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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20세기 영미 여성 작가 단편선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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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책을 엮으며|세기 전환기의 여성

세라 오언 주잇 「백로」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뉴잉글랜드 수녀」
샬럿 퍼킨스 길먼 「누런 벽지」
케이트 쇼팽 「아카디아 무도회에서」
[속편] '폭풍우'
[속편] '실크 스타킹 한 켤레'
윌라 캐더 「감상적이지 않은 토미」
이디스 워턴 「다른 두 사람」
수전 글래스펠 「여성 배심원단」
버지니아 울프 「벽의 자국」
캐서린 맨스필드 「작고한 대령의 딸들」
엘런 글래스고 「제3의 그림자 인물」
조라 닐 허스턴 「땀」

저자 소개12

버지니아 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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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line Virginia Woolf

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으로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정신 질환을 앓으면서도 다양한 소설 기법을 실험하여 현대문학에 이바지하는 한편 평화주의자, 페미니즘 비평가로 이름을 알렸다. 빅토리아 시대 소위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환경에서 자랐고, 주로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다.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리턴 스트레이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덩컨 그랜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으로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정신 질환을 앓으면서도 다양한 소설 기법을 실험하여 현대문학에 이바지하는 한편 평화주의자, 페미니즘 비평가로 이름을 알렸다.

빅토리아 시대 소위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환경에서 자랐고, 주로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다.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리턴 스트레이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덩컨 그랜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 그룹은 당시 다른 지식인들과 달리 여성들의 적극적인 예술 활동 참여, 동성애자들의 권리, 전쟁 반대 등 빅토리아시대의 관행과 가치관을 공공연히 거부하며 자유롭고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어머니의 사망 후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사망 이후 울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평생에 걸쳐 수차례 정신 질환을 앓았다. 1905년부터 문예 비평을 썼고, 1907년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 같은 뛰어난 문예 평론, 서평 등을 발표하여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설가로서 울프는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내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70년대 이후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울프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자기만의 방」이 피력한 여성의 물적, 정신적 독립의 필요성과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우리 시대의 인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버지니아 울프는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작을 남긴 야심 있는 작가였다. 그녀의 픽션들은 플롯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더욱 초점을 맞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해 쓰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출항』, 『밤과 낮』, 『제이콥의 방』, 『댈러웨이 부인』, 『파도』,『현대소설론』 등과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에세이 『자기만의 방』과 속편 『3기니』 등이 있다. 1927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인 『등대로』를 발표하며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올랜도』, 『파도』, 『세월』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쳐 왔던 울프는 1941년 독일의 영국 침공이 예상되는 가운데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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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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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h Wharton

1862년 1월 24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 철학, 종교 서적을 탐독했고 다양한 독서의 내공으로 1878년 첫 시집을 출간했다. 1885년 열세 살 연상의 에드워드 로빈스 워튼과 결혼했으며 1894년부터 심각한 신경쇠약을 앓았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유럽으로 이주, 이후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유럽 지역의 역사, 건축, 미술에 대한 글과 소설을 썼다. 1905년 장편소설 『환락의 집』을 발표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헨리 제임스, 싱클레어 루이스, 장 콕토, 앙드레 지드 등 유명한 문인들과 교류했다. 이후 발표한 『순수의 시대』(1920)로
1862년 1월 24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 철학, 종교 서적을 탐독했고 다양한 독서의 내공으로 1878년 첫 시집을 출간했다. 1885년 열세 살 연상의 에드워드 로빈스 워튼과 결혼했으며 1894년부터 심각한 신경쇠약을 앓았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유럽으로 이주, 이후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유럽 지역의 역사, 건축, 미술에 대한 글과 소설을 썼다.

1905년 장편소설 『환락의 집』을 발표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헨리 제임스, 싱클레어 루이스, 장 콕토, 앙드레 지드 등 유명한 문인들과 교류했다. 이후 발표한 『순수의 시대』(1920)로 1921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평생 소설, 시, 에세이, 여행기, 회고록 등 40여 권이 넘는 책을 남겼으며 1937년 일흔다섯의 나이로 프랑스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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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맨스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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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erine Mansfield

