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는 누구도 의사가 누구이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는 의료를 주제로 한 소설, 영화, 책들을 찾아보면서 의사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나는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할지 생각했다. 가장 먼저 와닿았던 것은 ‘아픈 자를 돕는 사람’이라는 역할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의사의 사명 아닐까. 아직 아무런 의학 지식은 없었지만 앞으로 그런 삶을 살아야 하니, 일단 타인을 돕는 것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산책이 너무 하고 싶어요」중에서
“형, 저 여기서 자고 가도 돼요?” 이렇게 묻는 그에게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오늘부터 여기서 살아도 돼.” 그렇게 긴 조율 과정 없이 우리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 우리는 그날부터 한 이불을 덮고 잤다. 이불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잠결에 딱 한 번 나를 발로 찬 적이 있는데,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미안해한다. 나는 사실 기억도 잘 나지 않고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았다. 오히려 혼자서 마을사랑방에 살며 주민들을 만나고 활동하는 것이 좀 외롭기도 했는데, 동료가 생기니 마음이 안정되고 힘도 났다.
---「터무니없는 동거의 시작」중에서
건강의집 의원을 여는 계기가 된 이 경험을 통해, 집이란 관계를 촉진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집을 여러 번 찾아가면 그 집의 모양과 냄새에 익숙해진다. 그곳의 삶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그 너머의 삶을 함께 그려볼 수 있다.
---「남의 집 드나드는 의사 닥터 홍」중에서
치료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절망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F에게 본인과 같은 병이 자녀에게 생길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주어진 시간 속에서 자신과 자녀가 함께 성장해 나가는 법을 고민해 보자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면 좀 더 풍성한 삶의 환희를 느끼며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가 이상주의자의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극한 상황 속에서도 자기만의 ‘품’을 만들어내는 환자들이 내게 가르쳐준 사실이다. 그들과 함께하고, 기쁨과 아픔을 공유하면서 나 또한 배운다. 어쩌면 환자와 나, 그러니까 우리는 ‘건강’이라는 비밀을 함께 알아가는 동료가 아닐까.
---「치료할 수 없는 병을 안고 사는 이들에게」중에서
요즘에도 나는 임종을 앞두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환자와 여러 회한이 스치는 듯한 보호자를 자주 마주한다. 물론 언제가 마지막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보호자가 마음을 잘 정리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나는 환자의 상태를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설명한다. 그런 다음 치료 불가능하다는 말이 결코 ‘절망’이나 ‘포기’는 아니라는 점을 조심스레 말씀드린다. 응급실에 갈지, 집에서 계속 모실지 결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환자와 보호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 결정에 맞추어 앞으로의 계획을 설정하는 그 모든 과정을 충분히 거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언제라도 비상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벨소리를 최대로 설정하고 잠이 든다. 가는 이가 남은 이들에게 남겨 주는 마지막 선물을 가족들이 차분히 열어볼 수 있도록 끝까지 돕겠다고 다짐하면서.
---「마지막 길을 함께 걷는 마음」중에서
인간은 태어나 양육자의 전적인 돌봄을 받으며 생존해 나가고 잠시 홀로 서다가 자녀를 양육하거나 나이 든 부모를 돌보게 된다. 그러다 자기 자신 또한 나이가 들어 또다시 누군가의 돌봄을 받게 되고, 돌봄 속에서 여생을 마무리한다. 꼭 혈연이나 혼인을 통해 연결되는 관계가 아니더라도, 바로 곁에서 돌보는 이는 인간 생존에 필수적이다. 돌봄은 존재의 증거 그 자체이며, 한 인간의 역사는 돌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그러고 보면 ‘저출산, 고령화 위기’란 진단은 틀렸다. 정확한 진단은 ‘돌봄의 위기’다.
---「효자가 아니라 영 케어러입니다」중에서
건강을 무시해 보면 어떨까? 예술과 놀이를 통해 건강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건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몸을 다르게 바라보고, 몸을 재구성해 보면서 다른 몸을 창출해 보는 것. 이는 곧 건강의 재구성으로, 삶의 재구성으로 이어진다. (…) 건강관리를 전혀 안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암을 우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면(암 환자인 할머니가 세계여행 다니는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다)?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 그러니 두려워 할 필요 없다. 적절한 자기 배려와 용기로 죽음에 맞서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다른 건강을 생각하다」중에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 행동이 맞나?’ 질문하는 일이 잦아졌다. 무슨 일을 하다가도 멈칫거리며 뒤를 돌아보고, 혹시 내가 놓치는 부분은 없는지 살피게 된 것이다. 누가 내 뒤에 있진 않은지, 주저앉거나 쓰러지진 않았는지, 그래서 내가 다시 뒤로 돌아가 그들의 옆에 나란히 서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 보니, 앞으로 나아가는 힘은 약해졌을지 몰라도, 돌아보는 힘만큼은 커졌다. 돌아보는 마음이 곧 돌보는 마음이리라. 나아가고자 하는 욕심이 모두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건 나태함으로 극복한다. 그냥 덜 열심히 하면 욕심은 이뤄지지 않는 법이니까.
---「끝내 돌아보는 마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