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3년 12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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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39쪽 | 326g | 148*210*20mm |
ISBN13 | 9788957692233 |
ISBN10 | 8957692231 |
발행일 | 2013년 12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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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39쪽 | 326g | 148*210*20mm |
ISBN13 | 9788957692233 |
ISBN10 | 8957692231 |
머리말 | 지금 이십대가 위험하다 1장 강의실에서 바보가 된 어느 시간강사 이야기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동병상련은 없다! 비정규직인 건 자기계발 안 한 탓? 이십대를 이해하는 것, 그래서 이십대에게 할 수 있는 말 2장 자기계발서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이십대의 자기계발 아이러니 왜 아무도 문제시 하지 않는 걸까? 촛불 든 이십대, 사회에 눈 감다 차별과 해고를 정당하다 여기는 이유 시간관리, 자기 통제, 그리고 칼날 3장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멋진 신세계’가 이룩한 재앙 첫째: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기 둘째: 편견의 확대재생산 셋째: 주어진 기존의 길만 맹목적으로 따라가기 왜 학력위계주의가 문제인가 덫에 걸린 대학생들의 자기방어 진리의 빛, 수능점수 ‘떨어지는’ 동년배에 대한 무시 또는 배려 다른 이를 평가하는 좁은 잣대 “내가 이룬 성과를 존중해달라” 대학서열에 대한 무모한 집착 본질에서 벗어난 평가 점점 단단해지는 기존의 편견 어두운 수능의 추억 학력위계, 끌어 내리기와 밟아 오르기 상품화된 개인, 그런데‘팔리지 않는’개인 학교 야구잠바의 사회학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이십대 미래도 희망적이지 않다 원인1: IMF의 추억 원인2: 경영학과의 사회학 원인3: before/after의 덫 4장 자기계발 권하는 사회를 치유하자! ‘원래 그런 세상’은 없다 긍정과 희망을 논하기 전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무엇을 간과했을까 공정성을 다시 생각하자 기회는 균등한가? 과정은 공정한가? 맷집의 사회학 CPA의 사회학 결과는 정의로운가? 맺음말 | 그따위 위로는 당장 멈춰라! 주 |
정말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그것은 독자의 삶과 일치하거나 생각이라도 유사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가독력이었다. 사회학자가 분석한 책이 소설처럼 서사의 재미가 있을리 만무하고 이 가독력은 우리 사회에 단면을 독자가 공감갈 수 있도록 저자가 잘 분석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구입한 것이었고 올해 맡은 과목이 사회문화라 사회학을 주로 다루다보니 사회학에 대한 관심이 올라 이 분야의 책을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마침 잘 고른 탓인지 한번 쥐고 읽기 시작하니 쑥쑥 책장이 넘어간다. 부제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에서 암시하다시피 오늘날 20대 대학생 일부를 중심으로 관찰법과 면접법을 주된 자료수집 방법으로 하되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저자가 몇 년간(2008년~2013년)축적한 학생들의 과제를 분석한 것도 보태 도출한 결과물이다. 자신이 가르치는 대학생들의 모습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고 이들이 이러한 시각을 갖고 세상에 접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질적 연구방법으로 분석한다. 요즘 사회학이 점점 재밌다고 느끼는 데 일조한 것이 사회학자들의 책 덕분이기도 한데 이 책들은 주로 질적 연구방법에 의한 저술이 공통점이었다. 문제는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리뷰 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책에 나온 구절구절에 정말 공감하였고 심지어 무릎까지 치며 읽어나갔기 때문이다. 쓸려고 하면 끝도 없을 내용들이 리뷰에 나열될 것이 뻔하기에.
