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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제인 도우, 마이 보스 009
제2장 이페머러의 유령들 066 제3장 빙의의 시대 104 제4장 승천하는 청춘 149 작품해설 200 작가의 말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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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술자리를 마치고 여자친구를 바래다주는 밤이면 서로 손을 잡지 못했다. 그런 밤, 길들은 미궁으로 변해 뒤섞이고 사물은 뾰족한 모습으로 변해 20대의 청춘을 찔렀다
---pp.21-22 사실 나 역시 지금껏 살아오면서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현실이란 이름의 괴물이 날리는 핵펀치에 굴복해 미리 세워놓은 그럴싸한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니 결론은 처맞기 전까지 더 그럴싸한 계획을 세워둬야 한다는 것. --- p.85 본부의 비밀 수장고로 이송될 만큼의 가치는 인정받지 못해 극동아시아의 창고에서 언젠가 누군가가 키스로 깨워주길 바라는 백설공주처럼 곱게 잠들어 있던, 그러니까 마이스터 X의 조건에 들어맞을지 모르는 이페머러 한 뭉치. --- p.87 마감 시간을 앞둔 대형마트에서 ‘1+1’ 특가 세일을 알리는 안내 방송처럼 경매 시작가가 선포되고, 고개를 쳐든 미어캣들이 히틀러 애인의 유골이라는 말에 잠시 충격에 빠져 입을 떡 벌리는 사이에─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디어파사드의 흑백 화면은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더미에서 일단의 소련군이 중장비를 동원해 땅을 파헤치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 pp.109-110 모든 시대에는, 모든 시대만의, 묵시가 있습니다. 지난 세기의 소동을, 지켜본 기자가 대답했다. 묵시를 보는 데는, 나이가, 성별이, 금 그어진 국경이, 필요 없어요. 오히려 젊을수록 더 묵시를 본답니다. 어느 시대나, 연옥은, 청춘에게 가장 잘, 펼쳐지니까요. --- p.175 모든 세대는 묵시를 본다, 모든 시대의 모든 이들은, 저마다의 묵시록을 쓴다, 누군가는, B5 크기의 노트에 59쪽 분량으로 쓰고, 맨 마지막 페이지에, 드디어 휴거 날 아침이다, 오늘 나에게, 누군가가 선뜻 말을 걸고, 부라보콘도 사줄 거다, 이후로 벌어질 일들이, 기다려진다, 무섭기도 하다, 라고 쓴다. 또 누군가는, 휴대폰 문자로, 손가락 한 마디 분량으로, 지금 나는 너무 무섭다고, 짧은 묵시록을 쓰기도 한다. --- p.187 이페머러의 수호자들은 또한 모든 시대의, 모든 문명의, 모든 인민人民이 토해내는 묵시들의 수호자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 나 역시, 이페머러의 수호자. --- pp.198-199 조현의 『나, 이페머러의 수호자』는 행복한 결말로 끝난다. (……) 조현 소설의 제목을 다시 빌리면 ‘새드엔딩에 안녕을’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제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어쩌면 빙의 들린 언어, 언령의 생생한 체험담이자 문학에 대한 믿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황당해 보이는 소녀의 묵시적 환상이 실린 공책과 식민지 젊은이들의 죽음과 부활을 기록한 애가, 그리고 광화문의 세 모녀의 가계부가 만나 빙의하는 순간에 대한 증언이라는 것을. “내가 언어로 읽어낸 무수한 존재들이, 차원을 이격하여, 빙의하여, 한 몸으로 겹쳐”지는 언어의 고통스러운 황홀에 대한 신뢰라는 것을. --- 「작품해설, 복도훈」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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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모든 시대 모든 문명의, 모든 청춘들이 토해내는 묵시들의 수호자
