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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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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03이동
리뷰 총점8.2 리뷰 43건 | 판매지수 1,566
베스트
사회 정치 top20 9주
정가
14,000
판매가
12,600 (10% 할인)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2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39쪽 | 326g | 148*210*20mm
ISBN13 9788957692233
ISBN10 895769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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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머리말 | 지금 이십대가 위험하다

1장 강의실에서 바보가 된 어느 시간강사 이야기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동병상련은 없다!
비정규직인 건 자기계발 안 한 탓?
이십대를 이해하는 것, 그래서 이십대에게 할 수 있는 말

2장 자기계발서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이십대의 자기계발 아이러니
왜 아무도 문제시 하지 않는 걸까?
촛불 든 이십대, 사회에 눈 감다
차별과 해고를 정당하다 여기는 이유
시간관리, 자기 통제, 그리고 칼날

3장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멋진 신세계’가 이룩한 재앙
첫째: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기
둘째: 편견의 확대재생산
셋째: 주어진 기존의 길만 맹목적으로 따라가기
왜 학력위계주의가 문제인가
덫에 걸린 대학생들의 자기방어
진리의 빛, 수능점수
‘떨어지는’ 동년배에 대한 무시 또는 배려
다른 이를 평가하는 좁은 잣대
“내가 이룬 성과를 존중해달라”
대학서열에 대한 무모한 집착
본질에서 벗어난 평가
점점 단단해지는 기존의 편견
어두운 수능의 추억
학력위계, 끌어 내리기와 밟아 오르기
상품화된 개인, 그런데‘팔리지 않는’개인
학교 야구잠바의 사회학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이십대
미래도 희망적이지 않다
원인1: IMF의 추억
원인2: 경영학과의 사회학
원인3: before/after의 덫

4장 자기계발 권하는 사회를 치유하자!
‘원래 그런 세상’은 없다
긍정과 희망을 논하기 전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무엇을 간과했을까
공정성을 다시 생각하자
기회는 균등한가?
과정은 공정한가?
맷집의 사회학
CPA의 사회학
결과는 정의로운가?

맺음말 | 그따위 위로는 당장 멈춰라!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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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이십대는 어떻게 괴물이 되었는가

장면1. 어느 대학 강의실.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놓고서 강사와 학생들이 토론을 벌인다.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한다.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다른 학생들도 이런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눈치다. 이에 힘입은 그는 계속 말한다. “입사할 때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으면서 갑자기 정규직 하겠다고 떼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위인 것 같습니다.” 수강생의 3분의 2 이상이 이 의견에 동의했다.

장면2. 지방대 출신이 취업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다룬 영화를 보고 일단의 학생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주인공의 처지에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모임을 주관한 강사는 그들에게 지방대에 대한 차별이 불공평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 학생은 언제 울었냐는 듯이 “지방대는 저희 학교보다 대학서열이 낮아도 한참 낮은 곳인데, 제가 그쪽 학교의 학생들과 같은 급으로 취급을 받는 건 말이 안 되죠!”라고 답했다. 여기에 반대하는 이는 없엇다. 이들은 모두 ‘인서울’ 대학 학생이었다.

장면3. 학교에서 가장 잘나가는 학과인 경영학과에 다니는 한 학생은 자기 학과가 다른 학과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겨우 턱걸이”해서 학교에 들어온 철학과나 사학과 학생들을 “개무시”한다. 수능을 보지 않고 들어온 수시생들을 ‘수시충’이라 비하하며 부르고, 재외국인 전형, 사회통합 전형 같은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우들을 낮춰본다. 최근 몇몇 대학들에서는 지역균형, 기회균등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을 ‘지균충’ ‘기균충’이라 부르며 무시한다고 한다.