1888년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부유한 가문에서 출생하여 1923년 프랑스 퐁텐블로에서 사망했다. 1903년 처음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당대 최고의 여학교 퀸스칼리지에 등록해 그곳에서 음악과 문학, 데카당파, 열정적인 우정에 심취하였다. 런던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여기기 시작한 시기였다. 맨스필드는 유학차 런던에 온 이후 결국 고국의 웰링턴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1906년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가서 음악가의 길을 선택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끝내 단념하고, 1908년 이후로는 아예 고국을 떠나 유럽에서만 거주했다. 전기학자 클레오 토말린은 유럽은 그녀에게 일시성의 습관
1888년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부유한 가문에서 출생하여 1923년 프랑스 퐁텐블로에서 사망했다. 1903년 처음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당대 최고의 여학교 퀸스칼리지에 등록해 그곳에서 음악과 문학, 데카당파, 열정적인 우정에 심취하였다. 런던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여기기 시작한 시기였다. 맨스필드는 유학차 런던에 온 이후 결국 고국의 웰링턴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1906년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가서 음악가의 길을 선택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끝내 단념하고, 1908년 이후로는 아예 고국을 떠나 유럽에서만 거주했다. 전기학자 클레오 토말린은 유럽은 그녀에게 일시성의 습관을 불러일으켰다고 보았는데, 이방인의 시각으로 관찰하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느낌이 그녀의 제2의 본성이 되었다고 해석했다.

어린 시절의 원고를 제외하고 [뉴에이지]에 처음으로 글을 발표한 이래로 정기적으로 이 잡지에 기고했으며, 1911년 ‘캐서린 맨스필드’라는 필명으로 첫 단편집 『독일 하숙에서』를 출간했다. 1912년부터는 후에 자신의 남편이 된 존 미들턴 머리가 편집자로 있던 [리듬]지에 글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1916년 「전주곡」에서는 단편소설 작가로서의 독특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나 1917년 결핵에 걸린 이후 여러 휴양지를 전전하며 치료에 몰두하는 한편, 『전주곡』, 『축복』 등 주옥같은 단편집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한다.

1921년 두 번째 소설집 『행복』을 발표하고 그로부터 1년 후 1922년에는 세 번째 소설집이자 생애 마지막 책인 『가든파티』를 출간하며 평단의 극찬을 받고, ‘의식의 흐름’, ‘다중 시점’ 등 실험적인 서사 기법을 선보임으로써 ‘모더니즘 문학’에 한 획을 긋는다. 이 책은 맨스필드가 연상과 상호 언급이라는 방식을 빌려 책 안의 여러 이야기들을 공조하여 새로운 연관성을 만들어내 완성한 소설집으로, 에피소드적이고 모더니즘적이며 개방적이다. 1923년 프랑스에서 요양하던 중 객혈을 시작하고, 결국 3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나는 비를 좋아해. 내 얼굴로 비를 느끼고 싶어.”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후에 소설집 두 권과 『서간집』, 『일기』가 발간되었다.

맨스필드는 자의식이 강한 모더니즘 작가로서 창작 활동과 인생 모두에서 실험적인 면모를 드러냈으며, 런던에서 버지니아 울프, D. H. 로렌스 등 동시대 작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고, 문필가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전 생애를 글쓰기에 투자한 작가로서 “내가 쓰는 모든 것은 나의 존재”라고 피력하였다. 버지니아 울프는 캐서린 맨스필드에 대해 “그녀는 내가 찬미하고 필요로 하는 특성을 갖추었다. 내가 추구하던 예리함과 현실성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라고 평했다. 삶과 창작 모두에서 실험적이고 독창적이었으며, 그녀가 존경했던 체호프의 작품과 비견되는 그녀의 소설은 단편이라는 장르의 발전과 모더니즘에 이바지했다는 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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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라 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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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a Cather

미국의 대표적인 지방주의 작가. 미국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 1873년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났다. 1895년 네브래스카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피츠버그에서 몇 년 동안 신문, 문예잡지사 일과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12년부터 창작에 전념하였다. 아홉 살 때 이주한 네브래스카에서 혹독한 기후와 싸우며 개척 생활을 하는 북유럽 이주민들과 함께 보낸 10년간은 그녀의 작품에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캐더는 웅대한 자연을 묘사하는 데 알맞은 위엄 있고 단아한 필치로 모든 개개인의 생활에 새겨진 인간 역사를 그렸다고 평가받고 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며 네브래스카 최초의 여성 유명 인사였던
미국의 대표적인 지방주의 작가. 미국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 1873년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났다. 1895년 네브래스카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피츠버그에서 몇 년 동안 신문, 문예잡지사 일과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12년부터 창작에 전념하였다. 아홉 살 때 이주한 네브래스카에서 혹독한 기후와 싸우며 개척 생활을 하는 북유럽 이주민들과 함께 보낸 10년간은 그녀의 작품에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캐더는 웅대한 자연을 묘사하는 데 알맞은 위엄 있고 단아한 필치로 모든 개개인의 생활에 새겨진 인간 역사를 그렸다고 평가받고 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며 네브래스카 최초의 여성 유명 인사였던 캐더는 1947년 미혼인 채로 세상을 떠났다.

