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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보이는 것들

아프면 보이는 것들

: 한국 사회의 아픔에 관한 인류학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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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8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494g | 145*225*30mm
ISBN13 9788964373804
ISBN10 8964373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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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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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3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아픔은 온 세상이 몸 하나로 위축되는 경험이라고 한다. 이 책은 일상에 가려져 있던 아픔의 현장을 드러내기 위해 쓰였다. 흙 밭 위 줄기들을 따라가 감자 덩굴을 캐내듯, ‘아픔’ 속에 엉켜 있던 관계들을 끄집어내어 인류학의 시선으로 풀어헤쳐 보고 싶었다. 이렇게 아픔의 현장을 대면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관계들이 보인다. 이는 기존의 아픔과 건강에 대한 개념들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이 책은 아픔을 수사하고 설명해 온 기존의 언어와 개념들에 대해, 그것의 바탕을 이루는 인식론적·존재론적 가정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비판하고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 「서문」 중에서

의료화에서 낙오된 이들은 치료 중에도 자신의 증상이 부정되고 의료 현장에서 배제되는 것을 경험한다. 산후풍 서사 분석을 통한 증상의 세분화와 통합적 이해가 필요하다. 산후풍이라는 병으로 자가 진단한 여성들은 이를 불치병, 난치병으로 간주하고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혼재되어 있는 많은 증상을 구체적으로 세분화해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과거에는 난치였지만 점차 치료 가능한 증상이 있을 수 있고, 민간 의료 지식에 따른 자가 진단이 오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의원을 제외한 일반 병원에서는 산후풍이라는 병을 인정하지 않는다. 환자가 내원하면 임상적 검사를 거쳐 발견된 증상을 개선하기 위한 대증요법적 치료가 이뤄질 뿐이다. 이 과정에서 산후풍이라는 병명은 사라지고, 혈액순환 장애, 근육통, 관절통, 갑상선 기능 저하증 같은 생의학의 범주로 떼어 분류되며, 이에 따른 치료가 이뤄진다. 환자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무시되고, 정신적 문제로 치부돼, 자신의 고통이 부정된다고 느낀다.
--- 「산후풍의 바람風, 그리고 바람望」 중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최초 출시되었던 1994년부터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이 알려진 2011년까지 17년이 흐른 후에야, 피해자들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던 과거를 사후적으로 추적해 가면서 재난을 다시금 파편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부모 피해자들에게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 공식적인 피해 인정 여부와는 별개로, 과거에 이미 어떻게든 이해하고 수용했던 자녀의 아픔 혹은 죽음을 새롭게 받아들여야 함을 뜻했다. … 2009년 딸의 죽음 당시 김경환 씨 부부는 갓난아기의 죽음은 그 원인을 밝히기보다 ‘부모의 가슴에 묻는’ 것이 바람직한 애도라는 생각으로, 의료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부검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훗날 자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신청 준비를 위해 의무 기록을 모으고 정리하면서, 과거의 그 선택을 후회하게 됐다. 부검을 하지 않아, 어쩌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죽음일 수도 있다고 추리할 수 있는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부모이자 피해자로 살아가기」 중에서

결국 한국 사회에서 HIV에 대한 낙인이 마땅히 자연스러워지는 동안 이에 대한 사회정책은 변화의 계기를 한 번도 제대로 가져 보지 못했다. 특정 시민에게 수치와 모욕을 주는 폭력이 마치 도덕적·종교적 신념인 양 행해지는 동안, 우리는 HIV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전염성 질환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더욱 키워 냈다.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또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경험한 패닉과 부조리한 대응은 한국 사회가 HIV와 AIDS를 다뤄 온 방식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어서 감염자를 찾아내서 격리부터 하라는 요구, 감염자는 반드시 그럴 법한 문제가 있는 사람일 거라는 편견, 따라서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솎아 내면 사회는 다시 안전해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 그리고 질병과 고통의 경험을 스캔들화하는 언론의 태도는 HIV와 AIDS를 통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전염병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 「당신이 내게 남긴 것」 중에서