이를 핑계로 간단히 이 책에 대한 간단한 평을 한다면, 우리 사회 20대 대학생들이 이중적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의 일부라도 알아낼 수 있는 책이다. 결코 시크한 것도 아니고 쿨한 것도 아닌 20대의 어정쩡한 태도는 결국 '자기 계발'을 강요하는 시대가 낳은 또다른 그림자일 뿐이다. 20대의 자기 방어를 너무도 적나라하게 분석해서 접근하였기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앞으로의 대한민국이 더욱 걱정된다. 자기 계발과 취업을 동의어로 생각하는 이십대, 그들이 매긴 세상의 서열은 이미 수능 점수로 시작되어 사회 생활 전반으로 확산된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의 위계화 서열화는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개인들은 이것을 자기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 바쁘다. 너무나 많은 사회의 멘토가 '힐링'과 '치유'를 빙자하며 들고 나온 것들이 죄다 자기 자신의 노력에 인생은 결정된다라는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 계발이라는 허울을 뒤집어 쓰고 이를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그것이 곧 스펙이 되어 그것이 곧 취업, 그리고 결국은 성공과 행복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결국, 우리는 계속 노동자와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살더라도 남탓이나 국가와 사회 구조 탓은 뒤로 하고 자기 자신이 못나고 모자라서 그렇다고 결론 지으며 자기 비관으로 이어진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분명히 있음에도 이를 간파하지 못한다. 이는 이미 학창시절부터 세뇌되어온 어느 대학에 입학하느냐가 남은 인생을 결정한다는 부모세대와 사회의 시선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쿵쾅거렸고 서글프고 답답했다. 안그래도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적한 대한민국이다. 비교적 자유로운 시절을 누리다 갑자기 이것저것 자기 검열과 감시의 시대로 접어든 뒤 더욱 느끼고 있는 상대적 구속감이다. 그게 자유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더욱 깊이 느껴갈수록 나는 사회학자들이 쓴 글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틀의 통찰은 일반 대중들의 눈과 확실히 다르다. 우리가 두리뭉술하게 느끼기만 했던 것을 사례와 근거를 통해 좀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니까 평소 문제를 인식하고 있던 독자라면 더욱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30대 중반이고 기반을 어느 정도 잡은(20대의 눈으로 본다면) 기성세대이다. 이미 20대의 치열함을 거쳐온 세대지만 현재 치열하게 살고 있을 20대를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내가 20대 때도 이게 나만 잘하면 다 잘 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작은 문을 통과하는 데 불과하다. 구조의 개선과 변화 없이는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차단되어 있다. 이것은 한국 사회만 경험하고 바라보면 잘 모를 수 있는 부분이다. 다른 사회에 대해 알고 비교할 수 있을 때 우리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찾아낼 수 있다.
내가 지금 가르치는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나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이렇게 해봤자 우리 아이들은 비정규직이나 어딘 가의 조직에 소속되어 구속된 삶을 살 것인데, 란 비관적인 생각까지. 희망보다 절망을 더 많이 느낀 요 몇 년 간이라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자신의 미래가 불확실하고 현재가 불안할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자기 계발을 강조하며 여전히 제자리인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모든 것은 자기의 노력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돌릴 것 같다. 타인을 밀어내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최우선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연대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 함께 잘 사는 것이 어떤 세상인지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자기의 일상에 바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정심은 있어도 연대의식은 없는 20대.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가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처참한 체념이 가슴 아프다. 나는 많은 부분 저자의 생각에 공감했다. 꼭, 읽어보시라.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아니었는데?
책을 덮고 다른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대체로 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문제다 라는 데에는 의견이 모아진다. 내가 나를 돌아봤다. 그때는 IMF조차 터지지 않은 대학이었지만, 나는 나름 좋은 대학이라며 우쭐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학교에 가면 다른 학과보다 낮은 커트라인에 창피할 때면 '너무 하향지원을 해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어쩌면 이 책에 나온 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기성 시스템에 편입되고 안되고의 문제를 벗어나 스스로에게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이를 욕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시기를 훌쩍 지나버렸기 때문에 당당히 비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좋은 대학 다니면서 자랑하지 않으려는 친구를 본적이 없고, 안 좋은 학교 다니면서 창피해 하지 않는 친구도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런 식으로 '햐~지금 젊은 애들 걱정이다 걱정이야'라는 식으로 안이한 비판은 안된다. 사실 누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힐링'이니 '격려'니 하는 말을 무책임하게 내뱉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로라는 것은 결국 '다시 일어나서 달리렴.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 힘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자기계발이 경쟁처럼 일어나서 이건 아니다 싶은데도 현재는 답은 없다. 그래서 위로라도 구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위로 아닌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그래서 대안이 뭔데?'라는 질문으로 문제제기 자체를 봉쇄하는 것을 우려한다. 확실한 대안이 없으면 문제제기를 못하는 것은 어떠한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
김영하의 단편 소설 '옥수수와 나'에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스스로 옥수수라고 생각해서 닭들이 무서워서 정신병원에서 치료받던 남자가 어느날 스스로가 옥수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닭들에게 쫓겨 오자 의사는 당신이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데 왜 그러냐고 했다. 그러자 그 남자의 답은 '글쎄 저야 알지요. 하지만 닭들은 모르잖아요.'
이런 상황은 의외로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에서 모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옥수수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왜 '옥수수' 이야기가 떠올랐을까. 만약 내가 이것은 잘못된 현실이며 이제 나로부터 이 상황을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자.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살고 있는데, 여전히 주변 상황은 그대로이다. 나는 차별하는 현실이, 자기계발에 매진해봐야 그저 평범해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 현실이 오류 투성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아무도 쫓아오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계속 도망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문제는 여전히 녹록치 않다. 강준만의 '개천에서 용' 책을 볼 때처럼 답은 멀리 있거나, 혹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