이것이 이 책이 보여주고 있는 지금의 이십대다. 이들에겐 어떤 공통점이 있다. 바로 차별의 벽을 쌓고 상대를 밀어내는 태도다. 자신의 현재 위치에 대한 방어와 타인에 대한 공격이 동전의 양면처럼 쌍을 이룬다. 즉 이들은 현 사회의 피해자일 뿐만 아니라 가해자이기도 하다.
그동안 많은 이십대 담론은 이십대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그들의 사회경제적 처지, 그리고 그 해결책에 대해서 논했다. 이십대들이 문제에 부딪혀 있으니, 이를 해결하여 이십대들이 ‘제대로’ 살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여러 이야기들은 상시적인 불안에 내몰린 이십대들이 그 결과로 어떤 존재로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이십대들은 ‘정상적인 삶’과 ‘윤리’와 ‘공정’ 등에 대한 개념이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다. 예전의 ‘진보적 이십대’를 놓고 생각한다면 이들은 매우 뒤틀려 보이기까지 한다. 이십대 자체가 문제적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날 이십대들은 마냥 고통 받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고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 찬성하기까지 하며 스스로도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이런 기묘한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십대 문제를 결코 풀 수 없을 것이다.

불안에 잠식당한 이들의 새로운 윤리

이십대 변화의 근원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불안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정적인 삶을 기대할 수 없게 된 현실에서 이십대들은 자기 몫을 챙기는 데 매우 예민해졌다. ‘자기 노력에 대한 보상’에 굉장히 집착하게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길 원하는 것은 노력 없이 좋은 결과를 얻으려는 ‘도둑놈 심보’다. 여기서 비정규직 고용 형태의 불합리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안 된다. 자신들은 이렇게 노력해도 취업이 안 되는데 비정규직이 바로 정규직이 된다는 사실에 이들은 박탈감을 넘어 격렬한 분노마저 느낀다. 이들에게 이 분노는 더없이 정당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십대들이 생각하기에, 지방대와 상위권대 학생은 각 대학에 가기 위해 들인 노력(곧 수능점수)이 다른데 똑같이 취급받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당연히 차별 대우를 받아야 한다. 때문에 요즘 이십대 대학생들은 과거보다도 더 학교서열에 민감하다. 단순히 학교 등급을 나눌 뿐만 아니라 학교 내에서도 학과에 따라서도 등급을 나누고 정시생과 수시생, 특별전형 등을 구분 짓기도 한다. 각각의 단계 차이를 과장하고 넘을 수 없는 벽을 쌓고자 한다. 저자는 이런 이십대들의 새로운 학력주의 행태를 ‘학력위계주의’라고 부른다. 명문대 대학생들은 과거와는 다르게 자신이 명문대를 다닌다는 것을 과시하고, 하위권 대학 학생들을 멸시한다. 대학생들이 학교와 학과명을 내건 야구잠바를 입고 다니는 유행에서도 그런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학교 수준에 따른 과시와 멸시, 우월감과 열등감의 법칙이 이십대들을 지배하고 있다.

연세대는 서강대를, 서강대는 성균관대를, 성균관대는 중앙대를, 중앙대는 세종대를, 세종대는 서경대를, 서경대는 안양대를, 안양대는 성결대를 ‘무시’한다. 행여나 후자가 전자를 ‘비슷한 대학’으로 엮기라도 할라치면 그 순간 전자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난리가 난다. 그렇게 4년제는 다시 2년제를, 2년제는 또 같은 기준에 근거해서 자기들 내부를 쪼개고 줄세운다. 모두가 이렇게 같은 논리를 가지고 가해자 역할을 하며, 또 그래서 당연히 피해자 신분이 되는 상황에도 매우 능동적으로 기여하는 셈이다. ―본문 125쪽

미래가 약속되어 있지 않고, 삶이 불안정한 이들은 현재 자신이 가진 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이십대도 그렇다. 자기가 기울인 노력과 그 결과물, 즉 학력 및 여러 스펙의 가치를 인정받으려 안달한다. 그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세상만사를 평가한다. 노력의 결과물이 부족한 이들은 자연히 자신보다 ‘떨어지는’ 존재며, 이들이 자신보다 앞서 가는 건 정당하지 않은 일이다. 이십대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계발이 일종의 윤리 기준이 돼버린 것이다. 그렇게 이십대 내면에는 새로운 윤리가 자리 잡게 되었다.

