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4년 07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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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84쪽 | 272g | 132*224*20mm |
ISBN13 | 9788937461040 |
ISBN10 | 8937461048 |
발행일 | 2004년 07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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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84쪽 | 272g | 132*224*20mm |
ISBN13 | 9788937461040 |
ISBN10 | 8937461048 |
처음에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제목을 봤을 때 나는 네루다 지역의 우편배달부를 뜻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칠레의 유명한 시인의 이름이라니… 부끄럽다…
칠레의 작은 어촌 마을 이슬라 네그라에는 그 마을의 저명한 시민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살고 있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으로써 그 마을에서 유일하게 우편물을 받는 사람이고 그 우편배달 일을 어부의 아들 ‘마리오 히메네스’가 맡게 된다. 이 청년이 할 일은 오로지 파블로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전달하는 것,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그의 시집에 자신을 위한 헌사를 부탁하기 위해 매달린다. 어느 날 마리오는 마을의 아름다운 베아트리스를 보고 한 눈에 반하게 되고 시인에게 그녀만을 위한 시를 적어줄 것을 부탁하지만 시인은 시를 적어주는 대신 마리오에게 메타포를 가르쳐 준다. 마리오는 이 메타포를 이용해 베아트리스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베아트리스의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베아트리스와 결혼하게 된다. 이후 네루다가 칠레의 대통령 후보자가 되고, 또 프랑스 대사로 임명되어 마을을 떠나있는 동안에도 둘은 편지를 통해 우정을 나누게 되는데, 아옌데 대통령이 사망하고 네루다 역시 죽음 앞에 있을 때도 마리오는 한결 같은 마음으로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네루다의 옆을 지킨다.
이 소설은 격변기의 칠레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결코 우울하지만은 않다. 라틴 특유의 정열과 즐거움을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이어가고 있고 그래서 심각하게 읽히지 않으면서도 소설이 주는 감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작가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 대한 글을 언젠가는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책 속에는 파블로 네루다의 인간적인 면모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한 청년의 인생에 연관되어 그에게 시를 쓰게 하고, 사랑을 하게 하고, 또한 아버지가 되게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네루다와의 굳건한 우정이 되기도 한다. 솔직히 책 속에 나오는 시집들은 나에게는 낯설다. 하지만 주민들의 입을 통해 읊어지는 시들은 이미 그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책의 결말이 다소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내가 단순하게 갖고 있는 라틴의 느낌이 밝고 화사하게 전해져서 특히 더 좋았던 것 같다. 조신하지 않은 태양의 정열을 한껏 머금은 듯한 표현들. 그들은 거리낌없이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하는듯 하다.
나는 마리오가 네루다를 위해 이슬라 네그라의 풍경들을 녹음하는 장면에서 많이 뭉클했었다. 네루다를 얼마나 사랑하면 그렇게까지 절절하게 작은 소리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정성을 기울일 수 있는 것일까. 문득 태풍이 치는 모습을 알기 위해 뱃머리에 자신의 몸을 묶고 태풍속에 뛰어든 어느 화가의 일화가 떠오를 정도다. 그리고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라는 말이 참으로 인상 깊다. 따지고 보면 결국 작가의 손을 떠난 창작물들은 작가의 것뿐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도 되는 것이다.
읽는 동안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뽀르뚜가와 제제도 생각나고, ‘인생은 아름다워’의 아버지와 아들도 생각났었다. 사람이 서로 교감한다는 것은 참 가슴 따뜻한 일이다. 그것이 결국은 알 수 없는 미래를 내포한다고 해도 말이다.
(침묵) 좋아요. 여기까지는 시고요, 지금부터는 원하시던 소리들입니다.
첫째, 이슬라 네그라 종루의 바람 소리. (바람 소리가 일분쯤 계속된다)
둘째, 제가 이슬레 네그라 종루의 큰 종을 울리는 소리. (종소리가 일곱 번 울린다)
셋째, 이슬라 네그라 바윗가의 파도 소리. (아마도 폭풍우가 치던 날에 녹음한 듯, 바위에 거세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편집한 것이다)
넷째, 갈매기 울음소리. (이 분간 기묘한 스테레오 음이 난다. 녹음한 사람이, 앉아 있는 갈매기들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새들을 놀래 날려 보낸 듯하다. 그래서 새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절제미가담긴 무수한 날갯짓 소리 역시 들을 수 있다. 중간에 사십오 초 지날 즈음에 마리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염병할, 울란 말이야."라고 소리 지른다.)
