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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

뉘앙스

: 성동혁 산문집

리뷰 총점9.8 리뷰 25건 | 판매지수 7,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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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270g | 120*170*17mm
ISBN13 9791190382540
ISBN10 119038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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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들어가는 글 잊고 있어서 멈춘 건 아닐까

1부
산소통
울지 않는 사람

함께, 오를 수 있는 만큼
무제

용기
무제
오늘은 눈이 펑펑 내렸고
성탄절
CANON AUTOBOY 3
WATERMAN EXPERT
무제
무제

THRRE D’HERMES
어린이에게 받은 것들
시월
일력
오늘 본 나무들은 모두 트리 같아
무제
무제
엄마 지구는 둥글잖아요
아인슈페너
무제
무제
입원
시월
텔레파시
착실하게
행복하지 않아도 되니
나는 이제 작은 생각을 벗어던지고
칠월
미안해
뉘앙스

2부
첫 행
이곳이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악기
SM3
「발레」
무제
,
일요일
秋分
모스끄바, 내가 곧 갈게

선택
무제
무제

다인실
무제
몸과 마음의 건강
동시를 쓰게 되었어
북유럽소년
친구
☆♡
병원 건축
너무 늦었지만
하루 다섯 가지 색깔
안녕, 모스끄바
겨울은
겨울의 일정
시와 편지와 기도
무제
시인
무제
크루아상
무제
메스로 쓴 시

3부
어떤 날
친절
poet
긴 별자리
겨울이 오기 전엔 약속을 빼곡히 잡고
열심히
무제
파도
구월
에스프레소
일력
다녀왔어요
무제
COS에서 만나
93.1
투고
부럽지도 부끄럽지도 않게
비눗방울 삼촌
신인
만일
오월
FREITAG, 행운의 쓰레기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가까이
멀리
위로
조망하는 자연
설익은 말이 나가는 계절
꿈틀꽃씨
요즘의 행복은 택배로만 도착한다

작가
일부

4부
모스끄바
용무 없는 전화

푸른 꿈
제철 과일
환자복
호더
연희
사람
연말
무제
멀리에서 온 것들은 왜 이리 아름다운지
이름을 알게 되는 일
아부
슬픈 일이 많았지만
평일의 생일
이인삼각
이기려 하지 마
COVID19 이후의 삶
하얀
격과 결
소서
조카의 주황띠
무제
안녕
단 하나의
여전히
마지막 행
오늘의 것
다시 만나지 않아도 되니

나가는 글 파주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내가 울면 엄마도 우는구나. 침대차에 실려 수술실로 가는 복도.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는데 엄마의 얼굴이 그렁그렁 모두 떨어질 것 같았다. 그건 내가 지금까지 본 얼굴 중에 가장 크고 슬픈 얼굴이었다. 덕분에 난 울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눈물을 흘리면 그때의 크고 그렁그렁하던 엄마의 얼굴이 다시 쏟아질 것만 같아, 나는 참는 아이가 되었다.
--- p.12, 「산소통」 중에서

낮 밤이 바뀌었다. 고요한 시간이 늘었다.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 그래서 말을 자주 적어 놓는다. 만나면 하지도 못할 말을 적어 놓는다. 혼자 하는 이야기는 너무 일방적이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모두 쓸모없는 말이다. 지구본은 참 작은데 당신은 너무 멀리 있는 것 같다.
--- p.35, 「무제」 중에서

곁을 지키는 일은 힘들다. 한 사람의 언저리에 낮은 의자를 가져다 놓는 일. 그것은 사랑의 다른 말 아닐까. 그것은 희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곁을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을 두고 이곳에 왔다. 혹 내가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 나의 의자가 안 보일 때 나는 어떠한 죄를 짓는 것일까. 그들의 곁, 곁을 지키고 싶다.
나의 슬픔은 병실이 비좁아서가 아니다. 나의 병실이 당신이 있는 곳까지 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린 미안하고 그리워하다 끝이 날 것만 같다.
--- p.37, 「곁」 중에서

