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11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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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60쪽 | 478g | 125*200*30mm |
ISBN13 | 9791160949834 |
ISBN10 | 1160949832 |
발행일 | 2022년 11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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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60쪽 | 478g | 125*200*30mm |
ISBN13 | 9791160949834 |
ISBN10 | 1160949832 |
들어가며 1부 반복되는 리듬 커피 전투 식량 캔커피 │ 복잡해서 재미있는 일 │ 코피와 커피 │ 동물이 살 만한 카페는 없습니다 양말 예술적 양말 거부자들 │ 양말을 신는 존재 │ 엄마와 산타클로스가 지킨 양말 │ 구멍 난 양말 밥 밥 짓기라는 의식 │ ‘밥’ 하면 부추김치 │ 너와 나의 밥 │ 밥을 준비하는 과정 아침 무려 매일 오는 아침 │ 아침의 좋은 기운 │ 다른 세계의 아침 │ 고양이가 잠에서 덜 깬 아침 [반복되는 리듬] _ 최태규 2부 속삭이는 사물들 텔레비전 텔레비전과 다양한 ‘알몸’들 │ 3분이면 될까요? │ 농인 엄마와 함께 보는 텔레비전 │ 텔레비전 안과 밖의 동물들 손바닥 손바닥 인사 │ 어린이의 손바닥 │ 자존심 강한 손바닥 │ 손바닥 맞대기 책 책의 물성 │ 아기 그림책의 둥근 모서리 │ 더듬더듬 읽어 내려가는 책 │ 책을 즐기는 순간 바닥 바닥을 감수하는 춤 │ 바닥처럼 딱딱한 일 │ 차가운 바닥에 앉아서 │ 그 바닥을 디뎌야 한다면 [속삭이는 사물들] _ 이길보라 3부 움직이는 마음 장난감 치타와 윌슨에 대하여 │ 가지고 노는 구슬이 좋지 │ 세상에서 가장 멋진 불빛 장난감 │ 장난감 하나에 들썩이는 기분 병원 병원을 보호하는 사람들 │ 걸어서 갈 수 있는 병원 │ 시끄럽고 번잡스러운 장례식 │ 마지막 장면은 병원이 아니길 흔들흔들 흔들흔들 몸 곁에 │ 흔들리는 이 하나 │ 손으로 만지는 흔들흔들 │ 멀미가 날 것 같은 공포 소곤소곤 소곤소곤, 마음이 털어놓는 말 │ 외우기로 해요 │ 수어로 비밀 말하기 │ 우리는 작은 목소리로 말해요 [움직이는 마음] _ 김원영 4부 고요히 흐르는 시간 게으름 게으름과 천장의 무늬 │ ‘마음먹기’를 하기 │ 게으른 장애인 │ 게으름이 아니라 지루함 기다림 하염없는 기다림 │ 기다리는 어린이 │ 들을 수 없는 기다림 │ 매일매일 기다려 서늘함 서늘한 하늘 │ 365계절 │ 서늘한 바람 앞에서 │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고양이 안녕 구름이 어떻든, 안녕 │ 여러분의 안녕 │ 손과 입으로 부르는 안녕 │ 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 [고요히 흐르는 시간] _ 김소영 |
우연한 계기로 나에게 온 책「일상의 낱말들」, 아마도 이 책은 나와 인연인가보다 하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보들보들한 종이의 질감에서 따뜻함이 느껴지고, 표지의 라디오에서는 뭔가 휴식같은 음악이 흘러나올 것만 같다.
안수연 라디오 피디님의 제안으로 각자 다른 일상을 버티고 누리며 살던 네 분의 작가님이 일상을 이해하고 성찰 할 계기를 가지며 이 책을 집필하게 되셨다고 하는데 각 낱말마다 김원영, 김소영, 이길보라, 최태규 작가님 순으로 글이 수록되어 있다. 16개의 일상의 단어들에 대한 작가님들의 닮은 듯 다른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의 일상의 단상들도 함께 떠올리며 읽었다.
첫번째 일상의 낱말은 <커피>. 공연을 하고 글을 쓰며 변호사로 일하고 계신다는 김원영 작가님은 휠체어를 타시는데 대학생 시절 두 손의 자유를 가질 수 없어 캔커피를 고집하셨으나 까다롭고 예민하기로 유명한 법대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시절, 문 앞에 붙은 포스트 잇 " 캔 좀 조용히 따세요. " 문구에 흠칫하셨다는 커피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신다.