다섯째, 벌집 (거의 삼분간 윙윙거리는 위험천만한 주음향이 들리고 배경음으로는 개 짖는 소리와 무슨 종류인지 모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녹음되었다)
여섯째, 파도가 물러가는 소리. (녹음의 절정의 순간으로, 큰 파도가 요란하게 모래를 쓸어 가다가 새로운 파도와 뒤섞일 때까지의 소리를 마이크가 매우 가깝게 쫓은 듯하다. 마리오가 내리 쏟아지는 파도 옆을 달리다가 바다로 뛰어들어 파도끼리 절묘하게 섞이는 것을 녹음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일곱째, (분명히 긴박함이 깃든 격앙된 음성이었고, 침묵이 뒤를 잇는다) 파블로 네프탈리 히메네스 곤살레스 군. (갓 태어난 아기가 쩌렁쩌렁 우는 소리가 십 분쯤 지속된다.)
영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본 후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던 여운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던 독서였다. 스카르메타는 크로아티아로 이민 왔지만, 칠레 태생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익히 잘 알려진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우체부 마리오와의 우정을 다룬 소설(『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을 출판함으로써 그 역시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부상했다. 하지만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유명 작가 대열에 합류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삼류 신문사에서 문화 담당 기자로서 새벽녘까지 남아 매번 소설을 새로 쓰기 시작했지만, 스스로의 재능과 게으름에 실망하여 중도에서 그만두곤 하였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다. 당시 같은 라틴 아메리카 작가로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라든가 보르헤스는 위력적인 작품을 속속 출간하며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스카르메타는 열등감과 좌절,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을 통해 그의 저력은 빛을 발하게 된다. 첫 출간 당시 원제 『불타는 인내』였던 이 작품을 그는 영화로도 제작한다. 이미 1973년 군사 정권을 피해 베를린으로 망명해 영화 시나리오 교수로 재직하면서 황금 쟁반상이라는 독일 영화제 대상까지 거머쥔 그였다. 이후 「일 포스티노」는 1973년 이래 최초로 최우수 작품상 후보, 아카데미 5개 부문 후보로 노미네이트되며, 미국 역사상 최다 관객을 동원한 외국 영화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와 같은 원작과 영화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다. 영화 「일 포스티노」가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랄까. (다만 상사병에 걸리다시피 한 마리오가 네루다의 도움으로 결혼에 골인한 상대, 베아트리스를 연기한 여배우의 나이가 좀 들어 보였다는 것만 빼면. 소설에서는 반항기 농후한 아리따운 열일곱 소녀인데, 영화 속 그녀는 왠지 세상의 쓴맛 단맛 다 본 삼십대로 보였기 때문.)
네루다는 만족하여 시를 멈췄다. "어때?" "이상해요." "'이상해요'라니. 이런 신랄한 비평가를 보았나." "아닙니다. 시가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에요. 시를 낭송하시는 동안 제가 이상해졌다는 거예요." "친애하는 마리오, 점 더 명확히 말할 수 없나. 자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침나절을 다 보낼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요. 시를 낭송하셨을 때 단어들이 이리저리 움직였어요." "바다처럼 말이지!" "네, 그래요. 바다처럼 움직였어요." "그게 운율이란 것일세." "그리고 이상한 기분을 느꼈어요. 왜냐하면 너무 많이 움직여서 멀미가 났거든요." "멀미가 났다고." "그럼요! 제가 마치 선생님 말들 사이로 넘실거리는 배 같았어요." "'내 말들 사이로 넘실거리는 배'." "바로 그래요." "네가 뭘 만들었는지 아니, 마리오?" "무엇을 만들었죠?" "메타포." "하지만 소용없어요. 순전히 우연히 튀어나왔을 뿐인걸요." "우연이 아닌 이미지는 없어."
