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페라를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 무렵에 연하고 따뜻한 블랙 커피와 먹는 걸 좋아한다. 오페라 공연도 대부분 저녁 시간임을 감안한다면 살짝 억지스럽긴 해도 짙은 초콜릿과 까만 색상은 컴컴한 저녁 공기와 매우 잘 어울린다. 날이 좀 쌀쌀하고 바람이 불면 더욱 완벽한 조화. 밥 대신 오페라와 커피 한 잔만 먹어도 든든한 건 아마도 「달로와요」의 앙드레 아주머니가 오페라 극장의 가수 혹은 무용수들이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리라.
---p.22 「디저트계의 블랙 레벨, 오페라」 중에서
나는 에클레어를 항상 손으로 들고 먹는데, 먹을 때마다 에클레어의 결을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별깍지의 결이 선명하게 살아 있는 표면을 선호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미세하게 솟은 돌기들을 오븐에 구우면 면적이 넓어져 훨씬 바삭바삭한 맛이 나는 이유도 있고, 왠지 밋밋하고 매끈한 크러스트보다는 일정한 패턴이 훨씬 고급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pp.31-32 「부담 없는 애프터눈 디저트, 에클레어」 중에서
밀푀유에 대한 나의 오래된 기억은 ‘발견과 기쁨’ 그 자체였달까.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디저트가 있다니. ‘왜 여태 몰랐나’ 하는 아쉬움과 ‘이제부터 즐기면 되겠지’라는 설렘이 동시에 일렁였다. 씹을 때마다 바삭거리는 페이스트리와 차가운 커스터드 크림이 입안에 감돌 때마다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짭짤하고 바삭한 레이어는 달콤한 크림과 잘 어울렸다. 역시 단짠의 조합은 언제나 옳다.
---p.36 「바삭함이 쌓인다, 밀푀유」 중에서
내가 꼽는 밤 디저트는 단연 ‘몽블랑Mont Blanc’이다. 짐작건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일 명품 브랜드나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인 몽블랑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디저트의 DNA를 가진 몽블랑의 경우, 밤이 수확되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꾸준히 먹을 수 있다. 밤이 많이 생산되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몬테 비앙코Monte Bianco’라고 불린다.
---p.52 「우뚝 솟은 달콤한 밤 산, 몽블랑」 중에서
아니나 다를까. 까눌레는 전혀 바삭하지 않았다. 물론, 탄력 있고 쫀득거리는 식감을 좋아하고 이에 개의치 않는 이들도 있겠지만 까눌레를 ‘겉바속촉’의 맛으로 찾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다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예민한 까눌레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숍에 진열되자마자 바로 사서 먹는 것. 비 오는 날 먹는 까눌레는 묵직하고 눅눅할 뿐이다.
---p.86 「12개의 맛있는 주름, 까눌레」 중에서
이 봄볼로니로 말할 것 같으면, 이태리 태생의 디저트로서 부드럽고 쫄깃한 반죽에 커스터드크림이 잔뜩 들어 있는 동그란 모양의 도넛이다. 나는 「로퍼 브레드」에서 이 도넛을 처음 먹어본 이후 금세 매료되어 헤어 나오질 못했다. 무엇보다 크림이 기막히게 맛있었고 솜사탕처럼 씹히는 식감이 아주 좋았다. 커피와도 잘 어울려서 일주일에 한 번은 간식으로 플랫화이트에 봄볼로니를 먹곤 했다.
---p.106 「촉촉하고 달콤한 링, 도넛」 중에서
파운드케이크는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불멸의 배합 공식이 있다. ‘파운드’라는 이름대로 밀가루와 달걀, 버터, 설탕을 각각 1파운드의 무게만큼 달아 걸쭉한 반죽을 만든 뒤 틀에 굽는 것. 물론, 과정에 따라 재료를 어떻게 어떤 식으로 혼합해야 하는 순서가 있고 맛있는 결과물을 위해 약간의 기술과 경험이 더해지면 더 맛있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베이킹 초보자가 거의 실패 없이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디저트 중 하나다.
---p.120 「단순하고 정직한 케이크, 파운드케이크」 중에서
3월 21일은 ‘세계 티라미수의 날’이라고 한다. 긴 겨울을 견딘 사람들의 지친 마음에 사랑스러운 봄의 활력을 주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이날에는 사랑의 묘약인 티라미수를 먹어야 한다. 물론, 나는 이와 상관없이 생각날 때마다 먹을 거란 걸 알지만 수많은 기념일 가운데 가장 기다려지는 날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p.147 「사랑하는 이와 함께할 때, 티라미수」 중에서
내게 만약 계절을 상징하고 달콤한 리추얼을 선사하는 피칸파이를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고소함과 달콤함의 극치’라고 대답할 것이다. 여름보다는 가을이 맛있고 가을보다는 겨울이 더 맛있는 피칸파이.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에 피칸파이를 만들어 가족이나 이웃에게 선물로 나눠준다. 타르트쉘이 아닌 속 깊은 파이디쉬에 피칸을 듬뿍듬뿍 담아 정성스럽게 구워 함께 즐기는 정겨운 전통이다.
---pp.188-189 「꼬숩고 찐득하라, 피칸파이」 중에서
케이크에 과일이 들어가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내가 딸기만큼은 용서가 되는 이유는 적당한 당도와 수분감, 새콤함, 그리고 부드럽게 일그러지는 질감 때문이다. 이 질감과 잘 어울리는 크렘무슬린. 이것만으로도 나의 겨울 디저트는 딸기생크림케이크가 아닌 프레지에인 것이다.
---p.199 「딸기케이크의 신세계, 프레지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