어린이와 함께 책을 읽는다는 김소영 작가님, 독서 교실에 처음 온 어린이들에게 일부러 수동 커피 그라인더로 커피콩을 드드득 갈며 커피 내리기 시연을 하신다고. 그리고 자신만의 '복잡해서 좋은 것'을 말해주신다고 한다.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신다는 이길보라 작가님, 어떤 단어나 문장, 표현을 만나면 얼굴 표정과 손을 움직여 생각하시는데 본인은 수화언어, 수어를 모어로 하는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라고 하시며 수어로 커피는 비슷하게 생긴 단어인 '코피'를 소환하여 '코피'와 '차'라는 단어가 합쳐진 수어는 어쩐지 코피를 저어 마시는 것 같아 으스스 하다고.
동물복지를 공부하는 수의사 최태규 작가님, 서울 도심에서 동물원이 되어 버린 야생동물 카페에 혐오감 외에 다른 감정을 느끼기 어려운 장소라며 서로가 안녕한 세상에서 커피는 더 향긋할 것 같다며 동물이 살 만한 카페는 없다고 말씀하신다.
20년차 회사원인 나에게 '커피'는 각성제이자 사랑의 표현이다. 업무로 한참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무실, 직장 동료가 자그마한 수동 커피 그라인더를 손에 들고 천천히 손잡이를 돌리며 드르륵 드르륵 갈면서 스몰톡을 건넨다. 회사에 자동 커피 머신이 있는데도 수동 커피 그라인더를 사용할 생각을 한 그 친구의 발상이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정신없이 바쁜 회사 생활이지만 잠시나마 찰라의 여유를 가지고 싶어 그랬을까? 사실 커피 맛을 잘 모르는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었다가 지난 10년간 온갖 프로젝트와 업무의 고단함에 찌들게되면서 어느새 커피를 숭늉처럼 마시고 있다. 업무을 해야해서 각성이 필요할 때면 에너지 드링크도 찾아서 먹을 정도로 나의 음료 취향은 완전히 바뀌었다. 커피나 에너지 드링크를 즐겨서라기 보다는 내 몸을 각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편이 맞겠다.
주말이면 우리 가족은 산으로 바다로 캠핑이나 여행을 떠난다. 주말 아침이면 아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수동 커피 그라인더로 커피콩을 갈아주고 남편이 커피를 내려준다. 모두 남편의 제안으로 시작된 일인데 남편도 고된 회사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커피콩을 가는 낭만을 즐기고 싶어한 것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오늘 아침에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아이와 남편표 라떼가 배달되었다. 김소영 작가님 말씀대로 어떤 때는 복잡할수록 재미가 있는 법이다. 처음에 언뜻 생각했을때는 '그걸 뭐 하러 그렇게 하느냐' 하고 타박을 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신통치 않은 솜씨이지만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커피콩을 갈고,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커피를 내려주는 그들의 마음이 담긴 커피를 마시면서 잔잔한 행복을 느낀다. 무엇이든 좋아하는 게 있으면 번거로운 과정도 즐겁게 느껴진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라는 김소영 작가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낱말은 <아침>이었다. 출퇴근이 없는 한겨울의 어느 주말 아침, 함박눈이 펑펑 내려 눈꽃이 장관인 강원도의 한적한 오솔길을 홀로 걸었다. 사방이 눈꽃으로 둘러싸인 아무도 밟지 않은 시골길을 걸으며 혼자만의 아침 산책을 즐겼다. 뽀도독 뽀도독 내가 눈 밟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조용한 가운데 오늘 아침의 하루치 좋은 기운을 나혼자 모두 마신 기분이었다. 최태규 작가님의 말씀을 빌자면, 해가 뜰 무렵 태연하게 일어나 무언가에 늦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지 않아도 되는 날, 언제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는 그런 날, 일찍 일어나 일을 해야하는 평일 아침과는 달리 조용히 나만의 아침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이런 일없는 주말 아침이 주어짐에 그저 감사했다. 문득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에 인상깊게 봤던 영화 <바라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말이 떠오른다.
