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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자작나무 자서전自敍傳·12 태모필胎毛筆·14 십리 대숲 길·16 물수제비·17 어머니의 낮달·18 부족한 손·20 목련붕대·21 아름다운 대화·22 마음을 그리다·23 빗방울 녹턴·24 계단·25 눈 깜짝할 사이·26 바다의 골목 1·28 벚꽃·30 2부 주머니쥐의 추억·32 물소리 바람 소리·33 어느 호수, 2016년·34 청동의 손·36 인연설·38 논골 동네·40 파웅도우 불상·42 길, 제부도·44 화산활동·46 옥수수 잎들이 물결치는 아미쉬·47 북촌 가는 길·48 죽은 여름·50 귀향·52 3부 각석刻石, 천전리·56 랑빠우토림土林·58 파노라마 언덕·60 어느 낙타의 회상·62 굴비와 파라오·64 에덴의 후예들·66 글라디올라스sword lily·68 묘지숲, 카페·70 피치카 혹은 썸바디 투 러브·72 아폴론 신전, 시대·74 포오덤 코티지·76 바닷소리 배달·78 피칸·80 아라랏산은 지금, 아으으다으·82 4부 가거도佳居島 이야기·84 찻집, The 좋은 날·86 고양이에게 오로라를·88 느릅나무 우물·90 북촌·91 알·92 바다의 골목 2·94 달팽이 경전·96 돌아온 학·97 조선 항아리·98 맨발의 소녀·100 데카르트를 읽으며·102 개기일식·104 만 마리 물고기·106 해설 | 호병탁 ‘발가락이 노란 새 한 마리’-놀라운 이미지와 시적 음악성의 힘·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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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속에 들어서자
반듯하게 갖춰진 지필묵부터 먼저 보인다 눈부신 백지 한 장이 바닥에 깔려 반짝이고 명암이 깊은 하늘에 자작나무 붓끝이 막 묵墨을 찍는 중이다 붓을 떼자 기러기 한 마리 깃털에 묻은 먹을 털고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쭉쭉 곧게 세워진 붓대들의 연결 사이로 가득한 여백의 연결이 도드라져 보이고 붓과 여백이 마음껏 필묵의 자유를 누리며 작품을 자작自作하는 중이다 먹을 갈고 붓을 다듬는다 찍고, 긋고, 맺기를 반복한다 자작나무 숲 백지 위에 구김 없는 또 한 장의 백지를 반듯하게 펼친다 자작자작 찢어 흩뿌리는 파지 조각이 내 어깨에 하얗게 쌓인다 --- 「자작나무 자서전自敍傳」중에서 진한 먹물에 붓을 찍습니다 생명선이 살아있어 차람차람 붓끝이 차진 태붓 떨리는 듯 곧은 선을 긋습니다 태 안에서 그리고 태어나서 다시 백일을 더 자란 딸애의 머리카락에서 따스한 울림이 고물고물 기어 나와 그의 심장에 닿습니다 그렇게 사군자를 쳤고 좋은 글귀 뽑아 열두 폭 병풍 준비해 두었는데 시집을 안 가겠다 물러서지 않는 딸 30여 년 걸어놓았던 실고리가 삭아 걸지조차 못하는 붓만 같습니다 한때 붉은 발가락이었고 말랑말랑한 마디였고 솜털이었던 저 닮은 손주라도 안고 온다면야 명주실로 짱짱한 고리를 만들어 붓걸이에 걸어둘 것인데 책상 서랍 구석으로 밀어내 버린 침묵 한 자루 근 삼 년 만에 그가 다시 붓을 잡습니다 젖배 곯은 아기가 젖을 빨 듯 물 타지 않은 진한 먹물을 빨아들이는 붓 그가 탱탱해진 붓을 어르고 달래는 일은 침묵에 빠진 자신을 구출해 내는 일 잎 성근 잣나무 한 그루 일으켜 세웁니다 그 아래 쌓기도 하고 흩기도 했던 한 생의 명암이 누군가를 사랑했던 그의 호흡들이 골고루 펴 발라진 오두막 한 채 지난한 한 생을 떠받친 서까래가 그저 고요히 달빛을 뿜어냅니다 --- 「태모필胎毛筆」중에서 대숲은 걸어서 강물은 흘러서 십리 길을 함께 가더라 차갑고 고요하게 빛나던 댓잎들이 비가 내리자 더 짙푸르고 탱탱하게 강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더라 아무도 모르는 달빛 아래서 아무도 모르게 손닿지 않는 하늘을 품고 싶어 몸을 곧게 뻗어 올렸던 푸른 기운 아무래도 이 길은 내 초록을 되찾아 가는 길 그 시간에게 건네는 따뜻한 악수 그대 생각만으로 십리 대숲길이 환하더라 --- 「십리 대숲 길」중에서 발가락이 노란 새 한 마리 숲을 꿰고 있습니다 새의 맥박 소리 가늘게 흔들려 고요를 꿰고 있습니다 돌이 물밑에 가만 엎드려 물살을 꿰고 있습니다 시간이 소리를 꿰고 소리는 시간을 꿰고 있습니다 물뱀이 단풍을 시침질하는 햇살을 꿰고 있습니다 푸른 물잠자리 날개가 바람을 꿰고 있습니다 너와집 