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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 시인선

책소개

목차

1부 봄날의 교집합

향일암 동백 · 13
소리쟁이 · 14
씨름판 · 15
상강 무렵 · 16
우도땅콩 · 17
봄날의 교집합 · 18
백록담 1초 · 19
어쩌다 맑음 · 20
붉은 찔레꽃 · 21
방애불 · 22

2부 내 뺨을 쳐라

감귤꽃, 따다 · 27
넥타이 · 28
어느 비닐하우스 · 29
섭섭한 타협 · 30
세배 가는 달 · 31
내 뺨을 쳐라 · 32
갯무꽃 · 33
피 봤다 · 34
박달나무 꽃피다 · 35
금니빨 · 36

3부 사초에 단풍 들다

꽃기린 · 41
혜화문 아래 · 42
사초에 단풍 들다 · 43
괭이밥 · 44
각시투구꽃 · 45
왕관무릇 · 46
개구리발톱꽃 · 47
길마가지나무 · 48
산굴뚝나비 · 49
추풍령 삘기꽃 · 50

4부 웃음바다 울음바다

잘코사니! · 53
아버지 · 54
꽃과 바다 · 55
호구虎口 · 56
다시, 쓰다 · 57
몸으로, 갑년 · 58
도둑비 · 59
첫차 · 60
늦눈마저 보내고 · 61
흰 접시꽃 · 62

5부 홀리듯 벌건 대낮

꿀풀 · 65
시치미 · 66
봉갓다 · 67
유목 · 68
갯메꽃 · 69
호떡 · 70
무등이왓 · 71
정자리 · 72
송악산 으아리꽃 · 73
쇠죽은못 · 74

해설 | 류미야
상군 가인歌人이 부르는 지극한 생의 노래 · 79

저자 소개 1

1957년 제주 애월에서 태어나 1999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창틀에 든 귀뚜라미」로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조집 『어쩌다 맑음』, 『아슬아슬』, 『파랑주의보』, 현대시조100인선집 『왼손도 손이다』, 90년대5인시조집 『가랑비동동』 등이 있다. 시조시학젊은시인상, 한국시조작품상, 노산시조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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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5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96쪽 | 153*224*15mm
ISBN13
9791189205638

