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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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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top10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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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280g | 120*188*16mm
ISBN13 9788932039237
ISBN10 8932039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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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 그 뒤의 진심을 읽는 일] 『최선의 삶』,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임솔아 두번째 소설집. 문지문학상 수상작인 「희고 둥근 부분」을 포함해 아홉 편의 소설을 엮었다. 어딘가 한구석이 어긋난 것만 같은 소설 속 인물과 그들의 상황이, 다수의 이상과는 멀어 보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공감을 일으키며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소설MD 박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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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텔레마케팅 사무실에서 헤드셋 너머로 종일 욕설을 듣는 여자 이야기. 평생 자기 책상을 가져보지 못해서 아프기 시작한 여자 이야기. 식기세척기를 구입하면 어떻겠냐고 물으면서도 책상이 필요하지 않으냐고는 한 번도 묻지 않는 가족 이야기. 밀가루가 체질에 맞지 않아 늘 위무력증에 시달렸지만 남편이 국수를 좋아해서 30년 동안 국수를 먹은 여자 이야기. 체할 때마다 그러게 왜 국수를 먹느냐고 다그치던 딸 이야기. 그러면서도 일요일 저녁이면 와, 국수다,라며 손뼉을 치던 딸 이야기…… 원영은 조금씩 이야기를 바꾸어가며 말했다. 거의 소설이 되어갔다. 원영은 너무 사소해서 오히려 무시했던 일화들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었다. --- 「초파리 돌보기」 중에서

치온은 자신의 집을 비워나갔다. 소설과 영화 같은 이미지 속에서라면 반드시 필요했을 요소들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소민이 말한 생활 간지들을 지울 수 있을 만큼 지웠다. 치온은 거실에 드러누워 천장을 올려다봤다. 자신이 살았던 흔적을 지워놓고서야 무엇인가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컨설팅을 통하지 않더라도 집이 팔릴 것 같았다. --- 「중요한 요소」 중에서

지도상에 점선으로 나타낸 경계선은 목격이 불가능했다. 목격 불가능한 경계선을 실제로 탐방하는 물리적 실천을 로희는 작업으로 옮기고 싶어 했다. 도시의 경계에 서 있을 때 로희는 이상하게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악몽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다고 했다. --- 「희고 둥근 부분」 중에서

태아도 아이로 인정이 된다면, 태아를 인정받은 이후에 낙태를 하는 것이 가장 영리한 전략이 된다. 아이 한 명당 5억이 아니라, 낙태 한 번에 5억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간단한 계산을 나만 할 리는 없을 것이다. 나는 휴대폰으로 포털 앱을 켰다. ‘청약’과 ‘낙태’ 두 단어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2019년 특별공급 당첨자 중에서 부정 청약은 밝혀진 것만 10퍼센트에 달했다. 사람들은 청약 당첨자가 되기 위해 싱글 맘과 위장 결혼을 했고, 임신을 한 후 낙태를 했고, 파양할 아이를 입양했다. ---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 중에서

“언니가 예전에 나를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으로 봐주었는지 기억하고 있어. 언니는 내가 언니를 보살폈다고 말하지만, 그게 아니야. 그때에는 언니한테 아름다운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고. 그게 멋있는 줄 알았고. 그걸로 그 시절을 버텼지. 이제 그런 아름다움 같은 게 나한텐 없어. 나는 이제 아무도 안 보살펴. 나만 생각해. 언니가 나한테 많이 서운해했다는 거 아는데. 근데, 나 이제 좀 만족해. 지금 내가 좋아. 그냥 우리 얘기 안 한 지 너무 오래됐잖아. 그래서 전화했어.” ---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중에서

꽃잎들을 모으고 분무기를 들고 와 분사를 한 다음, 빗자루로 꽃잎을 정돈하고 있었다. 벚꽃 잎 더미는 서서히 사랑이라는 글자가 되어갔다. […] 경비원이 벚꽃 잎 글자로 학생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일화는, 학교에 대한 풍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미담이었다.
“매일매일 이걸 하시더라고요. 매년 벚꽃 철마다. 대단하세요.”
나는 경비원을 보며 웃었다.
“총장님께서 매일 아침마다 하라고 하셨으니까.”
주먹으로 허리를 두들기며 그가 말했다. --- 「손을 내밀었다」 중에서

효정이 하은사에 온 이후로 처음 얻은 깨달음은 불경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은 것이었다. 출가를 한 승려는 무성의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규율은 누구나 다 아는 전제 조건이지만, 비구니는 결코 무성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신도들은 이상적인 여성성을 하은사에서 만끽하고 싶어 했다. 효정은 그들의 욕망에 부합하는 것이 쉬웠다.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든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을 때, 하은사는 유명한 비구니 사찰이 되었다.
--- 「단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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