처마 그을음이 가을의 중심을 꿰고 있습니다 --- 「물수제비」중에서 된서리 맞기 전에 청 고추를 땄다 며칠이 지나도록 풋 티를 벗지 못하고 붉으락 푸르락 응석을 부리듯 한 바구니 가을이 빨갛게 익어간다 아직은 고집스럽게 초록을 버리지 않는 고추를 골라내다가 어머니가 거처하던 빈방을 들여다본다 그놈의 고추, 고추 하나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끝끝내 아들을 품지 못하고 서까래에 불과한 딸, 또 딸, 여섯 번째 막내인 나를 기록하고 끝나버린 어머니의 일기를 읽는다 아기가 태어날 때 고추를 달고 나는지 나서 그것이 풋고추처럼 맺히는 것인지 어린 나는 늘 궁금했다 밤사이 뚝딱 고추 하나 단단히 맺혀져 있기를 밤새워 뒤척이다가 아침이면 그 절망을 앙가슴에 꽁꽁 묻어두시기도 했던 어머니의 소망은 절벽 끝 낙락장송에 걸려있는 작은 귀주머니를 따는 것이었을까 너무 높고 아슬아슬해서 줄이 끊어진 악기 같아서 끝끝내 따지 못한 까마득히 올려다만 보다가 평생토록 목젖이 아팠던 저 희끄무레한 낮달 비로소 홀가분하게 낙락장송에 도달했다 --- 「어머니의 낮달」중에서 그 아침 우연히 지나치다 풀숲에 떨어진 모과 한 알을 보았고 무심코 올려다본 순간 샛노랗게 빛나던 별들, 하루가 눈부셨다 모과나무 아래 앉아 나는 계절을 읽었고 가을을 필사했는데 모두가 추락하던 그 순간이 아찔해 까맣게 질렸을까 때를 놓친 모과 한 알이 아직도 뛰어내리지 못하고 매달려있다 이때껏 젖 먹여 키워준 어미나무도 무작정 매달리는 부족한 손을 차마 놓지 못하고 꼭 잡고 있다 뜨거운 한 장면을 봄눈이 촉촉하게 식혀준다 --- 「부족한 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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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문학은 정서나 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려서 문자로 나타낸 예술작품으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문학은 ‘상상想像’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사실’이 아닌 글, 즉 ‘허구’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사실과 허구의 구분은 모호하다. 당장 「창세기」 저자들은 세상과 인류의 창조, 죄의 기원, 낙원의 상실을 기록하며 자신들이 역사적 진실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들의 글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실로 읽히기도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허구로 읽힌다.
그렇다면 문학은 허구적, 즉 상상적인 글인가 아닌가에 따라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특별한 방식으로 선택하고 사용하는 것을 근거로 정의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즉 문학의 형식적 요소인 소리, 이미지, 리듬, 구문, 여러 서술기법 등 제반 장치를 채택하는 것이다. 문학을 정의하려는 시도들은 고대로부터 다방면으로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최소한 필자의 생각으로는 ‘언어의 특별한 운용’이라는 이 명제는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또한 예술작품으로서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오류가 없는 정의가 될 것 같다. 우선 작품을 보며 논의를 계속하기로 하자. 발가락이 노란 새 한 마리 숲을 꿰고 있습니다 새의 맥박소리 가늘게 흔들려 고요를 꿰고 있습니다 돌이 물밑에 가만 엎드려 물살을 꿰고 있습니다 시간이 소리를 꿰고 소리는 시간을 꿰고 있습니다 물뱀이 단풍을 시침질하는 햇살을 꿰고 있습니다 푸른 물잠자리 날개가 바람을 꿰고 있습니다 너와집 처마 그을음이 가을의 중심을 꿰고 있습니다 -「물수제비」 전문 시 「물수제비」는 시집을 대표할 만한 중요한 의미가 담긴 작품인데, 독자도 필독해 보아야 할 가치를 갖는 작품이 될 것이다. 작품은 일곱 개의 행들이 각각 하나씩의 연을 만들고 있다. 