1927년에 발표한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는 윌라 캐더가 미국 남서부인 뉴멕시코 지방을 여러 차례 여행하면서 구상한 작품이다. 종교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불모지였던 뉴멕시코에서 두 프랑스인 선교사가 불굴의 정신으로 이룩한 포교의 생애를 흥미진진하게 묘사하는 것은 물론, 소설의 무대가 되는 뉴멕시코 일대의 웅대한 자연환경을 그리고 있다.

대표작으로 네브래스카의 대초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거대한 서사시인 『오, 개척자여!O Pioneers!』와 『나의 안토니아My Antonia』가 있으며, 사라져 가는 개척자 정신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우리 중의 하나One of Ours』로 1923년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 서부 개척자들 중 한 여인의 허물어져 가는 사랑의 생애에 초점을 맞춘 『방황하는 부인A Lost Lady』, 지금은 사라진 뉴멕시코 주 혈거인종의 끊임없는 휴식에의 동경을 그린 『교수의 집The Professor’s House』, 18세기 전반 캐나다에서 프랑스 이주민들의 용기와 긍지와 정열로써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바위 위의 그림자Shadows on the Rock』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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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E. 윌킨스 프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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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Eleanor Wilkins Freeman

미국의 소설가. 『뉴잉글랜드 수녀』(1891)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일찌기 여성의 역할과 가치관 및 사회관계를 다루었으며,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페미니스트로서의 가치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간결하면서도 명징한 문체가 특징이다. 정교회 조합교회주의자 부모의 엄격하고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요구하는 ‘좋은 딸’이 되지 않기 위해 평생 어머니의 방식에 저항했다. 가난했던 살림에 보태기 위해 십 대 때부터 동화를 썼던 그녀는 이십 대 후반부터 소설을 썼고, [하퍼스 바자] 등에 글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자리매김했다. 그녀는 평생 서른 권이 넘는 단편집과 소설을 출간했으며
미국의 소설가. 『뉴잉글랜드 수녀』(1891)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일찌기 여성의 역할과 가치관 및 사회관계를 다루었으며,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페미니스트로서의 가치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간결하면서도 명징한 문체가 특징이다.

정교회 조합교회주의자 부모의 엄격하고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요구하는 ‘좋은 딸’이 되지 않기 위해 평생 어머니의 방식에 저항했다. 가난했던 살림에 보태기 위해 십 대 때부터 동화를 썼던 그녀는 이십 대 후반부터 소설을 썼고, [하퍼스 바자] 등에 글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자리매김했다. 그녀는 평생 서른 권이 넘는 단편집과 소설을 출간했으며, 소설 속 여성 인물들에게 약하고 의존적인 모습 대신 독립성을 부여함으로써 여성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아동소설, 고딕,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울렀지만, 뉴잉글랜드의 시골과 이곳에 깊이 배어 있는 청교도적인 사상의 영향, 지역 주민들의 모습과 특히 가난한 노동자 계층 여성들의 삶을 다룬 지역색 소설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 1926년 프리먼은 여성 최초로 미국문화예술아카데미에서 5년에 한 번 그 시기에 가장 뛰어난 미국 소설가에게 수여하는 윌리엄 딘 하우얼스 메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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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쇼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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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e Chopin