병원에서 이뤄지는 난임 치료는 정상적으로 발휘되지 못한 생식기능의 회복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애초 난임이 문제 삼고 있는 ‘아이의 부재’를 해결하는 것을 치료의 최종 목표로 두기 때문이다. 임신에 관여하는 측면을 다양하게 보았을 때는 몸이 건강해도 난임이 해소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임신이 세포 단위의 조합 결과로 인식되는 오늘날의 아이 없음은 온전히 비정상적인 몸의 직접적인 결과가 되는 셈이다. 결국 의료가 해소하고자 하는 것은 난임으로 드러난 몸의 질병이 아닌 아이의 부재 그 자체이므로 검사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경우에도 임신과 출산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때까지 당사자는 난임 환자로 규정된다. 아이가 없는 상황 자체가 의료적 개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의료적 문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 「아이 없음의 고통」 중에서

유전자 수준에서 발생한 미세한 변이는 그의 삶의 궤적에 있어서 중대한 변곡점이 되었다. 그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상실로 가득하다. 그가 응급실에 실려 가고 오랜 입원 뒤에 집에 돌아와 보면, 그의 집은 이전보다 더 작아졌고 열악해졌다. 전세에서 사글세로, 사글세에서 월세로, 방 두 개에서 한 개로. 그는 가족이 운영하던 슈퍼에서 과자를 즐겨 먹었지만, 그가 퇴원했던 어느 날 그 가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자기 가족에게 자신이 경제적 부담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의 엄마는 아픈 몸을 가진 자식을 낳았다는 죄책감에 그를 더 자상하게 돌봤고 보호했다. 그의 삶은 미래로 뻗어 나가는 희망의 진보가 아닌, 질병과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만 남은 것처럼 느껴졌다. … 그가 청소년기를 보낸 1990년대 한국은 희귀난치성 질환자와 그 가족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했다. ‘전 국민 의료보험’이라는 슬로건에도 불구하고, 입원비의 상당 부분은 환자들의 본인 부담금으로 채워져야 했다. 많은 가정들이 의료비로 인한 파산으로 가난의 경계선을 넘나들어야 했다. 1990년대 후반의 경제 위기는 많은 한국인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잃고 재정적 파탄을 경험하게 했다. 한국의 경제 침체와 사회복지 체제의 미비는 그의 신체적 취약성과 가정의 경제적 취약성과 맞물려, 그의 질병 경험을 더욱 악화시켰다.
--- 「한 희귀난치 질환자의 삶과 연대」 중에서

한 죽음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판단할 때 사망 장소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병원의 다인실은 그다지 좋은 죽음의 장소가 아니다. 보다 사생활이 보장되고 가족들과 조용히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으며, 가족들이 안심하고 애도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나서 운이 좋으면 병원 내 마련된 “임종실”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때 병원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환자가 사망하면 그 또한 좋은 죽음이 되기 어려우므로 앰부배깅 등을 통해 환자가 임종실로 이동할 때까지는 생명 유지를 하는 것이 병원 내부의 가이드라인이다. C 역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숨을 붙여 놓는” 기술적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인턴이라는 의료 인적 자원에게 그것을 시키는 것이 옳은가는 논란이 있었다. 이처럼 환자 및 가족들이 원하는 것의 핵심은 연명의료의 중단이냐 유지냐가 아니라 적절한 장소에서 죽을 수 있는가의 문제일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은 연명의료결정법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 「법이 결정해 주지 못하는 것들」 중에서

의료 시장 내 경영 논리 및 포괄수가제의 저가형 체제 보존을 위해 저임금 노동력이 선호되는 맥락과 ‘간병’업무의 특성상 한국어 소통이 중요하게 인지되는 맥락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전제에서 간병 인력의 대안으로 급부상한 대상이 바로 조선족 간병사들이었다. 이런 수요는 조선족들에게 열린 방문취업제 시행(2008)의 공급 정책과도 잘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 「돌봄 노동과 생명정치」 중에서

