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7년 03월 31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64쪽 | 388g | 134*195*20mm |
ISBN13 | 9788936434267 |
ISBN10 | 8936434268 |
발행일 | 2017년 03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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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64쪽 | 388g | 134*195*20mm |
ISBN13 | 9788936434267 |
ISBN10 | 8936434268 |
MD 한마디
[공감 불능 사회, 차가움을 녹이는 아몬드] 감정을 느끼지 못해 '괴물'이라고 손가락질받던 한 소년의 특별한 성장 이야기. 감정이 흘러 넘치는 또 다른 '괴물' 친구를 만나 관계 맺고 성장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타인의 감정에 무감각해진 ‘공감 불능’인 시대에 큰 울림을 전한다.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소설MD 김도훈
오랜만에 담임을 맡아 올 한해 힘들게 보냈다. 담임교사에 대한 감각을 잃었나보다. 후반기 되면서 두 세 명의 드센 아이들이 튀어오르는데 그간 부드럽게, 타이르고 달랬던 나의 지도 방식을 지켜보다가 이제쯤 기어 올라도 되겠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 선생은 화내지 않아, 무서운 선생 아니야. 하는 식의 흔한 계산. 아이들을 초장에 잡아야 끝까지 말을 잘 듣는다던 원칙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게 싫었을 뿐이다. 군대도 아닌 학교, 그것도 이제 열 다섯 살 열 여섯 살 아이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부터 가르친다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변명이 되어버릴 꼴이지만 내년에 새로 담임을 맡게 된다면 조금은 더 엄격하게 할 것 같긴 하다. 대신 지난 1년 덕분에 경계를 넘나들던 몇몇 아이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는 됐다. 어떤 가정 환경이며 부모의 육아 방식은 어땠는지, 아이의 기질과 환경을 동시에 들여다보려고 애를 썼고 학부모와 자주 전화하며 파악하다보니 비록 나를 힘들게 하여도 아이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커질 수 있었다. 덜 상처받고 더 보듬게 되었다.
아이들 생일마다 책을 한 권씩 선물한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아이들 중 한 명이 1월에 생일이 있다. 우리반 아이들 중 마지막 생일이다.(역으로 우리반 아이들 중 가장 일찍 태어난 아이) 마침 읽은 『아몬드』가 이 녀석의 생일 선물로 딱이겠구나 싶었다. 주는 내겐 의미 있어도 받는 녀석에겐 의미없는 선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 할 일을 하는 것이고 그 이후의 일은 내 몫이 아니다.
아몬드 만한, 정상적인 크기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편도체를 가진 아이 손윤재. 그는 편도체가 작은 만큼 편도체가 해야하는 감정 기능이 없다. 슬픔, 기쁨, 분노, 행복, 두려움, 설레임..... 인간이 가지는 여러 감정의 면면들을 말과 글로써 배워나간다. 엄마와 외할머니의 절대적 사랑 안에서 감정 기능의 부족분을 이론으로 배워나간다. 경우의 수를 늘려 가며 예상되는 대화를 만들어주는 엄마. 이마저도 나이를 먹을 수록 복잡다양한 반응을 해야하게 되자 힘들어지긴 하지만. 괴물이란 소리를 들어도 기분 나쁘지 않아해서 다행인 건가, 윤재는 나름의 적응방식으로 침묵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무표정에 말까지 없는 아이. 자신의 생일날 엄마와 할머니는 칼부림을 당하고 윤재는 그 순간에 느낀 것이 놀라움, 공포가 아니라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지?'라는 이성적인 생각 물음이었다.
혼자가 된 윤재는 스스로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 곤이와의 우정이 큰 줄기이다. 자기 방어로 강함을 택한 곤이는 깽판 치고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자기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아로 낙인찍히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런 곤이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윤재는 우정이라는 것을 감정적으로 느끼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친구가 되는 것일까.
윤재의 시선을 따라 인물이 묘사되고 상황을 설명한다. 윤재가 감정이 없는 아이이기 때문에 문체도 사실적이고 건조할 것 같지만 툭툭 뱉는 언어들이 만들어낸 적확한 묘사들은 되려 많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여백을 풍부하게 메꿔주는 역할을 한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245쪽)
이 소설의 가장 핵심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위의 내용이라 생각한다. 편도체가 작은 윤재에겐 이성적 판단이 우선이다. 결론의 형식은 뇌의 명령에 의한 이성적 판단에서 나온 것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윤재의 가슴에서 나온 말같다.
윤재의 편도체는 부풀어 오를 수 있을까. 윤재 곁에 있는 사람들, 눈만 깜박이는 엄마, 십년 동안 무조건 윤재 편이었지만 지금은 없는 할멈, 윤재의 임시 보호자 심박사, 유일한 친구 곤이, 끝없이 달리고 싶어하는 도라. 윤재의 아몬드는 깨질 수 있을까.
손원평 작가의 이름 석자를 눈여겨 본다. 평론가였구나, 그러다 소설가로 전향한 분이구나. 문장의 아름다움보단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강하다 싶었는데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했구나. 이 분의 작품이 기대된다. 신간 [서른의 반격]도 얼른 만나고 싶다.