페미니즘 소설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19세기 미국 작가.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미국의 단편소설작가로,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페미니스트 소설의 선구자로 재평가받았다. 1850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캐서린 오플래허티라는 이름으로 출생했다. 아일랜드 출신의 사업가인 아버지와 프랑스 귀족 혈통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8세에 세인트루이스 가톨릭 여학교를 졸업했다. 20세인 1870년에 루이지애나주 출신의 오스카 쇼팽과 결혼하여, 이후 뉴올리언스에 살면서 29세까지 여섯 명의 자녀를 낳았다. 프랑스풍의 크리올(미국에 정착한 프랑스계나 스페인계 귀족의 후손들) 문화가 지
페미니즘 소설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19세기 미국 작가.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미국의 단편소설작가로,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페미니스트 소설의 선구자로 재평가받았다. 1850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캐서린 오플래허티라는 이름으로 출생했다. 아일랜드 출신의 사업가인 아버지와 프랑스 귀족 혈통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8세에 세인트루이스 가톨릭 여학교를 졸업했다. 20세인 1870년에 루이지애나주 출신의 오스카 쇼팽과 결혼하여, 이후 뉴올리언스에 살면서 29세까지 여섯 명의 자녀를 낳았다. 프랑스풍의 크리올(미국에 정착한 프랑스계나 스페인계 귀족의 후손들) 문화가 지배적인, 이 이국적인 도시 뉴올리언스에서 지낸 9년간의 생활은 이후 그녀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82년에 남편이 말라리아로 사망하자, 많은 부채와 자녀들의 양육을 혼자서 떠맡게 되었다. 다시 친정으로 돌아온 쇼팽은 이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890년 첫 장편소설 『중대한 과실』을 자비로 출판했으며, 1892년부터 1892년부터 여러 잡지에 어른과 아이들 모두 읽을 수 있는 단편동화, 단편소설, 칼럼, 번역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894년 첫 단편집 『바유 사람들』을 출간하여 단편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고, 1897년 두 번째 단편집 『아카디에서 보낸 하룻밤』을 출간했다.

1899년 장편소설 『각성』을 출간했으나, 여성의 부도덕한 일탈을 그렸다는 이유로 곧 출판이 금지되었다. 『각성』은 1970년대에 재발견되며 페미니즘 대표 소설로 부상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정체성, 가부장제에 대한 반발, 결혼의 현실을 그린 그녀의 작품들은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에 정당한 평가를 못 받았다고 여겨진다. 이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지는 않다가, 1904년 뇌출혈로 사망했다.

대표 작품을 통해 남성 중심적인 미국 사회에서의 억압된 여성의 삶을 드러내면서 여성주의 작가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의 주요 관심사는 19세기 후반 미국 남부에 살던 여성들의 삶과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모습이었다. 19세기 중·후반 작가들은 대부분 쇼팽처럼 이러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대담하지 못했다. 쇼팽 또한 죽은 지 10년 후에야 당대 최고의 작가로 널리 인정받았다. 1915년 프레드 루이스 패티(Fred Lewis Pattee)는 이렇게 평했다. "쇼팽의 몇몇 작품들은 지금까지 프랑스나 미국에서 만들어진 최고의 작품들에 버금간다. 그녀가 보여주는 타고난 서술 능력은 천재적이다."

케이트 쇼팽의 작품은 곧, 그녀 자신의 이야기이자, 그녀가 살아간 시공간적 배경의 기록물이다. 그녀가 살던 때는 여전히 노예제 폐지운동이 계속되고 있었고, 또한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이 도래하던 시기였다. 물론 그녀의 사상과 묘사는 직접적인 단어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그녀의 작품을 관통한다. 케이트 쇼팽의 죽음 이후 50년이 지나자 비평가들은 그녀가 쓴 작품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특히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에겐 그녀의 소설이 큰 영향력이 있었는데, 1969년 이후 그녀에 관한 글들은 대부분 페미니스트의 본질과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오늘날 케이트 쇼팽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쇼팽의 대표적인 단편소설로는 「데지레의 아기(Desiree's Baby)」(1893)와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The Story of an Hour)」(1894), 「폭풍(The Storm)」(1898) 등이 있다. 그 외에 『실수(At Fault)』(1890)와 『각성(Tha Awakening)』(1899) 두 편의 장편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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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 퍼킨스 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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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otte Perkins Gilman

미국의 페미니스트, 비평가, 사회개혁가, 연설가, 시인. 1860년 7월 3일 미국 코네티컷 주의 하트퍼드에서 메리 퍼킨스와 프레데릭 비처 퍼킨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각은 페이비언 사회주의와 이후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이념으로 발전하였다. 『누런 벽지(The Yellow Pape)』 작품으로 남성 중심적인 미국 사회에서의 억압된 여성의 삶을 드러내면서 여성주의 작가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 일찍이 아버지의 가출로 어머니와 함께 친척 집을 전전해야 했던 길먼은 가난하고 불안정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때부터 공공 도서관을 드나들며 수많은 고전을 탐독하고, 위대한 여성 작
미국의 페미니스트, 비평가, 사회개혁가, 연설가, 시인. 1860년 7월 3일 미국 코네티컷 주의 하트퍼드에서 메리 퍼킨스와 프레데릭 비처 퍼킨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각은 페이비언 사회주의와 이후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이념으로 발전하였다. 『누런 벽지(The Yellow Pape)』 작품으로 남성 중심적인 미국 사회에서의 억압된 여성의 삶을 드러내면서 여성주의 작가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

