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5년 05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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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25쪽 | 584g | 148*210*30mm |
ISBN13 | 9788982738852 |
ISBN10 | 8982738851 |
발행일 | 2005년 05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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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25쪽 | 584g | 148*210*30mm |
ISBN13 | 9788982738852 |
ISBN10 | 8982738851 |
윌리엄 깁슨의 SF 소설 『뉴로맨서』를 읽었다. 출간되고 나서 휴고 상, 네뷸러 상, 필립 K. 딕 상 등 3대 SF 문학상을 석권하면서 사이버펑크라는 새로운 문화 코드를 개척한 혁명적인 소설이라고 한다. 이 소설이 후광처럼 거느리고 있는 이런 명성에 마음이 끌린 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SF 소설은 내 독서취향에서는 지금도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분야이니까. 더군다나 무슨 하드 락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읽어야만 되는 책인 양 사이버펑크라는 생소한 꼬리표마저 붙어 있어서, 비트 강한 시끄러운 락 음악을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이 책을 읽어볼 마음이 조금도 동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앞서 읽은 두 권의 책이 이런 내 마음을 돌려 세워 이 소설에 손을 내밀게 만들었다. 그 중 한 권은 며칠 전에 읽은 책 『뇌, 생각의 출현』이었다. 인간의 뇌의 기원과 구조와 기능 등에 대해서 매우 폭넓으면서도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을 중요한 주제의 하나로 다루고 있다고 하는 이 SF 소설 『뉴로맨서』를 바로 이어서 읽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뇌 과학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인공두뇌가 문학에서는 어떤 식으로 그려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제법 흥미로운 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 소설을 한번 읽어보자는 내 생각을 거든 또 다른 책은 몇 달 전 읽었던 『책,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이었다. 교양인으로서 꼭 읽어야 할 고전들을 주제별로 소개하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사이버 세계를 포함하는 유토피아를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책들 중 하나로 『뉴로맨서』를 포함시켰던 것이다. 이 소설에 대해 격찬을 늘어 놓고 있지는 않았지만, 지금 우리의 일상적 삶의 상당 부분을 접수해버린 사이버 세계를 약 30년이나 앞선 시기에 ‘현미경 같은 시선과 얼음같이 냉정한 눈길’로 치밀하게 형상화한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우호적으로 소개해 놓고 있었다. 과연 그러한지 내 눈으로 직접 읽고 확인하고 싶었다.
이 두 권의 책에 힘입어 나는 『뉴로맨서』의 책장을 펼쳐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일본 하이테크 제국이 만들어낸 광고판의 깨진 네온 불빛들이 금속성으로 명멸하면서 속도감 있는 문장들 표면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가고 있었다(그렇다고 문장이 유려하다는 게 아니다). 사건 전개를 쉽게 따라잡기 힘든 서사의 좁은 골목길로는 각성제와 마약에 취한 어두운 그림자들이 간신히 걸음을 옮겨놓고 있었다(그렇다고 서사가 복잡하다는 게 아니다). 또한 인간인지 돌연변이인지 아니면 사이보그인지 로봇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들이 피와 살과 금속과 플라스틱을 한 몸에 동시에 지닌 채 여기저기에 불쑥불쑥 등장하고 있었다(그렇다고 등장인물들이 다양하다는 게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거리낌없이 저지르는 살인과 무자비한 폭력은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를 가리지 않고 시종일관 무차별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그렇다고 내용이 비현실적이라는 게 아니다).
이걸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혼돈’ 또는 ‘혼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앞서 언급한 『책,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의 저자 역시 『뉴로맨서』에서 읽혀지는 이러한 혼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뉴로맨서』는 복잡한 독서물이다. 깁슨의 언어는 기술계의 전문용어들과 유행 제품 명칭들의 과시적인 언급과 하위문화의 알아듣기 힘든 비속어들로 이루어진 미로다. 이 때문에 항상 본문 내용의 방향을 잃어버릴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줄거리에서 홍등가의 현실에 존재하는지 아니면 사이버스페이스의 인공 세계에 존재하는지 더 이상 갈피를 잡지 못할 수 있다. 이런 혼란은 물론 의도된 것이다. (430쪽, 『책,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서 점점 그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는 실제 세계와 인공 세계(또는 현실 세계와 사이버스페이스) 간 구별의 어려움 내지는 무의미함이라는 이 소설의 숨겨진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도입한 혼란이라는 뜻이겠다.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없지 않지만,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혼란들은 텍스트 자체에서 왔다기보다는 오히려 텍스트 바깥에서 온 것들이 더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있어 그 외부의 텍스트들이란 내가 그 동안 보아왔던 SF 영화들이었다.
