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9년 07월 22일 |
---|---|
쪽수, 무게, 크기 | 336쪽 | 380g | 130*200*18mm |
ISBN13 | 9791196722005 |
ISBN10 | 1196722005 |
출간일 | 2019년 07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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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36쪽 | 380g | 130*200*18mm |
ISBN13 | 9791196722005 |
ISBN10 | 1196722005 |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내게 혹은 이 세계에 일어났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뭔가를 끄적이는 일이었다. (……) 그 문장들이 대답이 될 수 있을까? 『시절일기_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은 김연수가 지난 십 년간 보고 듣고 읽고 써내려간 한 개인의 일기이자 작가로서의 기록이다. 그 시간 안에서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속의 평범한 개인이자 가장이었고, 어쩌면 가장 치열하게 한 시대를 고민했을 사십대의 어른이었고, 지금-여기를 늘 들여다보고 고민하고 기록해야 하는 작가였다. 그는 끊임없이, 쓰는 일에 대해 고민하고 멈칫거리고 그리고 다시 쓰는 사람이다. 시를 발표하고 장편소설을 펴내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어느새 이십오 년, 그는 여전히 글쓰기라는 업業에 대해 묻고 또 묻는다. 그 질문하는 일이 그에게는 곧 ‘쓰기’인 셈이다. |
프롤로그 내가 쓴 글, 저절로 쓰여진 글 5 제1부 장래희망은, 다시 할머니 13 제2부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니라 망각 57 제3부 그렇게 이별은 노래가 된다 109 제4부 나의 올바른 사용법 151 제5부 그을린 이후의 소설가 221 참고문헌+ 302 ps 사랑의 단상, 2014년 305 |
이 책이 나왔을 땐 여름이었는데 그 사이 한 번의 겨울과 한 번의 여름이 지나고 다시 겨울이 되었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엔 새벽마다 산책을 하며 지기 직전의 달들을 보곤 했다. 이젠 추워져서 새벽 산책은 못 하지만, 대신 밤마다 덧창을 닫으며 달을 올려다본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집의 사면에 창문이 있는 건 큰 축복이다. 어디에서건 달을 볼 수 있으니깐.
봄밤과 여름 새벽, 가을 새벽과 겨울 밤, 달을 바라보는 마음이나 감정은 사뭇 다를 수 있지만, 그래도 그 기저에 있는 어떤 마음은 한결같다. 그것은 마치... 내가 밤길이나 새벽길을 걸어갈 때 내 뒤를 따라오거나 내 앞을 앞서가는 달을 보면서 느끼는 그런 마음과 흡사한데, 나는 그 마음을 김연수의 산문을 읽으면서도 느낀다. 고독한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 같은 느낌이랄까. 늘 고마운 마음.
김연수의 산문들은 언제나 힘과 위로가 된다.
2020년의 마지막 보름달은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다. 모두에게 힘든 한 해였겠지만, 덕분에 한 해를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좋은 기억으로 무언가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올해도 열두 번의 초승달과 열두 번의 보름달, 열두 번의 그믐달을 보게 될 것이다. 열두 번의 상현과 열두 번의 하현과... 그 사이사이, 구비구비에 수많은 질곡들이 숨어 있을 수도 있겠으나, 미리부터 겁먹거나 지레 두려워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우리가 함께 지나온 수많은 밤들처럼, 그 날들 역시 그렇게 지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강조점은 '우리'에 있다.
내가 어째서 김연수 작가의 문장을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읽다 보면 쓱 빠져들고 마는 매력이 그에겐 있다. 그렇다고 엄청난 묘사의 달인도 아니고, 코가 찡하게 감동적이지도 않은데. 그냥 덤덤하면서도 투박하게. 한 문장씩 툭 던지고 지나가는데 그 말에 매번 넘어간다.
김연수 작가를 처음 좋아하게 된 책은 <우리가 보낸 순간>이라는 산문집이었다. 이 책은 그가 아끼는 소설과 시에 자신의 감상을 덧붙인 것으로, 일기처럼 가볍게 썼다. 생각해보니 '가볍다'라는 게 김연수 작가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읽는 사람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 아주 어려운 말도, 엉뚱한 말도 잘 안 한다. 글이 걸어갈 수 있다면, 그의 문장은 사뿐사뿐 가벼운 걸음일 것 같다.
