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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 계절 인사
1. 나의 계절이 흘러가면 언젠가의 봄 어둠 속에 있다 문맹의 시간 아름답게 어긋나기 봄날의 프루스트 우리가 잔을 높이 들어 올릴 때 꿈이 진실이 될 때까지 꿈 바깥의 삶 2. 당신과 내가 포개지는 지금 나의 여름과 당신의 여름이 만나면 다시 한 살을 사는 마음으로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에 대하여 다른 나라 나만의 장소 두 사람 나의 나무들 언니 미움의 역사 이안怡安 3. 다시 돌아온 계절 속에서 좋은 섬유유연제를 사는 일 고독을 위한 의자 책 여행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에서 계속 쓰는 사람 풍경 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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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내 인생은 ‘절대’나 ‘반드시’ 같은 결의에 찬 단어보다 ‘어쩌다 보니’가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좀 우습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괜찮다. 우습게 보이는 것은 조금 슬픈 일이지만, ‘절대’나 ‘반드시’라는 말로 스스로 만든 벽처럼 무서운 것은 아니니까. 슬픈 것과 무서운 것 중 하나를 고르라면 차라리 슬픈 것을 택하겠다.
--- p.24 글쓰기가 문장을 무덤 속에 파묻으며 언젠가 그것이 집이 되기를 희망하는 일이라면, 번역은 누군가 단단하게 세운 집을 부서뜨리고 그것의 잔해를 옮겨 와 재건하는 일이다. --- p.33 프랑스에 온 이후 4년 정도는 말 그대로 언어와의 전쟁이었다. 어디를 가도 언어는 나의 장벽이었고,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할 수 없던 일들, 말을 제대로 못해서 억울하게 감내해야 했던 일들이 많았다. 그곳에서 외국인에게 언어는 권력이었고, 그래서 나는 프랑스어를 잘하고 싶으면서도 또 동시에 전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언어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이민자들이 각기 다른 억양으로 노래하듯 프랑스어를 말할 때, 외국인들끼리 완벽하지 않은 프랑스어로 서로의 말을 알아들으려 애쓸 때, 가장 간소한 말로 더듬더듬 사랑을 고백할 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었다. --- p.38 엄마의 꿈이 지긋지긋할 때도 있었다. ‘다 잘될 거야’라는 무책임한 긍정의 말이 폭력적으로 다가왔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때 내가 자신에게 보낼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위로는 ‘괜찮아’ 정도였고, 그 말 속에는 어떻게든 지금, 이 현실 속에서 ‘괜찮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지 같은 것이 있었는데, ‘다 잘될 거야’라는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다 잘되는 날은 어떻게, 언제 오는지를 따져 묻고 싶어졌으니까. ‘괜찮은’ 정도로만 살고 싶다고, 미래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고, 신의 계시도, 꿈의 의미도 필요 없다고 얼마나 많은 날에 엄마에게 눈빛으로 따져 물었던가. 엄마의 그 이상한 꿈이 나를 지치게 한다고 몇 번이나 침묵의 비명을 질렀던가. 그 시절 내게는 눈앞에 없는 모든 것이 다 거짓이었다. --- p.64~65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이유가 혼자서는 절대 찾아낼 수 없는 서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해주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각기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다. --- p.69 꿈에서 걸어 나와 그 바깥을 사는 내게 중요한 것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법이 아니라, 간절히 원하지는 않았지만 내 앞에 나타난 이 현실을 유쾌하게 끌어안는 법이다. --- p.72 어떤 도피는 비로소 우리를 살게 한다. 이 모든 것이 어디론가 향하는 여정이며,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굳은 마음이 조금씩 물러진다. --- p.107 이제 막 장사를 시작했던 엄마는 누구한테 돈을 뺏길까 봐, 사기를 당할까 봐 현금을 품에 꼭 안고, 내 손을 꼭 쥐고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때 태어나 처음으로 겁먹은 엄마의 얼굴을 봤다. 글쓰기가 다시 살 수 없는 시간으로 돌아가는 일이라면, 나는 지금 동대문 앞으로 돌아가 그때의 엄마를 꼭 안아주고 싶다. --- p.112 시장을 떠나 살면서 나를 제일 가난하게 했던 말은 “엮이지 마”였다. 누군가를 만나 서로의 뿌리와 가지가 엉키는 일이 고통이나 불편이 되는 관계를 맺으며 나는 얼마나 약하고 외로운 사람이 되었는지……. 