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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의 얼굴

목차

발간사
일러두기

잉여인간
단독강화
오발탄
흰 종이수염
라울전
월광
이 성숙한 밤의 포옹
요한시집

전쟁, 그리고 상처 극복의 몸부림 이정숙
작품 목록

저자 소개 4

孫昌涉, 귀화이름 : 우에노 마사루(上野昌涉)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아버지가 없는 집안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와 더불어 보냈는데, 작가 스스로 “소학교 시절에는 자신의 생일을 알고 있었으나 그후로는 기억할 필요가 없어 잊어버렸다”면서 성장한 후로는 자신의 생일을 몰라 기념조차 할 수 없었던 사람이다. 소학교를 졸업한 이후 10여 년간 만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와 도쿄에서 신문 배달과 우유 배달 등 고학으로 몇 군데의 중학교를 거쳐 니혼(日本) 대학에서 잠시 수학했다. 이 무렵(19세) 일본인 친구의 여동생인 지즈코와 동거 생활에 들어가는가 하면, 뒤늦게 독서의 필요성을 깨닫고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아버지가 없는 집안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와 더불어 보냈는데, 작가 스스로 “소학교 시절에는 자신의 생일을 알고 있었으나 그후로는 기억할 필요가 없어 잊어버렸다”면서 성장한 후로는 자신의 생일을 몰라 기념조차 할 수 없었던 사람이다. 소학교를 졸업한 이후 10여 년간 만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와 도쿄에서 신문 배달과 우유 배달 등 고학으로 몇 군데의 중학교를 거쳐 니혼(日本) 대학에서 잠시 수학했다. 이 무렵(19세) 일본인 친구의 여동생인 지즈코와 동거 생활에 들어가는가 하면, 뒤늦게 독서의 필요성을 깨닫고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해방을 맞아 1946년에 부인과 아이를 일본에 남기고 홀몸으로 귀국했으나 오갈 데 없는 처지로 고통스러운 밑바닥 생활을 체험했다. 이때 만주와 일본 등지에서 귀국한 이른바 ‘해방 따라지’들과 공동으로 자활 건설대를 조직했으나 경관을 구타한 사건으로 3개월간의 도피 행각, 그후 상경했으나 또다시 미군 부대 통역관을 폭행한 일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1개월간 복역했다가 출감한 후 38선을 넘어 고향인 평양을 찾아갔다. 공산치하인 고향 평양에서 2년간 지내다가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1948년 월남, 그후 교사ㆍ잡지사 편집 기자ㆍ출판 사원 등으로 일하면서 겨우 생활의 기반을 마련하던 중에 6ㆍ25 전쟁이 터졌다. 이때 피난지 부산에서 남편을 찾아 한국에 건너와 있던 아내 지즈코와 기적적으로 상봉, 비로소 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시작했다.

1952년에 단편 「공휴일」을 김동리의 추천으로 지에 발표하면서 등단, 그후 휴전 직후에서 4ㆍ19에 이르는 몇 해 사이에 중요한 작품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전후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그의 문학이 당시 우리 문학계에서 ‘새로운 전율’로 받아들여진 까닭은 ‘주리고 헐벗은 소외’의 문제를 다룬 그 주제 의식이 전후의 물질적 결핍과 물리적 황량의 문학적 대응으로서 폭넓은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길」등의 몇몇 장편소설을 발표하고 동시에「환관」「청사에 빛나리」등과 같은 역사 단편을 시도해서 새로운 경지를 펼쳐보였으나, 1970년대 들어 부인의 조국인 일본으로 건너간 후 국내 문단과는 전혀 소식을 끊고 지내다 2010년 6월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단편소설 「사연기(死緣記)」「치몽(稚夢)」「신의 희작(戱作)」 「육체추(肉體醜)」 「흑야(黑夜)」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낙서족(落書族)』 『부부』 『인간교실』 『길』 『삼부녀』 『유맹(流氓)』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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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평남 안주군 신안주면 운학리에서 태어나 고향의 청강보통학교와 진남포 공립상공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만주, 풍천 등지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하였다. 해방 이후 월남하여 동국대학교 전문부 국문과를 졸업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거제도로 옮겨가서 거제고등학교 교사로 3년간 근무했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와서 대광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했으며, 1955년에 『현대문학』에 단편 「암표」와 「일요일」이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1957년에 「학마을 사람들」을 발표하여 서정성 짙은 작품 세계를 선보였으며, 1959년에는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오발탄」을
1920년 평남 안주군 신안주면 운학리에서 태어나 고향의 청강보통학교와 진남포 공립상공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만주, 풍천 등지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하였다. 해방 이후 월남하여 동국대학교 전문부 국문과를 졸업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거제도로 옮겨가서 거제고등학교 교사로 3년간 근무했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와서 대광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했으며, 1955년에 『현대문학』에 단편 「암표」와 「일요일」이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1957년에 「학마을 사람들」을 발표하여 서정성 짙은 작품 세계를 선보였으며, 1959년에는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오발탄」을 발표하여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오발탄」은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암울한 현실 속에서 존재 의의를 잃어버린 채 방황하는 주인공의 자의식을 사실주의적 필치로 그려낸 작품으로 유현목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한국외국어대학의 교수로 부임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고, 수많은 단편과 15편에 달하는 장편을 연재하는 등 정력적인 창작활동을 펼쳤다. 만년에는 한국문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에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대한민국 예술상을 수상하였다. 이듬해 1982년 2월 28일에 뇌일혈로 졸도하여 경희의료원에 입원한 뒤 3월 13일에 사망하였으며, 이후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용인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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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瑾燦