조현은 2008년 등단 이후 독특한 우주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일곱 편의 단편을 담은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와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아이덴티티와 사랑에 관한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린 『새드엔딩에 안녕을』이라는 두 권의 소설집을 출간했다. 등단과 동시에 문단의 기대주로 떠오르며 활발한 활동을 한 것에 비하면 과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과작의 원인은 동년배 작가들과는 사뭇 다른 그의 문학적 행보에서 찾을 수 있다. 조현은 순문학 작가들에게는 전혀 다른 영역이라 여겨졌던 장르소설에 다가갔고, 그 관심사들을 하나씩 본인의 작품에 녹여냈다. 그리고 등단 12년 만에, 그 세계관들을 집약한 소설 『나, 이페머러의 수호자』를 선보이게 됐다. 미합중국 대통령의 무해한 취미생활을 서포트하는 것이 재단 설립의 취지라는, 재단법인 ‘세계희귀물보호재단’. 수상쩍은 이 글로벌 재단 구성원들의 주 업무는 야생 동식물에서부터 오컬트의 유산까지,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희귀품에 대한 자료조사 및 수집이다. 여러 번의 구직 활동 끝에 이곳에 인턴으로 일하게 된 나는 조선시대의 성인용품부터 벽사부적에 이르기까지 온갖 골동품의 조사 활동과 재단의 여러 테스트를 거친 뒤 마침내 계약직 연구원으로 임용된다. 하지만 계약직이라는 신분은 여전히 불안하고 암담하기만 하다. 그즈음 미국 CIA에 ‘마이스터 X’로부터 경매에 참가하라는 초청장이 날아오고 CIA는 세계평화에 변수가 될 수 있는 물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 경매에 나와 나의 보스 제인에게 참여를 권한다. 마이스터 X가 원하는 물품을 제출해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는 이 경매에 참여하기까지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 요원들과 총격전도 벌이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우리는 회심의 물품을 들고 마이스터 X가 초청한 유럽의 고성에 무사히 도착한다. 정규직이 되어 여자친구와의 안정적인 미래를 설계하고자 나는 경매에 전투적으로 매달리고, 경매 과정 중 환각의 상태 속에 마이스터 X의 질문을 받으며 세 가지의 시험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선택된 자여, 시험하라! 독사doxa, 너의 미궁을 시험하라! 에피스테메episteme, 너의 시대를 시험하라! 이데아idea, 너의 우주를 시험하라!”(153쪽) 시험의 과정을 통해 나는 이페머러를 이용하고자 했던 내 모습을 돌아보며, 그것들이 한 번 읽고 버려도 되는 잡동사니가 아니라 각자의 고통에 찬 묵시록이라는 것을, 내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여자친구 역시 지금 자신만의 묵시록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이스터 X가 각국 경매자들에게 경매를 위해 준비하도록 한 각종 묵시의 이페머러는 버림받은 자들의 고통을 왜곡한 표현이자, 현실의 아픔을 측정하고 헤아리는 도구가 된다. 그러니까 이페머러는 소설에서 주인공 ‘나’의 스펙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극복해낼 도구로 적극 재활용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다.” (복도훈) 작가의 말 누구나 저마다의 묵시록을 품고 인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자주 연옥이 살갗을 스치는 일상 속에서 우리 모두 가끔은 기이한 기적을 체험하며 살아갔으면. 그리고 이 책을 선택해주신 독자님과 앞으로도 좋은 인연으로 뵈었으면. 독자님이야 말로 진정한 이페머러의 수호자이니까요. 현대문학 × 아티스트 구본창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재구성된 독창적인 소설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소설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소설과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구본창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독일 함부르크 조형미술대 사진 디자인 전공, 디플롬 학위 취득. 국내외 40여 회 개인전.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필라델피아 박물관, 보스톤 미술관, 휴스턴 뮤지엄 오브 파인 아트,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삼성 리움 등 다수의 박물관에 작품 소장. 작품집 한길아트 『숨』 『탈』 『백자』, 일본 Rutles 『白磁』 『공명의 시간을 담다』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