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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날들의 기록

: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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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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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년 02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708쪽 | 776g | 128*188*40mm
ISBN13 9791160409468
ISBN10 1160409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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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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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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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지 말 것, 담배 피우지 말 것, 꽃을 꺾지 말 것, 잔디에 들어가지 말 것, 쓰레기 버리지 말 것, 음식을 가져와 먹지 말 것, 개에게 용변을 누이지 말 것…… 그러나 오늘 아침 공원의 경고판 위에는 하얗게 눈이 덮였다. 모두 지워지고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다. 금지의 문장들은 백지가 되었다. 아직 아무도 그 위에 문장을 쓰지 않았다. 그 앞에 선다. 그런데 무엇을 쓸 것인가.
--- p.23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쳤다. 새벽 공기는 차갑다. 두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한 사람은 직선으로 또 한 사람은 지그재그로.
--- p.47

마석에서 새벽을 맞는다. 새들이 잠을 깨운다. 웃옷을 걸치고 마당으로 나간다. 나무들 사이를 걷는다. 안개가 발목에 걸린다. 마른 잎들에서 이슬이 굴러떨어진다. 이슬은 거미줄에도 매달렸다. 밤사이 직물을 짜고 웅크려 잠든 거미를 오래 들여다본다. 거미는 무슨 꿈을 꾸는 걸까. 들어와서 라디오를 튼다. 기상캐스터의 낭랑한 목소리: 온 나라가 하루종일 맑을 겁니다……
--- p.60

한파. 꽁꽁 얼어붙은 아침. 멀리 버스 정류장. 진하게 찍은 마침표처럼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초록빛 버스가 다가가서 선다. 그러자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마침표들. 세상에 영원히 죽은 것은 없는 걸까. 때가 되면 모두들 다시 살아나는 걸까.
--- p.65

멜랑콜리커들. 슬픔이라는 이름의 용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
--- p.66

‘몰락은 가깝고 구원은 멀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한 줄을 덧붙인다: ‘……그런데 빛이 있다. 아주 희미한, 그러나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어떤 빛이 있다. 이 빛은 무엇인가?’
--- p.79

아침마다 봄이 걸어온다. 점점 따뜻해진다. 등교하는 아이들은 더 빨리 뛰고 웃음소리는 더 높이 깨어진다. 언제부터인가 편의점에서 찬 커피를 사서 마신다. 차 안에서 햇빛 좋은 풍경을 바라보며 스트로를 빤다. 그런데 이 좋은 아침에 어쩐 까닭일까. 갑자기 가슴이 펑 젖는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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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이 남겨둔 마지막 문장들은 새의 발자국 같다. 앙상하다. 길게 이어지지 않는 때가 많다. 그의 사유가 포로롱 날아갈 때마다 발자국은 거기 멈춰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먼 허공을 바라보았다. 되도록 더 먼 허공을 보려 했다. 광활한 저 먼 곳으로 날아가는 동안에 그는 문장을 쓸 이유가 없었을 것 같다. 거기에 내가 주워야 할 문장이 숨어 있는 것만 같다. 다시 시선을 거둬 새의 발자국을 바라보며 걸어본다. 0킬로그램의 무게로 꽉 채운 그의 문장들에 손을 갖다 댄다. 그 무엇에 대하여 단 한 번도 장악하려 하지 않았던 문장들. 황홀하고 관능적이다. 그의 갈구와 그의 혼란이 더할 나위 없이 침착해서 나는 더 애통해진다. 원하던 예민함과 원하던 무덤덤함이 내 신체에 고이기 시작한다. 이것이 김진영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일 것이다.
-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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