어떤 사람은 그런 말을 했다. 쓸 것이 병밖에 없냐고. 나는 아직, 함께 병을 재우고 깨우던 아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시간이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 내 시가 파생된 곳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던 곳이다. 그곳에서 비슷한 기도를 하던 아이들이 나의 시를 쓴다.
아이들의 얼굴을 모두 잊고, 더불어 나와 아이들이 병 밖에 있을 때 나는 시를 쓰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그렇게 되는 날부터 나는 시를 버리고 아이들과 하루 종일 뛰어다닐 것이다. 숨이 차지 않는 곳에서,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환자복이 아닌 알록달록한 옷을 나눠 입고.
--- p.73, 「악기」 중에서

많은 장애인이 죽음으로, 투쟁으로 이뤄 놓은 것들 위에서 살고 있다. 감사하다는 말도 적절치 않고, 죄송하다는 말도 적절치 않다. 적절한 말을 찾기 어렵다. 어떤 시도, 글도, 이런 삶 앞에선 침묵케 한다.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그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 우리가 이렇게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 p.79, 「SM3」 중에서

오랫동안 견디는 삶을 살았어. 많은 힘이 그곳에 쓰였어. 고통을 견디는 것. 나 대신 주변 사람들이 꾸준해졌어. 그 근육으로 나를 업고 나를 들고 나를 위해 뛰었어. 그러나 이제는 그러면 안 돼. 그러기엔 그들의 약해진 얼굴이 보이고, 약해진 근육들이 느껴져. 그럴 순 없어.
홀로 해야 하는 것들의 범위를 늘리려 노력하고 있어. 단순하고 당연한 것들의 범위를 늘리려 하고 있어. 그 누구도 그것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
--- p.99, 「동시를 쓰게 되었어」 중에서

가끔 약속 장소에 땀을 흘리며 들어오는 친구들이 있다. 난 그들이 자리에 앉아 시원한 커피나 음료를 시키는 것만 봐도 기쁘다. 열심히 걸어 나를 만나러 왔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나 대신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길을 걷지 않고도 갇히지 않았다. 자신의 발 위에 나를 얹고 걸었던 사람들 덕분에 이미 많은 길을 걸은 기분이다.
--- p.117, 「무제」 중에서

사람이 지나가면 많은 종류의 감정이 남는다. 머문 시간에 비해 많은 슬픔을 남기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기억이 안 날 만큼 휘발된 얼굴 또한 많다. 무엇이 나의 삶에 더 많은 부분이었는지 간단히 설명할 순 없다.
그저 어떤 시간과 풍경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나의 기록 방식은 양과 비례하지 않는다. 한 문장이 된 시간이 있기도 하고, 한 권의 책이 된 시간도 있다. 감정만 남긴 시간은 더더욱 많다.
--- p.223, 「오늘의 것」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이 책이 세상의 곳곳에서 작은 구원을 가져다주리라고 나는 믿는다.
- 최은영, 소설가

그의 슬픔은 차고 맑다. 문장은 첫눈 같다.
책장을 넘기면 아름다운 말들이 녹아내릴 것 같다.
- 박연준, 시인

성동혁 시인의 견고한 분투 앞에서 위태로운 것은 오히려 세계다.
-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

『6』, 『아네모네』 시인 성동혁의 첫 산문집
“문장은 나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담기엔 너무 협소하다.”


2011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6』, 『아네모네』를 펴낸 시인 성동혁의 첫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등단한 지 10년 만이다. 성동혁 시인은 어린 시절 다섯 번의 대수술을 받았다. 소아 난치병 환자로 병동에서 긴 시간을 보냈으며 여전히 투병 중이다. “사는 데 꼭 필요한 요소가 꾸준함인 것”같다지만, 그에게 꾸준함이란 벅차기만 한 이름이다. 조금 애쓰면 그보다 더 많이 쉬어야 하는 그는 자신만의 호흡과 걸음으로 『뉘앙스』를 완성했다.