저주의 순환은 계속된다

이십대를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이 저주의 메커니즘을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누구나 알 듯 치열한 경쟁이 일상이 되면서,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지상과제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계발 논리가 접목됐다. 이 논리는 경쟁에서의 승리와 패배는 자신에 달려 있다는 기본 전제 아래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희생시키면서까지 자기계발할 것을 주문한다. 이것은 흔하게는 ‘스펙 쌓기’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어떤 식이든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미래를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좋은 삶으로 여겨진다. 허나 그 시간투자가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인지, 혹 강요된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다. 설령 바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시간을 엄격히 관리하는 노력 자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게으른 것보다는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는 게 낫다’는 도덕적 당위로 아무것도 약속되지 않는 자기희생을 포장한다.
이런 논리가 내면의 윤리가 되어 자기를 채찍질하는 것은 큰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열심히 사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문제는 그 채찍질이 다른 사람에게도 가해진다는 점이다. 자신이 투자한 노력과 시간을 기준으로, 그보다 노력이 부족한 이들을 가혹하게 평가한다. 나보다 ‘덜’ 노력한 사람은 나보다 전적으로 부족한 존재이며, 당연히 ‘덜’ 대우받아야 한다. 심지어 인격적으로(게으르고 개념 없다는 등) 모욕하기까지 한다. 이는 누구든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경쟁 사회에서 비교우위를 얻기 위한 방편이자, 끝이 보이지 않는 괴로운 자기계발 과정에서 위안을 얻으려는 행위이기도 하다. 다른 이를 자기보다 밑으로 끌어내리고 조리돌림함으로써 안심하는 것이다. 반대로 짓밟히는 이들은 그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기계발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이 거듭될수록 타인을 평가하는 시선은 더욱 편협해지고 가혹해지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의 3장에서 학력위계주의에 빠진 대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그 끔찍한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위로만으론 안 된다. 현실 직시가 필요하다

저자는 2008년도에 KTX 여승무원 사태에 대한 학생들과의 논의를 계기로 연구를 시작했다. 2000장이 넘는 에세이를 검토하고 50여 명과 심층 인터뷰를 하며 변화의 양상을 세밀히 탐구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의 속마음까지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해서 저자는 이십대가 괴물이 되었다는 마뜩치 않은 결론에 도달한다. 과거의 청년 세대들이 공정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불공정이라 생각하고, 평등을 거부하며, 차별에 찬성하는 그런 존재가 된 것이다. 실제로 여성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혜에 반대하고, 부의 세습을 부끄러운 것이라기보다는 부러운 것으로 바라보는 이십대 이야기가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다. 이런 태도는 심한 경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한 포비아(혐오)로 표출되기도 한다. 인터넷 마녀사냥의 횡행과 ‘일베’의 출현은 그 전조일지도 모른다. 이 암울한 시대에 암울하게 변해버린 이십대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이유다.
이십대를 둘러싸고 이제껏 진행되온 담론의 양상은 다양하다. 이십대가 자신들의 어려운 사회경제적 처지를 깨닫고 정치적으로 행동하길 주문하는 쪽도 있었고, 이십대가 사회참여를 하지 않는다며 ‘이십대 포기론’을 말하는 쪽도 있었다. 이십대 스스로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는 흐름이 있었으며, 얼마 전까지는 이십대에 대한 위로와 격려가 붐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이십대가 사회로부터 핍박받고 있는 존재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에서 한발짝 더 나아간다. 지금의 이십대는 그러한 핍박에 순응하여, 스스로도 핍박을 하는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진보적인 이십대’ 또는 ‘정치적 주체로서의 이십대’ 같은 가정은 이제는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십대를 두고 참 안됐다며 위로만 하면 될까?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라고 닦달만 하면 될까? 저자는 이십대들의 현재를 냉철히 짚고 그 원인을 찾아보는 것에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제안한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십대들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회원리뷰 (43건) 리뷰 총점8.2

