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귀를 스치고 지나가는 말들, 무심코 들으면 그저 ‘말’일 뿐이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들으면 모두가 ‘사투리’, 혹은 ‘방언’이다. 고향을 떠나도, 표준어 교육을 받아도 그 사람의 말을 이루는 뼈대 어디에선가는 사투리의 냄새가 난다. 그러나 연구를 위해서는 이런 단편적인 냄새로는 부족하다. 사투리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전체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을 정도의 조사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떠나야 한다. 원하는 사투리로 가득 찬 땅,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만 살고 있는 그 땅으로 떠나야 한다. 그 땅에 가면 쏟아져 들어오는 말들, 오로지 소리로 들어야 한다. 몇몇 소리들은 귀를 뚫고 가슴을 울린다. 소리에 담긴 내용이 그들의 치열한 삶에 대한 것이면 머리에 또렷이 새겨진다. 소리가 들리고 나면 뜻이 들리기 시작한다.---「프롤로그 ‘방언을 찾아 떠나는 여행’」
“정말 모르갓어? 그눔들이 왜 걸핏하먼 오느서 저러는지? 궝이 때문이지, 그러니까 게 말이야, 게.” 신기할 따름이다. ‘궝이’도 그렇지만 ‘모르겠어’가 아닌 ‘모르갔어’는 영락없는 평안도말이다.……“어르신, 궝이는 평안도말인데 어르신께서도 평안도말을 쓰시네요.” “뭐이가 어드래? 난 평안도에 가본 적도 없고, 평안도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어. 그런데 내가 어드렇게 평안도말을 쓰갔어.” 정색을 하면서 부인을 하시지만 ‘어드래, 어드렇게’ 또한 평안도에서 흔히 발견되는 말이다. 이 말들이 평안도에서 바닷길로 직접 온 것인지, 교동이 맞닿아 있는 황해도 연백을 거쳐 들어온 것인지 알 수는 없어도 평안도의 말이나 충청도의 말이 멀리도 와 있는 셈이다.---「그이가 선을 넘으면 궝이가 된다」
어느 순간 홍어와 과메기는 다른 뜻이 된다. 홍어는 전라도 사람, 그것도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 그래서 없애버려야 하는 사람의 뜻이 된다. 과메기는 경상도 사람, 비릿한 기름기가 흐르는 사람, 그래서 쓸어버려야 하는 사람의 뜻이 된다. 전라도와 관계된 얘기만 나오면 홍어 냄새가 나니 공격하자는 말이 나온다. 경상도와 관계된 얘기만 나오면 과메기 냄새가 나니 소탕하자는 말이 나온다. ……어느 순간부터는 철없는 아이들까지 가세한다. 이전에는 지역에 대한 감정이었던 것이 이제는 냄새에 대한 감정으로까지 비화한다. 일부 철없는 어른들도 꼴통이니 종북이니 하면서 가세한다. 냄새에 대한 감정을 넘어서 색깔에 대한 감정으로까지 나아간다. 뿌리를 내리고 사는 땅, 그 땅에서 나는 음식은 아무런 죄가 없는데 모든 것에 죄의 굴레를 씌운다.---「과메기와 홍에의 향기」
“내 원도에도 살았고 하바롭스크에도 살았습구마. 하바롭스크에서 글으 닑었지. 습학년 필업하고 기차 탔습구마. 따슈켄뜨 아오. 기차르 타고 메칠으 가다나니 따슈껜뜨라 하댸니오. 배질밖에 모르던 클아반까 빠빠도 어이하겠소. 콜호즈에서 베질으 했습구마.(내가 원동에서도 살았고 하바롭스크에서도 살았습니다. 하바롭스크에서 학교를 다녔지. 10학년 졸업하고 기차를 탔습니다. 타슈켄트 알아요? 기차를 타고 며칠을 가니까 타슈켄트라 하지 않아요. 사공 일밖에 모르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어찌하겠소. 집단농장에서 벼농사를 지었습니다.)” 서서히 할머니의 살아온 과정과 걸어온 길이 그려진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혹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찾아간 땅 러시아, 그러나 거기에서도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연해주에 큰 세력으로 자리를 잡은 한인들이 두려웠던지 스탈린은 강제로 이들을 중앙아시아로 보낸다. 일본과 전쟁을 벌이던 시기에 이들이 일본과 내통을 한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핑계에 불과했다.---「따냐와 코끼리의 귀환」
말소리의 변화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욕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 ‘겁나게’가 ‘겁나’가 되는 것을 보면 ‘좆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개가 왜 짖나’에서 ‘짖나’가 ‘진나’로 발음되는 것을 생각하면 ‘존나’도 이해가 된다. 문제는 ‘존나’가 왜 ‘졸라’가 되는가이다. 이런 부분에서 비록 욕쟁이들이지만 놀라운 언어 지식을 확인하게 된다. ‘ㄹ’은 성격이 아주 못돼서 그 앞에 ‘ㄹ’을 제외한 어떤 소리도 오지 못하게 한다. ‘신라’에서와 같이 만만한 ‘ㄴ’이 앞에 오면 ‘ㄴ’을 ‘ㄹ’로 바꿔 ‘실라’로 발음한다. 그 이외의 소리가 오면 ‘격리, 경리, 십리’에서와 같이 ‘ㄹ’ 스스로가 ‘ㄴ’으로 바뀌어버린다.
---「욕설의 방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