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12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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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28쪽 | 270g | 120*170*17mm |
ISBN13 | 9791190382540 |
ISBN10 | 1190382547 |
발행일 | 2021년 12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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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28쪽 | 270g | 120*170*17mm |
ISBN13 | 9791190382540 |
ISBN10 | 1190382547 |
들어가는 글 잊고 있어서 멈춘 건 아닐까 1부 산소통 울지 않는 사람 눈 함께, 오를 수 있는 만큼 무제 품 용기 무제 오늘은 눈이 펑펑 내렸고 성탄절 CANON AUTOBOY 3 WATERMAN EXPERT 무제 무제 곁 THRRE D’HERMES 어린이에게 받은 것들 시월 일력 오늘 본 나무들은 모두 트리 같아 무제 무제 엄마 지구는 둥글잖아요 아인슈페너 무제 무제 입원 시월 텔레파시 착실하게 행복하지 않아도 되니 나는 이제 작은 생각을 벗어던지고 칠월 미안해 뉘앙스 2부 첫 행 이곳이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악기 SM3 「발레」 무제 , 일요일 秋分 모스끄바, 내가 곧 갈게 굼 선택 무제 무제 볕 다인실 무제 몸과 마음의 건강 동시를 쓰게 되었어 북유럽소년 친구 ☆♡ 병원 건축 너무 늦었지만 하루 다섯 가지 색깔 안녕, 모스끄바 겨울은 겨울의 일정 시와 편지와 기도 무제 시인 무제 크루아상 무제 메스로 쓴 시 3부 어떤 날 친절 poet 긴 별자리 겨울이 오기 전엔 약속을 빼곡히 잡고 열심히 무제 파도 구월 에스프레소 일력 다녀왔어요 무제 COS에서 만나 93.1 투고 부럽지도 부끄럽지도 않게 비눗방울 삼촌 신인 만일 오월 FREITAG, 행운의 쓰레기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가까이 멀리 위로 조망하는 자연 설익은 말이 나가는 계절 꿈틀꽃씨 요즘의 행복은 택배로만 도착한다 말 작가 일부 4부 모스끄바 용무 없는 전화 곧 푸른 꿈 제철 과일 환자복 호더 연희 사람 연말 무제 멀리에서 온 것들은 왜 이리 아름다운지 이름을 알게 되는 일 아부 슬픈 일이 많았지만 평일의 생일 이인삼각 이기려 하지 마 COVID19 이후의 삶 하얀 격과 결 소서 조카의 주황띠 무제 안녕 단 하나의 여전히 마지막 행 오늘의 것 다시 만나지 않아도 되니 나가는 글 파주 |
<뉘앙스>를 읽고
겨울은 유독 다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계절이다. 전혀 모르는 타인일지라도 차가운 공기와 매서운 바람이 오늘도 어디선가 숨쉬며 또 하루를 사는 사람들의 체취를 전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잠시 벗어놓은 외투나 장갑처럼 느껴지는 에세이(산문집)를 읽는다는 것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을 시작으로 내가 서 있던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 타인의 낯선 삶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점점 그들 곁으로 한 발씩 더 다가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가 간결하고 함축적인 언어로 지어진 집이라면, 시인은 목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목수의 삶의 태도가 고스란히 녹아든 집을 잘 둘러보기 위한 첫걸음은 목수의 언어로 그와 대화를 시도해보는 것이리라. <뉘앙스>는 성동혁 시인이 쓴 첫 산문집이다. 지금까지 그가 누구인지 몰랐고, 그의 시도 접해본 적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불현듯 알고 싶어졌다. 시인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가고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방식으로 삶을 대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연유에 그의 시에도 한 뼘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책을 집어 들었다.
뉘앙스. 사랑할 때 커지는 말, 뉘앙스. 네모였다가 물처럼 스미는 말, 뉘앙스. 더 많이 사랑해서 상처받게 하는 말, 뉘앙스. 아무 말 하지 않고도 모두를 말하는, 뉘앙스. 온도, 습도, 채도까지 담고 있는 말, 뉘앙스.(67쪽)
사람과 사람이 말을 나누는 사이에 '뉘앙스'는 서로의 말들을 살찌우며 미소짓게도 하지만, 때때로 고삐 풀린 말처럼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데려다 놓기도 한다. 성동혁 시인이 건네는 말들에는 그만의 감수성이 담긴 뉘앙스가 묻어나는데, 곧 그의 삶을 이루는 것들임을 알게 되었다. 그를 시인이 아닌 에세이스트로 먼저 만나긴 했지만, 그의 글을 읽는 동안 시와 에세이의 경계를 오가는 듯한 미묘한 차이, 즉 뉘앙스가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인의 말들을 하나씩 음미하면서 그와 그의 작품 세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본다.
