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나를 엄습해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하는 말이 있다.
“내가 언제 이런 일을 또 해보겠어.”
유엔 회의에서 연설을 하게 됐을 때도, 재판 일정과 중요한 미팅 발표 때문에 걱정으로 잠 못 이룬 밤에도, 몇 주 동안 이어지는 고된 출장 중에도, 일상에서 일어나는 팀원들과의 문화 충돌과 갈등 속에서도, 프로젝트를 벌이고 수습하기 위해 물불 안 가리며 일을 할 때도,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미래를 디자인해보려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도 “내가 언제 이런 일을 또 해보겠어”라는 말은 마법의 주문이 되곤 했다. 두려워서 포기하고 싶은 상황을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특별한 기회로 변화시켜주었다.
--- p.11
“Be yourself. Everyone else is already taken.(너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은 이미 존재한다.)” 다른 사람이 되려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변호사라고 해서 일부러 차갑고 냉정한 분위기를 풍기려고 할 이유도, 센 언니일 이유도, 모노톤의 의상을 입어야 할 이유도 없다. 어떤 일을 하든, 그 직업이 가지고 있는 고정된 이미지에 나 자신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만의 옷을 입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고 최대의 결과물이 나온다.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강렬한 힘이다.
--- p.23
나는 이직하는 과정에서 약 서른 곳에 지원을 했고, 스물일곱 군데에서는 아예 답을 받지 못했다. 세 곳에서 면접을 봤고, 그중 한 곳에서 세 번에 걸친 면접 후 최종 합격을 했다. 내가 원하던 국제기구였다. 인사 담당 부서가 내세운 자격에 부합되지 않아 스물일곱 군데에서 탈락했을 수도 있고, 나보다 더 적임자가 있어 안 됐을 수도 있다.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러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조금씩 내 길을 구체화했다는 사실이다. 어차피 인생은 여러 문을 두드렸다가 가까스로 열린 문에 비집고 들어가서 악착같이 내 길을 파면서 나아가는 것이니까.
--- p.61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빅 매직》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Done is better than good.”
무언가를 완성해내는 것이 잘해내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무언가를 시작하고 완성해내는 것이 어려워진다. 어릴 때는 별 생각 없이 하던 도전도 나이가 들면서 심사숙고 끝에 포기하는 일이 잦아진다. 생각만 하다가 결과를 보장할 수 없어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일도 흔해졌다.
‘Good’인지 고민하다가 ‘Done’을 놓치는 것이다. 전보다 잃을 것이 많아서일까, 완벽주의 성향 때문일까. 더더욱 두려움이 많아진다. 모두가 앞서가는데 혼자 제자리에, 아니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거리낌 없이 음악 공책을 찢어 연필로 악보를 그리고 화려한 장비 대신 순수한 열정으로 첫 데모 테이프를 완성한 어릴 때의 무모함과 용기를 다시 소환해보고 싶다.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분명히 이렇게 얘기하고 있을 것이다.
“소은아, 너 뒤처지지 않았어. 그리고 뒤처졌다 해도 괜찮아. 그러니까 그냥 해. Get it done.”
--- p.68
현대인은 한 방향을 보며 나아가는 사고방식, 즉 ‘선형적 사고(Linear thinking)’에 익숙해져 있다. 시작점을 찍고, 그 점을 기준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직선을 그리며 우리 삶과 커리어의 방향을 잡는다. 이 패턴에서 벗어나면 바로 마음이 불편해지고, 왠지 모르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고, 실패할 것 같은 불안감이 찾아온다. 하지만 꼭 직선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법은 없다. 때론 둥글게, 때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때론 새로운 점을 찍고, 때론 대각선을 그리며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일 텐데 말이다.
--- p.75
입사 후 낯선 세계에서 힘겨워하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친절한 동료가 해준 이야기가 있다.
“여기 방식에 익숙해지려면 최소한 1, 2년이 걸릴 거야. 시간이 지나고 이제야 좀 알겠다 싶으면, 퇴사를 할 타이밍이지.”
시간이 지나서야 동료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수많은 구성원들의 역학 관계를 이해하고 책임자와 실세가 누구인지 파악하고 기구의 문화를 익히는 데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초반부터 내 입지를 다지고 여러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고 싶어 바로 시동을 걸었고, 가는 곳마다 막히는 현실에 혼란스러웠다. 고지식하고 나이브한 성격 또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생전 해보지 않은 업무를 해내야 하는 어려움보다 거대한 조직에서 정치적인 관계를 이해하고 풀어가는 것이 더 큰 난관이었다. 그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터득해야 하는 것은 ‘효과적으로 내 목소리를 내는 법’이었다. 그렇게 나의 정치 수업은 시작되었다.
--- p.87
다양한 상사를 만나면서 오직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내 일만 하자.’
사실 목표는 명확하다. 일이 되게 하는 것. 내 일을 잘하는 것.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나만의 주문처럼 반복한 혼잣말도 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건 내 문제가 아니야. 내 문제가 아니야.”
--- p.100
몸을 돌보는 것 못지않게 정신을 돌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건강에 매우 악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해가 될 수 있다. 근본적으로 독이 있는 조직 문화 속에 있다면,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관리를 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여러 갈등과 가스라이팅을 겪으면서 수차례 내 능력과 판단력을 의심하기도 했고 상처 입은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폭력적이고 독이 되는 문화에 오래 머물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스스로의 능력과 가치를 의심하게 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조치를 취해서 그런 업무 환경을 변화시키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그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 p.112
지금껏 살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I am one of those people),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야(I am not one of those people)’라는 고착된 생각으로 스스로를 억압하면서 이미 변화하고 있는 나를 리셋하지 못하고 과거에 매달리고 있던 건 아닐까?