시와 다를 것 없는 삶을 사는 그에게는 삶이 곧 슬픔이었다. 차갑고, 무겁고, 막막한 시간을 가만히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몸으로 많은 불가능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성동혁 시인은 이내 곧고 말간 눈으로 이야기한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란 말을 두 눈 가득 꾹꾹 담아 보여 주던 나의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한 “슬픈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그의 곁에는 시월이 왔음을 알려주는 다정한 친구가 있고, 대신 걸음을 옮기는 사려 깊은 사람들이 있고, 병상 보조 침대에서 곁을 지키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같은 병동에서 하트 모양 스티커를 건네는 반짝이는 어린이가 있다. 이 책은 그렇듯, 시인의 삶 곳곳에서 곁에 자리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네모를 부러뜨릴 수 있는 건 저 무른 과일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하”게 만드는 그의 곁에 자리한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다.


‘맑은 슬픔’, ‘투명한 서정’의 시인 성동혁의 내밀한 시간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쓸 것이 병밖에 없냐고.”


내가 울면 엄마도 운다는 것, 사랑하는 엄마도 수술실까지는 같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을 또래 아이들보다 빨리 깨닫게 된 수술대 위의 어린 시인의 모습으로 책은 시작된다. 일찌감치 아픔을 배운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린이 병동에서 투병 중이다.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작은 손으로 시인의 링거를 끌어주고 침대 위에서 주전자 춤을 춰주었던 아이들, 아끼는 스티커를 떼어 붙여주던 아이들. 병원에서 만났던 그들을 기억하는 일이 자신의 의무임을 감각한다 말한다. 병원에서는“침대 위에서 피를 뽑고 침대 위에서 밥을 먹고 침대 위에서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옆으로 누워 오랫동안 숨소리를” 들으며 혼자 견디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그렇기에 같은 병실에서 비슷한 기도를 하며 작은 몸으로 견디는 어린이들에 대한 성동혁 시인의 애정과 마음은 깊고 간절하다.

“나는 아직, 함께 병을 재우고 깨우던 아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시간이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 내 시가 파생된 곳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던 곳이다. 그곳에서 비슷한 기도를 하던 아이들이 나의 시를 쓴다.”


그를 살게 했던 사람과 몸과 시와 감각에 대하여
“그럼에도 결국 남는 얼굴과 풍경과 문장. 그것이 시가 아니면 무엇일까.”


흩어져 있는 십여 년의 기록을 모으는 방대한 작업이었다. 모든 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아픈 몸으로 사는 그이지만 행운처럼 만난 사람들이 대신 걸은 걸음 덕분에 많은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곁을 지키는 일”이 “사랑의 다른 말”임을 진심을 다해 보여주던 사람들.