어릴 적 소아 난치병으로 다섯 번의 대수술을 치른 그가 여섯 번째 몸으로 쓴 첫 시집의 제목은 『6』이다. 자기 몸에 난 수술 자국들을 보며 자신의 시는 곧 '메스로 쓴 시'라고도 말하는 그는 숨이 찰 때 바로 산소를 마실 수 있도록 집에는 산소발생기를, 차에는 산소통을 준비해두고 있다. 겪어보지 않고는 그 고통과 슬픔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우주인과 잠수부처럼 자신도 산소통을 메고 이 세상을 유영중이라는 그에게서 천연덕스러움과 의연함을 같이 발견할 수 있었다.
산을 오르기 전 우리의 목표는 정상이 아니었다. 우린 '함께', 우리가 '오를 수 있는 만큼'만 오르자 했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한 정상이었다. 생각해 보면 친구들과의 시간이 그러했다. '함께', '할 수 있는 만큼'(19쪽)
그에게 친구는 손이자 발이다. 학창 시절부터 그를 업고 그와 함께 걷고 짐을 들어 주며 현재까지 오게 만든 친구들과 마침내 2016년 시월에 난생처음으로 산에 오른, 정확히는 친구들에게 업혀 오른 그날의 감동을 그는 잊지 못한다. 응급실과 병실을 가리지 않으며 그를 지켜 주던 친구들이 집에 왔다갈 때면 그들이 두고 간 빛으로 일주일은 너끈히 지낼 수 있다는 그가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을 가득 담아 「나 너희 옆집 살아」라는 시를 쓴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흰 나무 사진을 보고 나서였을까. 읽지도 못하는 러시아어 시집을 선물받았을 때부터였을까. 그곳의 첼로 소리를 들은 후였을까. 부르는 것만으로 온통 하얗게 뒤덮이는 땅, 모스끄바.(87쪽)
이토록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친구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한사코 말린 시인의 꿈이 있다. 바로 모스크바 붉은 광장 안에 있는 까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는 것이다. 혹독한 날씨의 겨울은 그의 몸과 마음을 가장 위축들게 만드는데, 그러한 겨울을 닮은 모스크바를 꿈꾸는 시인이라니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러시아 태생의 현대 화가 alex kanevsky가 그린 작품이 책표지에 사용된 것도 어쩌면 그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또 하나 시선을 끌었던 그의 꿈은 다름 아닌 춤이다. 그 어떤 예술보다 그의 몸과 마음을 들썩이게 만들았기에 안무가 선생님과 무대를 그리며 연습한 적이 있다. 선생님이 산소통을 메고 움직였고, 그는 산소통에 연결된 호스로 산소를 마시며 잠깐씩 움직이고 오래 숨을 고르면서 말이다. 그의 안무 노트이기도 한 「발레」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연작의 시들을 통해 말(언어)로 노래하는 것을 넘어 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진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과연 그는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룰 수 있었을까?
화자와 청자의 경계가 모호한 말이 필요하다면, 그 말은 위로가 되길. 함께 어울리며 함께의 공간이 함께 운동하며 밀려가며 괜찮아지는 것. 뚜렷한 방향보다는 커다란 굴레가 생겨 함께 머무는 것. 괜찮아? 괜찮아. 부호가 필요 없는 곳. 괜찮아(81쪽)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휴식, 즉 잠시나마 쉬어가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가쁜 숨을 고르고 다음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고 비축하는 시간 말이다. 어쩌면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문장부호가 ','는 아닐까. 글을 쓰면서, 혹은 일상을 유지하면서 그 누구보다 쉼표의 의미와 중요성을 절실하게경험해왔기 때문이다. 그에게 쉼표는 곧 숨표일지도 모르겠다. 문학과 일상의 세계에서 숨을 고르며 생각한 말들, '격, 결, 곁'의 뉘앙스를 곱씹어보게 된다.
곁을 지키는 일은 힘들다. 한 사람의 언저리에 낮은 의자를 가져다 놓는 일. 그것은 사랑의 다른 말 아닐까.(37쪽)
사람과 가까워지는 속도는 가끔 사람과 멀어지는 속도가 되기도 한다. 가까워질 때 못 본 모습을 뒤늦게 보게 될 때가 있다. 가깝다고 그것을 잊을 때 사람은 그 속도로 멀어진다. 나의 아름다운 친구들이 얼마나 서로의 결을 살피고 소중히 하는지, 격을 갖추고 대하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214쪽)
언젠가 출간된 선생님의 새 시집에 적힌 '성동혁 신인에게'라는 안부를 보면서 한 때 신인이었을 그는 '신인은 시인과 참 가까운 말'임을 깨닫고 계속 신인의 자세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또한 비눗방울 장난감을 사 줬던 조카에게서 비눗방울 삼촌이라고 불리는 그가 비눗방울처럼 자주 방울지다가 터지는 존재임을 자각하기도 한다. 그의 인생을 순간 포착할 수 있다면 이보다 절묘한 표현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다시 그 뉘앙스를 되짚어 본다면 결코 그에게만 국한된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도 제각각의 이유로 신인의 자리에 서기도 하고, 비눗방울처럼 영글었다 깨지는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책을 덮으며 시인과 나의 세계가 잠시 겹쳐지는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그동안 내가 말하고 또 들었던 설익은 말들이 시인 덕분에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다. 앞으로도 그가 사는 집을 찾아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일기도 한다. 아울러 그처럼 시집의 문을 살포시 열어 독자를 맞아주는 시인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새벽이 되면 아무도 안부를 묻지 않는다. 긴 안부는 잠을 깨우고 생활을 망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들지 않는 사람들은 안부 없이도 또박또박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눈이 많이 온다. 창을 열면 눈이 발등까지 떨어진다. 하늘이 온통 안부 같다.” (p.17)
해가 저물어간다. 하루해가 저물고 또 하루해가 저물다 보니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물어야 할 안부들이 한 움큼인데 한 해가 다 가도록 움켜쥔 주먹을 아직 펴지 못하고 있다. 부스스 고개를 들면 중천이라서 그만 다시 고개를 처박곤 하던 시절도 있었다. 게으름은 떡진 머리를 타고 내려 축 처진 어깨에 가 닿았다. 얼마전 후배에게 말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게을러져야 해, 그게 도리야.
