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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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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00쪽 | 456g | 140*200*20mm
ISBN13 9791192638485
ISBN10 1192638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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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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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요나스예요.”
글을 올린 그 당시 플랫메이트 한인 여성분이 친절하게 요나스를 소개했다. 요나스는 눈을 껌뻑거리면서 환하게 웃었다. 꼭 만화에 나오는 배불뚝이 백인 아저씨 캐릭터의 실사판 같았다. 특히 산타클로스를 닮았는데 실제로 그는 겨울이면 산타클로스 분장을 해 용돈 벌이를 한다고 했다.
“할로, 숭진.”
내가 ‘숭진이 아니고 성진’이라고 발음을 고쳐주자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웅진’이라고 말했다.
--- p.35

잘 데워진 브로첸은 촉촉하면서 바삭했다. 크림치즈와 오이의 상큼한 맛이 짭짤하면서 기름진 살라미와 잘 어울렸다. 나는 그제야 웃음이 났다.
“와, 맛있다.”
“이게 전형적인 독일식 아침 식사야.”
“독일식 아침 식사라는 게 뭔데?”
“집에 있는 빵, 햄, 치즈, 요거트, 잼, 버터를 모두 꺼내서 한 상 차려서 먹는 거야. 남은 건 그대로 냉장고에 넣었다 내일 또 꺼내 먹으면 돼. 그리고 마시고 싶은 음료를 마시는 거야. 커피, 차, 오렌지 주스, 아펠숄레……. 선택은 네가 하면 돼.”
신나게 설명하는 요나스는 야무지지 못한 움직임으로 세 손가락을 모두 써가며 맨손으로 햄을 집었다. 요나스는 언제 마지막으로 손을 씻었을까? 햄을 올려 먹으려다가 그냥 슬라이스 치즈를 올려 먹기로 했다.
--- p.45

“서베를린에 커리부어스트가 있으면 동베를린에는 켓부어스트가 있지.”
일리아스는 켓부어스트 세 개를 시켰다. 점원은 15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길쭉한 브로첸을 꺼내 들었다. 아마 30센티미터가 넘는 브로첸을 반토막 낸 듯했는데 잘린 면에 소시지가 들어갈 만큼 긴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구멍 안에 케첩을 쭈욱 짜 넣은 점원은 데워둔 소시지를 쑤셔 넣고 한 번 더 소시지 끄트머리에 케첩을 뿌렸다. 완성이었다.
“동베를린식 길거리 음식이야.”
켓부어스트를 건네며 일리아스가 말했다. 빵, 케첩, 소시지가 전부인 켓부어스트를 보니 한국의 떡볶이와 순대가 그리웠다.
--- p.165

“아무 걱정도 하지 마. 숭진.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 그냥 네 앞에 있는 로테 그뤼체(Rote Grutze)를 먹어. 그러면 행복해질 거야.”
요나스는 바닐라소스를 잔뜩 부은 사발에 로테 그뤼체를 탈탈 털어 넣고 내 앞으로 밀었다. 달큰한 향도 사발을 따라 나에게 밀려왔다. 나는 잠시 요나스의 당뇨를 떠올렸다. 그리고 숟갈을 들었다.
--- p.182

요나스는 아이들과 한 명 한 명 빠짐없이 인사했다. 아이들은 요나스에게 귓속말로 소원을 빌었는데 어떤 아이는 자기가 부모님의 말을 안 들었다며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나는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다음 순서는 요나스의 기타 연주였다. 요나스는 세 곡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다. 그는 노래를 잘하지 못했지만 기타는 곧잘 쳤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요나스의 기타 연주에 맞춰 캐럴을 따라 불렀다. 행사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끝났다. 아이들은 끝까지 요나스를 쫓아오면서 인사했다. 요나스는 모두와 악수하고 내년 겨울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 p.234

나는 요나스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한 마음에 먹은 음식을 계산하면서 직원에게 커다란 호밀빵을 포장해 요나스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나는 문을 나서면서 한 번 더 요나스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호밀빵을 들고 엄지를 척, 내밀었다. 요나스와 만나기로 했던 달도 역시 바빴다. 요나스는 괜찮으니 시간 날 때 연락 주라고만 했다. 약속을 미룰 때마다 자꾸 요나스가 나를 ‘좋은 친구’라고 부른 일이 떠올랐다. 나는 차라리 ‘바쁜 친구’라고 불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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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이라는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해 ‘숭진’이라 부르는 독일인 룸메이트 요나스와의 동거 생활 기록을 통해 맛있는 독일 식문화와 사랑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낯선 식재료와 요리 이름들을 검색해 그 이미지를 찾아보며, 성진과 요나스가 나눴을 맛과 대화의 느낌을 상상했다. 누군가와 함께 마주 앉아, 먹고 대화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알레스 굿(Alles gut)!
- 이랑 (작가, 뮤지션)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낯선 독일 음식들과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작가의 독일 친구들에게 호기심을 넘어 이토록 깊은 그리움을 느끼게 만드는 책이라니. 이 책에 등장하는 첫 음식인 ‘슈파겔’에는 제철이 있고, 그 제철이 끝나는 날을 ‘슈파겔질베스터’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책에는 한 시절 내 삶에 나타나 어떤 식으로든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고 사라져간 ‘시절 인연’들의 얼굴과, 그들과의 슈파겔질베스터를 아릿한 마음으로 되짚게 만드는 진한 여운이 있다. 그 여운은 이 순간 내 곁을 지키고 있는 얼굴들까지 소중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사이사이 독일 특유의 문화나 사회적 분위기, 인종차별 같은 문제를 브로첸 위의 치즈처럼 자연스레 녹여낸 것까지, 맛깔나면서도 아련하여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자꾸 책의 문장과 문장이 그려놓은 장면들이 생각났다. 생생한 글로 독특하고 특별한 친구 요나스를 우리 모두의 친구로 만들어준 작가에게 고맙다.
- 김혼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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