책은 달랐다. 책에는 빈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단어 사이도 비어 있고 줄과 줄 사이도 비어 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앉거나 걷거나 내 생각을 적을 수도 있다. 의미를 몰라도 상관없다. 아무 페이지나 펼치면 일단 반쯤 성공이다.(50쪽)
뭐든 여러 번 반복하면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처음엔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고 조금 더 지난 뒤에 변하거나 퇴색되는 것처럼 보이지. 그러다 결국 의미가 사라져 버린단다.(51쪽)
엄마는 늘 집단생활에는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얘기했었다. 엄마가 내게 그 지나한 교육을 시킨 것도, 내가 그 희생양이 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할멈이 사라진 지금 엄마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88쪽)
할멈의 표현대로라면,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진 죽어 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132쪽)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그래서 나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한 것에 비해 너무 값지다고 평가받는 달. 세상과 내가 가장 다르다고 생각되는 달이 5월이기도 했다.(152쪽)
이른 가을이 오면서 내게도 묘한 변화가 생겼다. 설명하기 힘든, 변화라고 하기도 힘든 변화들. 알고 있던 것들이 다르게 보이고 쉽게 쓰이던 단어들이 혀끝에서 꺼끌꺼끌하게 맴돌았다.(175쪽)
도라가 올 때가 되면 등줄기가 욱신거렸다. 지진을 미리 느끼는 동물처럼, 폭풍우가 치기 전 땅 밖으로 기어 나오는 벌레처럼.(199쪽)
지난 3월 20일 버스 등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코로나19가 시작된 후 3년 만에 일상 회복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코로나19 시대에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 되면서 감기, 독감 등 감염병은 줄어들었으나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사회가 되면서 사람간 정서적 단절은 더욱 심화되었다. 회사에서도 직원들과의 관계가 예전에 비해 사무적으로 변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코로나19 이후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진 요즘 읽어볼만한 소설을 만났다.
이번에 읽은 소설은 얼마 전에 읽은 <페인트>에 이어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다.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아몬드>는 2017년 출간 이후 100만부 이상 팔린 밀리언셀러로 일본서점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국내외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이다.
그날 한 명이 다치고 여섯 명이 죽었다. 먼저 엄마와 할멈. 다음으로는 남자를 말리러 온 대학생. 그 후에는 구세군 행진의 선두에 섰던 50대 아저씨 둘과 경찰 한 명이었다. 그리고 끝으로는, 그 남자 자신이었다. - 12쪽
소설은 첫 문장부터 강렬하게 시작한다. 예전에 읽은 레일러 슬리마니의 <달콤한 노래> 첫 문장이 생각나는 강렬함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이던 열여 섯 살 생일날 소설의 주인공 윤재는 비극적인 사고로 가족을 잃는다.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된다. 혼자가 된 윤재는 소설의 제목인 '아몬드'라고 불리는 편도체가 작아 감정 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아이다. 기쁨, 공포, 분노 등 평범한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느끼지 못한다.
- 할멈. 사람들이 왜 나보고 이상하대?
할멈은 내민 입을 집어넣었다.
- 네가 특별해서 그러나 보다. 사람들은 원래 남과 다른 걸 배기질 못하거든. 에이그. 우리 예쁜 괴물.
할멈이 나를 으스러져라 안는 통에 갈비뼈가 아렸다. 전부터 할멈은 나를 종종 괴물이라고 불렀다. 그 단어는 적어도 할멈에게만은 나쁜 듯은 아니었다. - 21쪽
소설은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는 윤재가 엄마와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으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이겨내고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하다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업 실패 후 3년 간 은둔생활을 하던 남자의 증오 범죄로 가족을 잃고 홀로 남게된 후 겪게 되는 이야기다.
비극적인 사고 후 엄마가 운영하던 헌책방 건물의 집주인인 심박사의 도움으로 헌책방을 운영하게 된 윤재의 인생에 어두운 상처를 갖고 13년 만에 가족에게 돌아온 곤이가 나타난다. 어릴 때 엄마의 부주의로 실종된 후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고 이런저런 사고를 쳐서 소년원을 들락거리다가 13년 만에 가족에게 돌아온 곤. 바르게 자라지 못한 곤이를 병이 들어 임종을 앞둔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아빠 윤교수가 곤이 대신 윤재를 아들 대역으로 엄마를 만나게 하면서 곤이와의 악연이 시작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윤재와 곤이는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는데...
(중략)
- 마지막엔, 마지막에는 뭐라고 했냐
- 마지막엔 날 안아 주셨어. 꽉.
곤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간신히 속삭이듯 내뱉었다.
- 따뜻했냐, 그 품이.
- 응. 많이. - 170쪽
타인들은 윤재와 곤이를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의 감정을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괴물"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거나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는 윤재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상처 받고 마음과 달리 사회를 향해 반항을 하는 곤이를 이해하고 친구로 다가가는데 감정 표현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는 타인의 아픈 감정들에 공감을 하고 있는지... TV 뉴스에 나오는 타인들의 슬픔과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그래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와 어두운 상처를 가진 곤이가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며 한 뼘씩 성장하는 소설 속 이야기는 코로나19를 거치며 상대방을 향한 공감 능력이 떨어진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전해준다.
밀리언셀러로 이미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소설이라 자세한 줄거리는 쓰지 않았지만 소설을 읽는내내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윤재가 내뱉는 담담한 어조들은 역설적으로 윤재의 마음에 공감하며 슬프고 시린 마음을 느끼게 했다. 이번 독서는 코로나19 팬더믹 이후 타인에 대한 감정의 깊이와 공감 능력을 곰곰이 생각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저자와 출판사의 문제로 <아몬드>는 곧 절판된다고 하니 아직 소설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더 늦기 전에 읽어보기를 추천해 본다.
새벽녁이 되도록 의식이 또렷했다. 곤이한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네 엄마 앞에서 아들인 척해서, 내게 다른 친구가 생긴 걸 말하지 않아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는 안 그랬을 거라고,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 225쪽