일찍이 아버지의 가출로 어머니와 함께 친척 집을 전전해야 했던 길먼은 가난하고 불안정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때부터 공공 도서관을 드나들며 수많은 고전을 탐독하고, 위대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동경하며 문필가의 꿈을 키운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해리엇 비처 스토 등 스토 가문 친척들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심각한 가난 때문에 일곱 군데 학교를 옮겨 다니는 등 제도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열다섯 살에 그마저 중단되었다. 고립되고 외로웠던 어린 시절, 도서관을 자주 찾아가 책을 읽었다.

1878년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에 입학해 공부한 후 카드 디자이너, 가정교사로 일했으며, 화가로도 활동했다. 1884년 화가 찰스 월터 스텟슨과 결혼하나 이 결혼이 자신의 인생을 위한 올바른 결정이 아님을 직감한다. 다음해 딸 캐서린 비처 스텟슨을 낳은 후 전통적인 아내와 어머니 역할에 염증을 느낀 길먼은 수차례 자살 시도를 하는 등 산후우울증을 심하게 앓기 시작했다. 당시 산후우울증은 단순히 히스테리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의사는 그녀의 증상을 무시하고 지적 활동을 중단하고,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라는 ‘휴식 치료법’을 처방하며 상태를 악화시켰다. 착하고 온순한 아내로 만들기 위해 여성의 욕구와 지성을 모두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 별거와 이혼을 감행한다. 자전적 소설 『누런 벽지』를 통해 ‘휴식 치료법’의 실체와 부작용을 드러내고, 해당 치료법이 오히려 여성의 정신을 억압하고 무너트릴 수도 있다는 미국 정신과 의사들의 판단을 이끌어 냈다.

1888년 이혼이 아주 드문 시기였음에도 남편과 별거를 시작했다. 별거 후 딸과 함께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로 이사했으며, 1890년 본격적으로 작가,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참된 자유를 역설한다. 태평양여성언론인협회 및 부모협회 등의 여러 페미니스트 및 개혁가 단체에서 활동했다. 1895년까지 태평양여성언론인협회가 발행하는 문학잡지 [임프레스]의 편집장을 지냈다. 1896년에 열린 워싱턴 D.C 미국여성참정권 컨벤션에서 캘리포니아를 대표하기도 했다.

1896년 이후에는 사회운동가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특히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여성참정권협회대회와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노동총회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대표로 활약했다. 1897년에는 4개월간에 걸친 강의 투어를 마치고 남녀의 성차별과 경제를 주제로 한 연구를 더 깊이 진행했다. 1900년 사촌인 조지 휴턴 길먼과 재혼했다. 1903년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여성대회에서 연설을 했으며, 다음 해에는 영국, 네덜란드, 독일 등을 순회했다. 이 해에 집필한 『가정: 그 역할과 영향(The Home: It’s Work and Influence)』은 논쟁이 된 책으로, 여성이 가정에서 억압받고 있으며,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건강상태에 맞게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09년 잡지 [선구자(Forerunner)]를 창간하여 1916년까지 여성운동을 주제로 한 시와 소설, 논픽션을 발표하였다. 여성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며 여성 정당을 조직하고, 미국 전역에서 다채로운 페미니즘 운동, 인권·동물 생명권 운동을 전개하던 중 유방암 선고를 받는다. 1935년 유방암에 걸린 것을 비관하여 자살로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서 사망한다. 1994년 미국 여성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페미니즘은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여성 참정권 운동을 기반으로 여성의 사회진출과 성공을 막고 정치적 권리까지 억압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타파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이다. 이는 교육과 고용에 있어서의 평등 또한 추구하였다. 샬롯 퍼킨스 길먼은 1911년과 1914년에 “여성중심적인, 보다 어머니 중심적인 세상,” “여성이 운영하는 정부”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길먼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특질을 가지고 있기에 양성이 모두 “유용”하며, 양성이 모두 정부를 운영하며 상호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저서로는 『여성과 경제학(Women and Economics)』, 『다이앤서가 한 일(What Diantha Did)』, 『십자가(The Crux)』, 『내가 깨어났을 때(Moving the Mountain)』, 『허랜드(Herland)』, 『그녀와 함께 내 나라로(With Her in Ourland)』, 『아이들에 관하여』(1900), 『가정』(1903), 『남성에 의한 세상 혹은 남성중심주의적 문화』(1911), 『그의 종교와 그녀의 종교』(1923), 『산 옮기기』, 『샬럿 퍼킨스 길먼의 삶』, 단편 「누런 벽지(The Yellow Wall paper)」 등의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 『누런 벽지』는 오늘날까지도 세상을 바꾸는 문학의 힘을 보여주는 최고의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샬롯 퍼킨스 길먼의 다른 상품