혜택 및 유의사항?
파워문화리뷰 자기 계발 시대의 함정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금* | 2014.08.28 | 추천19 | 댓글29 리뷰제목
정말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그것은 독자의 삶과 일치하거나 생각이라도 유사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가독력이었다. 사회학자가 분석한 책이 소설처럼 서사의 재미가 있을리 만무하고  이 가독력은 우리 사회에 단면을 독자가 공감갈 수 있도록 저자가 잘 분석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구입한 것이었고 올해 맡은 과목이 사회문화라 사회학을 주로 다루다보;
리뷰제목

정말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그것은 독자의 삶과 일치하거나 생각이라도 유사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가독력이었다. 사회학자가 분석한 책이 소설처럼 서사의 재미가 있을리 만무하고  이 가독력은 우리 사회에 단면을 독자가 공감갈 수 있도록 저자가 잘 분석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구입한 것이었고 올해 맡은 과목이 사회문화라 사회학을 주로 다루다보니 사회학에 대한 관심이 올라 이 분야의 책을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마침 잘 고른 탓인지 한번 쥐고 읽기 시작하니 쑥쑥 책장이 넘어간다. 부제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에서 암시하다시피 오늘날 20대 대학생 일부를 중심으로 관찰법과 면접법을 주된 자료수집 방법으로 하되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저자가 몇 년간(2008년~2013년)축적한 학생들의 과제를 분석한 것도 보태 도출한 결과물이다. 자신이 가르치는 대학생들의 모습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고 이들이 이러한 시각을 갖고 세상에 접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질적 연구방법으로 분석한다. 요즘 사회학이 점점 재밌다고 느끼는 데 일조한 것이 사회학자들의 책 덕분이기도 한데 이 책들은 주로 질적 연구방법에 의한 저술이 공통점이었다. 문제는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리뷰 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책에 나온 구절구절에 정말 공감하였고 심지어 무릎까지 치며 읽어나갔기 때문이다. 쓸려고 하면 끝도 없을 내용들이 리뷰에 나열될 것이 뻔하기에.

 

이를 핑계로 간단히 이 책에 대한 간단한 평을 한다면, 우리 사회 20대 대학생들이 이중적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의 일부라도 알아낼 수 있는 책이다. 결코 시크한 것도 아니고 쿨한 것도 아닌 20대의 어정쩡한 태도는 결국 '자기 계발'을 강요하는 시대가 낳은 또다른 그림자일 뿐이다. 20대의 자기 방어를 너무도 적나라하게 분석해서 접근하였기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앞으로의 대한민국이 더욱 걱정된다. 자기 계발과 취업을 동의어로 생각하는 이십대, 그들이 매긴 세상의 서열은 이미 수능 점수로 시작되어 사회 생활 전반으로 확산된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의 위계화 서열화는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개인들은 이것을 자기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 바쁘다. 너무나 많은 사회의 멘토가 '힐링'과 '치유'를 빙자하며 들고 나온 것들이 죄다 자기 자신의 노력에 인생은 결정된다라는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 계발이라는 허울을 뒤집어 쓰고 이를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그것이 곧 스펙이 되어 그것이 곧 취업, 그리고 결국은 성공과 행복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결국, 우리는 계속 노동자와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살더라도 남탓이나 국가와 사회 구조 탓은 뒤로 하고 자기 자신이 못나고 모자라서 그렇다고 결론 지으며 자기 비관으로 이어진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분명히 있음에도 이를 간파하지 못한다. 이는 이미 학창시절부터 세뇌되어온 어느 대학에 입학하느냐가 남은 인생을 결정한다는 부모세대와 사회의 시선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쿵쾅거렸고 서글프고 답답했다. 안그래도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적한 대한민국이다. 비교적 자유로운 시절을 누리다 갑자기 이것저것 자기 검열과 감시의 시대로 접어든 뒤 더욱 느끼고 있는 상대적 구속감이다. 그게 자유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더욱 깊이 느껴갈수록 나는 사회학자들이 쓴 글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틀의 통찰은 일반 대중들의 눈과 확실히 다르다. 우리가 두리뭉술하게 느끼기만 했던 것을 사례와 근거를 통해 좀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니까 평소 문제를 인식하고 있던 독자라면 더욱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30대 중반이고 기반을 어느 정도 잡은(20대의 눈으로 본다면) 기성세대이다. 이미 20대의 치열함을 거쳐온 세대지만 현재 치열하게 살고 있을 20대를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내가 20대 때도 이게 나만 잘하면 다 잘 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작은 문을 통과하는 데 불과하다. 구조의 개선과 변화 없이는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차단되어 있다. 이것은 한국 사회만 경험하고 바라보면 잘 모를 수 있는 부분이다. 다른 사회에 대해 알고 비교할 수 있을 때 우리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찾아낼 수 있다.