Tomorrow is another day.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김원영 작가님이 말씀하신 아침을 기다리라는 드워킨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 느낌의 말이다. 우울하고, 슬프고 아무리 애를 써도 삶이라는 거대한 무의미 앞에서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더라도 아침을 기다리면 된다는 이야기. 아무리 노력해도 때로는 거대한 허무와 절망, 슬픔에 빠지지만, 무려 매일 찾아오는 아침이 있으니 오늘도 힘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연말이면 회사에서 법정 의무교육이라고 해서 다양성과 포용을 강조하며 교육을 실시한다. 열린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보자는 좋은 취지와 다름을 받아들이는 따뜻한 시선을 가지자는 취지로 이루어지는 교육으로 알고 있는데 거의 형식적인 느낌이라 좀 더 의미있는 시간이 되려면 다름에 대한 이해가 쌍방향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네 분의 작가님들의 경험과 함께했던 열여섯 가지「일상의 낱말들」을 다 읽은 지금, 편안한 일상의 단어들이 누군가에게는 결코 편하지 않을 수 있음을 공감하며 뭔가 묵직함이 느껴진다. 유쾌하지 않지만 일상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불편함들이 씁쓸하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회적 약자들이 느끼는 불편함에 관한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음에 반성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 싶었다. '다른 각도의 삶'을 탐색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버티는 삶을 살면서 세계를 조금 더 높이서 조망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편견과 차별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일본 문화와 한국문화가 다른 것처럼 농인과 청인의 문화 역시 다른 것이겠지요. 다름 속에 몸을 맡기는 일은 때로는 황당하고 민망하지만 아주 유쾌하고 웃기기도 합니다. 다름이 주는 새롭고 놀라운 관점을 더 많이 발견하고 싶습니다.
식물이나 동물은 물론이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오직 '쓸모'에만 초점을 맞춘 채 살아가고 있다면, 특별한 용도 없이 태어난 물건을 소중히 다루던 어린 시절의 마음도 필요할 때가 있지않은가 생각합니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YES24리뷰어클럽#일상의낱말들#김원영#김소영#이길보라#최태규#사계절
흔한 낱말들 속 흔하되 흔치 않은 일상
<일상의 낱말들>을 읽고
날마다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에도 한결같이 그 맛이 변하는 일은 없을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누구에게든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는 있기 마련이지만, 각자가 서 있는 자리가 다르기에 경험치와 체감도는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두 해 전 EBS 라디오 프로그램 『일상에 대하여』는 한 가지 주제를 놓고 각기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네 사람이 자기만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니,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들 중 자신의 농인 부모를 비롯한 농인 시청자들도 다함께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한 참여자의 마음이 제작진에게 가닿아 전 회차 수어통역으로 만들어진 까닭이다. 이 장면만 보더라도 '일상'에 대한 나의 감수성이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프로그램에 출연한 네 사람은 <일상의 낱말들>의 공저자가 되어 다시 만나게 된다. 공연하고 변호사로 일하는 김원영, 어린이들(의 마음)과 책을 읽는 김소영, 영화를 만드는 이길보라, 동물복지를 공부하는 수의사 최태규. 다른 삶을 사는 네 사람이 함께 글을 쓰면서 닮은 구석을 발견했으리라 생각한다. 책은 크게 네 마당으로 각각 네 가지 단어를 두고 저자들이 번갈아가며 비사차기를 하듯 글을 써내려간다. 목차에 따르면 '커피, 양말, 밥, 아침'에서 '반복되는 리듬'을 찾고, '텔레비전, 손바닥, 책, 바닥'으로부터 '속삭이는 사물들'의 소리를 듣는다. 또 '장난감, 병원, 흔들흔들, 소곤소곤'을 통해 '움직이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게으름, 기다림, 서늘함, 안녕'이라는 말에서 '고요히 흐르는 시간'을 감지한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어린이라는 세계』,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읽은 독자라면 <일상의 낱말들>에서 마주하는 저자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작가나 그의 저서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도 괜찮다. 오히려 저자들의 오감이 닿는 곳곳에서 그동안 평범하게만 여겨졌던 것들이 어떠한 비범함을 드러낼 때, 독자는 육감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될테니 말이다. 내게 인상적으로 남은 일상적인 낱말들을 몇 가지 꺼내본다.