수전 글래스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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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an Glaspell

아이오와주 시골 농장의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여자는 대학이 아닌 결혼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였으며 남학생들을 제치고 학교 대표로 토론 대회에 나가 우승했다. 대학 졸업 후 널리스트로 활동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피해자들의 사건을 보도하여 세상에 알렸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녀는 금세 여러 잡지에 단편을 발표하며 유망한 신인으로 떠올랐으며 첫 소설 『정복당한 자들의 영광』은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남편 조지 크램 쿡과 브로드웨이의 시초가 된 미국 최초의 극단 [프로빈스타운
아이오와주 시골 농장의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여자는 대학이 아닌 결혼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였으며 남학생들을 제치고 학교 대표로 토론 대회에 나가 우승했다. 대학 졸업 후 널리스트로 활동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피해자들의 사건을 보도하여 세상에 알렸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녀는 금세 여러 잡지에 단편을 발표하며 유망한 신인으로 떠올랐으며 첫 소설 『정복당한 자들의 영광』은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남편 조지 크램 쿡과 브로드웨이의 시초가 된 미국 최초의 극단 [프로빈스타운 플레이어스를 창단하고 다수의 극본을 집필하며 연기를 병행했다. 극작가 유진 오닐을 발굴하기도 했다. 그들의 극단은 7년간 100여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등 성공을 거두었지만, 극단이 상업적으로 변질되었다고 여긴 부부는 극단과 결별하고 그리스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남편이 질병으로 사망한 후 글래스펠은 케이프코드로 돌아와 창작에 전념했다. 1831년 극본 「앨리슨의 집」으로 퓰리처를 수상했으며, 「사소한 것들」은 그녀가 기자였을 당시 취재한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단막극으로 페미니즘 문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수잔 글래스펠이 세상을 떠난 뒤 뉴욕 타임즈는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작가가 영원히 잠들었다고 부고를 남겼다.

조라 닐 허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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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법인화 흑인 타운인 플로리다주의 이턴빌로 이주해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곳에서 그녀는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과 열등의식을 주입받는 대신 성공적이고 자주적인 흑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그녀는 바너드 컬리지의 첫 흑인 졸업생이었으며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인류학 석사과정을 밟았고, 랭스턴 휴즈, 카운티 컬린 등 할렘 르네상스의 주역 작가들과 교류했다. 그녀는 구겐하임을 포함한 여러 단체의 지원을 받고 남부 지방과 카리브해 지역을 여행하며 흑인 문화와 민요, 전래 동화 등을 연구하는 한편 여러 비평과 소설을 발표했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법인화 흑인 타운인 플로리다주의 이턴빌로 이주해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곳에서 그녀는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과 열등의식을 주입받는 대신 성공적이고 자주적인 흑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그녀는 바너드 컬리지의 첫 흑인 졸업생이었으며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인류학 석사과정을 밟았고, 랭스턴 휴즈, 카운티 컬린 등 할렘 르네상스의 주역 작가들과 교류했다.