따라서 작품은 일곱 연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짧고 깔끔하다. 우선 다가오는 이 시의 매력은 너와집이 보이는 가을 산촌의 맑고 깨끗한 서경敍景의 능력에 있다. 마치 롱테이크 기법으로 찍은 선명한 영상을 보는 느낌이다. 시인은 먼저 숲을 가로지르는 한 마리 새를 포착한다. 그런데 시인의 포커스는 그 새의 “발가락이 노란” 것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숲의 고요는 “새의 맥박소리”도 들릴 것 같다. 시인의 섬세한 감각은 또한 물살을 꿰며 “돌이 물밑에 가만 엎드려” 있는 것도 영상에 담는다. 그리고 잠깐 호흡을 고르며 이런 정경이 “시간이 소리를 꿰고 소리는 시간을 꿰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서경은 계속된다. “물뱀이 단풍을 시침질하는 햇살을”, “푸른 물잠자리 날개가 바람을 꿰고” 있는 것을 포착하고 마침내 “가을의 중심”에서 “너와집 처마 그을음”까지 보여주며 그림 같은 영상의 막을 내린다. 조국 산촌의 여러 아름다운 가을 풍광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경치다. 단풍이 물드는 숲, 숲을 나는 새, 투명한 개울물, 그 위를 비추는 맑은 햇살은 대할 때마다 모국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게 하지만 우리를 압도하는 거대하고 웅장한 풍광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가을의 산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우 ‘낯익은’ 풍경일 뿐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런 익숙하고 낯익은 풍경을 특별한 방식의 언어사용으로 작은 부분의 특징까지 낯설게 만들면서 선명하게 부각시켜내고 있다. 이제 글의 초입에서 문학의 정의를 언급하며 거론되기도 한 ‘특별한 언어 운용 방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인간의 언어는 인류의 경험이 축적된 결과로 생긴 의미의 기호다. 그런데 언어를 독특하게 사용함으로서 그 의미의 모체인 경험을 자극하여 재생시킬 수 있다. 사람의 경험이란 우선 감각을 통해 지각되는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이다. 문학 언어는 바로 이런 감각적 지각을 자극하는 능력과 이를 십분 응용하려하는 독특함이 있다. ‘심상’, 즉 ‘이미지’다. 그런데 심상은 시·청·후·미·촉각의 오감이 동시에 함께 어울리며 발현되기도 한다. 또한 오감 뿐 아니라 희로애락과 같은 정서적 충동을 야기하는 심상들도 얼마든지 나타나게 마련이다. 첫 연에서는 “발가락이 노란 새 한 마리 숲을 꿰고” 있고, 둘째 연에서는 그 “새의 맥박소리 가늘게 흔들려 고요를 꿰고” 있다. 발가락이 ‘노란’ 색깔의 새는 우리의 시각적 심상을, 새의 ‘맥박소리’는 우리의 청각적 심상을 자극한다. 셋째 연에서는 “돌이 물밑에 가만 엎드려 물살을 꿰고” 있다. 물밑에 가만히 엎드려 있는 ‘돌의 모습’은 우리의 눈을, 그 위에 흘러가는 ‘물살의 소리’는 우리의 귀를 가볍게 건드리고 있다. 새의 맥박소리까지 느낄 수 있다니 얼마나 고요한 숲인가. 이런 ‘고요함’ 속에는 새의 날갯짓 소리도 흐르는 물살의 소리도 충분히 지각될 것이다. 그런데 맥박도 날갯짓도 물살도 움직이는 것이고 모든 움직임에는 힘과 시간이 작동한다. 그래서 ‘소리’ 또한 비로소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시인은 넷째 연에서 이런 자연의 이치를 “시간이 소리를 꿰고 소리는 시간을 꿰고” 있다고 간명하게 발화한다. 이 작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세계 이해를 위한 시인의 관념이 얼핏 드러나는 진술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따분한 설교조의 ‘가르침’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시인은 이어 자신의 진술을 증명이나 하듯 계속하여 숲의 정황을 묘사한다. 다섯째 연에서는 물뱀이 “단풍을 시침질하는 햇살” 아래 물살을 헤엄쳐 건너가고 있다. ‘시침질’은 옷을 완성하기 전에 먼저 몸에 잘 맞는지 보기 위해 대강 하는 바느질을 의미한다. 소위 ‘가봉假縫’함을 말한다. 