다시 돌아와 사람과 ‘엮는 일’, ‘엮이는 일’을 배운다. 이곳에서는 우리의 얽힌 뿌리와 가지가, 어느 날 도끼 같은 불행이 우리를 내리쳤을 때 쉽게 잘려 나가지 않도록 서로를 지탱해주는 힘이라는 것을 안다. --- p.129 내게 섬유유연제는 방패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상한 냄새’가 나는 외국인이 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빨래를 할 때마다 섬유유연제를 듬뿍 넣었다. 김치나 된장찌개 같은 한식도 잘 먹지 않았고, 한겨울에도 오랫동안 창문을 열어두었다. 나는 다치고 싶지 않았다. --- p.164 글을 쓰는 나는 무언가를 얻고, 잃고, 부서뜨리고, 붙이며 나아간다. 내 글은 언제나 상처와 흠집의 기록이고, 내 문장은 여전히 흔들리지만, 거기서부터 회복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안다. 오늘의 마침표는 완전한 끝이 아니다. 내게는 늘 다음 문장이 남아 있다. 나는 그렇게 계속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 p.198~199 |
“당신의 계절 안에서 흩어질 나의 지금”
나와 당신을 이어주는 글쓰기 작가는 어느 아기의 돌을 축하하는 글을 쓰면서, 그 글이 돌고 돌아 자신에게로 오는 경험을 한다. 축사를 통해 자신이 아는 남자아이 ‘일리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무더운 프랑스에서 만난 일리야는 태양을 피해 그늘에 숨은 어른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고 있는 분수대를 향해 달려가 물줄기를 끌어안았다. 그 이야기를 빌려 “뜨거운 태양이나 옷이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달려가 꼭 껴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축사를 마쳤을 때, 그는 자신이 쓴 모든 축복이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거기 적힌 이야기는 사실 내가 한 살부터 마흔한 살을 살아낸 나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말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얼굴 모르는 아기의 돌을 축복하며 내가 잃어버린 축복을 다시 손에 쥘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누군가를 향해 썼던 모든 글이 내게로 되돌아왔던 것 같다. 기쁜 이야기는 내 마음의 기쁨의 자국으로, 슬프고 아픈 이야기는 작은 성장으로. 그러니 글쓰기란 결국 보내는 말이 아니라 맞이하는 말이 아닐는지. ―89쪽 누군가에게로 보낸 말을 기꺼이 다시 맞이하면서, 그는 글쓰기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제는 흔적으로 남은 나의 순간들이 언젠가 당신의 순간들이 될 가능성이다. 그렇기에 그는 단순히 글을 좇기보다 “손에 쥘 수 없는” 계절을, “고요”를 말하는 법을 생각하며 걷는다. “이 이야기들은 내 눈앞에 펼쳐진 것, 내가 온몸으로 맞이하는 것, 그러니까 지금에 관한 것이다.” 자신의 글이 누군가의 풍경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언제든 ‘거기’에 있을 당신을 상상하며 작가는 나와 당신을 순환하는 글을 써 내려간다. “문맹의 사고를 간직한 언어”로 현실을 부드럽게 끌어안기 유학 시절 프랑스에서 보낸 문맹의 시간, 연극이라는 꿈을 포기해야 했던 순간, 섬유유연제로 가난과 자신의 냄새를 가려야 했던 상처 많은 계절을 지나 이제는 두 언어 사이에 길을 내는 번역가로서 작가는 언어의 경계에 서본 사람만이 내뱉을 수 있는 ‘바깥 언어’로 상상의 폭을 넓혀간다. 와인 잔에 수많은 여름을 담아 건네고, 의자와 함께 즐기는 고독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사랑사랑” 부는 봄바람의 촉감을 전한다. 성실히, 절실하게 글을 쓰고 옮기는 작가에게서 대체할 수 없는 미묘함을 간직한 언어가 탄생한다. 번역을 하면 할수록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완전히 포개지지 않고 살짝 어긋날 때 언어의 폭이 더 넓어진다는 것을 실감한다. 언어의 폭이라는 말은 상상의 폭이라는 말로 바꿔도 좋을 것이다. 언어는 보이지 않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릴 수 있게 해주니까. 오직 언어로 벨벳은 향기처럼 그윽할 수 있고, 눈은 손처럼 촉각을 가질 수 있다. ―44쪽 이제 꿈에서 걸어 나와, “읽고 옮기고 쓰는 일을 향해 몸을 휘는” 간절함으로 글을 향해 가지를 휘는 작가에게 다시 시작되는 미래가 있다. 바로 ‘계속 쓰는 사람’이 되어 글로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다. 글쓰기를 통해 그림자가 빛이 되던 순간을, 이제 더 이상 상처가 아니게 된 계절을 작가는 수많은 ‘당신’에게 건넨다.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상처 없는 계절’이 도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것이 자신이 내어줄 수 있는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