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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아雅
1. 소아小雅 「1」 「鹿鳴之什」 161(小-1) 녹명鹿鳴 …… 785 162(小-2) 사모四牡 …… 792 163(小-3) 황황자화皇皇者華 …… 797 164(小-4) 상체 …… 802 165(小-5) 벌목伐木 …… 810 166(小-6) 천보天保 …… 816 167(小-7) 채미采薇 …… 822 168(小-8) 출거出車 …… 832 169(小-9) 체두 …… 840 170(小-10) 남해 [笙詩] …… 845 「2」 「白華之什」 171(小-11) 백화白華 [笙詩] …… 847 172(小-12) 화서華黍 [笙詩] …… 848 173(小-13) 어리魚麗 …… 849 174(小-14) 유경由庚 [笙詩] …… 854 175(小-15) 남유가어南有嘉魚 …… 855 176(小-16) 숭구崇丘 [笙詩] …… 858 177(小-17) 남산유대南山有臺 …… 859 178(小-18) 유의由儀 [笙詩] …… 865 179(小-19) 육소蓼蕭 …… 866 180(小-20) 담로湛露 …… 871 「3」 「동弓之什」 181(小-21) 동궁 …… 875 182(小-22) 청청자아菁菁者莪 …… 880 183(小-23) 유월六月 …… 884 184(小-24) 채기 …… 895 185(小-25) 거공車攻 …… 903 186(小-26) 길일吉日 …… 910 187(小-27) 홍안 …… 915 188(小-28) 정료庭燎 …… 919 189(小-29) 면수沔水 …… 922 190(小-30) 학명鶴鳴 …… 926 「4」 「祈父之什」 191(小-31) 기보祈父 …… 930 192(小-32) 백구白駒 …… 934 193(小-33) 황조黃鳥 …… 938 194(小-34) 아행기야我行其野 …… 942 195(小-35) 사간斯干 …… 946 196(小-36) 무양無羊 …… 957 197(小-37) 절남산節南山 …… 962 198(小-38) 정월正月 …… 974 199(小-39) 시월지교十月之交 …… 989 200(小-40) 우무정雨無正 …… 1001 「5」 「小旻之什」 201(小-41) 소민小旻 …… 1010 202(小-42) 소완小宛 …… 1018 203(小-43) 소반小弁 …… 1025 204(小-44) 교언巧言 …… 1037 205(小-45) 하인사何人斯 …… 1045 206(小-46) 항백巷伯 …… 1054 207(小-47) 곡풍谷風 …… 1062 208(小-48) 육아蓼莪 …… 1066 209(小-49) 대동大東 …… 1073 210(小-50) 사월四月 …… 1083 「6」 「北山之什」 211(小-51) 북산北山 …… 1090 212(小-52) 무장대거無將大車 …… 1096 213(小-53) 소명小明 …… 1099 214(小-54) 고종鼓鍾 …… 1106 215(小-55) 초자楚茨 …… 1110 216(小-56) 신남산信南山 …… 1123 217(小-57) 보전甫田 …… 1129 218(小-58) 대전大田 …… 1136 219(小-59) 첨피락의瞻彼洛矣 …… 1143 220(小-60) 상상자화裳裳者華 …… 1147 「7」 「桑扈之什」 221(小-61) 상호桑扈 …… 1151 222(小-62) 원앙鴛鴦 …… 1155 223(小-63) 규변 …… 1159 224(小-64) 거할 …… 1165 225(小-65) 청승靑蠅 …… 1171 226(小-66) 빈지초연賓之初筵 …… 1174 227(小-67) 어조魚藻 …… 1186 228(小-68) 채숙采菽 …… 1189 229(小-69) 각궁角弓 …… 1196 230(小-70) 울류 …… 1203 「8」 「都人士之什」 231(小-71) 도인사都人士 …… 1207 232(小-72) 채록采綠 …… 1213 233(小-73) 서묘黍苗 …… 1217 234(小-74) 습상 …… 1222 235(小-75) 백화白華 …… 1225 236(小-76) 면만 …… 1232 237(小-77) 호엽瓠葉 …… 1236 238(小-78) 삼삼지석漸漸之石 …… 1240 239(小-79) 조지화苕之華 …… 1244 240(小-80) 하초불황何草不黃 …… 1248 |
林 東 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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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300편 읽으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으리(思無邪)”-공자
희노애락애오욕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노래하다! 인류 최고(最古) 역사서이자 문학서, 삶의 깨달음 교과서! 인간의 정서를 순화하는 데 시(詩)만한 게 어디 있으랴! 『시경(詩經)』은 고대 중국의 시가(노래의 가사)를 모아 엮은 오경(五經)의 하나로 대표적인 유교 경전이다. 본디 3천 여 편이었다고 전해지나 공자에 의해 305편으로 간추려졌다. 공자는 만년에 제자를 가르칠 때 육경(六經) 중에서 시를 첫머리로 삼았다. 