이슬라 네그라는 주로 어부들이 군집해 사는 소박한 해안가 마을이다. 마리오 역시 어부인 아버지를 따라가야겠지만, 하릴없는 백수 생활이 지겹지 않다. 그런 아들을 그냥 보아 넘길 아버지가 몇이나 될까? 마리오는 아버지의 독촉으로 우체부 직을 얻게 되는데, 우연찮게도 그가 배달하게 될 편지는 오직 한 사람의 것, 바로 파블로 네루다였다. 이 놀라운 인연을 마리오는 놓치지 않고 잘 가꾸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주점에서 베아트리스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나름 낭만주의자였던 마리오를 더 몸살 나게 한다. 한참 시에 달떠 있는 상태에서 마리오는 번번이 네루다를 찾아가 막무가내 도움을 요청한다. 과부이자 주점 주인인 베아트리스의 어머니의 핵폭탄 격 반대를 이길 사람은 시인 뿐이었기로. 우여곡절 끝에 마리오와 베아트리스는 결혼에 성공! (결혼하기 전 모녀의 대화를 읽는 내내 피식피식 웃음이 샜다. 번역이 참 맘에 든다. 서민적 위트가 압권! 궁금하실 것 같아 아래에 발췌, 한 번 읽어보시길.)
" - 탁 까놓고 이야기해 보자고. 그 놈팡이가 누구지?" "마리오라고 해요." "직업은?" "우체부요." - "들고 다니는 가방 못 보셨어요?" "물론 봤지. 가방을 어따 쓰는지도 보았고. 포도주 병을 집어넣더군." "벌써 배달을 마친 뒤니까요." 누구에게 편지를 배달하는데?" "파블로 씨에게요 - 두 사람은 친구 사이예요." "그놈이 그렇게 말하디?" "둘이 같이 있는 걸 보았어요. 저번 날 주점에서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요." "무슨 이야기를 하디?" "정치에 대해서요." "아하! 게다가 빨갱이란 말이지." "엄마, 네루다 씨는 칠레의 대통령이 될 거예요." "이봐요, 따님. 정치와 시도 혼동할 정도로 똥오줌 못 가리면 곧 미혼모가 되시고 말걸요. 마리오가 무슨 말을 했지?" - "메타포요 - 왜 그러세요, 엄마? 무슨 생각을 하셨죠?" - "한번도 네 입에서 그렇게 긴 단어를 들은 적이 없다. 어떤 메타포지?" "그가 말하기를... 그가 말하기를 제 미소가 얼굴에 나비처럼 번진대요." - "번드르르한 말처럼 사악한 마약은 없어. 촌구석 술집년을 베네치아 공주처럼 느끼게 만들지. 그리고 나중에 진실의 순간이 오면, 즉 현실로 되돌아오면 말이란 부도수표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지. 네 미소가 나비보다 더 높이 난다는 말보다 술주정꾼이 주점에서 네 엉덩짝을 치근덕거리는 게 천만번 낫지."
네루다는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을 때나 프랑스 대사로 이슬라 네그라를 떠나 있을 때도 마리오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지킨다. 그러던 중, 그는 마리오에게 편지와 함께 녹음기를 선물하며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선물한 녹음기에 이슬라 네그라의 모든 것을 녹음해 달라는 것. 그 순간부터 마리오는 가장으로서의 의무는 내팽개치듯 잊어버리고 오로지 녹음하는 일에만 전념한다. 이후 쿠데타로 죽음에 임박한 네루다 곁을 지키던 그는 참혹한 군사 정권 아래 실종되고 만다.
냉혹한 현실을 담담하게 그리면서도 묘하게 담백한 서정이 함빡 담겨 있고, 송송 위트까지 살아 있다. 시작과 달리 결말은 애석하고 자못 엄숙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사회적 혼란 속에서 피어난 우정과 사랑 이야기이기에 이 소설이 더욱 아름다운 것이리라. 독자들 손에 있는 이 소설은 내가 이슬라 네그라에서 쓰려던 것도, 그 시절에 썼을 법한 것도 아니다. 단지 실패로 끝난 네루다 취재 공세의 부산물일 뿐이라던 스카르메타. 그는 파블로 네루다에게 지지부진하지만 언젠가는 출간하게 될 자신의 소설의 서문을 부탁했고, 네루다로부터 "소설을 끝내면 기꺼이 써주겠네."라는 답변을 받은 이후, 십사 년만에 이 소설을 탈고했다고 한다. 자신을 지독한 게으름뱅이라 지칭하는 겸손한 대기만성형의 대작가의 글이라서인지 역시 다르다. 자꾸자꾸 읽고 싶고 마음 깊이 되새기며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