친구들은 산에 올라본 적 없다는 시인을 번갈아 업어 가며 산에 오른다. 그들의 목표는 정상이 아닌, “함께, 오를 수 있는 만큼”이었다. 혼자서 정상을 오르는 일보다 오를 수 있는 만큼 함께하는 일, 그와 친구들의 시간은 언제나 그랬다. 곁을 지키던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도 책 곳곳에 자리했다. 아픈 아이의 곁을 지키는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상상하는 일, 추운 거리의 앙상한 나무처럼 약해지는 부모를 바라보는 시인의 뒷모습을 생각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 된다. 가족도 함께할 수 없는 곳에는 의료인들과 어린이가 있었다. 어떤 의지도 갖기 어려운 병실이었지만, 수술실에서, 병동에서 함께해준 이들 덕분에 십 대도 이십 대도 삼십 대도 있을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성동혁 시인은 끝내 걷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느릴지라도, 넘어질지라도 계속 걸을 것이다. 내내 “그 누구도 그것들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들을 위해 노력”하는 나날이겠지만, 곳곳에서 그의 곁에 자리한 사람들과 함께 걸을 것이다. 강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그의 글은 맑고 다정하고 어진 사람의 눈을 마주 보는 일 같다. 청명한 가을 햇빛 아래에서 고개 숙여 내 그림자를 바라보는 일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으로 안아주는 일 같고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 같다. 이 시인은 알까. 자신의 귀한 글이 어떻게 다른 이들의 영혼을 일깨워주고 보듬어주는지, 자신의 글에 담긴 마음이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따뜻한 포옹 같고, 내 아픔에 같이 울어주는 친구 같은 이 책이 세상의 곳곳에서 작은 구원을 가져다주리라고 나는 믿는다.
- 최은영 (최은영)
이토록 시 같은 언어를 그는 왜 시로 쓰지 않았을까, 생각하다 질문을 수정한다. 그에게 시와 시 아닌 것의 경계가 있기는 할까? 이 책은 ‘울지 않는 슬픔’이 ‘우는 슬픔’보다 더 슬프다는 것을 아는 자의 찬 독백이다. 그의 슬픔은 차고 맑다. 문장은 첫눈 같다. 책장을 넘기면 아름다운 말들이 녹아내릴 것 같다. “무엇이든 나는 얇아지고 있어요. 하얀 구름 같은 게 뜯겨나가는 걸 느껴요.”라고 그가 말할 때, 나는 잠깐 순도 높은 ‘슬픔의 결정(結晶)’을 손에 쥐어본 듯한 기분이 든다.
- 박연준 (시인)
자신의 삶을 업어야 하는 어린이가 있었고 그는 자라나 시인이 되었다. 그는 “쓸쓸함을 예습하면서” 일찌감치 어른이 되었지만 그날들 덕분에 어린이를 잃지 않았다. 시인의 병상에는 타인의 아픔이 스스럼없이 초대된다. 성동혁 시인은 넘어지면서도 걷는다. 넘어지면서도 넘어지는 사람들 곁에 그가 있다. 세상의 모든 있다와 없다 사이에서 우리는 그를 만난다. 친구의 등에 의지해서 산에 올랐던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등을 빌려준다. 성동혁 시인의 견고한 분투 앞에서 위태로운 것은 오히려 세계다.
-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

회원리뷰 (25건) 리뷰 총점9.8

혜택 및 유의사항?
포토리뷰 [뉘앙스]를 읽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흙******에 | 2021.12.19 | 추천14 | 댓글6 리뷰제목
<뉘앙스>를 읽고       겨울은 유독 다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계절이다. 전혀 모르는 타인일지라도 차가운 공기와 매서운 바람이 오늘도 어디선가 숨쉬며 또 하루를 사는 사람들의 체취를 전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잠시 벗어놓은 외투나 장갑처럼 느껴지는 에세이(산문집)를 읽는다는 것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을 시작으;
리뷰제목

<뉘앙스>를 읽고

 

 

  겨울은 유독 다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계절이다. 전혀 모르는 타인일지라도 차가운 공기와 매서운 바람이 오늘도 어디선가 숨쉬며 또 하루를 사는 사람들의 체취를 전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잠시 벗어놓은 외투나 장갑처럼 느껴지는 에세이(산문집)를 읽는다는 것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을 시작으로 내가 서 있던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 타인의 낯선 삶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점점 그들 곁으로 한 발씩 더 다가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 간결하고 함축적인 언어로 지어진 이라면, 시인목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목수의 삶의 태도가 고스란히 녹아든 집을 잘 둘러보기 위한 첫걸음은 목수의 언어로 그와 대화를 시도해보는 것이리라. <뉘앙스>는 성동혁 시인이 쓴 첫 산문집이다. 지금까지 그가 누구인지 몰랐고, 그의 시도 접해본 적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불현듯 알고 싶어졌다. 시인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가고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방식으로 삶을 대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연유에 그의 시에도 한 뼘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책을 집어 들었다.