‘나는 이 프로젝트를 맡을 리더가 아니야’, 혹은 ‘나는 창의 적인 스타일이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지 않고, ‘저 사람은 나랑 코드가 안 맞아’라는 섣부른 판단으로 관계의 발전을 차단시키기도 한다. 자신을 ‘이러이러한 사람’의 틀에 가둬버리는 것은 성장을 방해하고 오류를 범할 위험성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종류의 편견도 그 바탕에는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저들은 이런 스타일의 인간이야’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지 않던가.
--- p.126
시인 마야 안젤루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모든 곳에 속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알 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내 삶에 적용하기 위해 간절히 노력하는 중이다. 뉴욕이 가진 수많은 수식어와 이미지 사이에 사람들의 진짜 일상이 존재하듯, 내 이력서에 나열된 어울리지 않는 요소 사이사이에 나의 진짜 모습이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카테고리에 속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 모호한 경계에서 지금의 나로 수많은 내일을 향해 건너가는 것이 가장 나다운 삶이라고 믿는다.
--- p.132
“변호사이지만 가수 생활을 그만두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본 것 같아요. 음악은 계속하시는 건가요? 변호사인데 지금 소속은 어디인가요?”
우리 사회는 소속이나 타이틀에 민감하다. 이력서의 공백을 오점이라고 치부하는 직장 문화 때문인지 한 타이틀에서 바로 다른 타이틀로 오버랩되는 것에 익숙하고 특정 카테고리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커리어가 열 번도 바뀔 수 있는 요즘 시대에 말이다. ‘N잡러’, ‘사이드 허슬’처럼 하나의 일만 하지 않는 것이 흔해졌음에도 소속을 원하는 심리는 여전하다. 동일한 직업군 안에서도 개인의 정체성에 따라 동질감과 이질감을 느낀다. 그만큼 소속감이 없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서일까?
--- p.139
소속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내기’는 내 인생에서 지속될 화두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에 계속 머물렀다면, 하던 음악을 계속했다면, 한 회사에서 한결같이 일했다면, 직업을 하나로 이어갔다면… 이렇듯 수많은 ‘If(만일 내가 이랬다면)’를 나열하며 고민하고 흔들리는 날들이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괜히 인생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사는 것 같아서 스스로가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 존재에 대한 묘한 혼란스러움이 있기에 안주하지 않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나만의 독특한 삶을 디자인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는 것은 분명하다.
--- p.141
현역 가수 생활을 할 때처럼 소속사나 매니저를 통하는 것이 아닌, 내가 스스로 협상을 할 때 가장 힘든 점은 나의 가치를 내가 수치화하는 것이었다. 특정한 기준이나 범위도 없이, 광고의 종류와 내가 가진 이미지의 상호작용으로 정해야 하는 내 가치는 조사해서 알 수도 없고 누구에게 물어보기도 힘든 문제였다. 소위 말해 나 자신의 ‘몸값’을 정하는 일이라 시장조사를 통한 자료 수집에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나는 내 시간과 역량, 그리고 내가 창출할 가치를 비교할 기준을 최대한 창의적으로 찾았고 그에 맞춰서 협상 시작점을 정할 수밖에 없었다.
--- p.150
어떤 일을 하기에 완벽히 준비된 때란 없을 수도 있다. 이럴 때, 부족한 준비나 상황을 보완해주고 메꿔주는 것은 바로 ‘배짱과 대범함’이다.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내적인 힘은 때로는 철저한 준비보다 더 강렬한 에너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특히 외국인으로서 사회생활을 해야 할 때 다른 어떤 준비보다 가장 현실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네이티브처럼 유창한 말발과 명백한 다수에 속하는 그들의 익숙함을 따라잡으려고 애쓰는 대신 조금 부족한 80퍼센트에서 플러스알파를 이끌어내 90퍼센트를 발휘할 수 있는 배짱을 기르는 연습이 더 현실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연습을 통해 길러진 자신감은 곧 실력이 된다.
--- p.174
내가 무엇을 할 때 늘 겪는 과정이 있다.
흥분 - 준비 - 후회 -걱정 -그리고 “에라 모르겠다.”
그 마지막 단계로 전환이 되는 순간이었다. 앉아 있는 것보다 서서 무대를 걸어 다니며 연설을 하는 게 편안할 거라 생각했다. 준비한 노트를 들고 무대 중앙으로 갔다. 문득 ‘뒤에 밴드만 있으면 노래할 수 있는 분위기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소은아. 공연을 하는 거야. 네 온 마음을 다해 퍼포먼스를 하자.’ 단상에 서서 내려다보니, 행사장을 꽉 채운 청중은 내가 연설을 시작하기를 기다리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 p.192
지난 이십 대와 삼십 대, 나를 몰아붙이며 악바리처럼 살았던 그 시절의 내게 요즘 들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조금 더 다독여주고 기다려줬어도, 나에게 조금 더 너그러웠어도 충분히 잘했을 텐데. 자신에게도 넉넉함을 허락해주는 적정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이제서야 안다. 그 선이 어디인지, 알맞고 바른 정도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자신에게 엄격할 때와 너그러워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하다.
최근에 언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소은아, 언니는 요즘 정말 끝내주는 B Plus야. 그리고 그것도 괜찮아.”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랴, 연주 활동하랴, 연습하랴, 두 아이 육아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언니가 터득한 현재의 삶의 방식은 신선했다. 자신의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것도, 조금 덜 열심히 살아도 괜찮다는 얘기도 아니었다. 자신의 최선이 가끔은 A가 될 때도, B가 될 때도 있지만, 그 노력을 스스로 인정하고 자신에게 너그러울 줄 아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다.
--- p.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