그렇다. 이 소설은 <블레이드 러너>, <매트릭스> 시리즈, <엑스맨> 시리즈, <터미네이터> 시리즈 등 잘 알려진 SF영화들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잘 나가다가 한 순간의 실수로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한 이 소설의 주인공 케이스가 마약에 취해 벌레처럼 살아가고 있는 도쿄 외곽 지바시의 풍경은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음울한 일본풍 거리와 정확히 겹친다. 자신의 몸은 현실 세계에 남겨놓은 채 헤드셋을 수단으로 해서 사이버스페이스 가상 공간으로 들어간 주인공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움직이고 싸우고 죽기도 하는 장면들은 즉각적으로 <매트릭스 시리즈>를 떠올리게 만든다. 또한 얼굴에는 선글라스, 손톱 밑에는 튀어나오는 예리한 칼들을 이식하는 등 온몸 곳곳을 온갖 종류의 유용한 이식 조직으로 무장한 여검객 몰리는 <엑스맨> 시리즈에 나오는 초인적인 힘을 지닌 돌연변이 인간들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존재다. 그리고 케이스와 몰리를 고용하여 함께 작전을 수행하도록 명령하는 인물의 최종 배후가 사람이 아니라 인공두뇌로 밝혀진다는 내용은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스스로 진화하는 기계에 의한 인간의 지배라는 주제와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을 조금씩 골고루 담고 있는 이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떠올린 이러한 영화 속 영상들이 너무나 압도적이었다는 사실이겠다. 그래서 그 영상들이 이 소설에서 내가 읽은 문장, 서사 전개, 등장인물들 및 내용과 자주 마찰을 일으켰고, 그러한 마찰이 내게 상당한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현실 세계보다도 더 현실감이 나게 미래의 풍경들을 영상으로 담아낸 SF 영화들을 많이 보아왔으니(SF 문학은 내 독서취향이 아니지만, 영화에 있어서는 SF 영화들도 즐겨 보는 편이다^^), 이 책에서 내가 느낀 혼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이 소설은 우리가 사이버 세계라고 부르고 있는 지금의 인터넷이 아직 본격화되기 전인 1984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도 우리는 잊지 말고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거의 30년에 달하는 시간적 격차와 SF 영화로부터 빌려온 거부할 수 없는 뚜렷한 시각적 이미지의 영향은 내가 이 소설을 읽는 데 가장 큰 방해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은 지금도 SF 소설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는 건 아닐까? 사이버스페이스, 매트릭스, 인공지능 따위 용어가 일반인들에게는 별로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에 이 책에 소개된 참신한 아이디어와 치밀한 묘사에 힘입어, 그 이후 등장한 SF 영화들은 톡톡히 그 덕을 보았을 테니 말이다. 이 소설이 자신의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빌려준 아군(SF 영화들)이 이제는 오히려 이 소설이 애초에 지녔던 빛을 반감시키는 적군이 되어 이 소설을 읽어나가는 독자들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현대과학기술의 총아로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인공지능도 어쩌면 이 소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자신을 창조한 인간에게 오히려 역습을 가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문득 사로잡히게 된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컴퓨터에 의해서 기계들은 무한자기복제 능력까지 갖추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인간은 그들에게 아무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어 그 기계들의 가차없는 공격대상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그대로 옮겨 적은 듯한 이 불길한 시나리오가 전혀 근거가 없는 허무맹랑한 농담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입증 가능한 아주 유력한 인류 종말론의 후보로 거론되고 있음은 몹시도 우울한 일이다.
따라서 윌리엄 깁슨의 SF 소설 『뉴로맨서』에서 그려지고 있는 미래 세계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일 수밖에 없다. 그 디스토피아적 풍경 속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모습이 이미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혼돈’의 최종적인 근원은 어쩌면 아니 확실히, 내가 보았던 그 불길한 풍경에서 비롯된 것이겠다. 책장을 덮는 마음이 무겁다.
뉴로맨서 (Neuromancer)
윌리엄 깁슨 저/김창규 역 | 황금가지
원제 Neuromancer (1984) | 2005년 05월
정확하게 1주일 전 이었던 것 같다. 퇴근을 하면서 SF 사이버 펑크 장르의 대가인 월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를 집어든 것이 말이다. 전철에서 책을 몇 장 읽고서 기대감에 차있을려는 순간(주말동안 독파를 해야지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날 밤 나는 맹장염으로 응급실에 갔고, 다음날 수술을 받았다. 입원하는 2일 동안, 통증으로 책은 읽을 수가 없었다. 월요일 퇴원 후, 일정에 잡힌 중국 상해출장을 화요일에 그대로 가기로 결정했다. 몸에 무리가 되겠지만, 사람들과 이리저리 약속한 일정들로 인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약으로 진통을 다스리면서, 채 10페이지도 읽지 못했던 뉴로맨서를 본격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읽고 싶었던 그래서 무척이나 기대되었던 책을 손에 들고서도 읽지 못했던 것은 나를 무척이나 조급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쓸데없이 사설이 길어졌지만)
뉴로맨서는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만족감을 주었는데, 우선은 SF소설의 하위장르의 하나인 '사이버 펑크'의 의미에 대해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설명은 SF Reader Wiki에서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그것은 컴퓨터(정보사회)가 지배하는 환경(사이버)을 배경으로, 현세적이고 반문화적인 내용(펑크)을 담은 이야기들을 말한다. (http://wiki.sfreaders.org/) 이러한 SF 사이버펑크 장르의 대가로는 윌리엄 깁슨, 브루스 스털링, 루디 터커를 일컫는데, 아쉽게도 나에게 있어서 사이버펑크 장르의 소설은 생소한 편이어서 그들에 대해서 서로 비교하여 설명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물론 사이버펑크의 영향을 받은 여러 애니메이션, 소설, 영화 등을 접하기는 했지만 정확한 내용을 안다고는 할 수 없다.)
어쨌든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는 이러한 사이버펑크 장르의 대표작으로 SF소설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사실 뉴로맨서의 스토리라인이 역시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를 주지만, 그에 못지 않게 여기서 등장하는 여러 개념들의 실재성과 사실성이 무척이나 돋보였다. 사이버네틱스, 심스팀, 메트릭스, 사이버스페이스, 육신을 떠나 메트릭스에 존재하는 인간의 기억 등... 어떻게 보면 하나 하나의 개념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겠지만 이를 통합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윌리엄 깁슨은 이를 무리없이 잘 융합하여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 읽었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빠삐용'을 읽으면서 느껴졌던 짜증스러움 대신에 '뉴로맨서'는 나로 하여금 윌리엄 깁슨이 보여주고자 했던 미래상에 조응하여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과 대비시켜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혹은 모습으로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며, 혹은 그것은 그 변화주체 자체의 변화도 있을 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지금 그것의 자유로움과 변화무쌍함을 실제로 보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