 

 

뉘앙스. 사랑할 때 커지는 말, 뉘앙스. 네모였다가 물처럼 스미는 말, 뉘앙스. 더 많이 사랑해서 상처받게 하는 말, 뉘앙스. 아무 말 하지 않고도 모두를 말하는, 뉘앙스. 온도, 습도, 채도까지 담고 있는 말, 뉘앙스.(67쪽)

 

  사람과 사람이 말을 나누는 사이에 '뉘앙스'는 서로의 말들을 살찌우며 미소짓게도 하지만, 때때로 고삐 풀린 말처럼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데려다 놓기도 한다. 성동혁 시인이 건네는 말들에는 그만의 감수성이 담긴 뉘앙스가 묻어나는데, 곧 그의 삶을 이루는 것들임을 알게 되었다. 그를 시인이 아닌 에세이스트로 먼저 만나긴 했지만, 그의 글을 읽는 동안 시와 에세이의 경계를 오가는 듯한 미묘한 차이, 즉 뉘앙스가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인의 말들을 하나씩 음미하면서 그와 그의 작품 세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본다.

  어릴 적 소아 난치병으로 다섯 번의 대수술을 치른 그가 여섯 번째 몸으로 쓴 첫 시집의 제목은 『6』이다. 자기 몸에 난 수술 자국들을 보며 자신의 시는 곧 '메스로 쓴 시'라고도 말하는 그는 숨이 찰 때 바로 산소를 마실 수 있도록 집에는 산소발생기를, 차에는 산소통을 준비해두고 있다. 겪어보지 않고는 그 고통과 슬픔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우주인과 잠수부처럼 자신도 산소통을 메고 이 세상을 유영중이라는 그에게서 천연덕스러움과 의연함을 같이 발견할 수 있었다.

  

산을 오르기 전 우리의 목표는 정상이 아니었다. 우린 '함께', 우리가 '오를 수 있는 만큼'만 오르자 했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한 정상이었다. 생각해 보면 친구들과의 시간이 그러했다. '함께', '할 수 있는 만큼'(19쪽)

 

  그에게 친구는 손이자 발이다. 학창 시절부터 그를 업고 그와 함께 걷고 짐을 들어 주며 현재까지 오게 만든 친구들과 마침내 2016년 시월에 난생처음으로 산에 오른, 정확히는 친구들에게 업혀 오른 그날의 감동을 그는 잊지 못한다. 응급실과 병실을 가리지 않으며 그를 지켜 주던 친구들이 집에 왔다갈 때면 그들이 두고 간 빛으로 일주일은 너끈히 지낼 수 있다는 그가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을 가득 담아 「나 너희 옆집 살아」라는 시를 쓴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흰 나무 사진을 보고 나서였을까. 읽지도 못하는 러시아어 시집을 선물받았을 때부터였을까. 그곳의 첼로 소리를 들은 후였을까. 부르는 것만으로 온통 하얗게 뒤덮이는 땅, 모스끄바.(87쪽)

 

  이토록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친구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한사코 말린 시인의 꿈이 있다. 바로 모스크바 붉은 광장 안에 있는 까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는 것이다. 혹독한 날씨의 겨울은 그의 몸과 마음을 가장 위축들게 만드는데, 그러한 겨울을 닮은 모스크바를 꿈꾸는 시인이라니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러시아 태생의 현대 화가 alex kanevsky가 그린 작품이 책표지에 사용된 것도 어쩌면 그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또 하나 시선을 끌었던 그의 꿈은 다름 아닌 이다. 그 어떤 예술보다 그의 몸과 마음을 들썩이게 만들았기에 안무가 선생님과 무대를 그리며 연습한 적이 있다. 선생님이 산소통을 메고 움직였고, 그는 산소통에 연결된 호스로 산소를 마시며 잠깐씩 움직이고 오래 숨을 고르면서 말이다. 그의 안무 노트이기도 한 「발레」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연작의 시들을 통해 말(언어)로 노래하는 것을 넘어 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진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과연 그는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룰 수 있었을까?

