 있다.
송경동의 시집에는 노동자의 일과 밥과 곤한 잠이 유난히 많이 담겨 있다. 이런 시에서 치욕은 증오와 원망으로 내닫지 않고 민중적인 넉넉함과 해학과 기쁨으로 전환한다. 여기서 시는 인간 해방의 빛을 향한 열망과 공동체적인 아픔을 공유하는 정서로 충일한 노래가 되며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약속의 언어가 된다. 이 사람 저 사람 불러다 공평히 나눠 먹는 삶. 도란도란 둘러앉아 맛있게 먹는 밥을 통해 시인은 그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을 확연하게 그려내고 있다. 누구를 혼내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지식인의 시가 갖는 그릇된 것에 대한 풍자라기보다, 우리 민중의 판소리 가락에 묻어나오는 해학과 익살에 가깝다. 또 이 시집은 노동이라는 추상이 마스크를 벗고 근육과 힘줄과 표정을 드러낸 만물상이다. 선반 켜켜이 “꼬막처럼 닫힌 속살 열지 않던 짜디짠 벌교가시내”를 쫓아다니는 소년과, 곤봉 든 체포조에게 “선한 얼굴로” 애걸하는 어린 조하이공과, “식판 가득 고봉으로 머슴밥 먹고” 선 채 꿀잠에 든 노가다의 “순한 행렬”이 숨은 그림처럼 숨어 있다. 낡은 만물상 중심에는 첨단 자동화 시대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와야줄과 쇠살과 철골빔과 핸드드릴과 400볼트 홀다선과 불꽃 튀는 용접봉을 들고 서 있는 “미장이목수철근곰빵질통전기조적방통공구리덴죠닥트선반칠도배”가 있다. 현실에서 “빌어먹을화상쪼다머저리푼수벅수웬수개병쟁이귀머거리반팽이칠뜨기얼치기반푼이팔푼이”들은 이곳에서 주인공이 되어 놀며 마시며 멀리서, 그러나 확고하게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아, 당신이 한 용접 참 튼실합디다” 이 한마디에는, 오늘 이 순간도 여전히 회복해야 할 것은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이요, 순하고 선한 사람의 얼굴이라는 시인의 꿈과 결기가 배어있다.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찢겨지고 불안한 존재로 살아가는 당대의 다양한 삶의 면면들을 만나게 된다. 시집 전편에 흐르고 있는 살아있는 현장의 육성과 긴장감 있는 언어는, 자본이 지배하는 소외된 일상에 대한 구체적인 체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 소중함을 더한다. 현장에서 일할 때 산재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늘 유서처럼 가슴에 담고 살았다.”는 시인의 말이 귀가 멍멍하도록 들리는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