책 속으로

적어도 소원 하난 들어준다는 말을 듣고

바다 건너왔는데 본척만척 금동불상

금오산 절벽 한 자락 동백에나 빌어본다
--- 「향일암 동백」 중에서

잘 먹고 잘산다면 뭔 소리가 우러나랴
애월 어느 바닷가 소라고둥 같은 마을
건들면 울음소리가
묻어날 것 같은 이들

상군해녀 춘희 삼촌은 내 어머니 친구다
4·3 광풍 이후 날궂이하듯 도진 신병
한사코 내림굿은커녕
푸닥거리도 마다했다

농한기 멍석 깔면 우리 집은 노래마당
“느~영 나~~영 두리둥실~ 놀~고요”*
북 장구 허벅장단에
파도 소리도 끼어든다

그때 그 선소리꾼 분명 세상 떠났는데
어머니 요양원 곁에 오락가락 숨비소리
이 가을, 소리쟁이로 와
한 목청 꺾나보다

* 제주민요 한소절.
--- 「소리쟁이」 중에서

그것참,
씨름판인지 보름달인지 모르겠다
‘코로나’와 씨름하다 무관중으로 치르는
생중계 ‘씨름의 희열’
파이널 리그를 본다

울퉁불퉁 달 표면처럼 어지러운 발자국들
어느 확진자가 거길 다녀갔을까
옥토끼 떡방앗간도
개점휴업 아닐까 몰라
--- 「씨름판」 중에서

여섯 살 계집애가 그려놓은 수평선

높아진 하늘만큼

바다 빛 더 깊어졌다

새처럼

가벼이 앉은

아흔넷

내 어머니
--- 「상강 무렵」 중에서

휘익 휙 새우깡 날려 갈매기 몇 홀려본다
갑판에서 바라본 우도행 저 바닷길
도항선, 방금 온 길도
흔적 없이 지워낸다

벌 나비나 바람은 내 취향이 아니다
제 꽃에 제가 겨운 나는야 제꽃정받이
잠자리 꽁지를 꽂듯 땅속에 알을 슨다

함부로 말하지 마라,
콩알만 한 땅콩이라고
무적도 숨비소리도 서빈백사 노을도
반쯤은 바다에 빠져 절반만?여문 거다
--- 「우도땅콩」 중에서

어린 봄 햇살 몇 줌
어찌 그냥 흘리랴
겨우내 눅눅해진 이불 홑청 가는 사이
일곱 살 벌테 손자가 반짇고릴 엎질렀다

저건 전리품이다
시집올 때 딸려온
쪽가위 골무 단추 남편의 첫 월급봉투
덩달아 마른 탯줄도 불쑥 튀어나온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 도장이나 만들까
세상에 남길 거라곤 하나뿐인 탯줄도장
아들놈 첫울음 같은
연두로 꾹 찍고 싶다
--- 「봄날의 교집합」 중에서

12시 정각 진달래밭
1시 30분 하산 사이렌

몸 따로 마음 따로 스틱 따로 올랐는데

백록은 보지 못하고
그 뿔에 쫓겨 왔네
--- 「백록담 1초」 중에서

바다에 반쯤 잠겼다 썰물 녘 드러나는
애월 돌염전에 기대 사는 갯질경같이
한사코 바다에 기대
서성이는 생이 있다

그렇게 아흔아홉 세밑 겨우 넘겼는데
간밤엔 육십 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아기 젖 물리란다며 앞가슴 풀어낸다

사나흘은 뜬눈으로, 사나흘은 잠에 취해
꿈속에서도 꿈을 꾸는 어머니 저 섬망증
오늘은 어쩌다 맑음
요양원 일기예보
--- 「어쩌다 맑음」 중에서

의정부 언니 대신 조카가 찾아왔다
그나마 알아볼 때 얼굴 한 번 본다고
열네 살, 고향을 떠난
언니 대신 찾아왔다

난생처음 만나는 돌염전 외할머니
아무 말도 못하고 연신 손만 쓰다듬는
백 살의 어머니 눈에 반세기가 흐른다

때마침 병실 TV, 젖어 드는 가요무대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오늘 밤 천리객창에
불빛 하나 떠돈다

--- 「붉은 찔레꽃」 중에서

출판사 리뷰

문순자 시집 『어쩌다 맑음』 의 특징

시인의 웅숭깊고 자연스러운 시간 의식, 생에 대한 의식은 생로병사의 도저한 고통 앞에서도 비극에 함몰되지 않는 의연한 태도를 끌어낸다.
바다에 반쯤 잠겼다 썰물녘 드러나는
애월 돌염전에 기대 사는 갯질경같이
한사코 바다에 기대
서성이는 생이 있다

그렇게 아흔아홉 세밑 겨우 넘겼는데
간밤엔 육십 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아기 젖 물리란다며 앞가슴 풀어낸다