 

화자와 청자의 경계가 모호한 말이 필요하다면, 그 말은 위로가 되길. 함께 어울리며 함께의 공간이 함께 운동하며 밀려가며 괜찮아지는 것. 뚜렷한 방향보다는 커다란 굴레가 생겨 함께 머무는 것. 괜찮아? 괜찮아. 부호가 필요 없는 곳. 괜찮아(81쪽)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휴식, 즉 잠시나마 쉬어가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가쁜 숨을 고르고 다음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고 비축하는 시간 말이다. 어쩌면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문장부호가 ','는 아닐까. 글을 쓰면서, 혹은 일상을 유지하면서 그 누구보다 쉼표의 의미와 중요성을 절실하게경험해왔기 때문이다. 그에게 쉼표는 곧 숨표일지도 모르겠다. 문학과 일상의 세계에서 숨을 고르며 생각한 말들, '격, 결, 곁'의 뉘앙스를 곱씹어보게 된다.

 

을 지키는 일은 힘들다. 한 사람의 언저리에 낮은 의자를 가져다 놓는 일. 그것은 사랑의 다른 말 아닐까.(37쪽)

사람과 가까워지는 속도는 가끔 사람과 멀어지는 속도가 되기도 한다. 가까워질 때 못 본 모습을 뒤늦게 보게 될 때가 있다. 가깝다고 그것을 잊을 때 사람은 그 속도로 멀어진다. 나의 아름다운 친구들이 얼마나 서로의 을 살피고 소중히 하는지, 을 갖추고 대하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214쪽)

 

 

  언젠가 출간된 선생님의 새 시집에 적힌 '성동혁 신인에게'라는 안부를 보면서 한 때 신인이었을 그는 '신인은 시인과 참 가까운 말'임을 깨닫고 계속 신인의 자세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또한 비눗방울 장난감을 사 줬던 조카에게서 비눗방울 삼촌이라고 불리는 그가 비눗방울처럼 자주 방울지다가 터지는 존재임을 자각하기도 한다. 그의 인생을 순간 포착할 수 있다면 이보다 절묘한 표현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다시 그 뉘앙스를 되짚어 본다면 결코 그에게만 국한된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도 제각각의 이유로 신인의 자리에 서기도 하고, 비눗방울처럼 영글었다 깨지는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책을 덮으며 시인과 나의 세계가 잠시 겹쳐지는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그동안 내가 말하고 또 들었던 설익은 말들이 시인 덕분에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다. 앞으로도 그가 사는 집을 찾아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일기도 한다. 아울러 그처럼 시집의 문을 살포시 열어 독자를 맞아주는 시인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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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뉘앙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책****곰 | 2021.12.07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사랑할 때 무심히 넘겨야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p.67)       그의 아네모네를 읽었던 날을 생각해본다. 좋은데 먹먹한 거. 그게 딱 내 감정이었을테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만났다. 사실 읽어야&n;
리뷰제목


 

 

 

사랑할 때 무심히 넘겨야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p.67)

 

 

 

그의 아네모네를 읽었던 날을 생각해본다. 좋은데 먹먹한 거. 그게 딱 내 감정이었을테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만났다. 사실 읽어야 할 책이 많이 쌓여있던 상태라 일부러 바로 읽지 않고 미뤄두었다가, 한밤중 가벼운 책이 읽고 싶어 이 책을 선택했는데. 맙소사. 이 책은 그냥 책만 가벼울 뿐 묵직하다. 이야기도 묵직하고 문장도 묵직하다. 그런데 버겁지는 않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기라도 하듯, 휘리릭 하고 읽어진다. 