국민국가 의료 체계 속 헤게모니적 생의학은 근대성과 연결되어 작동한다. 근대라는 시대를 관통하는 의료의 이런 존재 방식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과도한 건강 담론, 건강 염려증, 질병 관련 서사들, 정상과 비정상의 몸을 구분하는 방식, 제도, 체계 등 한국 사회에서 드러나는 의료 관련 문제들은 이런 역사적·권력적 맥락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논의하는 의료와 고통의 문제들 또한 이런 맥락 위에서 바라본다면, 시대적·정치적 흐름 위에서 그런 문제들을 읽어 낼 수 있을 것이다.
--- 「의료화된 근대성과 일상화된 의료화」 중에서

세월호 참사는 책임 당사자들의 무능력과 책임 회피를 반복적으로 겪으며, 우연적이고 어쩔 수 없는 경험으로서의 ‘사고’가 아니라 사실 확인과 해석이 요구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피해자 당사자뿐만 아니라 국민 대다수에게 더욱 끔찍한 고통과 아픔을 주었다. 세월호 참사의 고통은 어쩔 수 없는 개인적 문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제도적이고 정치 공학적인 요인에 의해서 배가되고 강화되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사회적 고통이었다.
--- 「무엇이 사고를 사회적 참사로 만드는가」 중에서

개인이 겪는 아픔이나 기능적 부진 자체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와, 그런 상황을 장애로 개념화하고 범주화함으로써 발생하고 경험되는 문제는 서로 다른 층위에 있다. 그러나 장애 개념은 여전히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파악하기 때문에 원인을 가진 이들의 주변이나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찰하기보다는 개인들이 이 사회에서 어떤 조건을 갖추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오히려 ‘정상적인’ 개인에 대한 허상적 기대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 개념은 개인의 문제를 설명해 주는 듯 보이지만 정작 개인이 경험하는 문제를 가리고, 개인을 고립시키는 모순을 낳는다. … 장애는 어떤 사람의 인격의 다양한 면을 모두 가릴 만한 요소가 아니며, 그렇다고 그 사람의 문제를 모두, 적확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도구도 아니다.
--- 「나를 설명하지 못하는 이름표」 중에서

단순히 성관계를 피하라는 조언은 무엇이 여성의 성적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실천이 필요한지 말해 주지 않는다. 콘돔을 둘러싼 상황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을 때 그 해결책이 남성과 성관계를 금지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성관계를 중단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여성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이성애 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권력관계의 문제나 폭력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섹스를 하지 않아야 한다’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라는 조언을 넘어서, 성적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기 어려운 조건을 구성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 「성매개감염이 말해 주는 것」 중에서

복지도, 민주화된 제도도 없었던 상황에서, 전후 한국에 의료화보다 먼저 상륙했던 것은 반공과 국가주의 질서였고, 낙인을 해소하고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반공 국가주의에 순응하는 ‘성스러운/국가화된 몸’을 체화하며 ‘원호’와 ‘보훈’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 유공자와 장애인 집단으로 대표되는 ‘민주화’와 ‘보편적 복지’의 이념이 ‘손상된 몸’을 둘러싼 상징 투쟁의 장에 새롭게 등장하며, 상이군인들이 체화했던 국가주의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 「‘성스러운 몸’과 ‘무의미한 몸’」 중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흡연의 의학적 해로움은 그 여성이 어디에 존재하느냐와 상관없이 동일하지만, 여성 흡연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콜센터라는 특정한 공간으로 들어갈 경우 해체되는 경향을 목격했었다. 고용주 측은 과다한 감정 노동에 따른 상담사들의 탈진된 감정 상태를 회복시키는 데 흡연 습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평균적인 여성 성인 흡연율이 콜센터 밖에서는 7퍼센트 정도인 데 반해, 콜센터 안에서는 40퍼센트에 육박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콜센터가 여성 흡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유예되는 하나의 ‘오염의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오염의 경계선 찾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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