“문학을 삶의 전부처럼 대하는 사람보다, 일부로 여기는 사람에게 마음이 더 기운다. 그저 삶을 꾸리는 데 문학이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축복일까. 그러니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장과, 떠나지 않은 풍경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괴로움으로만 두지 않길 소망한다. 더 적확하고 풍성한 글을 쓰기 위한 과정으로 여기고 싶다. 삶이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p.32)
한 해가 저물어가면서 속으로 카운트를 하고 있다. 마지막 하루해가 다가올수록 DIARY 2021 이라고 제목을 붙인 파일 옆의 크기를 슬쩍슬쩍 확인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크기는 598KB 이다. 작년의 387KB 이나 재작년의 462KB 보다는 확실히 커졌지만 그 전해인 2018년의 612KB 에는 조금 못 미친다. 나는 조금만 더 분발하기로 한다. 아직 내게는 3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뉘앙스. 사랑할 때 커지는 말, 뉘앙스. 네모였다가 물처럼 스미는 말, 뉘앙스. 더 많이 사랑해서 상처받게 하는 말, 뉘앙스. 아무 말도 하지 않고도 모두를 말하는, 뉘앙스. 온도, 습도, 채도까지 담고 있는 말, 뉘앙스.” (p.67)
실루엣이라는 단어와 함께 뉘앙스라는 단어도 좋아한다. 실루엣이라는 단어에서는 고등학교 시절의 강릉 여행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아한다. 저물어가는 해를 배경으로 엿보았던 빳빳한 천 너머로 비친 여인의 실루엣을 여태 기억한다. 뉘앙스는 어떤 것도 명확하게 수습하고 있지 않은 단어라서 좋아한다. 대신 뉘앙스라는 단어를 통하여 나는 무엇이든 수습하는 자유를 누리곤 하였다.
“오월이에요. 생일이 지났고 장미가 넘어오는 담벼락이 보여요. 담 안에 행복이 있는지 담 밖에 행복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장마가 넘어오는 오월이에요. 담이 무슨 의미겠어요. 장미가 넘어오는 오월인데.” (p.161)
과거에 오월은 내가 마냥 좋아하는 계절은 아니었다. 팔에 커다란 화상의 상처를 가진 나는 반드시 반팔을 입게 되는 유월이 오기 전인 오월에 미리 조마조마해지곤 하였다. 어쩌면 유월보다 오월이 더 싫었는데, 월요일보다 일요일이 더 싫은 직장인의 마음 같았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오월을 꽤나 즐기게 되었다. 올해 오월에 나는 아내와 함께 강릉에서 자전거를 타고 정동진으로 달려갔다가 자전거를 타고 다시 강릉으로 되돌아왔다.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자는 새벽이다. 녹음기를 켜고 녹음한 문장들을 공책에 옮겨 적고 의자를 뒤로 젖히고 쉬어야 한다. 그 호흡이 시와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오늘 모두 옮겨 적지 못하면 내일 적어야 한다. 내일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는 문장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결심은 거창해진다. 오늘의 것이 내일의 것을 잘 만났으면 좋겠다. 휘발될 것들을 휘발되고 침전되어 있는 것들이 미세하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결국 남는 얼굴과 풍경과 문장. 그것이 시가 아니면 무엇일까.” (p.223)
나는 책을 읽고 몇 개의 문장을 옮겨 적을 때마다 작은 평화로움을 느낀다. 복기의 과정은 첫 번째의 설렘에서 벗어난 안도를 제공하고는 한다. 나는 그제야 집중에서 풀려날 수 있다. 뉘앙스나 실루엣이나 설렘이 내가 좋아하는 단어라면 콤플렉스는 한때 갈구하였으나 이제는 좋아하지 않게 된 단어이다. 《뉘앙스》의 저자 성동혁은 시인이다. 어딘가 아픈데, 굉장히 좋은 친구들을 옆에 두고 있다.
성동혁 / 뉘앙스 / 수오서재 / 227쪽 / 2021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