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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기쁨

배움의 기쁨

: 길바닥을 떠나 철학의 숲에 도착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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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470g | 140*205*20mm
ISBN13 9791130680019
ISBN10 113068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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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종의 흑인다움을 표출하는 법을 배우면서 그것이 단순한 보호막을 넘어 진짜 무기가 될 수도 있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백인 소년들에 둘러싸여 자라는 흑인 소년이 주의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초등학교와 운동장이라는 야생의 공간에서 악용할 수 있는 마력을 제 안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종류의 힘은 추악하고 무도한 것이지만 어린 나는 그런 것까지는 몰랐다. 그저 저 백인 소년들에게 흑인 소년인 내가 흑인다움을 충분히 드러낸다면 나머지는 거저먹기라는 것만을 알았을 뿐이다.
--- p. 40

“네가 오랫동안 뭔가에 공을 들였다고, 으음, 그래, 좋은 말을 공들여서 길렀다고 해보자. 그 말이 경주에 나가서 멋지게 달리고 너를 자랑스럽게 해줄 날을 기대하면서 말이야. 그 말이 언젠가는 너와 주위 사람들을 더없이 빛낼 업적을 이루리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렇게 오랜 세월 정성을 쏟고 기대를 걸었던 말이 진흙탕에서 당나귀나 노새 들과 뒹굴고 있으면 너는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겠니? 그러다 다칠 수도 있잖아? 어디 그뿐이냐. 내가 볼 때 정말 위험한 일은 그 말이 자기가 당나귀나 노새라고 믿어버리는 거야. 그러면 얼마나 큰 비극이냐?” --- pp. 84~85

체스도 테니스처럼 고수끼리의 승부에서는 리시버, 그러니까 후순위 선수에겐 승산이 별로 없다고 본다. 그래서 흑이 승리하거나 비기면 테니스에서 리시버가 승리한 것과 같은 이변으로 여겨진다.
“왜 항상 흑으로 하세요? 먼저 하고 싶지 않으세요?”
내가 물을 때마다 파피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는 흑이 좋다, 아들아. 흑이 인생의 현실을 더 잘 보여주거든. 후순위는 아주 불리해. 그래서 더 영리하게 경기해야 하지. 머리를 써야 한단 말이야.” --- pp. 114~5

부엌과 식당, 부모님 방, 복도의 가족사진 아래에 있는 축 처진 합판 선반, 지하실, 차고의 상자들, 세탁실의 선반들, 다락방의 상자들에도 책이 줄줄이 서 있거나 층층이 쌓여 있었다. 장서가 줄잡아 1만 권에서 1만 5천 권 사이였다. 그 많은 책이 네모난 단층집에 빽빽이 들어차 있었으니, 인테리어 디자인의 문법은 물론이고 물리학의 법칙마저 시험하는 수준이었다. --- p. 192

이제는 직관적으로도 수입차나 금목걸이보다 시간, 독립, 자유 같은 개념이 더 값비싸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독서나 사유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불끈 솟는 한편으로 겸손해지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절대 손목에 내걸 수 없는 종류의 성공이었다. 지적 노동의 열매가 아무리 달콤하다고 한들 흑인 동네에서는 큼지막한 휠을 단 레인지로버처럼 ‘뻐길’ 수 없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더는 흑인 동네에 속하고 싶지 않았다. 거기가 아니라도 내가 있을 만한 곳이, 어디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어디엔가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 pp. 222~3

“나는 소설을 읽을 때도 무조건 펜을 쥐고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었다, 아들아. 밑줄 긋는 걸 좋아해서 그런 게 아냐. 뭐라도 실용적인 지식을 건져서 내 인생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거였지,”
그때 알았다. 내가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파피가 내 나이 때 똑같은 책을 즐겁게 읽지 못했기 때문임을. 나는 그저 시대를 잘 타고났을 뿐이었다.
--- pp.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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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내 맘대로 올해의 책]
공부란 '백인의 것'이라며 도외시하고 힙합 뮤지션을 꿈꾸던 흑인 소년에게 아버지가 인도한 배움이 어떻게 삶의 지향점이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 대학과 독서, 앎의 힘을 절감케 한다.
- 곽아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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