시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감정에서 우러난 것이므로 정서를 순화하고 다양한 사물을 인식하는 데는 그만한 본보기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내용과 형식은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 곧 기원전 11세기 주(周)나라 건국 초기로부터 기원전 6세기 동주(東周), 즉 춘추(春秋) 중엽에 이르는 약 5백여 년 동안에 걸쳐 수집되고 정리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오랜 세월 동안 쌓여 온 그 지역 초기 인류들의 삶의 방식과 문화 전통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중국역사의 자연 인간 정신을 깨달는 가장 빛나는 불멸의 고전 이 시들은 민간 가요[風]와 조정 연회에서 사용되었던 악장(樂章)[小雅·大雅], 묘당(廟堂)에서 제사 지낼 때 쓰였던 전례(典禮) 음악[頌]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민요에 해당하는 풍(風)의 대부분은 그야말로 “배고픈 자는 그 먹을 것을 노래하고, 힘든 자는 그 일을 노래한다”는 현실주의 정신과 탁월한 예술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중국 고대 제자서에서는 『시』 속의 한 구절이라도 인용하지 않으면 책이 될 수 없었고, 자신의 주의주장을 내세울 때 『시』를 인용해 증명하지 않으면 논리를 세울 수 없을 만큼 모든 입론(立論)의 밑바탕이 되었다. 이처럼 중국에서 『시』는 단순한 문학적 기록이 아니라 일상생활은 물론, 학문 전반에 걸쳐 반드시 필요한 자료였으며 제재였다. 이러한 시를 그저 고대시, 또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탄생한 민중들의 질박한 노래라고 여기거나, 혹 「초사」와 대비되는 북방의 집단 정형시라고만 보아서는 안 되며, 역사 배경과 그들의 사유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매우 큰 가치를 지닌 자료임을 인정해야 한다. 더구나 애초부터 유가(儒家)의 경(經)으로 확정되어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서 수천 년 동안 활용되어 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벼락을 마주하는 것과 같으리 『시경(詩經)』 305편은 풍(風)·아(雅)·송(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풍은 국풍(國風)이라고도 하며 여러 제후국에서 채집된 민요·민가이다. 사랑의 시가 대부분으로, 남녀 간의 애틋한 정과 이별의 아픔 등이 아주 원초적인 목청으로 소박하게 그려져 있다. 아는 대아(大雅)와 소아(小雅)로 나누어진다. 궁궐에서 연주되는 곡조에 붙인 가사로 귀족풍을 띠고 있다. 송은 종묘의 제사에 쓰이던 악가(樂歌)로, 주송(周頌)·노송(魯頌)·상송(商頌)이 있다. 풍·아·송에 부(賦)·비(比)·흥(興)을 더한 것이 이른바 육의(六義)인데, 논란이 있기는 하나 대부분 전자는 내용·체재상의 구분이고 후자는 수사상의 분류로 본다. 공자는 “시 300편을 한마디로 말하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思無邪).”하였고, 아들 백어(伯魚)에게는 “ 『시경』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공부하지 않으면 마치 벼락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라고 하면서 시 공부를 권했다. 3천년 생명력 동양의 마음 그 지혜의 보고! 『시』는 한자를 안다고 해석되는 글이 아니며, 역사를 꿰뚫었다고 이해되는 내용도 아니다. 문학 감상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 정서를 함께할 수 있지도 않다. 더욱이 음악을 안다고 쉽게 풀이되는 것도 아니고, 많은 고전에 통달했다고 해서 깊이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고대 한어의 음운학을 알지 못하면 해석된 풀이에도 이해가 되지 않으며, 천자와 제후의 관계를 정확히 알지 않으면 그 높낮이를 알 수 없고, 그들의 계보를 알지 않고는 앞뒤를 가늠할 수 없다. 또한 역사 배경과 지리 환경, 산업 형태와 통치체제를 바탕에 깔고 있지 않으면 생성 원리를 알 수 없고, 통치자의 이념과 지향하는 가치를 잣대로 하지 않고는 작품 속에 든 은유와 비유를 추출해낼 수가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공자 시대에 이미 이를 교재로 쓰면서 의미를 토론했으니, 그 깊고 먼 역사 속에서 이 책의 영속성과 생명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중국문학지조(中國文學之祖) 그 역사 『시경』은 상고인(上古人)의 생활과 정서,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때문에 『시경』을 중국문학지조(中國文學之祖)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주자학(朱子學)의 영향으로 거의가 주희(朱熹) 『시집전(詩集傳)』을 읽어왔고, 나아가 「언해(諺解)」까지 출간했다. 그러나 모두가 ‘소서(小序)’에 의해 정치의 흥망성쇠에 맞추어 이해하려 했고, 나아가 도덕과 예라는 교훈적 가치에 지나치게 치중해 문학적 감상은 간과되다시피 했다. 이는 『모시(毛詩)』의 ‘전(傳)’, 정현(鄭玄)의 ‘전(箋)’, 공영달(孔穎達)의 ‘정의(正義)’, 주희의 ‘집전(集傳)’ 등에서 일관되게 계승되어 왔고, 송대(宋代) 성리학과 청대(淸代) 고증학에서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역자는 「모전」, 「정전」, 「정의」, 「집전」에 충실히 매달려 『시경』을 풀이하고 해석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시경』 전체를 꼼꼼히 읽으면 『시』는 역사서이자 문학서이며, 노래책이며, 도덕교과서이며, 중국 민족의 서사시이며, 온갖 사물과 고대 생활의 민속과 신앙, 종교와 제사 등이 망라된 방대한 교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