그녀는 구겐하임을 포함한 여러 단체의 지원을 받고 남부 지방과 카리브해 지역을 여행하며 흑인 문화와 민요, 전래 동화 등을 연구하는 한편 여러 비평과 소설을 발표했다. 그러나 문화적, 정치적 이유로 평론계가 그녀에게 등을 돌리며 말년에 그녀는 프리랜서 작가로 살며 빈곤에 시달렸고, 복지원에서 생을 마감한 후 묘비 없이 묻혔다. 몇십 년 동안 빛을 못 보았던 그녀의 작품들은 소설가 앨리스 워커 등의 노력으로 20세기 후반에 재조명되었으며 이제 그녀는 흑인 여성 문학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대표작으로는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노새와 인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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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런 글래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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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로 스무 편이 넘는 소설과 몇 권의 단편 모음집, 시집, 자서전, 비평서 등을 출간했다. 미국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글래스고는 어릴 때부터 심장이 좋지 않아 홈스쿨링으로 교육을 받았고, 문학과 철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다. 자녀를 열 명이나 낳았던 어머니는 늘 신경쇠약으로 괴로워했는데, 글래스고 또한 같은 질환으로 힘들어 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출간했으나, 오래지 않아 그녀의 소설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897년 『The Descendant (후예)』라는 소설을 시작으로 1941년에 마지막 소설 『In Thi
1942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로 스무 편이 넘는 소설과 몇 권의 단편 모음집, 시집, 자서전, 비평서 등을 출간했다. 미국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글래스고는 어릴 때부터 심장이 좋지 않아 홈스쿨링으로 교육을 받았고, 문학과 철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다. 자녀를 열 명이나 낳았던 어머니는 늘 신경쇠약으로 괴로워했는데, 글래스고 또한 같은 질환으로 힘들어 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출간했으나, 오래지 않아 그녀의 소설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897년 『The Descendant (후예)』라는 소설을 시작으로 1941년에 마지막 소설 『In This Our Life(여기 우리의 생)』를 출간할 때까지 꾸준히 창작 활동을 했고, 마침내 퓰리처상을 받았다. 수상 작가를 선호하는 국내 독자들에게 그녀의 작품이 여태껏 한 편도 번역 출간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이다. 『끌림』은 글래스고를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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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오언 주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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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1909. 미국 메인주 사우스버릭에서 태어났다. 고향인 메인주의 풍경과 사람들의 순박한 삶을 주로 그리며 ‘지방색 작가’로 알려졌다. 대표작으로 『뾰족한 전나무의 고장』, 『시골 의사』, 『백로』 등이 있다.

鄭素永

영문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뒤 십여 년간 대학에서 강의했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루시』 『애니 존』 『가장 파란 눈』 『실크 스타킹 한 켤레』 『할머니, 개, 그리고 죽도록 쓰기』 『시골 소녀들』 『값비싼 독』 『아주 가느다란 명주실로 짜낸』 『웃음과 비탄의 거래』 『어떻게 지내요』 『대사들』 『유도라 웰티』 『진 리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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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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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50.68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5.7만자, 약 5.1만 단어, A4 약 99쪽 ?
ISBN13
9788954677899

출판사 리뷰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여성 작가의 단편을 선별해 엮은 앤솔러지 『실크 스타킹 한 켤레』를 선보인다. 여성과 자연의 친연성이 남성적 문명에 위협받는 상황에 관심을 기울인 세라 오언 주잇의 대표작으로 첫 장을 열어 시대의 한계에 굴복하지 않고 여성의 욕망을 전면적으로 다룬 케이트 쇼팽, 페미니즘 관련 저작을 다수 출간한 여성운동가 샬럿 퍼킨스 길먼, 엄격한 가정환경 속에서 관습적으로 요구되는 여성의 역할에 저항한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뉴욕 상류사회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여성의 성적 열망과 주체적 삶을 주창한 이디스 워턴, 변화하는 미국 남부 세계를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과 인간관계를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엘런 글래스고, 남성복을 즐겨 입으며 남성 주인공을 내세운 소설을 주로 썼던 윌라 캐더, 페미니즘 문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희곡들을 써낸 극작가 수전 글래스펠, 남성 우위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풀어낸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 날카로운 관찰력과 심리 묘사로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캐서린 맨스필드, 그리고 다층적인 억압 속에 있는 흑인 여성을 조명한 조라 닐 허스턴까지, 총 11명의 작가가 쓴 13편의 소설을 엮었다.
수록작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쓰인 작품들로 특정했다. 과학기술과 대도시 중심의 소비 자본주의가 급격히 발달한 이 시기는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한 가치관이 무너지고 이성애적 관계나 결혼, 가족이라는 제도 역시 뒤흔들리며 특히 여성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 격변의 시기였다. 여성성이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으로 획득된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전통적인 이상적 여성상에서 벗어난 여성을 일컫는 ‘신여성’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동성애자나 크로스드레서, 논바이너리와 같은 퀴어 관련 논의도 전보다 가시화되기 시작한 때였다. 더불어 결혼과 출산을 여성성의 핵심으로 삼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여성의 독자적인 욕망과 자유의지에의 관심도 높아졌다.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많은 여성 작가가 왕성한 작품활동을 선보이는데, 이 격변의 세기 전환기에 쓰인 작품들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의 여성들이 씨름했던 문제를 담고 있다. 작가 11인이 문학을 통해 증언해 보인 새로운 삶의 가능성, 그 선구적 상상력에 깃든 혜안은 지금으로부터 오래전 과거에 쓰였음에도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보편성을 지니며 현재의 우리가 당면한 문제와 갈등, 고민을 해석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부연 안개 속에서도 진실을 꿰뚫어보는 명징한 시선
고요하고 차분하고 광활한 상상력으로 구현해낸 삶의 진경


