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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생, 방랑 생활
2. 외유에서 돌아와 정계에 진출 3. 민권 운동의 선두에 서서 4. 실패와 옥고를 치르는 동안 5. 변화된 모습으로 청년 운동에 투신 6. 일제의 침략을 혼자서 막아 7. 제1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8. 명예 총무와 연합회장을 겸하여 9. 민족의 기둥 넘어질 때까지 10. 해학, 풍자, 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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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한 것처럼 1876년 한일 수호조약이 체결된 후 1896년 독립협회가 창설되기까지 약 20년 동안 우리 나라는 역사상 유례 없는 큰 사건과 사회적 변동이 있었다. 그 중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전쟁은 폭력에 의한 혁명인 데 반하여 갑오경장과 독립협회 운동은 비폭력적인 개혁 운동이었다.
그런데 갑오경장은 주로 내정 개혁을 목적으로 하여 일본의 강요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나 독립협회 운동은 우리 민족의 자발적인 운동이었다. 그리고 전자는 국왕과 국왕을 보필하는 고위층 선각자들의 주동으로 촉진된 데 비하여 후자는 일찍이 미국을 다녀온 선각자들과 학생 서민층이 주동이 된 민권 운동이었다. 이상재는 독립협회 운동에 가담하기에 앞서 먼저 정동 구락부에 드나들고 있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정동에 모임처를 둔 일종의 국제적 사교 구락부였다. 1884년에 의사 알렌이 와서 정동에 거처를 정한 이래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장로교 · 감리교 두 교파 선교사들이 연달이 입국하여 교회와 학교를 설립하게 되었고, 이보다 앞서 한미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뒤 미국을 비롯한 각국 공사가 정동 일대에 외국 공관을 차림으로써 일종의 외국 조차지대와 같은 인상마저 주는 특수 지대가 되었던 것이다. --- p.56~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