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1월 18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56쪽 | 356g | 133*195*20mm |
ISBN13 | 9788954684736 |
ISBN10 | 8954684734 |
발행일 | 2022년 01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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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56쪽 | 356g | 133*195*20mm |
ISBN13 | 9788954684736 |
ISBN10 | 8954684734 |
MD 한마디
[은희경의 뉴욕-여행자 소설 4부작]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한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포함한 네 편의 연작 소설. 각 작품의 인물들은 뉴욕으로 떠나고,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났을 때 그 곁에 선 이는 타인이거나 한때 친밀하다고 느꼈던 낯선 존재다. 알 수 없는 얼굴들을 바라보다 문득 나와 마주하게 되는 새롭고도 반가운 이야기 -소설 MD 박형욱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_007 장미의 이름은 장미 _077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_137 아가씨 유정도 하지 _195 작가의 말 _251 |
사실 수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뿐 아니라 자신에게서도 도망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잘못된 장소로 와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해도 되돌아 나가서 다른 경로를 찾기에는 두려운 나이, 결코 나아질 리 없는데도 그럭저럭 머물게 되는 계약직 생활, 그리고 그런 사실들을 불현듯 깨닫게 만들었던 깨어지고 부서져서 결국 사라져버린 관계들. 수진은 이곳으로 떠나오며 그녀를 규정하는 나이와 삶의 이력에서 잠시나마 이탈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 '장미의 이름은 장미' 중에서, p.90
책을 사서 볼만큼 용돈이 충분하지 않던 어린 시절. 나는 동네 책방이나 도서관에 가서 주로 책을 빌려 보았다. 책은 읽어야 하는 기간이 지나면 반납을 해야 했고, 반납하고 나면 다시는 볼 수가 없었으므로 가능한 많은 문장들을 머리 속에 집어넣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나의 최애는 은희경 작가였다. 초기작인 <타인에게 말 걸기>와 <새의 선물>은 여러 번 빌려 보고, 필사하고, 결국 책을 사서 구입했을 정도로 많이 읽었던 작품들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면, 성격이며 외모며, 환경이며 너무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유일한 교집합은 그때 좋아했던 작가들을 다행히(?) 아직도 좋아한다는 것,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들의 신작이 출간되면 챙겨 본다는 것뿐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놀랍게도, 은희경 작가는 전성기때의 작품들에 비해서 힘이 떨어지기는 커녕 더 원숙한 깊이와 고루하지 않은 감성을 여전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당신의 이름은 당신, 그리고 은희경의 이름은 은희경, 이라는 문장이 떠오를 만큼, 은희경은 그 이름에 걸맞는 작품을 가지고 돌아왔다.
뉴욕 -여행자 소설 4부작으로 묶인 이 연작소설집은 팬데믹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난 2년 동안 쓰였다. 2020년 봄과 가을, 2021년 여름과 겨울에 발표된 네 편의 이야기는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뉴욕에 살고 있는 친구의 집에 열흘 정도 머물 계획으로 한국을 떠나온 이가 바라보는 낯선 타지의 풍경들, 이혼을 하고 홀로 뉴욕으로 떠나온 이가 어학원에서 만난 인물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미국에 네번째 방문했지만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가 현지의 친구들 사이에서 느끼는 이방인으로서의 감정, 문학 행사로 뉴욕을 방문한 오십대 소설가와 팔십대의 어머니와의 불편한 동행기가 그려진다. 각각의 이야기는 따로 완결성을 띠고 있지만, 연작소설이기도 하므로 인물들과 배경이 겹치고 교차된다.
처마밑 난간에 기댄 채 한참 동안 말없이 그쪽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늙으면 이상하게 평소 기억하던 것보다 더 어렸을 때 일이 기억이 나. 내가 마당에서 아장아장 걷고 있는데 우리 아버지가 마루끝에 앉아서 웃으며 손짓하던 것, 그런 게 말야.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작가니까, 제대로 말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그게 꼭, 죽으려고 연습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 지금처럼." 어머니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 '아가씨 유정도 하지' 중에서, p.246
영화와 사진 속에서 뉴욕은 언제나 높은 빌딩과 초록의 공원에 둘러싸여 있고, 분수대 앞에서 열리는 거리 공연과 화려한 다리의 야경 등으로 상징된다. 하지만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라는 작품을 통해 느끼게 되는 뉴욕의 모습은 그것과는 정반대이다. 끔찍한 더위와 가로막힌 창문들, 거리에 샇여 있는 쓰레기들과 시간을 지키지 않은 우편물들이다. 빌딩숲이 없는 대신, 지은 지 백 년은 넘었을 만한 낡고 오래된 집들이 있다. 이국의 낯선 곳에서 두 친구가 함께 보내는 짧은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한 오해로 어긋나기만 한다. 각자가 알지 못하는 서로의 사정과 성격은 너무도 달랐고, 도대체 쟤는 왜 저러는 걸까와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를 따로 오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작가는 '장미의 이름은 장미'라는 작품에서도 서로의 다름에 대해서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다. 자신의 소심함과 방어적인 수동성에 신물이 나서 갑자기 어학연수라는 최악의 결정을 내린 주인공이 세네갈 대학생과 나누는 기묘한 우정, 영어 실력이 부족한 덕분에 한국에서의 성격과는 전혀 달라지는 말투와 무심코 내뱉게 되는 거짓말들이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정체성이 뉴욕이라는 세계를 만나면서 더 예민하고, 다정하게 그려진다.