당시 여성의 글쓰기는 예술성이나 작품의 중요도 면에서 가치가 낮다고 폄하되었다. 글을 쓰는 창조적 행위 자체도 여성에게는 권장되지 않았을뿐더러 글을 통해 욕망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단죄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글쓰기를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이 책의 작가 열한 명은 제각기 다른 삶의 이력과 문학적 감수성, 작품세계를 살려 다채로운 작품들을 완성해냈다. 자신의 삶과 경험을 반영한 서사에 절망과 분노를 스며들게 하거나 자유롭고 독자적인 삶에 대한 끝없는 열망 또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녹여냈다. 사회의 검열을 피해 고딕소설이나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리는 경우도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성 존재를 등장시켜 불안감과 공포감을 유발하고(「제3의 그림자 인물」)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는 여성들의 이야기(「여성 배심원단」)가 그 예다. 폭력과 착취를 일삼는 남성에 대해서는 소설 속에서 인과응보의 방식으로 복수를 했다(「땀」).
『실크 스타킹 한 켤레』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은 다양한 입장과 상황에 놓여 있지만 모두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멀리 떠난 약혼자를 기다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독신생활의 즐거움을 깨닫고 비혼의 삶을 살기로 결단을 내리거나(「뉴잉글랜드 수녀」) 이분법적 성별로 정체화되지 않는 인물이 성별에 따라 강요되는 전형적인 성역할을 무화시키며 자주적인 삶을 살아나간다(「감상적이지 않은 토미」). 여성을 옭아맨 억압적인 현실과 세태가 풍자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평생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살아온 자매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자신들에게 드리워진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작고한 대령의 딸들」), 아내가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받아들여 행동하고 처신해주기를 기대하던 남성이 결국에는 같은 이유로 궁지에 몰리는(「다른 두 사람」) 식이다. 작가들이 이러한 텍스트 아래에 숨겨둔 절망과 분노, 욕망과 희망을 톺아보노라면 당시 사회의 면면과 시대 분위기가 선명하게 읽힌다. 결혼에 대한 기존의 관념과 그 신성함이 옅어지면서 이를 대하는 여성의 태도 역시 달라졌음을 가늠할 수 있고, 변화한 현실에 유리된 위계와 법칙을 고수하는 남성적 사고에 반기를 드는 여성적 인식이 생겨났음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창조성과 자유의지를 완전히 억압당해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는 여성이 극도의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는 내용의 「누런 벽지」는 작가 혹은 예술가였던 여성에게서 나타나곤 했던 신경증적 병증이 실은 표출되지 못한 창조성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실크 스타킹의 감촉을 통해 잠들어 있던 욕망과 섹슈얼리티가 발현되는 여성의 모습(「실크 스타킹 한 켤레」)에서는 상품 소비자로서의 욕망이 단순한 소비 욕구나 허영이 아니라 깨어나는 여성의 욕망과 얽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렇듯 11인의 작가가 명징한 시선과 광활한 상상력을 발휘해 구현해낸 삶의 진경은 오랜 세월 침묵을 강요받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변화하는 세계를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사고하는 일이 곧 나의 싸움”
내면 깊숙한 열망을 해방시킨 소설이라는 무대


“사고하는 일이 곧 나의 싸움”이라고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 여성 작가들은 부당한 관습과 사회적 불평등에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저항해왔다. 이 책에 수록된 작가들은 소설을 통해 또다른 삶을 모색해보고자 한 대표적인 여성들이다. 전방위적으로 획기적인 변화가 생긴 이 세기 전환기는 여성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젖힌 시기이기는 했지만, 실제로 당시 여성들에게 삶의 선택지란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성 작가들은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겪고 있는 변화를 예리하게 살피며, 내면의 사그라지지 않는 뜨거운 열망을 소설이라는 무대 위에 펼쳐 보였다. 소설은 여성이 자신의 내밀한 감정과 사회적 교류에 대해 탐구하고 삶의 여러 선택지를 상상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르인 동시에 자신들을 둘러싼 부조리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눈을 돌리게 해주는 훌륭한 수단이었다. 세라 오언 주잇이 윌라 캐더에게 보낸 편지에 쓴 말처럼 “해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끈질기게 마음을 괴롭히는 통에 결국 종이에 똑바로 써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는 사소하든 거창하든 틀림없이 문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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