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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허삼관 매혈기

[ 개정판 ]
위화 저 / 최용만 | 푸른숲 | 2007년 06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1 리뷰 635건 | 판매지수 2,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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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6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42쪽 | 491g | 153*224*30mm
ISBN13 9788971847244
ISBN10 8971847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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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둘이 읽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소설
--- 허순용(sellavy@yes24.com)
고등학교 때의 수업 중에 지금도 특이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게 있다. 별명이 마징가 Z인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춘향전』을 배우고 있었는데, 그 날은 교실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남자 고등학교란 대개 싸움과 음담으로 해를 넘기고, 수업 시간이면 자거나 딴짓하는 놈들이 부지기수인 법이다. 그런데 평소 침을 흘리며 자던 아이들이 그날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책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다들 책에 정신이 팔려 이상한 열기가 교실에 감돌았고, 많은 사람이 한마음이 되었을 때의 그런 힘찬 기운조차 느껴졌다. 모두들 『춘향전』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신이 나서 열강을 하고 우리도 점점 더 『춘향전』속으로 빠져들었다.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그 절묘한 단어구사와 리듬과 해학이 우리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이윽고 선생님이 '너무 많이 했으니 그만 하자'고 했다. 그 때 50명이 넘는 경상도 머슴애들의 입에서 똑같은 말이 터져나왔다. "안됩니더. 더 하입시더! " 마징가 Z는 놀라고 감동하였으며, 우리는 모처럼 우쭐거렸다. 학생이 공부를 더 하자고 선생님에게 떼를 쓰는 걸 그날 이후 나는 본 적이 없다.

『허삼관 매혈기』는 그에 필적할 만큼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 능청스럽고 해학에 찬 말투는 시종 웃음을 짓게 하며, 좀스럽지 않고 시원시원한 문장은 책장 넘어가는 속도에 불을 붙인다. 묘사의 호쾌함과 대화의 생생함은 따를 자가 없고, 포복절도할 장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려내는 그 의뭉스러움 또한 견줄 이가 없다. 이를테면 허삼관의 마누라가 아이를 낳는 장면은 거의 『춘향전』수준이다. 대담한 생략, 살아있는 육두문자. 그렇게 낳은 아이들 이름은 또 좀 웃기는가? 첫 아들은 일락이, 둘째 아들은 이락이, 그럼 셋째 아들은? 그렇다 삼락이다. 이들 허삼관네를 비롯하여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평범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닮아 있으며,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조금 못한 것처럼 여겨져 마음이 편한 그런 종류의 인물들이다. 그들은 싸우고 바람피고 게으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하고 다정하며 동정적이다. 요컨대 그들은 그냥 사람인 것이다.

책 전체에 걸쳐 이야기는 황하처럼 넘실대며 삶의 희노애락을 담고 흘러간다. 이야기가 너무 자연스러워 그 물결을 바라보고 있자면 저절로 마지막 페이지에 달하지만, 소설은 허삼관이 그 고비마다 피를 팔게 되는 사연을 박아둔다. 허삼관은 아홉 차례에 걸쳐 피를 판다. 장가 갈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처음으로 피를 팔아본 뒤, 돈이 꼭 필요할 때마다 피를 팔러 간다. 그 사연을 여기 다 옮길 수는 없다. 그것은 오직 이 소설의 풍성한 이야기와 플롯 속에서만 감동을 지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마다 허삼관은 조금이라도 피값을 더 벌기 위해 오줌보가 터지도록 물을 마시고, 피를 팔고 난 뒤에는 몸의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반드시 돼기고기 볶음과 황주를 마셔야 하며, 최소 석달이 지난 후에 피를 팔아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규정을 때로는 어길 수밖에 없었다는 내막을 전해 두기로 하자.