살면서 가끔 생각한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결코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아주 멀리 왔다. 그렇다면 나를 지금의 인생으로 데려다 놓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잃어버린 나를 찾고 싶을 때 나는 책장에 꽂힌 책을 꺼내어 페이지 속으로 숨곤 했다. 책 속의 어떤 문장에서 오래 전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어느 행간에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책들은 내가 살아온 삶의 일부이고, 모든 텍스트는 언어로 만들어진 또 다른 세계이다. 언젠가 팬데믹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해외 어디든 원하는 대로 여행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이 작품을 다시 읽어 보고 싶다. 2020년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늘 힘들다. 그 관계 속에서 우린 때론 나 자신을 발견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도 나라는 사람을. 작년 나는 사람과의 관계로 굉장히 힘들었었다. 평소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서로가 힘들었나 보다. 결이 다른 것을 견딜 수 없었는지 중간에 낀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었다. 만약 그때 내가 어디로든 떠날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이 수월했을까? 오랜만에 은희경작가의 책을 만났다. 모두 4편의 뉴욕 연작 소설. 뉴욕에 가보진 않았지만, 그곳에 덩그러니 혼자 있다면, 그곳이 아닌 한국에서의 관계들이 조금 편하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는 승아와 민영이 주인공이다. 승아는 충동적으로 민영이 혼자 살고 있는 뉴욕에 온다. 열흘 일정으로 민영의 집에 왔지만, 그곳은 그간 승아가 알고 있는 공간이 아니다. 또한 뉴욕하면 떠오르는 뉴요커의 모습도 없다. 승아는 민영을 위해 집안을 청소하고 해독주스도 만들지만, 민영은 그런 승아가 불편하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마흔 여섯의 이혼녀 나가 뉴욕 어학원에서 만난 세네갈 학생 마마두와의 이야기를 그렸다.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의 주인공은 현주다. 그녀는 미국에 4번 방문했고, 이렇게 미국에 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삼 년 전 여름 사촌 언니를 따라 피크닉에 갔다 만난 로언의 영향이다. 로언은 현주가 영어를 배우는데 본격적이지 않아 불만이었고 로언의 친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현주를 배려하지 않는다. 4번째로 간 미국에서 현주는 로언과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고 코로나 19로 인해 이방인에 대한 이들의 태도가 날카로워짐을 알게 된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는 오십 대 소설가 ‘내’가 문화 행사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나는 이번 뉴욕 행사에 팔십대 어머니와 동행한다. 어머니는 낭독회에서 만난 교토 ‘에이미’와 뉴욕 관광을 하게 되는데...
나는 첫 번째 소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SNS에서 봐왔던 친구의 아파트. 뉴욕커를 연상케 하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모습.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충동적으로 이곳에 왔지만, 친구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불편하다. 그녀에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호의를 베풀지만, 상대는 그것이 전혀 달갑지 않다. 나에게는 호의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다는 것. 그런 오해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관계는 그런 것 같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때론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누군가를 더 이상 미워하고 싶지 않을 때 혼자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규칙적이고 또 가식적으로 발전이 드러나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 (117)
이십대가 끝나면 당장 노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이 드는 데 대해 호들갑을 떨거나, 졸업이 다가오는데 아직 진로가 결정 안 됐냐며 걱정해 주는 말들이 듣기 싫었지만, 막상 혼자 있게 되면 그 말들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159)
어떤 헌신은 당연하게 여겨져 셈에서 제외된다. 시기와 처지에 따라 개인의 욕망에 대한 도덕적 해석이 바뀌는 것도 이상했다. 그리고 자기애가 강하다고 해서 모두가 자신의 삶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210)
살다보면 그럭저럭 알게 되는 이야기라는 뜻이야. 책이란 다 그렇지 (223)
미래를 준비하고 그래서 탄탄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미래가 불안하고 관계도 불안하다. 때론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나를 잊고 싶을 때가 있지만 혼자가 되면 결국 나에 대해 생각하고 나를 알아가게 된다. 생각해보면 나는 온전히 혼자가 되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혼자 여행을 하고 혼자 식사를 하고 혼자 생활하는 것. 나에게는 아직 가족이 있고 그 가족이 나에게 힘이 되지만 또 언젠가는 진짜 혼자가 되는 시간이 올 것이다. 온전히 혼자 살 것이 아니라면 관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관계에 연연하지 않기. 나에게 오늘은 조금 더 집중하고 싶어지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