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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범우사 201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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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1, 도강록
2. 성경잡지
3. 속재필담
4. 태학유관록
5. 환연도중록
6. 산장잡기

저자 소개 1

朴趾源, 호 : 연암

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다. 18세였던 1754년(영조 30),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계층의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란 이름으로 묶었다. 1771년경 마침내 과거를 그만 보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은거하며 벗 홍대용洪大容 및 문하생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과 교유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롭게 창조하자’는 말로 집약되는 자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참신한 소품小品 산
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다. 18세였던 1754년(영조 30),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계층의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란 이름으로 묶었다. 1771년경 마침내 과거를 그만 보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은거하며 벗 홍대용洪大容 및 문하생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과 교유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롭게 창조하자’는 말로 집약되는 자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참신한 소품小品 산문들을 많이 지었다.

1780년(정조 4) 삼종형三從兄 박명원朴明源이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을 축하하는 특별 사행使行의 정사正使로 임명되자, 연암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서 연행燕行을 다녀왔다. 이 결과 지어진 것이 『열하일기』이고, 이는 완성된 전권이 나오기 전부터 열띤 반응을 받았다. 50이 된 1786년, 연암은 음직蔭職으로 선공감 감역繕工監 監役으로 관직을 맡게 되고 그 후 경상도 안의 현감安義縣監, 의금부 도사, 의릉 영懿陵令 등을 거쳐, 1797년부터 1800년까지 충청도 면천沔川(지금의 충남 당진)의 군수 등으로 재직하며 농업 장려를 위해 널리 농서를 구한다는 윤음綸音(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진상했다.

1800년 음력 8월 연암은 강원도 양양 부사襄陽府使로 승진했으나, 궁속宮屬과 결탁하여 양양 신흥사神興寺 승려들이 전횡하던 일로 상관인 관찰사觀察使와 의견이 맞지 않아 1801년 늙고 병듦을 핑계 대고 사직했다. 1805년(순조 5) 음력 10월 29일, 69세의 나이로 연암은 서울 북촌 재동齋洞(지금의 가회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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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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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9.87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2.7만자, 약 4만 단어, A4 약 80쪽 ?
ISBN13
9788908032095

책 속으로

박지원은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실주의적인 입장에 투철했다. 그는 문장은 누구든지 자신이 품고 있는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면 된다고 여겼다. 글을 쓰는 사람이 억지로 옛 사람이 쓴 글을 생각하고 지나치게 근엄하고 장중하게 꾸미려는 것은 마치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원래의 모습을 다듬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렇게 되면 그 원래의 모습을 읽어버리게 되므로 아무리 훌륭한 화가라도 살아 있는 참 모습을 그리기는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에는 있는 그대로를 꾸밈없이 쓰는 진실이 중요하다고 그는 늘 강조했다.

--- p.8

6일. 맑음.
시냇물이 조금 줄어들어서 길을 출발했다. 나는 정사의 가마에 같이 탔는데 하인 30여 명이 맨몸으로 가마를 메었다. 강 한가운데 이르러 물살이 세지자 갑자기 왼쪽으로 기울어져서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 형세가 실로 위급하기 짝이 없었는데 정사와 서로 부둥켜안아 겨우 물에 빠지는 것을 면했다.

저쪽 강 언덕에 도착하여 물을 건너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사람의 목을 타고 건너오기도 하고, 좌우에서 서로 부축하여 건너오기도 하며, 나무로 떼를 엮어서 그 위에 올라탄 것을 네 사람이 어깨에 메고 건너오기도 한다. 말을 타고 떠서 건너는 사람은 모두 허리를 쳐들어서 하늘만 바라보거나 두 눈을 꼭 감기도 하고,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한다. 하인들은 모두 안장을 끌러서 어깨에 메고 오는데 행여나 젖을까 염려를 하는 모양이다. 이미 건너왔다 다시 건너가려는 사람도 무엇을 어깨에 지고 물에 들어가므로 그 이유를 물으니,
"빈손으로 물을 건너가면 몸이 가벼워서 떠내려가기 쉽기 때문에 무거운 것으로 어깨를 누르는 것이랍니다."
라고 한다. 몇 번 왔다갔다한 사람은 모두 부들부들 떠는 데 산 속의 물이라 몹시 차기 때문이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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