 

 

 

평문에 박연준 시인이 이런 말이 적었다. 울지 않는 슬픔이 우는 슬픔보다 슬픈 것을 아는 이의 글이라고. 성동혁의 슬픔은 차가운데 맑다고. 그래. 성동혁 시인의 글은 딱 그런 마음이다. 차가운데 맑고, 슬픈데 눈물은 흘려지지 않는다. 좋은데 먹먹하고 아픈데 이겨내진다. 물론 그는 수없이 자신의 목숨을 지고 이고 걸어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글이 죽음이 묻어나냐고? 아니다. 오히려 그의 글은 삶이고 생이다. 속상한 일을 겪어 전날 눈물로 잠이 들었어도 웃는 얼굴로 다음 날을 맞이하고 또 하루를 살아내야하는 우리네 아침이다. 

 

 

 

어떤 시간은 내내 닿을 수 없을 것 같고

어떤 시간은 곧장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p. 182)

 

 

 

 

 

어젯밤 내내 이 문장이 내 마음을 마구 때렸다. 닿을 수 없는 어떤 시간을 단숨에 떠올렸으니 나는 어떤 시간에 닿기도 했고 닿지 않기도 했겠지. 지난밤 내내 마음을 둥둥 울린 이 문장 때문에 새벽에 잠에서 깨자마자 이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해도 뜨기 전, 모닝커피를 마시며 다시 이 책을 훌훌 읽었다. 오묘한 것이 밤에 읽었던 감상과 새벽에 읽는 감상이 다르다. 밤엔 분명 눈물을 뚝뚝 흘렸는데, 아침엔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성동혁의 문장은 삶이다. 또 한번 죽음과 삶의 경계가 모호함을, 따로 떨어진 순간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문장은 늘 생을 마주하고 서 있음을 깨닫는다. 평생에 걸쳐 쓸쓸함을 학습해온 그는 다른 이들에게 말을 건다. 나는 쓸쓸했으나 당신들은 그러지말라고. 혼자인 줄 알았던 순간에 늘 기도하는 존재가 있었음을 깨달은 그가 말한다. 물리적으로 혼자라고해서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고. 그렇게 툭툭 던지는 문장에서 위로를 얻는다. 

 

 

 

 

 

사실 어젯밤 이 책을 펼쳐 10장도 채 읽기전에 생각했다. 

아, 글은 이런 사람들이 써야 하는구나. 나는 글 욕심내지말고 이렇게 맥주나 먹으며 독자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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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하루해가 저물고 또 하루해가 저물다 보니 어느새 한 해가... 성동혁, 뉘앙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k******i | 2021.12.28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새벽이 되면 아무도 안부를 묻지 않는다. 긴 안부는 잠을 깨우고 생활을 망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들지 않는 사람들은 안부 없이도 또박또박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눈이 많이 온다. 창을 열면 눈이 발등까지 떨어진다. 하늘이 온통 안부 같다.” (p.17)   해가 저물어간다. 하루해가 저물고 또 하루해가 저물다 보니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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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이 되면 아무도 안부를 묻지 않는다. 긴 안부는 잠을 깨우고 생활을 망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들지 않는 사람들은 안부 없이도 또박또박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눈이 많이 온다. 창을 열면 눈이 발등까지 떨어진다. 하늘이 온통 안부 같다.” (p.17)


  해가 저물어간다. 하루해가 저물고 또 하루해가 저물다 보니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물어야 할 안부들이 한 움큼인데 한 해가 다 가도록 움켜쥔 주먹을 아직 펴지 못하고 있다. 부스스 고개를 들면 중천이라서 그만 다시 고개를 처박곤 하던 시절도 있었다. 게으름은 떡진 머리를 타고 내려 축 처진 어깨에 가 닿았다. 얼마전 후배에게 말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게을러져야 해, 그게 도리야.


