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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011 비의 기분 012 줄줄이 비엔나 014 어차피 나쁜 말만 했겠죠 016 계통 018 본의 아니게 020 귀문관살 022 셔터를 누를 때마다 024 저건 나폴레옹이야 026 빅풋 028 코뿔새가 태양의 심장을 찔렀을 때 030 흑백사진 032 못 033 춘곤 034 발아 036 요코하마 039 양귀비를 보다 제2부 045 돌의 감정 048 삼각김밥이 유통기한을 넘길 때 049 상상임신 050 그나마 이게 정의에 가까워요 054 마카로니웨스턴 056 액션 058 그녀는 말했고 우리는 웃었죠 060 스위치 062 오리는 가오리 옷을 입고 064 세계는 나중에 구하고 066 온다 068 이렇게 많은 기형은 처음입니다 070 이렇게 따뜻한 날인데도 071 다다익선 074 유야무야 제3부 079 비는 구두를 신고 온다 080 뼈 자르는 소리가 좋았다 082 세모의 안쪽 084 세븐 086 라이프 오브 파이 088 갈치, 여인 090 물메기 091 고등어 094 라스트 크리스마스 096 겨울 왕국 098 은하 100 쥐라도 물고 오든가 102 개 좀 빌려 줘 봐 103 로데오, 진주 106 데글라세 조리법 108 내 이름에 침을 뱉었다 113 해설 전영규 시인은 이단(異端)의 피를 지닌 빨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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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빨강 네가 아무리 우겨도 빨강
파랑 같아도 이건 빨강 노랑 같아도 이건 빨강 오렌지 같아도 바나나 같아도 이건 빨강 지금 이게 빨강이라고요? 네 얼굴이 아무리 붉으락푸르락 해도 이건 빨강 나는 빨강이 싫어요! 그래도 너는 빨강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그래도 너는 빨강 노랗게 생리통이 와도 청바지에 검은색으로 슬쩍 비쳐도 나는 여자가 싫어요! 그래도 너는 빨강 이건 빨강, 정말 빨강! *** --- 「계통」중에서 껍질째 감자를 볶으며 왼쪽 신장에 박혀 있는 일곱 개의 이빨을 만졌다 물을 자주 마실수록 이빨은 점점 더 아프게 물어뜯었다 부리가 심장을 향해 자라는 새가 있었다 더 이상 전설의 고향이 무섭지 않았을 때 우리는 할아버지가 붙여 준 일곱 난쟁이식 이름을 버렸고 내 몸엔 피 대신 바닷물이 흘렀다 이단(異端)이라고 불렀다 나는 다르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다녔다 겨울의 뼈가 태양의 왼쪽 옆구리를 하얗게 찔렀을 때 세상은 투석(透析) 중이었다 더 이상 부리로 먹이를 먹을 수가 없게 된 코뿔새가 심장을 쪼아 먹으며 죽었다 이갈이를 시작했을 때 갓난아이 잘 재우는 법과 형제들에게 총 겨누는 법을 동시에 가르쳤다 죽은 것은 코뿔새였을까, 정오의 심장이었을까 감자는 이빨이 박혔던 곳마다, 싹이라고 부르는 푸른 독을 틔웠다 *** --- 「코뿔새가 태양의 심장을 찔렀을 때」중에서 1 스파게티를 먹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랑 똑같다고 했습니다 워낙 특이해서 바로 알아볼 수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포크를 꽂고 계속 돌리다가 입에 쑤셔 넣었는데 저만 그런 식으로 먹는 줄 알았는데 다 그렇게 먹고 있었습니다 똑같은 방식으로 그걸 알고서 아주 많이 속이 상했습니다 2 난초를 좋아한대서 꽃 사러 갔었는데 다 시들시들해서 장미를 사 왔습니다 3 이해라는 말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의 팔을 물고 내가 나의 팔을 물어뜯고 4 얼마 전에 초경한 딸과 겨드랑이에 털이 난 아들이 앉아 있습니다 우리 개가 다른 개랑 싸움이 붙으면 떼어 내야 하는데 그게 무서워 산책을 하지 못합니다 5 제사상에서 사과가 굴러떨어졌습니다 우리 모두 약해질 때가 있잖아요, 하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6 당신은 시체 앞에서 연주합니다 나는 조용한 청중 앞에서 연주합니다 세상은 쉬지 않아요, 어머니 7 벽에 공을 던지는 느낌으로 말하다 보면 냉정해진다고 했습니다 모르는 건 해 봐도 모르겠습니다 8 여성스럽잖아요, 하지만 여자는 아니고 남성스럽잖아요, 하지만 남자는 아니고 그래서 우리가 이토록 한 방에 잘 수 있는 것입니다 *** --- 「그나마 이게 정의에 가까워요」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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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를 또 낳았다”. 그렇다면 석민재는 석민재에게 불법체류자이다. 이단이다. 석민재와 석민재가 서로 ‘모조품’이라거나 ‘사기’와 ‘조작극’이라 인식하는 시그널들이 눈에 띄는 바, 잠든 사이에 ‘석민재’를 갖다 버리는 것도, “손가락에 반지”를 몰래 빼 버리는 것도, “내가 나를 자꾸 잠입”하는 것도 모두 석민재‘들’ 사이에 일어난 희비극이다. ‘자화상’인 동시에 ‘초상화’인 이 양측의 불화와 긴장을 들여다보거나 조정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여러 시편들은, 스스로 행방불명된 이름과 아주 멀리 도망친 황폐한 시공간인 ‘복수의 석민재들’을 공유하는데, 이 강제와 분열에 깊이 관여한 ‘히틀러’라는 세계는 지금 여기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 “꼬리를 자른다고/지나간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닌” “만성적 슬픔”들은 전설도 소문도 아닌 실재인데 그 세계에 대응하는 방식은 의외로 심각하지 않다. “꾹꾹, 숨겨 놓은 내가 터져 나와 웃지요”. “아이만 많이 낳아 미안”한 시인은 때로는 스스로 가볍게 천대함으로써, 때로는 노골적으로 “랄, 랄, 랄” 웃으면서 간결하고 빠르게 ‘히틀러’를 가른다. 명랑하지만 유쾌하지 않고 속이 빈 듯하지만 들어 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꼬리가 꼬리를 무는” 가편들은 어느새 우리 옆구리에 총구를 들이댄다. 시인은 말한다. “나랑 같이 걸어 주실 수 있습니까”. 러시안룰렛처럼 “절벽 끝에서” ‘노는’ 이것이 우리가 쓴 복면의 실체를 드러내는 시인의 방식이라면, 그 총구를 “핥아 보고 싶은 걸 참느라 안간힘을” 쓸 마음도 분명 있을 것이다. - 박지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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