사나흘은 뜬눈으로, 사나흘은 잠에 취해
꿈속에서도 꿈을 꾸는 어머니 저 섬망증
오늘은 어쩌다 맑음
요양원 일기예보
- 「어쩌다 맑음」 전문

전체 시집 속에는 가족 관련의 시편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가령 「추풍령 삘기꽃」 「산굴뚝나비」 「아버지」 「꽃과 바다」 등의 ‘아버지 시편’과 남편의 「넥타이」 외, 시어머니가 등장하는 「흰 접시꽃」, 손자, 딸(들)과 사위의 「봄날의 교집합」 「혜화문 아래」 「시치미」, 아들의 「봉갓다」 「정자리」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상강 무렵」 「붉은 찔레꽃」 「갯무꽃」 「금니빨」 「박달나무 꽃피다」 같은 ‘어머니 시편’들에서는 시인이 가슴으로 부르는 먹먹한 사모곡(思母曲)을 들을 수 있다. 이처럼 끈끈하고 입체적인 혈연 의식은 시인이 단독자로서의 개인이기보다는 핏줄공동체 속에서의 삶의 의미를 중시하는, 강한 유대감과 가족애를 지녔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서도 위 작품에는 섬망에 빠진 백수(白壽) 노모가, 그리운 어머니를 꿈속에서 만나 젊은 여식(女息)으로 돌아가는 모습, 또 그것을 초로에 접어든 딸이 지켜보는 장면이 중첩되어 그려져 있다. 풍경이 풍경을 바라보는 생의 아이러니가 우리로 하여금 이야기 너머의 이야기를 감득하게 한다. 아마도 젊은 날 “바다에 기대” 어린 생들을 키워냈을 그 어머니, 파란곡절 생의 바다에서 물질을 끝낸 지금 어린아이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이제는 다 자라 그 자신이 너른 ‘모성의 바다’를 이룬 딸에게 온전히 기대고 있는 것이다. 호젓한 슬픔 가운데서도 “어쩌다 맑음”의 하루치 낭보(朗報)를 덤덤히 받아들이는 화자의 모습에서 생의 한가운데를 지키는 어떤 의연한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끼게 된다.

삶을 순연히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이러한 태도는 자신의 삶 근방에서 동행하는 소중한 것들과의 ‘교집합’을 찾게 하고, 그 시간을 ‘봄날’로 여기게 한다.

어린 봄 햇살 몇 줌

어찌 그냥 흘리랴
겨우내 눅눅해진 이불 홑청 가는 사이
일곱 살 벌테 손자가 반짇고릴 엎질렀다

저건 전리품이다
시집올 때 딸려온
쪽가위 골무 단추 남편의 첫 월급봉투
덩달아 마른 탯줄도 불쑥 튀어나온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 도장이나 만들까
세상에 남길 거라곤 하나뿐인 탯줄 도장
아들놈 첫울음 같은
연두로 꾹 찍고 싶다
- 「봄날의 교집합」 전문

이번 시집 전체를 놓고 볼 때 계절감이 직간접으로 드러나는 작품이 많은데, 그중에도 특히 많은 시편의 배경이 되는 시간적 배경이 바로 ‘봄’이다. 과연 이 봄날의 시간대가 시인의 의식 저변에서 어떤 강렬한 근원으로 자리 잡고 있길래 이렇듯 깊숙히 시의 형성에 관여하는 것일까. 위 시 「봄날의 교집합」에서 그 하나의 단초(端初)를 찾아볼 수 있다. 기실 생이란 “쪽가위”와 “골무”, “단추”, “첫 월급봉투”, 뜬금없는 “마른 탯줄” 등이 두서없이 담겨 있는 “반짇고리”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시간 속에서 소중한 의미였을 그것들은 지금 나의 ‘인생’이라는 한 바구니 안에 오롯이 쌓여온 과거의 “전리품”일 뿐이다. 그것을 “일곱 살 벌테 손자”가 “엎지”르는 순간을 담은 이야기가 바로 이 「봄날의 교집합」이다. “눅눅해진 이불 홑청”처럼 망각으로 지지부진해진 일상의 시간을 전복하며 다시 “첫울음”으로 새롭게 발견해낼 때, 그것은 강력한 “탯줄 도장”의 주술이 되어 푸르게 푸르게 핏줄의 시간을 “어린 봄”의 시간으로 이어갈 것이다. 시인은 돌발적이고 사소한 봄날의 한순간을 의미롭게 포착함으로써 생의 전 시간을 켜켜이 돌아보며 그 가운데서 경이로움을 발견해내고 있다. 유난하지 않은 일상의 장면 속에서 그것을 관통하고 조명하는 어떤 ‘찬란’을 읽어내는 힘이 시집 전체에 환한 봄날의 빛을 얹어주고 있다.