 

내가 지금 가르치는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나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이렇게 해봤자 우리 아이들은 비정규직이나 어딘 가의 조직에 소속되어 구속된 삶을 살 것인데, 란 비관적인 생각까지. 희망보다 절망을 더 많이 느낀 요 몇 년 간이라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자신의 미래가 불확실하고 현재가 불안할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자기 계발을 강조하며 여전히 제자리인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모든 것은 자기의 노력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돌릴 것 같다. 타인을 밀어내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최우선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연대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 함께 잘 사는 것이 어떤 세상인지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자기의 일상에 바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정심은 있어도 연대의식은 없는 20대.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가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처참한 체념이 가슴 아프다. 나는 많은 부분 저자의 생각에 공감했다. 꼭, 읽어보시라.

19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9 댓글 29
주간우수작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오찬호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알***비 | 2017.03.26 | 추천4 | 댓글0 리뷰제목
난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다. 이제껏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소개해왔지만 이제는 학생이 아니기에 소개할 때 '사람'이라는 단어를 쓰는게 낯설다. 영화라는 매체는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매체이다. 물론 영화뿐 아니라, 매체뿐 아니라 그 어떤 것이라도 인간이 만든 것은 모두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중요하다. 영화에서는 감;
리뷰제목
난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다. 이제껏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소개해왔지만 이제는 학생이 아니기에 소개할 때 '사람'이라는 단어를 쓰는게 낯설다. 영화라는 매체는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매체이다. 물론 영화뿐 아니라, 매체뿐 아니라 그 어떤 것이라도 인간이 만든 것은 모두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중요하다. 영화에서는 감독이 중요하고 문학에서는 작가가 중요하다. 글이라는 것도 글쓴이가 중요하다.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사회에서, 그래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사회를 안정적으로 보고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사회는 불안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나타난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난 명백히 후자다. 그래서 난 자기계발서를 싫어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원하고자 하는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고? 10명이 노력하면 1명만 할 수 있게끔 정해진 사회룰에서 10명이 똑같이 노력해도 9명은 패배자가 된다. 사회는 패배자를 배출해선 안된다. 최근들어 영화를 감독별로 정리를 하고 있고 문학조차 작가로 나누어서 한 사람이 만든 모든 작품을 연달아보고 있다. 인문학쪽에서는 '오찬호'라는 작가의 책을 전부 구입하여 읽고 있다. 이 책과 <왜 그 남자는 이상해졌을까?