역사가 어떻고 민족이 어떻고를 얘기하지만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여기 허삼관과 같다. 그러기에 이 작품 속에서는 문화혁명조차도 지극한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인생에서는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넘어서는 그 어떤 논리도 없다'는 것이 작가 자신의 인생관이기도 하거니와, 피를 팔아서 일락이에게 국수를 먹이는 허삼관 앞에 문화혁명은 한갓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것이다. 마치 영화 <모던타임즈>처럼 허삼관의 삶을 기록하는 작가의 붓끝은 너무나 활달하고 빠르지만, 그 위트와 해학은 고난의 깊이와 욕망의 소박함으로 인해 더욱 숭고하고 아름답게 화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 피를 파는 사정 자체가 그러하지만, 알고 보니 자기 아들도 아니었던 일락이를 진정한 자기 아들로 받아들이고, 나중에 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몸을 망쳐가며 피를 파는 허삼관이 차가운 강물을 사발에 떠서 마시고 벌벌 떨 때, 그의 인간적인 품격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이 작품은 위화(余華)의 최대의 베스트셀러로서 중국 뿐 아니라 프랑스, 이태리 등 여러나라에서 크게 성공하였다. 전작인 『살아간다는 것』은 장이모에 의해 영화화되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우리나라에서 <인생>이란 제목으로 상영되었다.(『허삼관매혈기』도 <햇빛 쏟아지는 날들>, <귀신이 온다>를 만든 지안 웽 감독에 의해 영화화될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국내에는 그의 중단편집까지 출간되어 있는데, 『내게는 이름이 없다』는 현대 중국의 소시민 열전이라 할 만하며,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는 폭력과 죽음의 세계를 그린 것으로 중국 현대사에 대한 하나의 은유로 읽힐 수 있다. 여러 작품에서 드러나는 그의 놀라운 이야기솜씨와 문장력은 이문구에 의해 '문림(文林)의 고수'라는 별칭을 얻은 바 있다.
허삼관과 우리가 인생을 헤쳐나가는 방법
도서1팀 김성광(comma99@yes24.com)
2015-06-09
1. 『허삼관 매혈기』는 고단한 인생을 피를 팔며 헤쳐나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오줌보가 터지기 직전까지 물배를 채워 피를 파는 남자.

2. '피'를 팔아 살아간다는 점에서 피는 '노동력'이고, '돈'이다. 허삼관에게 피 파는 법을 처음 알려준 방씨는 이렇게 말한다. "자네가 논밭 일을 하거나 백여 근쯤 되는 짐을 메고 성안으로 들어갈 땐 힘을 써야 한단 말씀이야. 이런 힘은 다 피에서 나오는 거라구 " 이쯤되면 피는 직접적으로 노동을 의미한다.

3.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피'는 노동 그 이상이다. 노동이 일상적이라면, 허삼관의 매혈은 '사건'적이다. 피를 팔아 헤쳐온 인생이라지만, 그가 피를 파는 것은 일생에 열 번이 되지 않는다. 그는 인생의 중요한 혹은 절실한 순간에 피를 판다.

4. 모든 작품은 독자 나름의 경험으로 재해석 된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팔게 되는 것'으로 요즘의 사람들에겐 '신용'만한 것이 없다. 신용을 팔아 우리는 부채를 얻고, 그 부채로 등록금을 내고 결혼도 하고 집도 얻고 아이도 키운다. 허삼관이 피를 팔아 하는 일과 거의 완벽하게 동일하다. 게다가 '신용'은 자본주의 경제의 혈액이 아니던가. 이 작품은 '피'라는 매개를 통해 인생과 세상을 동시에 끌어들인다...고 하면 너무 기계적이겠지만 그 겹침이 확실히 묘하다.

5. 중국에도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라는 속담이 있을까. 허삼관은 혈색 좋고 살집 좋은 '혈두'에게 피를 팔고 난 후엔 꼭 '돼지간볶음'을 황주와 곁들여 시켜 먹는다. 벼룩이 간을 뺏기고 난 분노를 (혈색 좋고 살집 좋은) '돼지' 간으로 해소하는 것 같다. 분노를 맨 정신에 토해 낼 자신은 없어서 술기운을 빌리려는 것인지 꼭 황주를 곁들이는데, 짐짓 호기로운 척 테이블을 두 번 쾅쾅치면서 주문한다.