'커피'는 이제 기호품을 넘어 끼니는 걸러도 커피는 양보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사람들의 애호품이 된 듯하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에게 두 손의 자유는 넘치기 일보 직전의 아메리카노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김원영 작가는 대학시절부터 캔커피를 즐겨 마셔오고 있다.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 앞에서 커피를 내리면서 그 번거로운 과정도 즐겁게 느껴진다는 걸 몸소 보여준다. 동물 까페에서 어린이들이 야생동물에 대한 신비로움보다는 그들을 물건처럼 소유하거나 사고팔 수 있다는 감각을 배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최태규 작가의 염려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어째서 커피라는 수어 단어는 시각적으로 '검은 물'과 '차'라는 표현이 합쳐진 것이 아닌 '코'과 '차'가 합쳐진 합성어가 되었는지, 'coffee'라는 영어 단어가 농인의 세계에 어떻게 처음 들어왔는지, 농인들은 신문 기사 혹은 메뉴판에서 '커피'라는 단어를 보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용기를 내어 주문한 그 커피의 맛은 어땠을지 상상해봅니다.(27~28쪽)
'책'은 또 어떠한가. 꽤 오래 전부터 여러 환경적인 요인으로 이 세상에서 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무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은 '독자(와 함께) 생존'하고 있다. 김원영 작가는 책을 읽고 쓸 뿐 아니라 책 위에 올라 앉거나 책에 기대어 앉기도 하면서 생존을 위한 버팀목으로 활용하고 있다. 자신이 쓴 책을 애쓰며 읽는 엄마처럼 청인 또한 농인의 세계를 공들여 이해하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이길보라 작가는 말한다. 최태규 작가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간 반려묘를 그리며 그에게 책은 북북 뜯고 찢으며 놀 수 있는 장난감이자 그 행위를 통한 희열의 순간을 맛보게 해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모든 책이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모든 책이 물건인 것은 확실하니까요. 아기 그림책의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고, 아기가 입에 물어도 해롭지 않도록 콩기름을 이용해 코팅하고, 헝겊 그림책의 소재를 신중히 고르는 것도 책이 물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기부터 어른까지, 독자가 누구이든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148쪽)
몸이나 마음이 움직이는 모양을 뜻하는 '흔들흔들'을 보고 있으면, 하나둘 하나둘 박자에 맞쳐 팔의 자세를 바꿔보고 싶은 마음과 곧장 어디론가 떨어지거나 빠질 것만 같아서 다리가 후들후들한 기분 사이를 오가는 듯하다. 김소영 작가는 흔들리는 이에 대처하는 어린이를 보면서 흔들린다는 것은 재미와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데, 흔들리는 일이 마음 전체를 차지한다면 스스로 결정을 내려할 순간이 찾아온 것이라고 말한다. 나무를 두드리고 만지면 거기서 나는 소리를 촉각으로 받아들이는 아빠를 보면서 이길보라 작가는 그러한 흔들거림이 아빠에게는 소리가 된다고 표현한다. 최태규 작가는 먼저 떠나보낸 반려묘과 함께하다 홀로 남겨진 반려묘의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주기 위해 털을 쓰다듬어주다가 자신또한 돌봄을 받는 기분을 느꼈던 때를 떠올린다.
움직이는 것보다 가만히 있는 일이 보통은 더 힘듭니다. 중력에 대항하며 우리는 미세하게 무게중심을 이동하고, 심장과 맥박의 운동으로 몸 전체에 혈액을 보내느라 작은 진동을 계속합니다. 그런 가운데 몸 전체를 의식적으로 지배하며 공간을 가득 채우기란 간단하지 않은 일입니다.(230쪽)
누군가 말했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겉으로는 한 자리에 머물며 사람이나 사물 혹은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속마음은 바라는 대상을 향해 수없이 갔다가 돌아오길 반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원영 작가는 무언가를 기다릴 때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고 말하며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도 혼자서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기에 그도 관객도 모두 참을만한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어른만 어린이를 기다려주는 게 아니라 마찬가지로 어린이도 어른을 기다려주는데, 이를테면 어른이 어서 바쁜 일을 끝내길, 지난 번 약속을 지켜주길, 말로는 전달하지 못하는 어린이의 마음을 알아주기길 바랄 것이라는 김소영 작가의 말에 한지붕 아래 사는 아이의 마음을 엿보는 듯했다. 어린 시절 오줌싸개였던 이길보라 작가는 잠들기 전 화장실에서 소변보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았는데, 그때마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엄마가 마법 주문처럼 '쉬'라는 소리를 내줘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어떤 훈련이든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사람의 기다리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차분하게 개를 기다려줄 수 있는지가 '기다려 '훈련의 핵심입니다. '개의 시간'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훈련을 잘하는 사람이고 개와 함께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308쪽)
<일상의 낱말들>에서 열여섯 개의 단어는 비단 네 명의 작가만 눈으로 보며 입속에 넣어 굴리고 손으로 글을 써낼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 독자 역시 하나의 낱말을 마주하고 그에 관한 저자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문득 나에게는 어떠한 의미를 가진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나아가 나도 한 번 그것에 대하여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게 만들 수도 있다. '일상의 낱말들'이 다른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연결시켜준 것처럼, 그들이 그려놓은 특별한 원과 독자가 그린 특유의 원이 겹치는 순간부터는 그들만의 비범한 나날이 아니라 다같이 공감하고 배려하는 평범한 일상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흔하되 흔치 않은 일상의 곳곳에서 오늘도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빛나고 있을 흔한 낱말들을 상상해보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