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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동혁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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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270g | 120*170*17mm
ISBN13 9791190382540
ISBN10 119038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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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울면 엄마도 우는구나. 침대차에 실려 수술실로 가는 복도.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는데 엄마의 얼굴이 그렁그렁 모두 떨어질 것 같았다. 그건 내가 지금까지 본 얼굴 중에 가장 크고 슬픈 얼굴이었다. 덕분에 난 울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눈물을 흘리면 그때의 크고 그렁그렁하던 엄마의 얼굴이 다시 쏟아질 것만 같아, 나는 참는 아이가 되었다.
--- p.12, 「산소통」 중에서

낮 밤이 바뀌었다. 고요한 시간이 늘었다.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 그래서 말을 자주 적어 놓는다. 만나면 하지도 못할 말을 적어 놓는다. 혼자 하는 이야기는 너무 일방적이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모두 쓸모없는 말이다. 지구본은 참 작은데 당신은 너무 멀리 있는 것 같다.
--- p.35, 「무제」 중에서

곁을 지키는 일은 힘들다. 한 사람의 언저리에 낮은 의자를 가져다 놓는 일. 그것은 사랑의 다른 말 아닐까. 그것은 희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곁을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을 두고 이곳에 왔다. 혹 내가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 나의 의자가 안 보일 때 나는 어떠한 죄를 짓는 것일까. 그들의 곁, 곁을 지키고 싶다.
나의 슬픔은 병실이 비좁아서가 아니다. 나의 병실이 당신이 있는 곳까지 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린 미안하고 그리워하다 끝이 날 것만 같다.
--- p.37, 「곁」 중에서

어떤 사람은 그런 말을 했다. 쓸 것이 병밖에 없냐고. 나는 아직, 함께 병을 재우고 깨우던 아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시간이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 내 시가 파생된 곳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던 곳이다. 그곳에서 비슷한 기도를 하던 아이들이 나의 시를 쓴다.
아이들의 얼굴을 모두 잊고, 더불어 나와 아이들이 병 밖에 있을 때 나는 시를 쓰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그렇게 되는 날부터 나는 시를 버리고 아이들과 하루 종일 뛰어다닐 것이다. 숨이 차지 않는 곳에서,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환자복이 아닌 알록달록한 옷을 나눠 입고.
--- p.73, 「악기」 중에서

많은 장애인이 죽음으로, 투쟁으로 이뤄 놓은 것들 위에서 살고 있다. 감사하다는 말도 적절치 않고, 죄송하다는 말도 적절치 않다. 적절한 말을 찾기 어렵다. 어떤 시도, 글도, 이런 삶 앞에선 침묵케 한다.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그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 우리가 이렇게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 p.79, 「SM3」 중에서

오랫동안 견디는 삶을 살았어. 많은 힘이 그곳에 쓰였어. 고통을 견디는 것. 나 대신 주변 사람들이 꾸준해졌어. 그 근육으로 나를 업고 나를 들고 나를 위해 뛰었어. 그러나 이제는 그러면 안 돼. 그러기엔 그들의 약해진 얼굴이 보이고, 약해진 근육들이 느껴져. 그럴 순 없어.
홀로 해야 하는 것들의 범위를 늘리려 노력하고 있어. 단순하고 당연한 것들의 범위를 늘리려 하고 있어. 그 누구도 그것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
--- p.99, 「동시를 쓰게 되었어」 중에서

가끔 약속 장소에 땀을 흘리며 들어오는 친구들이 있다. 난 그들이 자리에 앉아 시원한 커피나 음료를 시키는 것만 봐도 기쁘다. 열심히 걸어 나를 만나러 왔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나 대신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길을 걷지 않고도 갇히지 않았다. 자신의 발 위에 나를 얹고 걸었던 사람들 덕분에 이미 많은 길을 걸은 기분이다.
--- p.117, 「무제」 중에서

사람이 지나가면 많은 종류의 감정이 남는다. 머문 시간에 비해 많은 슬픔을 남기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기억이 안 날 만큼 휘발된 얼굴 또한 많다. 무엇이 나의 삶에 더 많은 부분이었는지 간단히 설명할 순 없다.
그저 어떤 시간과 풍경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나의 기록 방식은 양과 비례하지 않는다. 한 문장이 된 시간이 있기도 하고, 한 권의 책이 된 시간도 있다. 감정만 남긴 시간은 더더욱 많다.
--- p.223, 「오늘의 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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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은 맑고 다정하고 어진 사람의 눈을 마주 보는 일 같다. 청명한 가을 햇빛 아래에서 고개 숙여 내 그림자를 바라보는 일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으로 안아주는 일 같고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 같다. 이 시인은 알까. 자신의 귀한 글이 어떻게 다른 이들의 영혼을 일깨워주고 보듬어주는지, 자신의 글에 담긴 마음이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따뜻한 포옹 같고, 내 아픔에 같이 울어주는 친구 같은 이 책이 세상의 곳곳에서 작은 구원을 가져다주리라고 나는 믿는다.
- 최은영 (최은영)
이토록 시 같은 언어를 그는 왜 시로 쓰지 않았을까, 생각하다 질문을 수정한다. 그에게 시와 시 아닌 것의 경계가 있기는 할까? 이 책은 ‘울지 않는 슬픔’이 ‘우는 슬픔’보다 더 슬프다는 것을 아는 자의 찬 독백이다. 그의 슬픔은 차고 맑다. 문장은 첫눈 같다. 책장을 넘기면 아름다운 말들이 녹아내릴 것 같다. “무엇이든 나는 얇아지고 있어요. 하얀 구름 같은 게 뜯겨나가는 걸 느껴요.”라고 그가 말할 때, 나는 잠깐 순도 높은 ‘슬픔의 결정(結晶)’을 손에 쥐어본 듯한 기분이 든다.
- 박연준 (시인)
자신의 삶을 업어야 하는 어린이가 있었고 그는 자라나 시인이 되었다. 그는 “쓸쓸함을 예습하면서” 일찌감치 어른이 되었지만 그날들 덕분에 어린이를 잃지 않았다. 시인의 병상에는 타인의 아픔이 스스럼없이 초대된다. 성동혁 시인은 넘어지면서도 걷는다. 넘어지면서도 넘어지는 사람들 곁에 그가 있다. 세상의 모든 있다와 없다 사이에서 우리는 그를 만난다. 친구의 등에 의지해서 산에 올랐던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등을 빌려준다. 성동혁 시인의 견고한 분투 앞에서 위태로운 것은 오히려 세계다.
-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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