그렇다면 계절은 한참 가을인 것은 맞지만 겨울 직전의 만추는 아니다. 햇살이 나무의 붉은 단풍 옷을 가봉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시침질하는 햇살”은 의외의 신선한 비유로 일반적 심상보다 한 차원 높은 시적 전개라 아니할 수 없다. 여섯째 연에서는 “푸른 물잠자리 날개가 바람을 꿰고” 있다. ‘바람’ 역시 기압의 변화에 의하여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이다. 맑고 깨끗한 가을의 대기가 “푸른 물잠자리”의 날개와 어우러지며 한층 선연하게 드러난다. 고요한 숲 속의 작은 ‘정중동’의 모습들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너와집 처마 그을음이 가을의 중심을 꿰고”있다. 새도 물뱀도 잠자리도 숲과 바람처럼 자연의 일부일 뿐 사람과 함께 기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너와집’은 사람이 그 안에서 직접 사는 곳으로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인간 냄새가 풍기는 장소다. “처마 그을음”에 시선을 모둘 필요가 있다. ‘그을음’은 아궁이 같은 곳에 불을 피울 때 연기와 함께 섞여 나오는 검은 먼지 같은 것으로 세월이 흐르며 이것이 내려앉은 처마, 벽, 천장 같은 곳을 까맣게 변색시킨다. 너와집은 얇은 돌 조각으로 지붕을 인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나 볼 수 있는 보잘 것 없는 집이다. 더구나 처마의 그을음으로 보아 이집은 새로 지어진 집이 절대 아니다. 우리가 주시할 점은 “너와집 처마 그을음”이 신산한 삶의 모습을 정확하게 은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풍상을 견딘 산골 집에서 사는 순박하지만 초라한 사람의 삶이 이 시구에서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의 연민의 감정과 이에 따른 관념을 느낀다. 그러나 이를 직설적으로 표출하지 않는다. 시인은 하늘의 달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물 위에 일렁이는 달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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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이 ‘ㄹ’음이 견인되고 있는 모든 어휘들은 벌써 아름답게 반짝인다. 이 작품에서 색깔을 나타내는 유일한 형용사 ‘노란’ ‘푸른’도 역시 마찬가지다. 시인은 익숙하고 낯익은 조국의 가을 풍광을 맑고 깔끔하게 서경하고 있다. 초라한 너와집이 보이는 산촌풍경에서 연민의 감정이 어른거리지만 결코 압도하는 비애에 빠지게 하지는 않는다. ‘ㄹ’음은 무겁거나 심각하지 않다. 맑고 깨끗한 서정과 이 음의 반복은 아주 잘 어울리며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작품이 보여주는 의외의 아름다운 심상과 완벽에 가까운 음악성을 대하며 「물수제비」는 이번 시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작품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 호병탁 (시인·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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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분필 시인의 시편들을 직조하는 자유로운 붓놀림은 필묵筆墨의 여백으로 웅변한다. 시집 전체를 묵향으로 감싸면서, 시 이전에 쓰이지 않은 시의 백지에 자작自作하는 필법으로 오래된 예스러운 대상들을 소환하는 풍경들이 그윽하고 깊다. 또한, 대상과 대상이 ‘꿰고’(「물수제비」) 있는 인간의 감각에서 배제된 미세한 파동들을 포착하고 접하는 찰나의 묘사는 시인의 운명 같은 이름 분필처럼 타고난 필경사가 아닌가. - 김영탁 (시인·『문학청춘』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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