6. 작가 위화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것은 평등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평등은 '불평등이 없는' 평등이 아니라, '너나 없이' 불평등을 겪고 있다는 얘기로서의 평등으로 다가온다. 노동과 부채로 삶을 꾸려가는 한편, 돈줄을 쥐고 있는 사람 앞에서는 속으로 분노를 삭히고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이토록 많지 않은가. 이 소설이 익살로 무장하고 있음에도 끝내 큰 공감과 감동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지 않을까.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허옥란은 세 아들의 말을 듣고는 그들에게 삿대질을 하면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아, 니들 양심은 개에게 갖다 주었냐. 너희 아버지를 그렇게 말하다니. 너희 아버지는 피를 팔아서 번 돈을 전부 너희들을 위해서 썼는데, 너희들은 너희 아버지가 피를 팔아 키운 거란 말이다. 생각들 좀 해봐. 흉년 든 그해에 집에서 맨날 옥수수죽만 먹었을때 너희들 얼굴에 살이라고는 한 점도 없어서 너희 아버지가 피를 팔아 너희들 국수 사 주셨잖니. 이젠 완전히 잊어먹었구나...(중략)...일락이 네가 상해 병원해 입원해 있었을때.집안에 돈이 없어서 너희 아버지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면서 피를 파셨다. 한 번 팔면 석 달은 쉬어야 하는데, 너 살리려고 자기 목숨은 신경도 쓰지 않고, 사흘 걸러 닷새 걸러 한번씩 피를 파셨단 말이다.송림에서는 돌아가실 뻔도 했는데 일락이 네가 그일을 잊어버렸다니...이자식들아 너희 양심은 개새끼가 물어 갔다더냐..이놈들아..'

허옥란은 한바탕 통렬한 독설을 퍼붓고는 허삼관의 손을 잡아끌었다.

'여보, 갑시다. 우리 돼지 간 볶음 먹으러 가자구요. 황주도 마시구요.이제 가진게 돈뿐인데 뭘 그래요.'
--- pp.322-323
허삼관은 일락이에게 비계로 된 홍소육을 만들어 준 뒤 허옥란에게 붕어찜을 요리해 주었다. 붕어에다 훈제 고기, 생강, 버섯을 함께 넣어 소금을 살짝 바르고 황주를 뿌린 뒤 잘게 썬 파를 얹어서 한 시간 정도 익힌 후에 뚜껑을 여니 맑은 향기가 방 안에 가득히...허삼관이 눈에 선하게 만들어 낸 붕어찜은 방 안 가득히 침 넘어가는 소리를 자아냈다. 그러자 허삼관이 아들들을 꾸짖었다.

'이건 너희 엄마를 위해서 만든 건데, 너희들은 침을 왜 삼켜? 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었으면 이젠 자도록 해라.'

마지막으로 허삼관은 자기가 먹을 돼지간볶음을 만들었다.
--- p.162
'똑바로 보시오. 이 피는 내가 칼로 그어서 나온 것이오. 당신들......'

그리고 하소용의 부인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신도, 만약에 당신들 중에 다시 한 번만 일락이가 내 친아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칼로 베어 버릴 테요.'

말을 마친 뒤 허삼관은 칼을 내던지고 일락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일락아, 우리 집에 가자.'
--- p.207
그때 허옥란은 자기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가 매일 누워 낮잠을 자느 등나무 평상에 앉아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도 눈주위가 벌겋게 상기된 채 걸상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어제 방철장이 가져간 물건들을 일일이 손가락으로 세어 가며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있었다.

'제가 10년간 힘들여 모은 물건들을 그 사람들은 두 시간만에 가져가 버렸어요. 10년간의 제 고생....옷감 두단도 가져갔어요.아버지가 저 시집갈 때 주신 그 옷감 말이에요. 옷 해 입기도 아까워서 애지중지 아껴 두던 것들인데...'

그렇게 허옥란이 손가락들을 꼽고 있을 때 방철장 일행은 모든 물건들을 되돌려 놓고 있었고,그녀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그들이 돌아간 후였다. 그녀는 문 앞에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어제 실려 나갔던 물건들이 다시 돌아와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탁자며 상자,걸상...보고 또 보고서야 그녀는 10년 동안이나 고락을 함께했던,방 한 가운데의 탁자 곁에 앉아 있는 허삼관을 바라보게 되었다.
--- p.111.
"일락이가 방 철장의 아들 머리를 박살냈을 때 피를 팔러 갔었지. 그 임 뚱땡이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피를 팔았었고, 그런 뚱뚱한 여자를 위해서조차 흔쾌히 피를 팔다니. 피가 땀처럼 더우면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식구들이 57일간 죽을 마신다고 또 피를 팔았고, 앞으로 또 팔겠다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고생을 어떻게 견디나……. 이 고생은 언제야 끝이 나나."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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