하근찬은 우리에게 『수난 이대』라는 단편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그는 193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6·25 동란을 전후하여 5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1955년 [신태양사] 주최 전국 학생 문예 작품 모집에 소설 [혈육]이 당선된 경력이 있었지만 그를 문단에 데뷔시킨 것은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단편 『수난 이대』였다. 1959년 교육 주보·교육 자료사 기자로 재직했으며, 1969년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이후 1970년 『족제비』로 제7회 한국문학상을, 1981년 『산에 들에』로 조연혁 문학
하근찬은 우리에게 『수난 이대』라는 단편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그는 193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6·25 동란을 전후하여 5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1955년 [신태양사] 주최 전국 학생 문예 작품 모집에 소설 [혈육]이 당선된 경력이 있었지만 그를 문단에 데뷔시킨 것은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단편 『수난 이대』였다.

1959년 교육 주보·교육 자료사 기자로 재직했으며, 1969년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이후 1970년 『족제비』로 제7회 한국문학상을, 1981년 『산에 들에』로 조연혁 문학상, 제1회 요산문학상을 받았으며 1989년 『작은 용』으로 유주현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수난 이대』, 『나룻배 이야기』, 『흰종이 수염』, 『왕릉과 주둔군』, 『산울림』, 『검은 자화상』, 『제국의 칼』, 『달섬 이야기』, 『월례소전』등이 있다. 2007년 11월 25일 타계, 충청북도 음성군 진달래공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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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仁勳

전근대적인 상황과 양대 이데올로기의 틈새에서 끊임없는 화두를 던진 전후 한국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근대성에 대한 관심,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 그리고 새로운 형식의 탐구를 바탕으로 “신이 죽은 시대, 신화가 사라진 시대에 신비주의와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기의 방법론으로 개발한 내면성 탐구의 절정”에 선 작가 최인훈. 1936년에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서 8.15 해방 이후 함경남도 원산으로 이사하여 그 곳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이어 원산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월남하여 목포고등학교를 거쳐서 서울대 법대에 재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1959년 『자유
전근대적인 상황과 양대 이데올로기의 틈새에서 끊임없는 화두를 던진 전후 한국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근대성에 대한 관심,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 그리고 새로운 형식의 탐구를 바탕으로 “신이 죽은 시대, 신화가 사라진 시대에 신비주의와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기의 방법론으로 개발한 내면성 탐구의 절정”에 선 작가 최인훈.

1936년에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서 8.15 해방 이후 함경남도 원산으로 이사하여 그 곳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이어 원산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월남하여 목포고등학교를 거쳐서 서울대 법대에 재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1959년 『자유문학』에 「그레이구락부전말기」와 「라울전」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이 두 작품은 관념과 현실, 그리고 자아와 세계의 대립 구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최인훈 소설에서 나타나는 현실인식의 기본적인 구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후 「9월의 다알리아」, 「우상의 집」, 「가면고」 등을 발표하였고 1960년 11월에 『새벽』에 중편소설 「광장」을 발표하였다.

「광장」은 최인훈 소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소설로서 남북한 이데올로기를 동시에 비판한 최초의 소설이자 전후문학을 마감하고 1960년대 문학의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광장」은 4.19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논의되기가 어려울 만큼 1960년대의 사회적인 상황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소설이다. 작품의 프롤로그에 해당한 부분에서 작가는 “구정권 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 저 빛나는 사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서술하고 있을 정도이다. 작가가 말하고 있듯이 「광장」은 바로 1960년대의 분위기가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광장」 이후 최인훈은 「회색인」, 「서유기」, 「총독의 소리」 연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태풍」 등 많은 소설을 발표하였다. 각 소설마다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새로운 형식과 자아와 현실에 대한 성찰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사변적인 내용으로 인하여 지속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오랜 동안 소설 창작을 중지하고 희곡 창작에 전념하기도 하였는데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등의 작품은 한국의 신화적인 세계를 통해서 민족의 본성을 탐구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94년에는 자기 존재의 실존적 의미를 탐구한 자전적인 장편소설 「화두」를 발표하여 이산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동인문학상과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 중앙문화대상 예술부문 장려상, 서울 극평가그룹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하였다. 1979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최인훈 전집』을 출간하였다.1977년부터 2001년 5월까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퇴임 이후에도 명예교수로 예우받았다. 2018년 사망한 뒤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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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7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03쪽 | 400g | 153*224*30mm
ISBN13
978895640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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