>를 읽었고, 현재는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갔을까>를 읽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만든 이야기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이 많고 다르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는 같은 경향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 부분 존재하기 때문에 읽어나가면서 저자가 조사한 사례와 주장으로 인해 좀 더 설득력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논쟁은 '자기계발서'에 뿌리를 둔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저자는 문제를 사회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 다른문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의 제목에서 보듯 차별에 찬성하는 경향을 사회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난 그 뿌리는 한국의 자본주의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내용 곳곳에 보인다. 저자의 주장처럼 자본주의를 택한 나라에서 차별은 당연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차별의 격차가 심하며 인간의 존엄성까지 침해받는 일은 드물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한국의 자본주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저자가 사례를 이야기 할 때마다 저건 '자기계발' 이전의 '한국의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도 그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뿌리를 지적하기보다는 그 뿌리에서 튀어나온 줄기를 지적한다. 난 이 부분이 상당히 거슬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주장하는 '자기계발'의 논리에서 볼 수 있는 몇몇 사례들을 보면서 수긍했다. 특히나 인용구같은 경우는 저자의 주장을 좀 더 설득력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확실했다. 저자의 주장은 사례를 들려주면서 확고히 해나가지만 간혹 그 사례가 너무나 일반적이고 우리가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글은 분명하게도 충격요법이 필요했다. 그것이 인용구가 대신해주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이러한 글을 계속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사실상 저자가 책에서 주장하는 해결법은 직접적이지 않다. 오히려 저자가 TV프로그램에 나와 '정치참여를 해야합니다'라고 주장했을 때 그 자체가 좀 더 직접적이고 와닿았다. 사실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나 또한 주위사람들에게 주장해봤지만 돌아오는 말은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는데?'였다. 난 그 말에 충격을 받고 나 스스로 내린 답 또한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밖엔 없다고 답을 내렸고 이제 약 한달가까이로 다가온 대선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저자가 대학강사로 나가면서 무수히 많은 대학생들을 봐왔겠지만 난 예술계열의 학교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야구잠바의 정치학,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극소수로 접했다. 물론 학점관리 또한. 내가 1학년 때는 학과행사가 있으면 출석률이 20%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졸업할 때가 되서는 80%로 급증가하는 현상을 보면서 씁쓸했다. 1주일 동안 고생해서 영화를 찍고 학과 친구들이 모두 참석해 영화들을 보고 즐기는 영화제 행사가 몇년 전에는 고주망태가 되어 그 동안에 스트레스도 풀고 못살게 굴던 선배한테 폭탄주를 말아주며 복수 아닌 복수를 하는 행사다. 그런 행사를 이제는 내일 출석해야 된다는 이유로 영화만 보고 집에 가버린다. 그런 현상을 보면서 이제 예술계열에 친구들도 졸업하고 현장에 들어간다거나(현장에선 학점이고 졸업장이고 스펙이고 전혀 쓸모없는 종이쪼가리다) 계속해서 직접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살짝 뒤로 빠져서 회사에 입사하거나 진로의 방향을 틀어버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진로의 방향을 틀 생각이 없어도 저자가 주장하는 '불안'이라는 관점에서 그러는 친구들도 상당히 많다. 학과 분위기가 그렇게 바뀌다보니 점점 출석에는 민감에 진다. 학생이 학교에 나가는 것이 정말 당연한 일인데도 나에게 대학생활이란 정말 재미있게 놀고 대학가면 해보고 싶은 것을 다해봤던 공간이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강제하는 학점채우기보다 우리 스스로가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고 영화를 찍으면서 고민하면서 공부했다. 사실상 이야기하자면 대학의 문제는 엄청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답게 살기 위해 죽어라 노력하는 그 현상이 예술계통 친구들에게도 보인다는 점이 씁쓸하다. 