꾸준히 에세이를 써온 이 작가는 이번엔 지난 10년 동안의 기록을 내놓는다. 이 책은 특히 '불교'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나는 이런 책을 만나면 집중한다. 왜냐하면 보통 그런 경우, 작가는 심한 고통에 휩싸여 있다.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차 보이는 것이다.
김연수 작가도 이야기한다. 자신은 세계의 끝까지 걸어가 이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선인 이야기를 자주 떠올렸다고. 자신의 마흔 이후의 삶을 은유하는 것 같았이 때문이다.
우리는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 김연수 작가가 생각했던 그 선인도 세계의 끝에 이르지 못하고 도중에 죽고 만다. 그래서 그는 계속 생각했다. 이 세상이 이렇게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면 왜 우리는 살아야만 할까? 그는 지난 10년간 정말 힘들었나 보다. 에세이 주제로는 너무나 묵직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김연수 작가니까. 그 나름대로 이 문제를 부담스럽지 않게 잘 풀어낸다.
작가는 고통을 한 번 이해해보기로 마음먹는다. 그 길은 역시 '글 쓰기'였다. 이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일어났을 때, 세월호 사건과 촛불 집회 같은 일들이 벌어졌을 때. 그는 문장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면서 이 책을 완성했다. 이 책을 쓰면서 세계의 끝에, 고통이 없는 곳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세계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가벼워진 마음과 함께.
이 책의 주 테마는 '쓰기'다. 그것도 매일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 쓰기'다.
그는 일기란 '읽는 사람이 없는, 매일의 글쓰기'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자신조차 읽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써야 일기가 된다. 쓰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쓰는 행위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일기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인 것이다. 왜 과정일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글쓰기 과정을 통해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것은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 는 캐서린 맨스필드의 말처럼. 자기이해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 쓴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테마다.
나를 알아야 한다.
나를 알고 나의 의미를 아는 사람만이
세상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자주, 자신의 감정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슬퍼지고 힘들어진다.
우리가 이 인생에서 제일 먼저 배웠어야 하는 것은 '나'의 올바른 사용법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걸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걸 모르니 인생은 예측 불허,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던 것이다.또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다투고 그게 다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생 사용법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쓴다.
매일의 기록과 함께 우리 자신의 사용법을 기록한다.
주제도 없이 날짜로 이루어진 책의 구성은 새롭다.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예측이 안될뿐더러, 날짜도 뒤죽박죽이다. 방금 전엔 2017년에 있었는데 다시 2012년으로 돌아간다. 자유롭게 썼다. 그날그날 겪었던 일들, 전화 통화나 영화, 집 안 풍경이 나오기도 하고 끝부분엔 아주 짧은 단편 소설 같은 것도 실려 있다. 그 무렵, 나는 어땠었지..? 하면서 상상하며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일기는 자신만 보는 글인데, 작가가 쓰는 일기는 가끔 책으로 묶이기도 한다. 김연수도 열해 동안 쓴 일기를 이렇게 책 한권으로 묶었다. 열해 동안 썼으니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많았겠지. 무엇을 실을지 고르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겠다. 자신의 이야기는 빼고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것만 골랐을까. 아니면 뺀 일기도 다 이런 식일까. 여기 실리지 않은 걸 내가 어떻게 알리오. 남한테 알리고 싶지 않은 것도 썼겠지. 일기니. 그런 것도 빼지 않고 묶은 일기도 있을 거다. 그건 죽은 사람 일기일 때일 것 같다. 그것도 빼는 게 있겠지만. 누군가의 일기는 역사와 맞물리기도 한다. 많은 사람 삶은 잊히지만. 그게 뭐 어떤가 싶기도 하다. 자기대로 살다 가면 괜찮겠지.