  “문학을 삶의 전부처럼 대하는 사람보다, 일부로 여기는 사람에게 마음이 더 기운다. 그저 삶을 꾸리는 데 문학이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축복일까. 그러니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장과, 떠나지 않은 풍경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괴로움으로만 두지 않길 소망한다. 더 적확하고 풍성한 글을 쓰기 위한 과정으로 여기고 싶다. 삶이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p.32)


  한 해가 저물어가면서 속으로 카운트를 하고 있다. 마지막 하루해가 다가올수록 DIARY 2021 이라고 제목을 붙인 파일 옆의 크기를 슬쩍슬쩍 확인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크기는 598KB 이다. 작년의 387KB 이나 재작년의 462KB 보다는 확실히 커졌지만 그 전해인 2018년의 612KB 에는 조금 못 미친다. 나는 조금만 더 분발하기로 한다. 아직 내게는 3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뉘앙스. 사랑할 때 커지는 말, 뉘앙스. 네모였다가 물처럼 스미는 말, 뉘앙스. 더 많이 사랑해서 상처받게 하는 말, 뉘앙스. 아무 말도 하지 않고도 모두를 말하는, 뉘앙스. 온도, 습도, 채도까지 담고 있는 말, 뉘앙스.” (p.67)


  실루엣이라는 단어와 함께 뉘앙스라는 단어도 좋아한다. 실루엣이라는 단어에서는 고등학교 시절의 강릉 여행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아한다. 저물어가는 해를 배경으로 엿보았던 빳빳한 천 너머로 비친 여인의 실루엣을 여태 기억한다. 뉘앙스는 어떤 것도 명확하게 수습하고 있지 않은 단어라서 좋아한다. 대신 뉘앙스라는 단어를 통하여 나는 무엇이든 수습하는 자유를 누리곤 하였다. 


  “오월이에요. 생일이 지났고 장미가 넘어오는 담벼락이 보여요. 담 안에 행복이 있는지 담 밖에 행복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장마가 넘어오는 오월이에요. 담이 무슨 의미겠어요. 장미가 넘어오는 오월인데.” (p.161)


  과거에 오월은 내가 마냥 좋아하는 계절은 아니었다. 팔에 커다란 화상의 상처를 가진 나는 반드시 반팔을 입게 되는 유월이 오기 전인 오월에 미리 조마조마해지곤 하였다. 어쩌면 유월보다 오월이 더 싫었는데, 월요일보다 일요일이 더 싫은 직장인의 마음 같았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오월을 꽤나 즐기게 되었다. 올해 오월에 나는 아내와 함께 강릉에서 자전거를 타고 정동진으로 달려갔다가 자전거를 타고 다시 강릉으로 되돌아왔다.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자는 새벽이다. 녹음기를 켜고 녹음한 문장들을 공책에 옮겨 적고 의자를 뒤로 젖히고 쉬어야 한다. 그 호흡이 시와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오늘 모두 옮겨 적지 못하면 내일 적어야 한다. 내일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는 문장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결심은 거창해진다. 오늘의 것이 내일의 것을 잘 만났으면 좋겠다. 휘발될 것들을 휘발되고 침전되어 있는 것들이 미세하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결국 남는 얼굴과 풍경과 문장. 그것이 시가 아니면 무엇일까.” (p.223)


  나는 책을 읽고 몇 개의 문장을 옮겨 적을 때마다 작은 평화로움을 느낀다. 복기의 과정은 첫 번째의 설렘에서 벗어난 안도를 제공하고는 한다. 나는 그제야 집중에서 풀려날 수 있다. 뉘앙스나 실루엣이나 설렘이 내가 좋아하는 단어라면 콤플렉스는 한때 갈구하였으나 이제는 좋아하지 않게 된 단어이다. 《뉘앙스》의 저자 성동혁은 시인이다. 어딘가 아픈데, 굉장히 좋은 친구들을 옆에 두고 있다. 

 

성동혁 / 뉘앙스 / 수오서재 / 227쪽 / 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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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l******4 |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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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정말 좋아요.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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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둥***룽 | 20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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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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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골드 c***l | 202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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