재작년과 작년에는 학과 통폐합, 프라임 사업, 구조조정 등 여러가지 문제들이 이슈가 되었지만 그 이슈를 보면 저자의 주장을 완벽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홍익대 본캠과 분교캠만 보더라도 같은 학과 합치기가 들어가면 학생들이 반대하면서 주장하기 시작하는 것은 입결의 자료이다. 내가 볼땐 멍청해도 그런 멍청한 짓이 없지만 그들의 문제가 아닌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것이 문제다. 학과 합치기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 바탕으로 '돈' 때문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대학'은 취업으로 향하는 하나의 관문이 됐다. '돈' 때문에 멀쩡한 학과를 없애버리고 '돈'때문에 커리큘럼을 바꿔버린다. 여러학교가 그 문제에 봉착했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각종 시위에도 학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본'에 침몰 당하는 '대학'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고 주장하면서 학생들 모르게 '독단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 단지 아우성치면서 그들의 주장은 분산되고 결국 예민하게 곪아썩은 설국열차로 향한다. 난 학교 막바지에 통폐합에 대해 시위를 했고 여러 문제들에 대해 참여했지만 어떤 친구는 학교는 기업이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주장을 했다. 나는 저자가 주장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1차적으로 정치참여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 정치참여는 사람의 인식을 바꿔야한다. 정치참여가 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식을 바꿔야 한다. 법은 지금도 존재하고 그 법망을 피해가는 것도 존재한다. 법은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이다. 이 사회는 최소한으로는 바뀔 만큼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 대학은 교육기관이고 정부가 잘못했을 때는 비판하는 역할까지 가능한게 대학이다. 그리고 그 대학을 다니는 사람은 20대다. 차별에 찬성하고 동조해선 안된다. 미국의 경제학자가 주장했다. CEO 와 가장 하위 직원과의 임금차이가 20배 이상나면 불평등하다고 인식한다고. 우리나라 삼성 추정치는 150배다. 영화판이나  CF를 따져보았을 때도 150배에서 300배의 차이가 존재한다. 자본주의는 차별을 동반한다. 당연히 능력주의는 인간이 선택한 최선의 제도다. 더 노력한 인간은 더 보상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헤치면 안된다. 또한 그 차이가 심하면 안된다. 부동산 부자  TOP10안에 드는 사람들은 아파트를 600~700채정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따뜻한 물이 안나오고 화장실이 밖에 있는 집에서 사는데 말이다. 이러한 현상을 노력의 차이라고? 참 지랄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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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거나, 혹은 공정하다고 생각하거나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적**장 | 2015.08.24 | 추천4 | 댓글11 리뷰제목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출발드림팀의 구호이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최선을 다하고 졌으면 졌음을 인정하는 모습은 성숙한 사회 구성원만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자칫 잘못 생각하면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 시켜준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출발드림팀에서는 모두가 0.00초에서 시작하고 똑같은 장애물을 넘어가며 똑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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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출발드림팀의 구호이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최선을 다하고 졌으면 졌음을 인정하는 모습은 성숙한 사회 구성원만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자칫 잘못 생각하면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 시켜준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출발드림팀에서는 모두가 0.00초에서 시작하고 똑같은 장애물을 넘어가며 똑같은 위기와 한계를 경험한다. 다만 차이라면 평소에 스스로가 몸을 다졌는지,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정도이다. 만약 거기서 한 명이라도 먼저 출발하거나 시간을 느리게 흘러가게 한다거나 한다면 당장 제지를 가할 것이다. 서울대 합격자의 70%가 강남 소재 고등학교에서 나오고, 하위권 대학으로 갈수록 학자금 대출자 비율이 높아지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뭔가 공정하지 못한 게임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정규직은 비정규직일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모두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류대는 시간을 잘 이용한 사람의 결과물이고 지방대는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의 메마른 과실이 되어 버렸다. 특히 학생들에게 이 생각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저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비정규직 KTX 여승무원'이 정규직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 노력도 하지 않고 정규직으로 되려는 건 불합리하다는 학생들의 답변 때문이었다. 모두 뼈를 깎는 노력을 해서 정규직을 들어가려고 노력하는데 쉬운 길을 택하고서 이제와서 정규직으로 해달라는 건 한마디로 생떼라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에 비정규직은 바로 자기계발을 게을리 한 탓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옥죄는 자기계발의 논리에 스스로 도취되어 자신들이 얻은 것은 오롯이 자신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더 큰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겁없이 걸어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처럼 노동시장은 공정한 싸움터가 아니다. 스펙쌓기에 열을 올리는 동안 구성원들은 이제 '붉은 여왕의 나라'처럼 죽어라 뛰면 이제 고작 제자리를 유지하기에 이르렀다. 자기계발이 스스로의 계발에는 조금의 도움도 되지 못한 채, 회사에서 원하는 요건 채우기에 머물면서 학생들의 더 피폐해진다. 가끔 이에 대해 반론이라도 제시할라치면 가뭄에 콩나듯 나오는 '개천에서 용나는' 케이스가 너는 아직도 한참 노력이 모자라다며 질타한다. 그러는 동안 '공감'이란 단어는 사라졌다. 청소 아줌마들의 시위에는 찬성하면서도, 그들과 연대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촛불시위에는 참여하지만,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에 대해서는 여전히 냉랭하다. 이제 학생들은 이미 고통을 이겨내고 성공한 선배의 전철을 되밟으며, 스스로의 고통은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라고 다독인다. 그러는 동안 다른이들의 낮은 지위는 바로 노력부족이라는 등식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우리는 아니었는데?