오랫동안 일기를 썼지만 정말 못 썼다. 누군가한테 보여주려고 쓴 게 아니니 상관없지만. 일기는 쓰고 나도 거의 안 본다. 누군가는 그날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적는다고도 하던데, 나 그런 건 잘 안 쓴다. 별 일이 없어서 그렇기는 하구나. 어릴 때는 좀 다르게 써도 좋았을 텐데 그때는 그저 쓰고 싶은 걸 썼다. 누군가와 말하지 못해서 그렇게 일기에 썼을까. 어릴 때도 난 말을 못하고 안 했는데, 누군가와 좋아하는 것도 같이 말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은 그런 거 같이 얘기하기도 하던데. 왜 난 그러지 못했을까.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친구가 없어서였겠지. 그것뿐 아니라 난 내가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게 부끄러웠다. 그런 마음은 지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사람 부럽기도 하다.
앞에까지 쓰는 데 시간 많이도 걸렸다. 이 책을 읽고 할 말이 별로 없으면서 쓰려 하다니. 이런 나 좀 우습구나. 책을 읽고 나면 늘 그렇다. 책을 보면 마음에 드는 부분을 조금 만날 때도 있지만, 끝까지 보고 나면 잊어버린다. 여기에서는 마음에 들었다기보다 인상 깊었던 게 있다. 그건 세월호와 상관있는 이야기다. 그 일이 있고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하는 걸 생각하니 좀 슬펐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나고 많은 목숨이 졌다. 지금 바로 돈을 아끼기보다 안전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 일이 있고 한국은 바뀌었을까. 그렇지 않은 듯하다. 여전히 사람 목숨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경쟁도 줄지 않고. 어떤 일이 일어난 다음에 아쉬워하면 늦는다. 목숨이 걸린 일은. 이런 말을 하는 나도 안전을 늘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조심하기는 하지만. 2014년 4월 16일 잊지 않고 같은 일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텐데. 여전히 그 시간에 멈춰 있는 사람 많겠다.
지금은 덜 할지 모르겠지만 옛날에 글을 쓴 사람은 그리 잘 살지 못했다. 하이쿠를 쓴 고바야시 잇사도 어릴 때부터 힘들었다. 어머니는 일찍 죽고 새어머니하고 잘 지내지 못했다. 나이를 많이 먹고 결혼했는데 아이가 다 죽는다. 네번째 때는 아내도 죽는다. 예전에는 아이가 죽는 일이 많았다지만, 그렇게 다 죽다니. 고바야시 잇사는 그래도 시(하이쿠)를 썼다. 그렇게 글을 쓰고 살 수밖에 없었겠지. 사는 건 괴로운 일이다.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런 건 한순간이다. 괴로움이나 아픔은 지금 삶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면 언제 사라질까. 죽으면 사라지겠지. 그렇다고 좌절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순간의 기쁨은 찾아올 테니. 고바야시 잇사는 힘든 일이 더 많았지만 기쁨을 느낀 순간도 있었겠지. 그랬기를 바란다.
김연수가 쓴 일기는 보통 일기는 아닌 듯하다. 그런 건 뺐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쓰는 일기는 이런 게 아니다. 이 말은 앞에서도 했구나. 일기와는 다르게 날마다 글을 써야지 하고 쓰기도 했는데, 이제는 날마다 안 쓴다. 그래도 날마다 뭔가 쓴다. 그걸 써도 글은 별로 늘지 않고 쓸 게 떠오르지 않는구나. 이 책을 보고 글쓰기를 생각하다니. 소설이나 시를 보는 것도 생각했다. 자꾸 나빠지는 세상에서 자신을 지킬 방법은 그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신인지 남을 생각하는 마음일지. 남을 생각하는 마음도 중요하다. 세상이 나빠져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세상이 조금 따듯해지지 않을까. 사실 난 왜 세상은 나빠지기만 할까 하는 생각 별로 못했다. 그런 생각은 안 했지만 조금 느낀 것 같기는 하다. 세상이 무섭다고 생각했구나. 지금 세상은 무척 빠르다. 여유를 가지면 좋을 텐데. 좀 느리면 어떤가. 자기 속도대로 살면 좋겠다. 내가 느려서 이런 말을.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