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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부 길은 그리움으로 열린다 눈을 기다려 회심곡 그대 없이 겨울이 또 왔네 연민이 아니고서 현 위에 얹힌 듯 말에 갇힐까 봐 산이 그러데 폐쇄회로 초심 봄이 밖에서 오면 국가 밖에서 머리 없는 돌부처 창림사지 제2부 강박 탑을 찾아서 그 아이 집 물아 첨성대 땅을 떠난 나무처럼 비에 젖은 바다 마음 한 그루 잡초 하나 덫 가시연꽃 검열 경주 남산 부처골 바위 감실에는 산내에 사는 내 동무들아 제3부 매화가 지천인데도 보신탕공화국 느티나무 설날 아침에 마음에 심는 나무 사람들은 왜 종을 만들었을까 포항 송도 바다 손 천도 저 아이들의 춤과 노래 달아 달아 세한도 바람은 한 그루 나무 한바탕 춤이 아니신가 제4부 삶의 거처 그 이름들 위에 내게 너무 가혹한 이유 야생 별 하나 따라오네 12월 삼짇날 아침 눈 오는 경주 남산 바다 전부 달빛 신호등 시계탑 네거리에서 입동 존재는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다 봄눈 손마저 두고 간 사람아 제5부 욕망의 분배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음모 섣달 그믐 완산동 욕망을 생산하는 공장 라디오 통일 이데아 해설 - 정남영 후기 |
본명:백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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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노동자 백무산 시인의 신작 시집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첫 시집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에서 선언했던 ‘정치 조직을 통한 노동자 계급의 권력 획득’과는 확연히 다른 방향의 사유를 이미 <인간의 시간>, <길은 광야의 것이다>에서 보여준 바 있는 시인은, 이제 그 여정의 정점에 이른 듯 이 시집에서 새로운 사유의 경지를 열어 보인다. 자본의 무한성에 대한 비판, 자본의 가치를 넘어서는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천착이, 선시류로나 느껴질 법한 여백과 단아한 시어들 밑바닥에서 쉼없이 일렁이며 숨막힐듯 우리를 압도한다. *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일 그러나 그의 치열한 모색이 현세적 삶을 초월하거나 역사 혹은 사회적 삶의 바깥에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오, 누구의 죽음이든 죽음 앞에 고개 숙이지 못할까 그러나 내 눈에는 죽어 갯값도 받지 못한 수많은 얼굴들 그 허기진 얼굴들이 어른거리고 손이 떨리고 가슴이 복받쳐 참을 수 없네 오, 나는 참을 수가 없네 해방이 되고도 해방이 아닌 것은 악몽이었다 통일이 되고도 통일이 아닌 것은 악몽이다 (<통일 이데아>) 마치 1980년대의 투쟁하는 노동자로 되돌아간 듯 ‘각성된 노동자의 눈’으로 정주영의 죽음을 정치적 맥락 속에서 분석한 이 시는 예사롭지 않다. 이는 그가 아직도 “다시 살아나는 분노”를 가슴 깊숙이 껴안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인데, 그러나 ‘투쟁하는 노동자’로서의 자아는 이미 1980년대에 존재했던 자아와는 ‘정치적으로’ 다르다. 아, 저아이가 고마워라 가슴 뛰어라 나의 분노는 다시 많은 상처를 만들었구나 뒤집어 지배한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야 아직은 짓밟히고 내동댕이쳐진 곳에 있네 더 온전하게 더 푸르게 피어오르는 넉넉한 저항이여 저 아이가 고마워라 가슴 뛰어라 (<그 아이 집>) “뒤집어 지배한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야”라는 구절이 암시하듯, 그는 노동자 권력, 즉 ‘역권력’(counter-power)의 환상과는 완전히 결별한 상태이며, 그리고 그 대안이 되는 것은 “더 온전하게 더 푸르게 피어오르는/넉넉한 저항”, 즉 반권력(anti-power)으로서의 삶(생명)의 힘이다. <욕망의 분배>(129쪽)에서 그의 새로운 사유는 좀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생존’, ‘생활’, ‘욕망’을 분배받기 위한 투쟁, 즉 임금투쟁은 “노예 되기”에 동의하는 측면, “저들과 공범이 되는” 측면을 가짐을 지적한다. 자본의 가치화에 장악된 삶, 생존수단으로 환원된 삶을 넘어서려는 그의 모색은 예의 자본의 관점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자본주의적 삶 전체를 통째로 성찰한다. 그러나 이 성찰은 삶 자체를 건너서 삶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르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이미 내재한 것이다. * 찰나 안의 영원, 개체 안의 전부 무한한 이윤, 무한한 자기증식, 무한한 축적을 근저로 하는 자본의 무한 증식에 대한 그의 비판은 ‘찰나 속에 내포된 영원’, ‘개체 속에 존재하는 전부’라는 코드로 찾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여래님 마음 빌려/그 마음으로 일어나시어요/천년 세월이/이제 막 한걸음 내디디는/버선코가 아니신가”(<한바탕 춤이 아니신가>)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영원이 곧 한 순간으로서 포착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돌담에 붉은 매화 한 그루면/천지 가득 매화였습니다/우리들 살림도 꼭 그 만큼의/빛과 향으로 족했습니다/동쪽 손님 오시는 길목/담 너머 꽃가지 두엇만 늘어져도/봄은 천지에 가득하였습니다//(중략)//꽃은 한 송이라도 세상 가득함에/모자랄 것이 없습니다”(<매화가 지천인데도>)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여백의 미’의 관점에서 매화를 노래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들 살림도 꼭 그 만큼의/빛과 향으로 족했습니다”라는 구절은 이 시가 현재의 우리의 삶에 대한 어떤 발언임을 시사한다. 시인은 매화가 지천으로 흐드러진 장면에서 수량적 무한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무한을 떠올린다. 이 무한은 매화 한 송이에도 담긴다. 한 송이의 매화라도 “천지에 가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본은 이것을 보지 못한다. 자본은 개체 속에 담긴 무한, 신성(神性), 존엄을 보지 않으며, 모든 개체를 비참한 하나의 수량으로 전락시킨다. 그리고 자본 자신이 신이 되는 것이다. 자본의 물신주의에 대한 강력한 대안적 원리로서의 무한, 바로 이것이 백무산이 지향하는 것이다. 이렇듯 백무산의 시들은, 시로서 살아있는 한에서는, 자본주의 너머에 있는 새로운 삶의 원리를 추구하는 사유활동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인간의 시간>에서 이번 시집에 이르는 사유활동의 연쇄는 사유의 여행을 구성한다. 그 여행을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