책을 덮고 다른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대체로 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문제다 라는 데에는 의견이 모아진다. 내가 나를 돌아봤다. 그때는 IMF조차 터지지 않은 대학이었지만, 나는 나름 좋은 대학이라며 우쭐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학교에 가면 다른 학과보다 낮은 커트라인에 창피할 때면 '너무 하향지원을 해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어쩌면 이 책에 나온 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기성 시스템에 편입되고 안되고의 문제를 벗어나 스스로에게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이를 욕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시기를 훌쩍 지나버렸기 때문에 당당히 비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좋은 대학 다니면서 자랑하지 않으려는 친구를 본적이 없고, 안 좋은 학교 다니면서 창피해 하지 않는 친구도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런 식으로 '햐~지금 젊은 애들 걱정이다 걱정이야'라는 식으로 안이한 비판은 안된다. 사실 누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힐링'이니 '격려'니 하는 말을 무책임하게 내뱉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로라는 것은 결국 '다시 일어나서 달리렴.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 힘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자기계발이 경쟁처럼 일어나서 이건 아니다 싶은데도 현재는 답은 없다. 그래서 위로라도 구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위로 아닌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그래서 대안이 뭔데?'라는 질문으로 문제제기 자체를 봉쇄하는 것을 우려한다. 확실한 대안이 없으면 문제제기를 못하는 것은 어떠한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 


그러나 쉽지만은 않은 일


김영하의 단편 소설 '옥수수와 나'에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스스로 옥수수라고 생각해서 닭들이 무서워서 정신병원에서 치료받던 남자가 어느날 스스로가 옥수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닭들에게 쫓겨 오자 의사는 당신이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데 왜 그러냐고 했다. 그러자 그 남자의 답은 '글쎄 저야 알지요. 하지만 닭들은 모르잖아요.'


이런 상황은 의외로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에서 모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옥수수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왜 '옥수수' 이야기가 떠올랐을까. 만약 내가 이것은 잘못된 현실이며 이제 나로부터 이 상황을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자.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살고 있는데, 여전히 주변 상황은 그대로이다. 나는 차별하는 현실이, 자기계발에 매진해봐야 그저 평범해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 현실이 오류 투성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아무도 쫓아오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계속 도망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문제는 여전히 녹록치 않다. 강준만의 '개천에서 용' 책을 볼 때처럼 답은 멀리 있거나, 혹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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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30건) 한줄평 총점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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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5점
읽는 내내 공감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랬기에 내내 불편했던 이야기...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j*******7 | 2016.04.27
구매 평점4점
깊게 들어가진 않았지만 시대가 지날수록 분명해지는 모습을 보고있던 작가의 글.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YES마니아 : 골드 테*****드 | 2019.03.31
평점3점
공감이 다소 어려운 부분도..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YES마니아 : 로얄 오***옹 | 2018.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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