핏줄에 대한 깊은 마음은, 그리하여 자기 삶의 일부가 된 외부 생명들에 대한 따뜻한 표용과 공존의식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양된다. 포용과 상생을 꿈꾸는 시인에게 함께 풍우 맞으며 살아가는 땅의 존재들은 단순한 사물이 아닌 동일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첫 수확 감귤밭을 어떻게 알았을까
‘링링’ ‘타파’ ‘미탁’ 그리고 ‘하기비스’
이름도 낯선 태풍들
번갈아 다녀간다

크든 작든 농사야 하늘이 짓는다지만
생색내듯 서너 됫박 햇살은 못 보탤망정
어린 것,
그만 흔들고

차라리 내 뺨을 쳐라
- 「내 뺨을 쳐라」 전문


여자에게 과거는 묻는 게 아니랬다
사나흘 뭍 나들이 헛바람 든 감귤밭
여름순 가을순 가리랴
부나비 같은 사랑

그 사이? 은밀하게 알 슬은 귤굴나방
하우스 몇 평 없으면 그게 어디 농사꾼인가
이파리,
저 은빛 공사
영락없는 비닐하우스

이래 봬도 내 꿈은 바람 타는 비닐하우스
쇠붙이 하나 없이 맨몸으로 굴을 파는
애벌레, 저 성스런 농법
내 무릎을 꿇는다
- 「어느 비닐 하우스」 전문

“차라리 내 뺨을 쳐라”고 소리치는 화자의 모습에서 「쇠 죽은 못」의 그 ‘여장부’의 모습이 보인다. 사람살이나 관계의 문제라면 고요하게 “빌어보”든(「향일암 동백」) “세월에나 맡”겨보든(「몸으로, 갑년」) “개점휴업”이라도 하겠지만(「씨름판」). 그것이 아닌 근원적인 삶을 위협하고 “어린 것”의 생명을 앗으려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는 ㅡ 그것이 대자연일지라도 ㅡ 온몸으로, 온 힘으로 맞서고 분투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화자의 의식의 저변에는 생명을 잉태하고 지키는 위대한 여성성, ‘모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때의 모성은 ‘생명성’의 다른 이름이다.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생명은 강인하면서도 너그럽다. 그런 너그러움만이 어리고 약한 것에 연민과 사랑을 느끼며, 그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비닐하우스」에는 이른바 ‘해충’으로 치부되는 “귤굴나방”의 침노(侵擄) 앞에서도 기꺼이 마음 한자리를 내주는 화자가 등장한다. “맨몸으로 굴을 파는” 애벌레의 고군분투를 “성스런 농법”의 “은빛 공사”라 칭하며 대역사(大役事)로 기록하고 있다. 무엇을 막론하고 생명을 거는 일은 비장하고 경외롭다. 미물로 불리는 것 앞에 기꺼이 무릎 꿇은 화자는 이렇게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방의 삶도 모르면서 위대한 인간을 말하다니!”
이런 관대함과 넉넉함을 가지고 있기에 다음과 같은 시편도 가능한 것이다.

시인의 말

이젠
놓아주마
가난한 내 시편들아

2020년 감귤꽃 환한 봄날
문순자

추천평

문순자 시인의 이번 시집은 ‘언제나 맑음’이 아닌 ‘어쩌다 맑음’의 생을 노래하고 있다.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피 흘리는 것”이라 어느 시인은 말했지만, 몹쓸 바람 때리는 내리막의 하산길이 도처에 있는, ‘어쩌다 맑을 뿐인’ 생임을 그는 잘 안다. 바닷속을 훤히 꿰고 있는 상군 해녀가 편하고 좋은 곳을 선점하지 않고 오히려 더 깊고 먼바다로 나가 존경을 받는 것처럼, 그는 그런 어둠 가득한 날에도 여장부처럼 생의 먼바다로 앞장서서 시의 물질을 나간다. 그리고는 가쁜 생의 바다에서 생명 있는 것들의 소리를 길어 올린다. 존재가 피우는 작은 소리에도 영혼의 촉수가 돋아 잠 못 드는 그는 지극하게 생을 노래하는 상군 가인歌人이다. 풍경보다 아름다운 지도는 없다. 수많은 풍경의 소리가 올올이 새겨진 이번 시집의 지도를 그리면서, 그가 빚어낼 깊고 아득한 다음 풍경들이 벌써, 몹시도 궁금해진다. - 류미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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